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조 이미지 - 정원

연재순서 ③  정원


어김없이 상자에서 빠져나왔지만 다시 상자 안에 들어 있다. 이것이 늘 맞닥뜨리는 오늘 아침 나의 풍경. “새는 자유롭게 하늘을 풀어놓”(황인숙)는다지만 정작 새들은 여전히 숨구멍 하나 없는 하늘에 갇혀있다. 넓디넓은 심해를 자유롭게 헤엄쳐 다닌다지만 물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물고기나 파도나 마찬가지. 조금 우울해져 책상 위에서 뒹구는 자이언트 통조림 뚜껑을 딴다. 초록 물 안에서 절임 옥수수가 아닌 빨래판 근육을 자랑하는 초절정 미남이 나오는 기적(조각가 이동욱의 <그린 자이언트>(Green Giant))은 오, 정녕, 일어나지 않고.

이럴 때 내가 쓰는 방법. 몸 안으로 ‘상상’을 불러들이는 일.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몸을 똑바로 펴고 앉아 언어를 천천히 떠오르게 하는 것. 눈을 감거나 뜨는 것도, 단어 또는 문장으로 선택하는 것도 본인의 자유 의지. 다만 “꽃 속에 부리를 파묻고 있는 새처럼/ 아직 이 세상에 오지 않은/ 말 속에 손을 집어넣어”(박형준, <서시>)보는 것. 내가 선택한 오늘의 주문,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보르헤스). 이런! 즉각적인 진입.

정원은 아주 크다. 도착하는 즉시 다녀보지 않고도 느낄 수 있다. 바람과 햇빛의 냄새, 뒤척이는 나뭇잎 소리도 들린다. 열매 안에 단맛을 익히고 있는 나무도 있다. 새소리가 햇빛에 구멍을 뚫으며 날아다닌다. 무릎 아래가 자주 잠기는 느낌. 흙은 조금 젖어있고 몸을 잃은 그림자가 있다. 보이지 않아도 느낀다. 아니 볼 수 없어 느낀다. 느끼면 방향이 생긴다. 모호하지만 모호하니까 어떤 느낌과 닿게 되는 것. 사실은 명확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느낌이 닿으니까 움직이는 거다. 느낌을 따라 가야겠다. 나의 방향, 정원의 방향, 오늘의 방향.

그러니까. 나의 주장은 “꽃잎의 의견이 일치한다면 꽃이 어떻게 활짝 피겠어요”(조말선,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1>)와 같은 것. 부리를 비집고 나오는 새들의 울음소리가 아름답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꿈이나 희망 같은 날개의 고정 관념 속에서만 새를 보는 것. 부리를 비집고 쏙쏙 나오는 울음은 제 살점을 떼어내며 벌이는 새들의 항변. 색과 날개 속에 자신을 가두지 않겠다는 새들의 저항. 그러므로 ‘내 속의 나’도 가능은 불가능을 뚫고 솟아오른다는 단호한 의지를 갖고 있다. “그림자의 명치를 밟고 함께 주저앉”아 “함께 멸망하고픈” 것.


         나는 이어폰을 끼고 정원에 있다 슬프고 기쁜 걸 청각이 결정하는
일이라니 차라리 눈을 감고도 슬플 수 있는 이유다

         정원에 고이 잠든 꿈을 누가 훼손했는지 알 수 없다 눈이 마주친
가을이 담을 넘지도, 돌아가지도 못하고 걸쳐 있다

         구름이 굵어지는 소리 당신이 땅을 훑고 가는 소리
         우리는 간헐적으로 살아 있는 것 같다


성동혁, <여름 정원>

참조 이미지 - 정원

이 독백은 백기가 아니라 ‘다음 시간’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 “가을”이라는 미래는 ‘내 꿈이 훼손된 정원’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돌보는 사람에게만 도착하니까. 절망이라는 열망에 집중하는 사람에게만 “구름이 굵어지는 소리 당신이 땅을 훑고 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니까.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들을 수 없는 것을 듣는 것은 이상한 감각이 아니라 가장 안쪽의 소리를 듣고자 하는 간절함에서 비롯되니까. “우리는 간헐적으로 살아있는 것 같다”는 위태로운 감각은 가장 강력한 생의 두드림이니까. 늘 살아있다고 생각된다면 온전한 시간으로 깨어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살아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튼튼한 줄기를 얻고/ 잎은 흔들려서 스스로/ 살아있는 몸인 것을 증명”하니까. 그러므로 “피하지 마라/ 빈 들에 가서 깨닫는 그것/ 우리가 늘 흔들리고 있음을.”(오규원, <살아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그곳은 오른발과 왼발의 시간. 애초부터 나 있는 어떤 길이 아니라, 세상에, 내가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을 갖고 산다니! 내내 계속되니까, 길이 없어지는 것, 길을 잃을 것에 대한 염려 따위는 필요 없다는, 다음과 같은 뜰의 전언.


발신자도 없는 편지입니다
수신자도 없는 편지입니다
한 마리 새가 날아간 뒤에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 것을 알았습니다
돌멩이 하나 뜰에 있는 것을 본 순간
편지가 도착한 것을 알았습니다

오규원, <돌멩이와 편지>

 

 
이원 필자소개
이원은 1992년 『세계의 문학』으로 데뷔했다. 시집으로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를 출간했다.
oicc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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