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하이 아트위크는 여러모로 특별했다. 두터운 콜렉터 층, 세계적 수준의 미술관, 전 세계 3위의 미술품 거래 시장이라는 배경을 가진 상하이는 언제나 ‘가능성 1등’의 도시였다. 과연 ‘가능성’이라는 수식어를 뗄 수 있을지, 홍콩의 정치 상황이 급변하면서 시장의 관심은 상하이에 급격하게 쏠렸다.
홍콩 아트바젤의 기틀을 닦은 매그너스 랜프류, 독일 에스더 쉬퍼 갤러리의 에스더 쉬퍼, 슈퍼 콜렉터 울리지그 부부, 프랑스 DSL 컬렉션 관계자 등 전 세계 미술인들이 상하이에 모였다. 이들은 기간 내내 열리는 각종 미술관과 갤러리 오프닝, 프라이빗 디너, 컬렉터가 주최하는 모임에 참석해 상하이의 가능성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올해 상하이 아트위크의 하이라이트는 ‘퐁피두 상하이’의 오픈이었다. 지난 11월 5일, 10년 넘게 끌어오던 프로젝트가 마침내 화려하게 개막했다. 개막일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참여, 이 미술관이 단순히 문화교류 전시장이 아니라 ‘문화 외교’의 한 장면임을 입증했다.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인 퐁피두가 유럽 이외 지역에 분관을 오픈한 건 상하이가 처음이다. 한국에도 몇 년 전까지 ‘퐁피두 서울’이 오픈할 것이라는 기대가 컸으나, (실제 다양한 보도까지 쏟아졌지만) 아시아권에서 최초 분관은 결국 상하이가 차지했다.

상하이 아트위크 주요 이벤트 중 하나인 아트021 전경 출처: 헤럴드DB 상하이 아트위크 주요 이벤트 중 하나인 아트021 전경
출처: 헤럴드DB

시작점에 선 퐁피두센터 X 웨스트번드 미술관 프로젝트


퐁피두 상하이의 정식 명칭은 '퐁피두센터X웨스트번드 미술관 프로젝트(Centre Pompidou X West Bund Museum Project)'다. 퐁피두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2019년부터 2024년까지 5년간 자신들의 주요 소장품을 3번에 걸쳐 선보이며, 미술관 교육과 기획 전시 등 전반적인 운영을 책임질 예정이다. 상하이 웨스트번드 개발 그룹 공사는 프로젝트 비용으로 매년 275만 유로(한화 약 35억 원)을 퐁피두에 지불한다고 밝혔다.
퐁피두 상하이의 오픈으로 웨스트번드 일대는 이제 롱미술관, 유즈미술관, 웨스트번드미술관에 이어 석유 비축 창고를 개조한 탱크(TANK) 미술관까지 들어서 예술 특구로 상하이의 위용을 자랑한다. 정부 주도의 사업이 결실을 맺어가는 모양새다. 중국 정부의 큰 그림엔 홍콩이 아니라 상하이가 아시아 미술 수도로 자리 잡고 있을지 모른다.
실제로 미술품 거래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던 세금도 올해 대폭 낮아졌다. 해외미술품에 대한 세금은 최저 14%다. 수입품에 붙는 세금을 16%에서 13%로 낮췄고, 미술품 세금은 1%로 줄였다. 지난해 34%에 달했던 것에 비하면 파격적 수준이다.
그럼에도 상하이를 여전히 세계 미술시장 플레이어들이 ‘간보는’ 이유는 검열과 자본 통제가 꼽힌다. ‘퐁피두 센터 X 웨스트번드 미술관’의 개막전 ‘더 셰이프 오브 타임(The Shape of Time)’에서는 총 4점의 작품이 교체됐다. 근대가 시작한 19세기부터 동시대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미술품으로 돌아보는 퐁피두 소장품 전임에도 중국 정부의 검열을 피하지 못했다.

