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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가진 영향력을 부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결국은 거짓이라고 해도 나는 그것을 믿는다. 믿고 애를 써서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예술을 접하고, 새로운 삶을 살거나 새로운 사회, 인간의 비전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도 당신처럼, "그래서 뭐?" 라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그냥 하는 거다. 다만, 백남준 선생이 그랬듯, 늘 진지한 것이 아니라 장난기도 있고, 쿨하기도 하고, 그렇게 있고 싶다.
 

오자와 야스오
컨택트 곤조
컨택트 곤조
백남준 아트센터 앞, 오자와 야스오

2006년 봄, 도쿄에서 공연된 첼피치의 <3월의 5일간>, 같은 해 서울아트마켓의 일본 쇼케이스였던 스트릿댄스 유닛 하무츤&사브의 <히토리데 데키루몽혼자서도 잘해요>, 2007년 모다페에 초청된 콜라보레이션. 우연인지, 그간 봤던 일본 공연 중 가장 컨템퍼러리했던 세 작품의 크레딧에는 동일한 이름이 있었다. 프로듀서 오자와 야스오.

그가 2010년 가을, 백남준아트센터의 퍼포먼스 프로젝트 커미셔너로 한국을 찾았다. ‘Out of Place, Out of Time, Out of Performance’라는 타이틀의 이번 국제퍼포먼스시리즈는 오자와 야스오 프로듀스라는 네임택 아래, 미디어아트, 사운드아트, 그리고 명명해보건대 피지컬무브먼트, 생체실험퍼포먼스 등 기존의 장르명으로는 이름을 붙이기도 힘든 다섯 명의 일본 퍼포먼스 아티스트의 작업을 5주에 걸쳐 소개하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궁금한 건 많았지만, 숨을 고르고, 오자와 프로듀서가 설립했고, 결국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그만둔 기획제작사 프리코그precog, precognition의 준말로 예지능력이라는 뜻의 이야기를 들었다.

일본의 가장 컨템퍼러리한 공연을 소개하다

오자와 프로듀서는 1990년부터 다이라쿠다칸Dairakudakan, 일본의 부토컴퍼니로 1972년 창단된 이래 80년대 이후부터 서구를 중심으로 일본의 부토를 알리는 데 선도적 역할을 함의 기획자로 6년간 일했다. 다이라쿠다칸에 들어갔던 것은 전공 같은 것과는 전혀 상관없었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은 편집자였는데, 학생시절 이런저런 행사기획 경험을 돌아보니, 그것 역시 ‘입체성을 가진 편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후, 프리코그를 설립하기까지는 무대의상을 만드는 디자이너의 매니지먼트 등 다양한 일을 했다.(한 잡지와의 인터뷰를 보니, 참치잡이배를 타기도 했단다.)


“프리코그는 기본적으로 연극, 무용 기획제작사지만 회사의 운영을 위해 초기에는 연극제, 영화제의 사무국 일을 하기도 했다. 설립 준비를 하며 포스트메인스트림퍼포밍아츠페스티벌(Postmainstream Performing Arts Festival, 이하 PPAF)을 시작했고(2003), 첼피치Chelfitsch, selfish의 유아적 발음으로 극작/연출가인 오카다 토시키가 1997년 창단한 극단이나 컨템퍼러리 댄스컴퍼니 니브롤 같은 아티스트를 전속처럼 두고 기획, 제작, 매니지먼트하는 일을 했다.

첼피치의 오카다 토시키(Okada Toshiki)가 중앙무대에서 주목을 받게 된 <3월의 5일간>은 1회 PPAF의 공연이었던 캐나다 극단 PME의 <언리허스트 뷰티>(Unrehearsed Beauty)를 보고 나온 젊은이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PPAF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어진 작품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 오카다의 작품을 처음 접했는데, 전에 본 적 없는 신선한 스타일의 작품이었다. 그래서 2회 축제 때부터 함께 작업을 하게 됐다.


2회 PPAF 직전 첼피치는 기시다 쿠니오 희곡상을 타고, 축제를 통해 쿤스텐페스티벌 디렉터에게 픽업되며 유럽 등 서구에서 아끼는 일본 연출가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지금은 2000년 이후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새로운 세대를 일컫는 '제로세대더아프로 ‘일본예술의 신조류, 제로세대’ 참조'의 연극계 기수로도 손꼽힌다. 이렇게 함께 작업하는 아티스트가 속된 말로 상종가를 달리던 시기에 오자와 프로듀서는 스스로 프리코그를 후진들에게 물려주고 떠났다.

