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을 전혀 먹지 않으면 굶어 죽겠지만, 계속 먹기만 한다면 분명 배가 터져 죽을 것이다. 음식이 소화될 시간이 필요하듯이, 정보와 영감 역시 소화가 될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 동안 멍청히 앉아 있어도 좋고, 걸어도 좋고, 달려도 좋다. 그것은 개인이 택하는 각자의 몫이다. 어찌됐든 채우고 나면 비워내는 시간이 필요하다.

참조 이미지 - 파멜라 엘렌 저서 그림동화책<아르키메데스의 목욕>중 아르키메데스가 욕조에 넘친 물로 부력의 원리를 알아낸 모습

연재순서: ② 예술과 멍 때리기
 

18세기 오스트리아 작가 잘 쓰 부르크가 작품 구상에 대한 질문에 “아, 바람 부는 어느 날 잘츠부르크 언덕에서 별똥별을 보는데 이야기가 그만 제 가슴에 추락해버렸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는 건 방금 내가 지어낸 말이다. (미안합니다. 이런 말을 한 사람이 한 명쯤은 있을 줄 알았는데, 없어서 제가 지어냈습니다.)

있지도 않은 말을 이렇게 궁색하게 지어내고, 습자지 같은 자존심을 스스로 찢어가면서 가짜 인용을 한 것은 이 말이 어느 정도는 맞기 때문이다. 믿기지 않는다면, 잠시 아이작 경을 만나보자. 맞다. 수학의 미적분법을 창시하고, 광학의 기초를 다지고, 무엇보다 중력을 발견한,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이자, 취미로 천문학자까지 겸했다던 그 아이작 뉴턴 경 말이다. 그는 어느 날 그늘 짙은 사과나무 아래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다 그만, 중력의 원리를 발견하고 말았다. 이 위대한 발견을 요즘 식으로 활력 있게 각색해보면 다음과 같다. “그냥 멍 때리다 발견했는데요.” 그렇다(고 치자).

영감의 법칙

아르키메데스 역시 멍 때렸다. 그가 부력 제1의 법칙을 발견한 순간은 책상 앞에서 정갈하게 옷을 갖춰 입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책을 뚫어져라 보던 때가 아니었다. 발가벗고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가 모든 것을 잊어내려 하는 순간, 불현듯 잘츠부르크 언덕의 별똥별이 이야기로 박히고, 하나의 추락하는 사물에 지나지 않은 사과가 중력으로 떨어지듯, 그저 흘러넘치는 물이 부력의 원리로 다가온 것이다. ‘유레카!(알아냈어)’

나라도 외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라면 일단 유레카를 백번 쯤 외치고, 타월로 몸을 꼼꼼히 닦은 다음에 골목을 나갔을 테지만, 아르키메데스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나체로 골목을 뛰어다니며 고성방가를 질렀다. 유레카! 유레카! 아마, 아르키메데스가 부력의 원리를 알아냈다고 소리쳤을 때, 사람들은 굳이 알고 싶지 않은 한 남자의 몸매의 실상을 알아내지 않았을까, 라고 딴 소리를 하며 나는 지금 원고를 채우고 있다.

어찌됐든 인류의 과학에 지대한 공헌을 한 순간들은 모두 ‘딴짓을 하는 순간’에 탄생됐다. 물론, 이 딴짓을 하기 전에 고민하고 번뇌하는 시간은 필요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책상 앞에 앉아 엉덩이만 혹사시킨다 해서 중력이 떨어지거나, 부력이 흘러넘치듯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운명적 사랑이 우연히 찾아오듯, 유레카의 순간도 대개 ‘멍 때리다’ 찾아오기 마련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다른 분야에 관해서는 더 이상의 예를 들 의욕과 지식이 부족하다. 하지만, 예술 분야에 관해서는 이와 비슷한 메커니즘이 작동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 주변의 영화감독들이나 소설가들 중에 소재를 얻기 위해 일단, 백일주를 마시고, 삭발도 하고, 작정하고 도서관을 다니다가 이야기의 소재를 얻었다는 사람은 없다. 물론 어느 정도의 독서와 대화와 취재를 하긴 하지만, 이들 모두 대개 ‘딴짓을 하다가’ 소재를 얻었다. 위대한 감독 임권택 감독 역시 딴짓을 하다 <서편제>나 <남부군> 같은 영화의 영감을 얻었다고 이쯤에서 증언해준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예상대로 내 주변에는 흥행에 참패하거나, 무명인 작가들밖에 없어 또 한 번 몹시 미안한 심정이다.