퐁피두센터 X 웨스트번드 미술관 프로젝트 내부 전경 출처: 헤럴드DB 퐁피두센터 X 웨스트번드 미술관 프로젝트 내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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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주 라스비네 퐁피두 센터 관장은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검열 수준에 대해선 잘 모른다.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왜 특정 작품이 부적절하다 생각하는지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이라고 해명해 미술계 관계자들의 빈축을 샀다. 뉴욕타임즈는 "퐁피두는 상하이와 협력 관계가 사소한 검열 우려로 탈선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약 10년 전에 상하이에 진출할 뻔했으나 마지막 순간에 거래가 무산된 바 있다"라고 꼬집었다.
외신들은 “가장 규모가 큰 문화 외교”라고 평하고는 있지만 검열 문제에선 불편함을 감추지 못한다. 자본이 자유롭게 드나들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 아시아 담당자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에서 돈을 송금하는데 자본 통제를 계속한다면 문제가 될 것”이라며 “세금은 낮아졌지만 규정이 복잡하고 늘 바뀐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시장뿐만 아니라 큐레이팅, 전시 실행 등 예술 인프라에 대한 평가도 유보적이다. 상하이를 찾은 많은 미술계 관계자들은 “상하이가 많이 변했다”는 데는 동의하면서도, 홍콩을 넘어서는 미술 중심 도시로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쉽게 답하지 못했다. 상하이의 대형 미술관에서 전시를 진행한 바 있던 한 큐레이터는 “해외 작가 전시나 기획전을 준비하는 것이 쉽지 않다. 검열 이슈도 그렇지만 작품을 대하는 큐레이터들의 역량, 배송 시스템 등 구조적 한계도 존재한다”라고 했다.

해외 아트페어의 서울 안착 가능성


그렇다면, 서울은 어떨까. 아시아 미술 중심 도시인 홍콩의 아성을 서울이 물려받을 수 있을까. 한국은 큐레이터들의 역량, 배송 시스템, 미술관 등 미술 시스템 자산은 수준급으로 평가받지만 컬렉터층이 홍콩에 비해 빈약하다. 시장 규모만 놓고 봐도 중국은 14조 원, 한국은 5000억 원이다. 결과적으로, 해외 컬렉터(특히 중국)를 끌어들이지 못한다면 아시아 미술 중심 도시로 성장은 요원하다.
아트바젤 홍콩의 매출은 1조 원, 한국 대표 아트페어인 KIAF(한국국제아트페어)의 매출은 300억 원 수준이다. 파괴적 규모 혹은 인지도가 큰 해외 아트페어가 한국에 직진출할 경우, 시장 거래액이 커질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는 근거다.

한국 최대 규모인 KIAF(한국국제아트페어) 전경 출처: 헤럴드DB 한국 최대 규모인 KIAF(한국국제아트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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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매그너스 렌프루 등 해외 대형 아트페어를 꾸리는 관계자들이 코엑스와 접촉했다. 이들은 2021년 7월 서울에서 아트페어 개최를 목표로 지난 5월 코엑스에 행사장 사용 신청서를 제출했다. 코엑스 쪽은 “신청서를 제출한 건 맞지만 전시장 배정은 미정”이라는 답변을 내놓았지만, 미술계에선 이미 2021년 7월 개최를 기정사실로 보고 있다.
화랑협회 쪽에선 반발하고 있다. KIAF는 물론 국내 화랑들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그러나 해외 대형 아트페어가 진출한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막기엔 명분이 약한 상황이다. 이전에도 해외 브랜드 아트페어(어포더블 아트페어)가 국내에 개최된 바 있지만,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철수하기도 했다.
그러나 격변의 시기를 겪고 있는 홍콩 때문에 서울이 급부상할 것이라는 생각은 안이한 판단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민주화로 몸살을 앓던 1986년에도 한국 경제는 성장했고, 시장은 정치적 상황에 크게 휩쓸리진 않는다. 실제로 홍콩 시위가 정점으로 치닫던 지난달 열린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선 김환기의 ‘우주’가 131억 8750만 원(8800만 홍콩 달러)에 낙찰되며, 한국 미술품 경매가 최고가를 경신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한국 미술시장 자체의 체력이다. 세계 유수의 미술관, 학제 인력, 두터운 컬렉터 층, 자유로운 자본 이동 등 미술시장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 필수적이다. 국내 인프라만으로 부족하다면 해외 자본을 끌어다 쓸 수 있을 정도로 매력 있는 공간이 한국이어야 아시아 대표 미술도시로 성장할 수 있다. 한 미술시장 관계자는 “서울은 홍콩과 상관없이 늘 외국 미술시장에서 관심의 대상이었다. 해외 주요 갤러리들이 앞다퉈 분점을 도쿄가 아닌 서울에 여는 이유가 있다”라며 “홍콩이 격변하고 있어서 서울이 급부상할 것이라는 건 너무 안이한 생각”이라고 꼬집었다.

  • 이한빛
  • 필자소개

    이한빛은 헤럴드경제 신문에서 시각예술 분야 담당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거의 매일 해당 분야 기사를 생산하고 있지만, 엄연히 미술계 머글(비전공자)이다. 일반인의 눈으로 미술계 소식을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다. 학부에선 언론정보학을 전공했으며 뒤늦게 MBA과정을 밟고 있다. 시장을 맹신해서도 안 되지만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긍정적 시장주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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