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ETM(International Network for Contemporary Performing Arts, 유럽공연예술회의)은 1981년 이탈리아의 폴베리지 페스티벌(Polverigi Festival)에서 공연예술 전문가 간의 비공식적 모임으로 시작됐다. 당시 유럽 공연예술계의 국제협력은 정부 및 유관기구의 주도 아래 이뤄지고 있던 시기였다. 이에 공연계의 관계자들은 국제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독립적인 네트워크 플랫폼의 필요성을 느끼고 IETM을 설립하게 됐다. 1989년에 이르러 벨기에에 본부를 둔 비영리 국제기구로 자리 잡은 IETM은 2000년대부터는 북남미·아시아·오세아니아 등 타 권역과의 네트워크를 확장해오고 있다. 매년 두 차례 정기총회가 유럽의 도시들에서 개최되며, 4일간의 기간 동안 25-30개의 세션 외에 부대행사가 함께 진행된다. 총회의 주제는 행사를 개최하는 도시가 선정한다.

뮌헨에서 개최된 하반기 정기총회엔 470여명의 공연관계자들이 문화 간의 국제협력, 양성 평등, 난민문제 등에 대한 이슈를 놓고 의견을 교류했다. 특히 총회의 주제인 ‘Res Publica Europa(유럽공화국)’과 연관된 토론 세션들이 다수 진행됐다.

IETM 뮌헨 총회의 토론 세션ⓒSilke Schmidt &Regine Heiland IETM 뮌헨 총회의 토론 세션ⓒSilke Schmidt &Regine Heiland

붕괴되어가는 민주주의와 유럽연합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개막 세션에서 IETM의 난 반 호트(Nan van Houte) 사무총장은 모두발언을 통해 유럽의 우파 정권과 강력한 지도자들에 의해 검열되는 예술계의 상황과 올바른 목소리를 내는 아티스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언급했다. 동시에 예술이 민주주의의 생존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 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모두발언에 이어 내년 2월 1일부터 취임할 새로운 사무총장이 소개됐다. 바로 노르딕 댄스플랫폼 아이스핫 레이캬비크(Ice Hot Reykjavík 2018)의 감독이자 북유럽 문화기금(Nordic Culture Fund)의 프로젝트 대사인 아우사 리카르도티(Ása Richardsdóttir)이다. 그녀는 공연예술의 가치와 공연예술 종사자들의 권익 확대에 매진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개막 대담에선 정치사회학자이자 오스트리아 다뉴브대학교(Danube University Krems) 유럽 정책 및 민주주의학과의 학과장인 울리케 구에로트(Ulrike Guérot)와 오스트리아의 작가 로베르트 메나쎄(Robert Menasse)가 ‘유럽공화국(Res Publica Europa)’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두 사람은 ‘유러피안 발코니 프로젝트(European Balcony Project)’를 운영하며 유럽의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시민의식을 높이고 정치적 토론을 촉발시키기 위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로베르트 메나쎄는 유럽연합은 관료주의는 공유하지만 민주주의는 공유하고 있지 않기에 유럽이 여러 위기를 겪고 있다고 비판하며, 국가의 주권이 아니라 국민의 주권을 토대로 한 유럽공화국을 건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울리케 구에로트는 유럽연합은 단일 통화와 마켓을 구축하고 있지만 유럽의 시민들은 각각 다른 법에 따라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모든 사람의 것(Res Publica)’인 ‘유럽공화국(Res Publica Europa)’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국경 없는 유럽을 만들어가야 할 것을 얘기하며, 공연예술이야말로 대중을 움직일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여담이지만 유러피안 발코니 프로젝트는 이후 11월 10일 비엔나에서 유럽의 아티스트 및 지식인들과 함께 ‘유럽공화국’을 선포했다.