참조 이미지 - 영화 <포레스트 검프>중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가 달리고 있는 모습

영혼의 샤워 시간

그러나 아쉽게도 거리 때문에 자주 만나지 못하고 있는(건 아닌)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여행기를 쓸 때, 여행을 다녀온 직후에는 가급적이면 쓰지 않는다. 너무나 많은 기억들이 내 안에 생생하게 저장돼 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일부러 다른 일을 하거나 시간을 보낸 후에, 정말 잊히지 않고 남아 있는 기억만을 가지고 쓰려한다.” 달리 말하자면, 그는 의식적으로 자신이 경험했던 것과 멀어지려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간의 세례를 받아 가라앉을 경험은 자신 안에 가라앉고, 잊어야할 경험은 휘발될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즉, 뉴턴이 사과나무 밑에서 시간을 흘려보내거나,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물을 흘려보내는 시간은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필요하단 말이다. 그래야 나를 복잡하게 했던 주변적 요인에 암전이 가해지고, 오직 핵심에만 핀 조명이 켜져 그것과 온전히 마주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내 얘기를 잠시 하자면, 나는 하루에 적어도 삼십분 정도는 멍하게 지내고 있다. 그저 나무 아래에 앉아 흘러가는 구름을 보거나,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보거나, 알 수 없이 지저귀는 새소리를 듣곤 한다. 내 식으로 사과나무 아래로, 목욕통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1년 넘게 이 생활을 계속 해오고 있는데, 앞으로도 계속 해나갈 생각이다. 적어도 하루에 삼십분에서 한 시간 정도 침묵의 시간을 가지고, 외부가 아닌 내면의 세계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은 마치 번잡해진 영혼을 씻어내는 시간과 같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나는 이 시간을 ‘영혼의 샤워 시간’이라 부르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소설적 영감은 이 시간 중에 얻었다.

다시 하루키에 대해 말해보자. 그는 매일 한 시간 이상 달린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달릴 때 어떤 예술적 고뇌가 있을까 물었다. 그는 “확실히 추운 날에는 어느 정도 추위에 대해 생각하고, 더운 날에는 어느 정도 더위에 대해 생각한다. 슬플 때는 어느 정도 슬픔에 대해 생각하고, 즐거울 때에는 어느 정도 즐거움에 대해 생각한다. 그렇지만 실제로 제대로 된 것은 거의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 역시 나름의 방법대로 매일 한 시간 동안 무상무념의 시간, 즉 멍해지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빵을 전혀 먹지 않으면 굶어 죽겠지만, 계속 먹기만 한다면 분명 배가 터져 죽을 것이다. 음식이 소화될 시간이 필요하듯이, 정보와 영감 역시 소화될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 동안 멍청히 앉아 있어도 좋고, 걸어도 좋고, 달려도 좋다. 그것은 개인이 택하는 각자의 몫이다. 어찌됐든 채우고 나면 비워내는 시간이 필요하다. 불필요한 것은 휘발되고, 필요한 것만 묵직하게 내려오는 순간이 올 것이기에.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고, 그렇게 하고 있다.

 
 
최민석 필자소개
최민석은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라는 단편소설로 제13회 창비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 『너의 눈에서 희망을 본다』(조화로운 삶, 2010년)를 썼다.
 

정보라이선스-정보공유라이선스2.0

facebook twitter

댓글 3

확인
Top
  • 페이스북
  • 트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