매니지먼트, “작품은 물론 인생까지 좌우하는 엄청나게 힘든 일”

“일본에서는 기획제작사가 전속예술가나 컴퍼니를 끼고 있어야 공적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원래 계획과는 다르게 첼피치나 니브롤 같은 단체들의 매니지먼트를 맡았던 거다. 나보다도 스태프들이 더 원했다. 물론, 그들은 젊고 재능 있는 예술가들이고, 지금도 존경한다. 그들이 성장하면서, 지원금도 받았고 프리코그나 나의 인지도도 올라가고, 네트워크도 쌓였지만, 반대로 부담감도 커졌다.

이 일을 하다보면 프로듀서들이 “이 아티스트는 내 거, 내가 먼저 발견했다, 내가 키웠다”하는 소리를 자주 한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작업하는 것이 예술가를 착취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상품이 있고, 정가가 있고, 정가를 산출하는 인건비, 재료비 등이 있고, 그걸 기준으로 프로레슬러 돌리듯이 공연을 돌리고…. 하지만, 예술을 만들어 내는 데는 그런 계산만으로는 따질 수 없는 엄청난 노력이 들어가지 않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런 구조를 부정할 수도, 나쁘다고만 말할 수도 없고, 그걸로 생계를 유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일이 굉장히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티스트를 매니지먼트 한다는 것은 아티스트와 인생을 함께 걸어가는 일이다. 예술가의 작품은 물론이고, 그의 생활, 인생까지 좌우하는, 엄청나게 힘들고,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일인데도, 나도 그랬었고, 다들 너무 쉽게 생각한다는 느낌이다. 자신의 인생을 그 예술가에게 걸겠다는 생각이 아니면 안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다.

재능 있는 아티스트들의 매니지먼트는 내가 아닌 프리코그에 있는 다른 젊은 친구들이 해도 되고,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생각대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프리코그를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나왔다.”


함께 작업하던 아티스트가 뜨면 흥미가 없어지냐고 물었더니, 오자와 프로듀서는 농담처럼 “그렇다”고, 프로듀서가 아티스트의 명성에 기대어 먹고 살아서는 안 된다고 대답한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와 함께 백남준아트센터를 찾은 아티스트들이 그에게 갖는 신뢰와 친밀감은 절대적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티스트를 매니지먼트한다는 것에 대한 그의 정의와 무게감은 훨씬 더 엄격한 것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역할을 “주도적으로 작업을 밀어붙이는 사람이 아니라 아티스트들이 더욱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억압하지 않고 추동하고, 하자하자 북돋워 젊은 예술가들을 ‘후리는’ 기술이 있다는 평이다.


 

마나베 다이토우메다 테츠야
마나베 다이토 우메다 테츠야
백남준아트센터 국제퍼포먼스 프로그램

세상의 사물과 이치에 대한 의심, 그리고 ‘재능’

그가 현재 소속(?)되어 있는 일본 퍼포먼스/아트 연구소(Japan Perfromance/Art Institute, 이하 JPAI)는 1인 조직이다. ‘퍼포먼스/아트’는 퍼포먼스 그리고(and), 혹은(or) 아트라는 의미. 연극 무용 같은 장르, 공연 시각 같은 분야를 구분하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JPAI 즉, 오자와 야스오 프로듀서는 매년 12월에 하라주쿠 라포레Laforet, 모리미술관의 모기업이 운영하는 쇼핑몰 뮤지엄에서 ‘하라주쿠 퍼포먼스 플러스’를 기획제작하고 있다. 3~4일 정도의 기간 동안, 연극, 무용, 미디어아트 등 장르를 망라한 컨템퍼러리 축제의 성격이 강하지만, 상업지구, 민간기업 위탁이라는 행사의 성격상 대중적인 면도 고려한다고. 매년 3월의 동경예술견본시 쇼케이스 프로그램, 3년에 한번 열리는 ‘포스트메인스트림퍼포밍아츠페스티벌’ 디렉팅이 정기적인 활동이며, 그 외 요코하마국제영상제 퍼포먼스 프로그램이나 이번 백남준아트센터 프로그램 같은 기획프로그램, 퍼포먼스와 관련된 이론 강의 등이 주요 활동이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아마도 <스타킹> 같은)을 우연히 보고, 서울아트마켓에서 쇼케이스를 가진 뒤 해외에까지 소개되고 있는 하무츤&사브, 친구들끼리 치고 박고 싸우며 놀던(!)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가 픽업되어, 아티스트로서의 삶을 시작한 컨택트 곤조(Contact Gonzo). 장르를 막론하고 새롭고 참신하다 못해 신기하기까지 한 아티스트들을 어떻게 찾아내는지, 아티스트를 고르는 나름의 기준이 있는지를 물었다. 가장 궁금했던 점이기도 했다.