개막세션에서 다뤄진 유럽의 사회적·정치적 문제에 대한 논의는 총회기간 내내 여러 세션에서도 꾸준히 다뤄졌다. <민주주의를 부활시키는 초국가적 연합(Transnational unions to revive democracy)> 세션에선 유럽연합의 재건설을 위해 설립된 초국가적 연합체인 DiEM25(The Democracy in Europe Movement 2025)의 활동사례가 소개됐다. 패널로 참석한 미디어 아티스트인 요나 스탈(Jonas Staal)은 유럽연합은 반(反)난민, 극우정서의 확산과 갈등으로 붕괴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가운데, 내년 유럽의회 선거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자신의 전시에서 다룬 바가 있는 한 때 ‘트럼프의 책사’ 혹은 ‘트럼프의 최순실’이라고도 불리우던 스티브 배넌을 예로 들었다. 내년 유럽의회 선거에 반EU성향의 의원들을 대거 진출시켜 글로벌 우파 포퓰리즘의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그의 야심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초국가적 대안 인프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개막세션 모습 개막세션 모습 로베르트 메나쎄(좌)와 울리케 구에로트(우) ⓒ Silke Schmidt&Regine Heiland 로베르트 메나쎄(좌)와 울리케 구에로트(우) ⓒ Silke Schmidt&Regine Heiland

다양한 문화에 대한 수용

팔레스타인 출신의 감독이자 배우인 람지 막디지(Ramzi Maqdisi)와 시리아 출신의 작가이자 영화제작자인 리와 얏지(Liwaa Yazji)는 <그들은 나를 아티스트라고 부른다(They Call Me an Artist)> 세션에 참여해 유럽의 예술단체와 기관이 이주예술가들에게 갖고 있는 편견에 대한 대담을 나눴다. 건강상의 문제로 스카이프 화상통화를 통해 세션에 참여한 리와 얏지는 여성이자 시리아 출신의 아티스트로써 겪는 고충에 대해 얘기했다. 시리아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조국의 사회적·정치적 문제를 대변하는 작품을 창작하길 기대하는 유럽의 공연 관계자들과 마주하며 아티스트로 어느 위치에 서야할지,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되새김한 경험을 토로했다. 람지 막디지는 ‘중동’에 대한 서구의 고정관념과 편견은 문화예술계에도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으며, 유럽의 예술계 종사자들은 중동 출신의 아티스트를 얼굴색과 배경만으로 출연할 수 있는 역할을 제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팔레스타인이기에 자신을 캐스팅하거나 혹은 그 반대의 사례를 겪은 얘기를 나누고, 아티스트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가치만을 온전히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성평등과 미래의 젠더

지난 몇 년간 IETM은 <Fresh Perspective 5: Of Boxes and Ceilings. Arts and Gender>의 발간 등을 통해 양성평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해왔고, 2017년 부큐레스티 정기회의에선 양성평등을 정치적인 이슈로 보고 어떻게 행동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관련 보고서 참조) 작년부터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유럽 문화예술계의 미투 운동은 양성 평등의 실천방식에 대한 논의에 불을 지폈다. 세션에서는 미투운동 외에도 문화예술기관의 양성고용비율 등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 참석자 가운데 남성 안무가인 이스라엘 알로니(Israel Aloni)는 양성평등에 대한 논의는 80년대에 이뤄졌던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하며, 사회적 구조를 바꿔나갈 수 있는 급진적인 방법과 행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더블린 연극제의 예술감독인 윌리 화이트(Willie White)는 성폭력은 권력의 위계구조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미투운동을 단순한 페미니즘 운동이 아닌 거버넌스 운동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여성참석자들은 남성을 적이 아닌 동지로 바라보며 양성문제의 해결방안을 함께 모색해야한다고 했다. 또한 예술계의 종사자들은 양성평등에 대한 진보적인 방안을 제시하면서 자신들이 문제해결을 이끌어가는 것으로 착각할 때가 있다며, 우리 역시 불완전한 세상의 일원일 뿐임을 잊지 말아야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농촌에서 예술하기

농촌에서 활동하는 공연종사자들 사이의 토론은 지난 브뤼셀, 카이로, 포르토 및 웨일즈 회의에 이어 뮌헨에서도 다뤄졌다. <농촌에서의 예술: 네가 서 있는 곳을 파라(Art in rural areas: Dig where you stand)>세션은 농촌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공연관계자들의 사례를 통해 그들의 애로사항과 해결방안을 함께 논의하는 자리였다. 참가자들은 농촌 지역에서의 기금 조성, 현지 주민과의 관계 맺기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고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풀 수 있을지 의견을 교류했다. 농촌에서 활동을 하는 예술가들은 작품 창작에 현지 주민의 참여와 도움을 구하기에 앞서, 현지 주민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있었다. 그밖에 최근 정치상황과 맞물려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이 정치적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지역문화, 전통 및 문화유산에 접근하고 있다는 우려 섞인 얘기도 함께 나왔다.

