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순서:② 예술적 직관과 뇌과학


 

그림1 마크 로스코 <무제>

[그림1] 마크 로스코 <무제>


과학과 예술이 만나는 지점은 어디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과학은 자연에 존재하는 대상을 객관적인 방법론을 사용해서 탐구하는 작업이고, 예술은 인간 내면의 심성을 주관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이다. 과학은 복잡한 현상을 관통하는 하나의 법칙, 원리, 이론을 찾아내는 데 주력함에 반해서, 예술은 비슷해 보이는 것들도 조금 더 자세히 보면 형언할 수 없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것을 표현해 낸다.

뇌과학과 예술을 관통하는 원리

후생유전학자들은 인류가 백만 년 넘게 독사에 물려 죽는 것을 경험하면서 축적된 뱀에 대한 공포가 유전자에 각인되어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뱀을 소재로 한 예술이 등장했다고 하지만, 이러한 설명은 왜 각 문화권이 예술을 표현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며, 왜 사람들이 이를 경험하는 방식도 조금씩 다른가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누가 해도 같은 결과를 내는 과학적 실험과 달리, 예술적 경험에서는 미묘한 차이가 더 크게 부각된다. 그렇지만 이렇게 미묘하고 복잡한 차이라고 해서 과학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예술이 아무리 주관적이라고 하더라도, 개인의 경험과 문화적 영향을 뛰어 넘는 특정한 종류의 보편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술평론가 제임스 엘킨스(James Elkins)는 수많은 사람들이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추상미술을 보면서 눈물을 쏟았다고 지적한다(그림 1).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보고 운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대체 왜 이 그림을 보고 울었을까? 무엇이 서로 다른 삶을 살아 왔던 관람객들을 울게 만들었을까?

지금의 뇌과학은 아직 걸음마 단계이지만, 이에 대한 한 가지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것은 진화론의 핵심 개념인 ‘변이’(variability)이다. 다윈의 진화론에 의하면 다양한 변이를 가지는 종이 훨씬 더 빨리 진화하며, 진화에서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한다. 인간의 성격, 감정, 사헠며,동물 중 가장 다양해서 인간의 진화에 유리한 결과를 낳는데, 그 이유는 인간의 뇌가 다른 어떤,동물보다 훨씬 더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예술은 바로 인간의 뇌에 근거한 다양한 감정이 매체를 통해 재현된 것이며, 따라서 뇌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서 (부분적으로나마) 규명이 가능한 대상이 된다.

런던대학교의 신경생물학자인 세미르 제키(Semir Zeki)는 뇌의 시각 작용을 오랫동안 연구하다가, ‘예술과 뇌과학의 관련성’이라는 주제로 발을 디뎠다. 그는 직선에만 선택적으로 반응하는 뇌세포가 발견되기 전, 몬드리안 같은 예술가가 직선을 기본으로 그림을 그렸던 것을 예로 들면서 많은 예술가들을 잠재적이고 암묵적인 뇌과학 연구자로 평가한다. 예술적 직관은 인간 뇌의 작동을 내적으로, 그리고 본능적으로 파악한 결과라는 것이다.

제키는 예술이 뇌과학을 관통하는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는 뇌과학과 예술 모두를 관통하는 원리를 제시하는데, 인간의 시각적 두뇌가 계속 변하는 가운데 항구한 것을 찾아서 보고, 구체적인 것들 속에서 이상적이고 추상적인 것을 찾듯이, 예술에서도 이 항구성의 법칙과 추상화의 법칙이 정확하게 관통한다는 것이다. 미켈란젤로나 피카소를 비롯한 수많은 위대한 예술가들의 작품에는 이 두 가지 법칙이 구현되어 있다는 것이 제키의 주장이다. 그는 최근 신경과학적 연구에 근거해 예술적 창의성을 규명하는 작업을 ‘신경미학’(neuroaesthetics)이라고 명명하고, 이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예술을 지탱하는 인간의 생물학적 기반

