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가치를 논의해야 하는 현재의 조건들

변화의 압력이 커지는 시기이다, 기존 시스템이 위기에 처하고, 사람들은 유동적 상황에 내맡겨진다. 기존의 제도가 문제 해결에 기능하기보다는 불신의 대상이 되었다는 비판도 많다. 사회적 위기가 임박해 있다는 데 많이 동의하지만, 전례 없는 불확실성 속에서 대안적 출구는 여전히 모호하다.

사회적 위기를 드러내는 리스트는 이미 많다. 불평등, 기후 위기, 감염병, 생산의 변화, 민주주의의 위기 이런 것들이다. 이 위기들은 사회 시스템의 근본을 이루는 지점과 연결되어 있으며, 각 사회 부분을 넘어 사회 전체에 맞닿아 있다. 사회 시스템 전체에 대한 반성이 전제되어야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나갈 수 있는 전면적 위기. 이 전면적 위기 상황은 가치 전환과 시스템 혁신이라는 사회적 요구로 수렴된다. 말하자면 방법에서의 혁신을 넘어 가치 자체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요구이다.

이미 국가 주도의 문제 해결 방식이나 시장 주도의 문제 해결 방식이 유효하지 않고 문제를 더 악화시켜 왔다는 비판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맥락에서 대안적 방법으로 ‘사회혁신’이 논의되고 장려되어 왔다. 비영리 민간활동, 공동체 기반의 활동, 사회적 비즈니스 등을 통해 다른 해법을 만들어내는 운동, 활동, 정책 등을 의미하는 사회혁신을 넘어 좀 더 근본적인 가치 전환과 시스템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물론 불확실성과 불연속성이 지배하고 있는 시점에서 사회적 역량을 모으는 일은 쉽지 않을 수 있다. 고립과 불안이 확산되고, 사회의 바닥이 무너져 내리는 위기 속에서 각자도생을 선택하지 않고 전환을 위한 사회 역량을 연결하는 일,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삶을 지속할 수 있다는 감각, 사회적 의지를 모으면 난제를 풀어낼 수 있다는 감각을 회복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삶과 관계가 초토화되지 않을 다른 경로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기존의 가치와 방향을 전환시킬 사회적 선택은 더 머뭇거릴 시간이 없는 선택으로 주어지는지도 모를 일이다.

문화예술과 사회적가치의 거리

사회적가치에 대한 교과서적인 설명은 다음과 같다. 사회, 경제, 환경,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는 가치, 모든 사회 구성원이 권리로부터 배제되지 않도록 하는 사회권을 실질화하기 위한 가치이며, 경제적, 환경적, 문화적 가치를 포괄하는 상위 가치. 좀 확대해서 해석하자면 사회적가치는 경제 중심, 물질적 인프라 중심의 기존 가치를 넘어서는 시대정신의 전환이자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할 수 있으며, 기존의 발전 전략과 생활양식에 대한 총체적인 대안 모색의 흐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문화예술과 사회적가치를 연결하는 것은 좀 논쟁적인 문제일 수 있다. 무엇보다도 문화나 예술의 자율성과 독립성이라는 주제와 분리될 수 없는 지점이 존재한다. 예술이 자기충족적인 본원 가치를 갖는다고 생각하면 예술과 사회의 연결은 바로 예술의 도구화라는 논쟁 지점과 연결되기 쉽다. 아마도 이런 상황 때문에 문화와 예술 분야에서 사회적가치 논의는 상대적으로 매우 부진하다. 문화나 예술에서 사회적가치 논의는 아주 부분적인 맥락에 존재한다. 이를테면 문화예술 분야의 사회적기업 관련 논의, 문화예술이 갖는 사회적 통합 효과, 또는 기관 운영에서 사회적 기여에 대한 강조 정도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나는 현재 시점에서 예술과 사회의 관계는 다시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전통적인 참여예술과 순수예술이라는 이분법, 예술이 사회 변화에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나 예술은 그 자체로 자율성이 옹호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다시 반복하는 국면은 아닐 수 있다. 전례 없는 사회적 위기 속에서 예술의 존재, 예술의 가치를 다시 묻고 답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가치를 능동적으로 고민하자

