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다보스 포럼 이후 급부상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관심이 식을 줄을 모르고 있다. 과연 그것이 ‘혁명’으로 부를 만한 커다란 변화인지, 설혹 그렇다 한다면 우리는 주요 선진국에 비해 얼마나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지, 또한 개개인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등등 수많은 논의들이 각계각층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필자는 우선 제4차 산업혁명은 1, 2, 3차 산업혁명과 구별되는 범용기술(General Purpose Technology)로서 인공지능·빅데이터를 그 중핵에 장착하고 있으며 이는 증기기관, 전기·내연기관, 컴퓨터·인터넷으로 상징되는 기존 산업혁명의 범용기술과는 차별적일 뿐 아니라 훨씬 더 광범위한 확산 가능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독자적인 산업혁명의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믿는다.1) 이 글은 이러한 관점에서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요인과 주요 이슈, 그리고 이에 대한 예술정책의 대응 방향을 모색하려는 목적을 갖는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 패러다임 읽기

2000년대 들어 빅데이터 기술의 눈부신 발달과 함께 정체되어 있던 인공지능 연구는 새 국면을 맞게 되었다. 특히 빅데이터에 기반을 둔 머신러닝 기술의 발달로 기계의 자동화, 초지능화는 알파고가 상징하듯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처럼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인공지능·빅데이터는 4차 산업혁명의 범용기술로서 여타의 괄목할만한 기술 변화를 추동하고 있다. 아래 그림은 4차 산업혁명 관련 주요 저서들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를 통해 반복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핵심 기술군을 추출하고 약술한 내용이다.

4차 산업혁명을 견인하는 핵심 기술군 4차 산업혁명을 견인하는 핵심 기술군

인공지능·빅데이터 기술을 필두로 연쇄적인 기술변화가 주목되는데, 특히 IoT·스마트시티(초연결성), 로봇과 합성생물학(정체성), 3D프린터와 스마트앱(초개인화), 5G기술과 VR(가상현실)·AR(증강현실)·MR(혼합현실), SNS와 블록체인(참여, 분권, 협업) 등이 공공과 민간을 아울러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이러한 기술변화의 규모와 범위, 속도와 강도가 매우 크기 때문에 4차 산업혁명은 파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을 통해 기존 산업구조를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도래가 가져온 사회문화적 이슈

이와 같은 핵심 기술들은 향후 엄청난 자본 투입을 통해서 기하급수적(exponential) 발전을 거둘 것으로 예상되는바(브린욜프슨&맥아피, 2014), 이는 비단 과학기술계나 산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국한되는 변화가 아닌 우리 사회 전반에 매우 강력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클라우스 슈밥, 2016). 일단은 ‘일자리와 양극화’ 이슈가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데, 2020년까지 약 510만 개의 일자리 감소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다보스 포럼 보고서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기계가 대체할 가능성이 높은 비전문·저숙련 노동이 직접적인 위기를 맞고 있지만, 기자나 의사, 통번역가 등 전문·숙련 노동 역시 인공지능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이와 같은 노동의 위기가 초래하는 양극화와 함께 신(新)기술에 대한 세대 간 양극화도 심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인식 공감 및 기본적인 리터러시(literacy) 학습이 학령기 세대는 물론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기술 리터러시에 대한 인식 확대와 더불어 ‘기계와 구분되는 인간 고유의 창의성’에 대한 관심도 갈수록 높아질 것이다. 최근 부산교육청은 내년부터 객관식 시험을 전격 폐지하겠다는 발표를 하였는바, 이처럼 과거와는 질적으로 차별화되는 새로운 교육방식 도입이 시급하다. ‘여가시간과 복지’ 이슈 역시 빠트릴 수 없다. 인간과 기계(인공지능)와의 상호작용이 심화된다면 노동생산성 향상으로 인해 전반적으로 여가 시간이 늘어나고 여가 향유에 대한 관심도 늘어날 것이다. 초연결사회에서 초개인화된 취향을 장착한 DIY 시티즌을 위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또한, 만물인터넷으로 대변되는 초연결사회에서는 ‘가상과 현실의 연결·융합·공진화’가 빠르게 진행될 것이 분명하다. 가상현실, 증강현실, 복합현실 등 새로운 존재론에 동반하는 새로운 인식론 정립도 장기적인 안목에서 준비할 필요가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발전 속도가 생각만큼 빠르지 않다는 목소리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로보틱스 기술과 합성생물학 기술 등을 통해 ‘포스트-휴먼’ 시대가 도래하면 인류는 말 그대로 자신의 신체와 정신 일부를 기계화한 사이보그의 정체성을 갖게 될 것이다. 비즈니스와 산업은 물론 정책 영역 역시 커다란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