신경과학의 첨단 기기들을 사용해서 예술 활동의 신경학적 기반을 탐구하려는 구체적인 시도들도 있다.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은 우리가 특정 생각이나 행동을 할 때 뇌의 작동을 거의 실시간으로 촬영할 수 있는 장치로서, 1990년대 이후의 소위 뇌인지과학의 혁명을 낳았던 기기이다. 네바다대학교의 심리학과 교수인 로버트 솔로는 영국의 화가인 험프리 오션(Humphrey Ocean)을 초청해서 그가 초상화를 그릴 때 활성화 되는 뇌의 부위를 fMRI로 측정했다(그림 2).

결과는 예술가가 초상화를 그릴 때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는 우측 후두정엽(right posterior parietal)이 활성화된다는 것이었는데, 놀라운 사실은 이 부위가 숙련된 예술가의 경우 보통 사람에 비해 훨씬 덜 활성화된다는 것이었다. 보통 사람은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서 얼굴을 자세히 보고 이를 모사하기 위해 뇌를 많이 사용하는데, 숙련된 화가들은 얼굴의 특징과 핵심만을 즉각적으로 파악해 그리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숙련된 화가는 얼굴을 그릴 때 고차원적인 연관과 사고를 담당하는 전두엽의 우측중앙 부위가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얼굴 인식은 쉽게 하지만, 이렇게 인식된 정보를 다른 요소들과 연관시켜서 시각적인 형태를 만들어내는 데에는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예술이 본질적으로 고차원적인 ‘사유’의 과정을 담고 있는 활동임을 시사한다.

사람들의 예술적 감흥에 상응하는 뇌의 신경연관자(neural correlates)에 대한 연구도 있다. 이탈리아 파르마대학교의 신경과학자 리졸라티와 동료들은 사람들에게 황금비의 아름다운 인체 조각상 원본과 이 조각상의 상체와 하체를 변형해서 만든 못생긴 조각상을 보여주는 실험을 했다. 이들은 황금비가 잘 잡힌 원본을 볼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를 측정했고, 동시에 피험자들이 특정 조각상을 아름답다고 판단할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도 측정했다. 전자의 실험에서는 우측 뇌섬엽(right insula) 영역과 외측-내측 피질 영역의 일부가 활성화되었으며(그림3), 후자의 실험에서는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평가를 주로 담당하는 편도체의 활성화가 두드러졌다. 연구자들은 첫 번째 실험이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에 근거한 ‘객관적인 미’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두 번째 실험이 객관적인 정보를 주관적인 가치와 섞어서 ‘주관적인 미’를 만들어내는 작업도 뇌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림2 균형이 잘 잡힌 조각상을 봤을 때 활성화되는 뇌의 영역 그림3 험프리 오션의 fMRI 뇌 영상
[그림2] 균형이 잘 잡힌 조각상을 봤을 때
활성화되는 뇌의 영역
[그림3] 험프리 오션의 fMRI 뇌 영상

이러한 연구들은 아직 초보적인 수준이며, 인간이 느끼는 아름다움의 극히 일부밖에는 설명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연구가 계속 축적된다면, 예술을 지탱하는 인간의 생물학적 기반에 대해서 더 많이 이해하게 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가 예술에 대한 이해의 전부가 아닌 것도 분명하다. 우리는 아는 만큼 보며, 그만큼 느낀다. 개인의 경험과 노력, 학습과 감성의 개발을 통해 새로운 감흥을 느끼는 것, 이는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의미하며, 인간에 대한 총체적 이해는 당분간 과학의 탐구 대상의 경계 밖에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홍성욱 필자소개
홍성욱은 서울대 물리학과와 동 대학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박사를 거쳐 토론토대학교 과학기술사철학과 조교수와 부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지식융합과 미래 과학기술사회연구단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과학은 얼마나』등이 있다. comenius@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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