“닥치는 대로 보는 편이다. 대체로 무용하는 사람들은 무용만 보고, 연극하는 사람은 연극만 보는 식이지 않나. 물론 지식이나 교양을 위해서 전시를 보기는 하겠지만, 그걸로 새로운 작업을 할 생각은 잘 안하는 것 같다. 나에게는 장르보다는 ‘재능’이 발휘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렇게 보다 보니 나름의 기준도 생기고, 발상도 잘 떠오른다. 어떤 장르 안에서 ‘제일 잘 팔리는 것’ ‘좋은 평가를 얻고 있는 것’ 같은 기준이 아니라, 그와는 다른 평가지가 있는 셈이다. 지금은 세계의 오카다 토시키가 되었지만, 처음 봤을 때 그때까지 본 적 없는 ‘새로운 재능’이 보였다. 장르에 얽매이는 것은 관습에 불과하다. 다양한 취향을 보고 듣고, 장르를 횡단하는 것을 항상 중시한다. 본인이 속한 장르 이외의 것과 협업을 하면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작업이 생겨난다.”


“24시간 그 생각밖에 안 한다”고 옆에서 어시스턴트가 거든다. 실제로 그는 5일 간의 한국체류 중, 이틀은 백남준아트센터에서, 하루는 미디어시티인서울에서, 나머지 이틀은 부산까지 내려가 비엔날레에 모든 시간을 바쳤다. 예술, 인문학 등을 정해진 커리큘럼이 아닌 독학으로 공부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장르로부터의 자유’에, 보기와는 다른 치밀함이 더해져 ‘오자와 표’ 기획의 근간이 되는 셈이다.


“인터뷰하면서 든 생각인데, 나는 연극, 넓게는 공연이라는 식의 장르가 아니라, 전혀 다른 관점에서 예술을 접하고 있고, 그게 나를 움직이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작업이 좋네, 나쁘네, 하는 것은 나에게는 상관없다. 근본적으로 세상의 사물과 이치를 의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의심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에너지다. 그런 시도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먼저 용기를 얻는다. 그런 사람에게, 의식적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끌리고 매료된다.

워낙 반골기질이 있달까, 세상에 도통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이런 내 자신이 있을 곳을 찾아 유영하다가 발견한 곳이 지금의 이곳인 것이다. 이곳에서 이 일을 하는 것은 일이 너무 좋은 것이라기보다 새로운 시도나 작업을 접하면 내가 엄청난 용기를 얻기 때문인 것 같다. 우연히도 내가 발견한 곳이 공연, 예술의 세계였다는 생각이 든다.

순수하다고? 그건 아니다. 그저 항상 지금의 세상 모습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세상의 모습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회사에 들어가서 출세하는 것이 훌륭하다는 생각이 안 드는 거다. 늘 그랬다. 어차피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시스템, 사고방식이고, 모두 그게 좋다고 하니까 세상이 움직이는 거고, 사람들도 행복을 느끼니까 계속 이런 모양으로 세상이 남아있을 테지만,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 나 같은 사고방식이 하나쯤 있어도 상관없지 않나 생각한다. 자본주의가 좋은 건 아니라고 이제는 얘기할 수 있지만, 민주주의, 자유, 평등을 말할 수 있는 세계는 그렇게 많지 않다. 그렇게 사람들이 영위하는 것들, 사고에 대해 ‘왜 그럴까’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점이 많다.”