뮌헨과 바바리아주의 예술 단체 및 동향 소개

뮌헨 총회에선 현지의 예술단체와 기관을 소개하는 다양한 방식의 프로그램이 마련되었다. 총회마다 운영되는 현지예술 리서치 프로그램(pre-meeting trip)은 본 일정 전날에 진행된다. 올해 뮌헨 총회에선 아우크스부르크와 모자크 두 도시로 나뉘어 도시 탐방이 진행됐다.

총회 기간 중 뮌헨 프리씬 네트워크(Netzwerk freie Szene München), 탄츠&테아터 뷔로(Tanz und Theaterbüro München), 탄츠텐덴츠 뮌헨(Tanztendenz München) 등 현지 독립 예술단체 및 예술기관에 대해 소개하는 세션이 진행됐다. 현지 아티스트와 가깝게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도 마련됐다. 아티스트와의 도시 산책 프로그램은 아티스트와 뮌헨의 길을 거닐며 아티스트의 창작 공간으로 이동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동 중에 자연스럽게 작품세계에 대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아티스트의 설명을 통해 뮌헨의 건축물과 랜드마크 뒤에 숨겨진 역사를 발견하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그밖에 아티스트와 함께 하는 요리 세션도 눈길을 끌었다.

부대프로그램 도시산책(좌)과 요리세션(우)
ⓒ Silke Schmidt &Regine Heiland

IETM 총회 기간엔 공식 쇼케이스 외에도 연계축제인 폴리틱 임 프라이엔 테아터(Politik im Freien Theater)가 진행되어 독일어권 및 해외 예술단체의 공연을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한국 아티스트 구자하의 <쿠쿠> 또한 본 축제에 초청되어 여러 공연관계자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2019년 상반기 총회는 3월 28일부터 사흘 간 영국의 소도시 헐(Hull)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영원히 탈퇴하게 되는 3월 29일 전야에 맞춰 시작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헐 총회에서는 성별·민족·종교·장애 등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예술과 그들의 예술 참여를 방해하는 사회적·제도적 문제 등에 대해 논의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뮌헨 총회에선 양성평등·이민자·장애인 예술 등 그 동안 IETM에서 논의된 주제들이 지속적으로 다뤄졌지만, 그 어느 때보다 유럽의 사회적·정치적 이슈에 대한 토론이 중심이 됐다. 회의 곳곳에선 유럽의 가치와 정체성, 시민의 사회참여, 예술가의 연대 등에 대한 크고 작은 논의들이 진행됐다. 특히 헝가리·폴란드 등의 공연관계자들은 자국의 우파 정권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아티스트와 예술기관에게는 재정지원을 축소하거나 배제해 창작의 통로를 막고 있다며 불만과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유럽 전역에 득세하고 있는 우파 포퓰리즘이 문화예술계에도 큰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음을 체감함과 동시에 불과 몇 년 전 우리 사회가 겪은 사건들이 떠올랐다. 갈등과 충돌이 벌어지는 사회 속에 예술의 역할이 무엇인지, 예술적 실천을 통해 대중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 이희진
  • 필자소개

    이희진은 프로듀서그룹 도트의 프로듀서로 한국 공연예술의 해외진출 및 국제공동제작을 기획해오고 있다. 극단 여행자, 크리에이티브 바키, 공연창작집단 뛰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등 한국 공연예술 단체의 해외투어매니지먼트를 담당하고 있고, 한국-인도 공동제작 <바후차라마타(2014)>, 한국-독일 공동제작 <이방인 이피게니에(2016)>, 한국-영국 공동제 <미인:MIIN(2017)>, 한국-호주 공동제작 <낯선 이웃들(2017)> 등의 해외공동제작 작품을 프로듀싱했다. 또한 2018년 독일 하이델베르크 Stuckemarkt 한국 포커스 프로그램의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국내의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발굴하는데 관심이 있다.

참고링크
[인터뷰] 예술과 사회 사이에 변화 불어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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