현 정부 들어 사회적가치는 정부 혁신의 지향점으로 소환된 바 있다. 2018년 3월,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정부혁신 종합계획’에서는 사회적가치 중심 정부, 참여와 협력 등이 중심적 가치로 등장한다. 이 계획에서는 기존의 양적 성장, 효율성 중심의 국가 운영에서 탈피하여 사회적가치 구현을 위한 전략 과제와 추진 전략을 설정한 바 있다. 특히 사회적가치 중심의 재정 운영 기조와 공공기관 평가에서 사회적가치를 대폭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나는 사실 이런 가치 지향이 현재까지 얼마나 이행되고 있는지 정확히 알진 못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러한 지향이 촛불 광장 이후 변화를 원하는 시민의 분명한 의지이기도 하다는 지점일 것이다. 나아가 정부가 동시대를 고민하고 아파하는 시민의 의지에 대해 반응하는 지점이기도 할 것이다. 불평등을 치유하고 각자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가치, 생태와 안전에 대한 가치, 적대와 혐오를 넘어 사회 균형의 기반을 다지는 과제 등은 우리의 삶과 사회가 지속가능할 수 있는 지점들이기도 하다.

최근 문화와 예술 현장에서도 변화가 시작되었다. 나는 이런 변화의 흐름을 사회적가치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블랙리스트와 미투 이후, 사회적인 것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 세대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자신이 느끼는 불편함에 대해 학습하고 행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술계에서도 이런 문제에 대한 사회적 메시지가 최근 매우 분명해지고 있다.

또 예술 창작에서 새로운 흐름들이 등장하고 있다. 최근 들어 미디어와 자신의 관계를 되짚어 보는 작업들이 늘어나고, ‘포스트휴먼’에 대한 관심 등이 크게 확산되고 있다. 이런 작업들은 현재의 사회에 대한 근본적 반성을 담고 있고, 관계 재구성을 통해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확장하는 문제의식을 포함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예술가들은 서로 회복할 수 있는 다양한 자구적 시도를 하고 있다. 어디선가 한 예술단체가 “서로의 관객이 되자” 라는 캠페인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예술은 우리가 먹고살기 위해서 벌이는 활동을 넘어선다. 이 과정에서 예술은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아픔을 통해 더 깊은 진실을 드러낼 것이며, 예술이 당대의 사회적 문제에 개입하는 다양한 방식을 드러낼 것이다.

사회적가치 논의를 더 이어가자

분리할 수 없는 것을 분리하려고 하는 것은 사람의 욕망 아닐까? 최근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의 수상 연설 기사를 보았다. 이 수상 연설에서 “예술과 정치는 뼈와 피의 관계와 같아 분리할 수 없다.”라면서 “픽션은 진실이다, 픽션은 더 깊은 진실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근본적 전환의 시기, 그 어떤 가치든 새롭게 묻고 새롭게 탐색할 공간이 주어져야 한다. 문화예술과 사회적가치의 관계는 회복과 재구성이 필요한 현시점에서 다시 사고해야 할 하나의 주제임은 분명하다. 이 논의와 실천의 공간이 열리면 ‘사회적 기여’나 ‘사회통합’과 같은 제도적이고 기능적인 논의를 넘어서 문화와 예술이 사회를 재구성하는 다양한 경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회적가치 논의를 확장하고 더 이어갈 필요가 있다. 사회적가치라는 질문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예술의 존재 방식과 존재 이유, 예술의 가치에 대해 좀 더 깊은 논의가 가능해질 것이고, 이는 사회적 위기 속에서 예술이 개입하는 다양한 지점들을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다.

  • 전효관
  • 필자소개

    전효관은 현재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사무처장으로 일하고 있다. 하자센터, 청년허브 설립 작업과 운영을 한 바 있으며, 서울시 혁신기획관으로 재직하면서 사회혁신과 공동체, 청년 등을 주된 관심사로 일한 바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출범 당시 1기 위원으로 위촉되어 다원예술소위 위원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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