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에는 란닝구바람의 궁색을 사색으로 변신시킬 줄 아는 사내가 들어 있지만, 지금 우리는 그다지 궁색하지 않다. 우리는 더 이상 사색하지 않는다. 당신이 턱을 괴고 노려본 세계에서, 우리는 당신이 좋아라 했던 그 '와선'을 실천하는 중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사랑을 알 때까지 자라서 얻은 자세는 아니다.
 
 

연재순서 ① 편지


팽이가 돈다. 어린아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당신의 너무 큰 눈 앞에서 아이가 팽이를 돌린다.1)

여유로이 마당에서 팽이를 돌리는 아이가 있는 풍경이 당신 앞에 있다. 아이들은 으레 수천 년 전의 성인과 같이2) 풍경을 바라보지 않는다. 스스로 풍경 속에 뛰어 들어가서 논다. 그러므로 스스로 풍경의 일부가 된다. 어지럽게 돎으로써 장난감으로서의 존재감을 팽이가 완수해내듯, 그렇게 어지러울 때에야 비로소 중심을 잡고 돌 수 있듯, 장난은 어지러움 속에서 세상에게 속지 않고 비껴가는 재주를 부린다. 장난이 곧 당신이 말한 바, ‘와선(臥禪)3)’과도 같은 경지인 셈이다. 이 낙천적이고도 버르장머리 없는 태도를 지닌 구도의 방식은, 드잡이처럼 억센 독기가 아닌 천진성을 지녔다. 천진하기엔 이미 선비이고, 도취에 몰입하기엔 너무나 맨정신이며, 모리배이기엔 너무나 공자이고, 원대해지기엔 너무나 쫀쫀하며, 자유롭기엔 너무나 생활인인 당신은 고스란히 모더니티의 모순을 앓을 수밖에 없다. 당신은 너무나 어른이라서, 이미 어른이라서 서럽다. 영원히 스스로를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 있는, 한사코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되4)므로 서럽다.

시인에게 보내는 뒤늦은 편지

시인 김수영

시인 김수영

우리는 당신의 비참을 생각한다. 당신이 노려본 세계에서, 당신이 그토록 갈망하던 자유와 맨 정신을, 당신은 얻지 못했다고 생각되므로. 철망을 지나가는 비행기의 그림자보다는 훨씬 급하게 스쳐가는 당신의 고독을 누가 무슨 신기한 재주를 가지고 잡을 수 있5)었겠는가. 현대성과 싸워서 깨달음을 얻지 못한 당신은 역설적으로 모더니티를 완성시켰다. 우리는 적과 싸워 깨달음을 얻지 않음으로써 문학을 완성시키려는 중이다. 당신이 완성시킨 그 자리에서, 우리는 우리의 비참을 생각한다. 우리의 비참은 어쩌면 장난을 끝내고 났을 때에 우리가 어째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다는 데에 있다. 팽팽팽 돌던 팽이처럼 쓰러져 누워야 하는 걸까. 언제나 성숙을 지연시키고자 하는 우리의 장난은, 한 번도 태어나본 적이 없어서 죽을 일도 없는 피규어(figure, 관절이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어 다양한 동작을 표현할 수 있는 인간·동물 형상의 모형 장난감) 같다. 생명을 얻은 적이 없어서 목숨을 잃을 일도 없다는 점이 특히 그렇다. 늙지 않고 낡아가는 피규어의 운명이 이제는 모더니티의 남은 속성일까. 그래서 우리는 이미 사망했다.

한 시대의 여물인 고통과 한 시대의 신발인 절망감, 한 시대의 비행과 한 시대의 불감증을 한 시대의 길가에서 사랑의 편지를 주워 아무에게도 전하지 않는, 우리는 어쩌면 이미 사망했다. 그리고 먹고 마셨다. 한 시대의 습기와 한 시대의 노린내를 우리는 두 개의 입으로 토해냈다 자고 나면 햇볕에 이불을 말리고 떠벌려 입을 말리고 시들어 갔다.6)