예술정책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인류의 역사에서 ‘창의성’의 보고 역할을 감당해왔다는 이유만으로 예술계가 이와 같은 급격한 기술 패러다임 변화와 사회문화적 이슈들로부터 자유로운 무풍지대로 남으리라는 생각은 매우 순진한 것이다. 시각예술, 공연예술, 문학 분야 등 예술계의 모든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약진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넥스트 렘브란트 프로젝트나 구글의 딥드림 프로젝트 등 미술 분야에서의 성과가 가장 눈부시다. 일례로 2016년 샌프란시스코 그림 전시회·경매에서는 딥드림의 ‘작품’ 9점이 개당 2천200달러(약 250만 원) 이상의 고가에 팔렸고, 구글 본사에서 열린 전시회에서도 총 1억 원 이상의 작품 판매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인공지능 작곡 역시 조만간 널리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2015년 예일대의 도냐 퀵 교수가 개발한 작곡 로봇 ‘쿨리타’는 기존의 악보들에서 규칙을 분석하여 새롭게 음계를 조합하는 인공지능이다. 100명의 패널 대다수는 쿨리타가 작곡한 곡을 실제 바흐의 곡과 구별하지 못했으며, 당연히 사람이 작곡한 곡이라고 생각했다. 아직까지 문학 분야는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공지능의 발전이 더딘 분야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특정 작가의 소설 1,000여 편을 ‘학습’한 인공지능의 소설이 문학상 공모전의 1차 심사를 통과해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미국에서는 인기 시트콤 ‘프랜즈’를 학습한 인공지능이 새로운 에피소드의 대본을 작성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구글이 MIT, 스탠퍼드 대학과 함께 개발 중인 인공지능은 약 1만2천 권의 소설, 특히 연애 소설을 학습하여 지속적으로 소설을 발표 중이다.

‘쿨리타’가 만든 곡을 연주하는 예일대 도냐 퀵 교수 ⓒ예일대 ‘쿨리타’가 만든 곡을 연주하는 예일대 도냐 퀵 교수 ⓒ예일대 마이크로소프트 인공지능이 램브란트의 화풍을 모방해 그린 자화상 ⓒ마이크로소프트 마이크로소프트 인공지능이 램브란트의 화풍을 모방해 그린 자화상 ⓒ마이크로소프트

4차 산업혁명이 제기하는 이러한 새로운 상황 혹은 도전에 대해 미래의 예술정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첫째로, ‘인간과 기계의 공생’은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앞서 언급한 범용기술과 핵심기술군에 대한 예술계의 리터러시 제고에 집중해야 한다. 예컨대, 사물인터넷 시대에 스마트 홈·팩토리·시티에 대한 논의는 무척이나 활발한 데 비해, 스마트 공연장·미술관·박물관에 대한 관심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신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실험들을 백안시하는 것은 그것을 맹신하는 것만큼이나 바람직하지 않다. 예술계의 기술 리터러시 제고와 함께 기술계의 예술 리터러시 제고를 위한 협업창작(co-creation) 기회 확대가 요구된다. 둘째로, 디지털 세계의 확산이 역설적으로 아날로그적 실천의 가치를 드높일 것이라는 점도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따라서 전통적인 창작지원 및 향유확대 정책 중에서 ‘인간다움’과 직결되는 고유성, 지역성, 공동체성, 따듯한 감성 등에 초점을 맞춘 과제 및 사업은 오히려 확산이 필요한 부분이다. ‘무엇을 계승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일자리 감소가 공공연한 비밀처럼 얘기되고 있는 시점에서 순수예술과 문화산업의 사이에서 서서히 싹을 틔우고 있는 ‘예술산업’에 주목해야 한다. 일자리를 창출하는 혁신은 언제나 잠재시장을 현실화하는 시장창출형 혁신(market-creating innovation)이었으며, 이러한 혁신은 주로 새로운 기술의 상용화를 통해 이루어졌다. 언제까지 국내의 예술 애호가 시장이 너무 작다고 한탄만 하고 있을 것인가? 얼마 전 100조 시장을 돌파한 문화산업의 고객들을 예술시장의 잠재고객으로 파악하고 이들과의 접촉면 확대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를 위해서는 ‘예술산업’에 종사하는 다양한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2) 인공지능·빅데이터, IoT·스마트시티, 로봇과 합성생물학, 3D프린터·스마트앱, VR·AR·MR, SNS·블록체인 등의 핵심 기술을 활용하여 예술 분야의 시장창출형 혁신을 꿈꾸는 젊은 예술가·기획자·매개자 등을 집중적으로 발굴 및 지원해 나가야 한다. 바로 이 지점이 ‘예술경영지원센터’가 가장 잘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인 동시에 점차로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과업이라고 믿는다.

1) 정종은 (2017)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문화정책 방향 모색, 문화관광 웹진 3월호,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 정종은 (2016) 예술분야 비즈니스 모델 분석을 통한 스타트업 지원방안 연구,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본 칼럼의 내용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 정종은
  • 필자소개

    정종은은 서울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미학을 공부했고, 영국 글래스고 대학에서 미디어경영으로 석사학위를, 창조산업·문화산업 정책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메타기획컨설팅에서 Knowldge본부 부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예술기반정책연구실 부연구위원이자 가톨릭대we학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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