“일부에게만이 아니라 확장되어야 한다”

타고난 반골인 자신이 있을 곳을 찾아 유영하다 찾은 새로운 예술적 시도에서 본인이 먼저 용기를 얻는다는 프로듀서. 그런 것을 발굴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일의 의미는 무엇일까. 심지어 그가 용기를 얻는다는 예술작업들은 하나같이 한줌의 관객밖에 모으지 못하는 작업들이다.(적어도 초기에는)


“이번 백남준아트센터의 프로그램의 경우, 기본적으로는 의뢰를 받았고, 그래서 이런 환경에서 무엇을 하면 최상일까를 고민했다. 개인적으로 보기에 이게 최고인 것 같아서 소개한 것이 아니다. 백남준아트센터에게, 한국의 예술계에게 어떤 걸 보여줘야 좋을지를 굉장히 고민했다. 이번에 소개한 사람들은 모두 '씨앗'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사람들이 보고, 함께 작업하고 싶어 하고, 그게 점점 확장되면 좋겠다. 사운드아티스트인 우메다 테츠야가 무용음악을 맡거나 하는 식의 구체적인 확장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연극처럼 줄거리가 있고 익숙한 형식과 기승전결의 구조가 아니면 대중적으로 확대되지 않는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라이브 스트리밍을 하자고 백남준아트센터 측에 제안한 거다. 작업의 핵심을 파악하기 힘들다고 눈과 귀를 닫아버리지 않도록 열어간다고 할까. 일부에게만 중요하다고 인식되는 게 아니라 확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장르라는 작은 서클 안에 갇혀서는 안 된다. 더 오픈하고, 보여주고, 많은 장르의 사람들이 보러 오는 것이 단초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믿고 애를 써서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술은 가치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름답다, 추하다, 훌륭하다, 재미없다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새로운 가치관을 보여줄 수 있는가가 기본이다. 공연이건 조각이건, 설치미술이건 새로운 관점, 시각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런 속박 없이 그런 일을 사명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예술뿐이다. 예술이 가진 영향력을 부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결국은 거짓이라고 해도 나는 그것을 믿는다. 믿고 애를 써서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예술을 접하고, 새로운 삶을 살거나 새로운 사회, 인간의 비전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다. 과학은 반복적인 실험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예를 들어 병을 낫게 한다든지-을 보여주지만, 예술은 구체적으로 눈에 보이지는 않더라도 사람의 정신, 마음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걸 놓쳐서는 안 된다. 나도 “그래서 뭐가 가능해?”라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그냥 하는 거다. 다만, 백남준 선생이 그랬듯, 늘 진지한 것이 아니라 장난기도 있고, 쿨하기도 하고, 그렇게 있고 싶다.”


백남준아트센터의 국제퍼포먼스시리즈의 마지막 날 열린 라운드테이블 ‘지금, 여기, 퍼포먼스를 경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에서 페스티벌 봄의 김성희 디렉터는 이번 퍼포먼스 시리즈의 후기로 오자와 프로듀서를 “일본 컨템퍼러리의 보석”이라고까지 추켜세웠다.

이런 현재의 모습을 가진 프로듀서는 결국 어떤 일이 하고 싶은지를 묻자, “왜 또 그런 어려운 걸 묻냐”며 타박이다. 그럼, ‘결국’을 빼고, 가까운 장래에 하고 싶은 일을 물으니 “공간을 갖고 싶다”고 한다. 일본에서의 작업 대부분을 ‘극장’이라는 “갑갑한” 공간에서 해본 적 없다는 오자와 프로듀서의 가장 ‘현실적인’ 꿈인 모양이다.


 

오자와 야스오(Ozawa Yasuo) 프로듀서로 2003년 기획제작사 프리코그(Precog)를 설립했으나 2008년 회사를 후진에게 물려주고 일본 퍼포먼스/아트 연구소(Japan Performance/Art Institute)를 설립하여 컨템퍼러리 댄스, 현대미술, 현대연극, 미디어아트, 사운드, 음악 등 기존의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독자적 관점으로 작업을 기획한다.최근의 주요한 활동으로 '하라주쿠 퍼포먼스 플러스', 가나자와 21세기아트 뮤지엄의 '21세기 공부방', 미학교 '超, 일본, 퍼포먼스론', 요코하마국제영상제 2009오프닝 퍼포먼스 '정전 EXPO', 포스트메인스트림퍼포밍아츠페스티벌, 라포레 사운드 뮤지엄, 백남준아트센터' 아웃오브 플레이스, 아웃오브 타임, 아웃오브 퍼포먼스' 등이 있다.

관련영상 보기
백남준아트센터 국제퍼포먼스 시리즈 영상 보기


 
고주영 필자소개
고주영은 2006년 예술경영지원센터 국제교류팀으로 입사, 2009년부터는 기획지원부에서 웹진 기획편집과 예술경영 직무매뉴얼 등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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