당신의 시에는 란닝구바람의 궁색을 사색으로 변신시킬 줄 아는 사내가 들어 있지만, 지금 우리는 그다지 궁색하지 않다. 우리는 더 이상 사색하지 않는다. 당신이 턱을 괴고 노려본 세계에서, 우리는 당신이 좋아라 했던 그 ‘와선’을 실천하는 중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사랑을 알 때까지 자라7)서 얻은 자세는 아니다. 불운인지 행운인지, 우리는 태생적으로 복사씨 살구씨다. 단단한 고요함에 둘러싸여 있어서 우리는 그 씨앗 안에서 썩어가며, 그 씨앗 안에서 신음과도 같은 아우성을 시로 쓴다. 우리의 시는 각자의 씨앗 안에서 발화하는 혼잣말인 셈이다. 씨앗의 입술로 발화하는 너무나 너무나 작은 목소리인 셈이다. 누군가 땅에 엎드려 귀를 기울려준다 해도 들릴락말락하는 옹알이이자 비명인 셈이다. 우리는 각자의 씨앗 속에서 각자의 비명으로 연대하고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함부로 고요8)한 채로, 결코 발아하지 말자는 발화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당신에게서 배운, 적극적인 소극주의자의 긴장감을 변주한다. 적극적인 소극주의자의 최선은 장난이다. 장난은 자발적이고 자유롭다. 팽이처럼 자기동력으로 운영된다. 그 자체로 목적성을 갖춘, 이 시대의 가장 유력한 불온함이다. 경박성으로써 고결함을 완결짓는다. 당신이 그토록 추구하던 ‘도취와 정신차리기’라는 양가성, ‘속박과 자유’라는 양가성을 장난만이 쉽게 쟁취한다. 불운인지 행운인지, 우리는 영원히 젊지도 늙지도 않는, 철들 수 없는 어린아이의 운명을 타고났으므로, 장난밖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다.

피규어의 운명

그러나 이제는 해 아래 새로운 장난이 없다. 우리는 ‘전통이 되어버린 모더니티’라는 유령과 장난 중이다. 그 사이 우리는 아프고 늙지는 않았다. 그날의 햇살과 눈부신 의심 속에서 무엇이 유령인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느냐, 그게 문제였다.9) 모더니티는 새로움이 최상의 가치이나, 영원히 늙지 않는 피규어의 운명을 덮어쓰고서 우리는, 더 이상 새로울 수 없는 모퉁이에서 새롭고자 하는 불가능에 도전한다. 새롭기 위해서 우리는 기형을 착안한다. 스스로 기형이 되는 중이다. 기형이 되어서 기형에 대해 발화하는 것. 당신에게서 배운 ‘불온한 전위’를 우리는 ‘불온한 기형’으로 바꾸어 실천하는 중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잠이었다. 자면서 고통과 불행의 정당성을 밝혀냈고, 반복법과 기다림의 이데올로기를 완성했다. 우리는 놀고 먹지 않았다. 끊임없이 왜 사는지 물었고 끊임없이 희망을 접어 날렸다.10) 영원히 사춘기로 살기 위해서 우리는 꿈을 종이비행기처럼 접어 날리고 잠속으로 도망쳤다. 불온이 아닌 악동, 반란이 아닌 반동으로, 순교하듯 팽이를 든다. 타블로이드를 든다. 그리고 달나라로 간다. 우리에겐 고향이 없다. 고향을 잃어버린 것도, 잊은 것도 아닌, 그냥 없을 뿐이다.11) 우리는 우리가 고향이다. 우리는 영원히 태어나지 않는 복사씨 살구씨이므로.



 
 
[주석]
1) 김수영,「달나라의 장난」 2) 김수영,「달나라의 장난」
3) 김수영, “내 딴으로 생각한 와선이란, 부처를 천지팔방을 돌아다니면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골방에 누워서 천장에서 떨어지는 부처나 자기의 몸에서 우러나오는 부처를 기다리는 가장 태만한 버르장머리 없는 선의 태도다.” - 산문 「와선」(臥禪)
4) 김수영,「달나라의 장난」 5) 김수영,「더러운 향로(香爐)」
6) 이성복, 「몽매일기」(蒙昧日記) 7) 김수영, 「사랑의 변주곡(變奏曲)」
8) 김중식, 「난리도 아닌 고요」
9) 김언, 그 사이 나는 아프고 늙지는 않았어요 / 그날의 햇살과 눈부신 의심 속에서 // 내가 유령인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 내가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느냐, 그게 문제겠지요 -「유령-되기」
10) 이성복,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11) 유형진, 「피터래빗 저격사건」에서 변용
 
김소연 필자소개
김소연은 1967년 경북 경주 출생이다. 시집 『극에 달하다』『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눈물이라는 뼈』와 산문집 『마음사전』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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