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이 닫혔고, 도시 간의 이동도 제한되었다. 예술가도 관객도 각자의 공간에서 고립되어 멈춤(Pause)과 정지(Stop)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만든 세계적인 팬데믹 현상은 예술과 국제교류 영역에 새로운 리얼리티를 만들고 있다. 당분간 모든 국제교류의 물리적 이동성은 불가능해지거나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온라인 공간에서 예술가들은 더 많은 밀도 있는 개별적 만남을 이어가고 있고,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기반한 새로운 형식과 플랫폼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난 10월 서울아트마켓 2020에서 다양한 국제교류 네트워크들이 이동성 협력과 공동체적 연대를 도모하기 위한 온/오프라인 국제 이동성 플랫폼인 어셈블리(Assembly)가 개최되었다, 2020 어셈블리는 국제교류와 이동성의 미래, 네트워킹 플랫폼의 새로운 역할, 그리고 아시아 연대와 새로운 협력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가지고 두 개의 오픈 포럼과 세 개의 비공개 워크숍 형태로 진행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뉴 커넥션(New Connections) 리서치 팀, 온더무브, 요코하마공연예술회의(TPAM), 호주공연예술마켓(APAM), 방콕국제공연예술회의(BIPAM), 아시아 프로듀서 플랫폼과의 협력으로 기획되었다.

서울아트마켓 2020의 어셈블리 세션 진행 모습 서울아트마켓 2020의 어셈블리 세션 진행 모습

팬데믹 현상이 만든 국제 예술계의 현주소

# 위기에 대응하기: 새로운 접근과 방법론
코로나19는 국제 예술 영역에 ‘안전’이라는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였고, 예술가들은 안전이라는 제약과 제한을 넘어서 새로운 형식과 유통 환경을 위한 방법론과 해결책을 모색해야 하는 큰 과제를 안게 되었다. 전통적 양식의 공연예술이 직접 대면과 감각의 공유 위주로 이루어졌다면, 코로나19 이후의 뉴 노멀(New Normal) 시대에는 전통적인 극장공간 형식을 넘어서, 공연 공간의 다변화, 소규모의 대면 형식과 버추얼이라는 안전하고 다양한 비대면 방식으로 관객과 만나야 한다는 공동의 대응 과제가 주어졌다. 더불어 구조적인 차원에서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에 의견을 모았다.

#공연의 디지털화(Digitalization)
또 하나의 극장 혹은 공연 공간으로 디지털 온라인 공간에 대한 논의가 더욱더 가속화되었다.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투자와 연구 개발이 활발했던 유럽에서는 코로나19 이후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더불어 예술 장르와 작품의 특성에 따라 새로운 플랫폼을 개발하고 그에 적응할 기간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그것은 공연의 디지털화에는 온라인 스트리밍이라는 일차원적인 방식을 넘어서, 기존의 무대예술 공연에 영상언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변형(transforming)과 실험(experimenting)하는 새로운 시도와,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주체가 되어 새로운 예술적 창작 언어를 만들어갈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무대예술 간의 결합에 창의적이고 비판적 사고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또한 제도적 차원에서는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예술의 만남 혹은 확장이라는 개념을 넘어서, 새로운 문법과 다양한 형식 개발을 위한 충분한 실험의 시간, 제작 투자, 제도적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 지역화(Locality)와 탈중앙화(Decentralization)
이동이 제한되자 예술가들은 이웃과 지역에 관심을 두고 그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게 되었다. 축제와 행사가 지역화(locality)되고, 하이퍼 로컬리티(hyper locality), 즉 지역공간성에 기반해 지역 커뮤니티와 지역사회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해외 예술가와 온라인으로 함께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는 변화를 보여주었다. 또한 위험 요소를 줄이기 위하여, 대규모 중앙 중심의 행사는 지양하게 되고 소수와 밀도 있는 형식의 분산화 그리고 탈중앙화로 전환하게 되었다. 또한 국가나 대륙 간의 교류보다는 상대적으로 교류가 용이한 이웃 국가가 국제교류의 대상이 되고 이웃 국가와 지역을 단위로 하는 연대가 중요시되는 현상들을 볼 수 있었다.

# 기후 위기에 따른 예술과 환경의 관계성 재인식
팬데믹이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경고라고 한다면, 많은 전문가들이 이에 대한 예술계의 대응과 행동으로 ‘그린 모빌리티(Green Mobility)’와 ‘딥 모빌리티(Deep Mobility)’를 언급하였다.
먼저 그린 모빌리티는 환경을 고려한 국제교류의 새로운 방법론과 기준이 대두되었음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어셈블리 참가자들은 탄소 발자국(Carbon Footprint)을 줄이면서 투어 공연을 한다거나, 환경을 고려하는 창작과 국제 공동제작의 다양한 방법들에 대해 질문하였다.
딥 모빌리티를 언급하면서는 예술가 간의 교류와 이동성이 필수적이고 중요한 일이라는 전제하에, 어떻게 하면 환경 파괴(탄소 발자국)를 최소화하면서도 투어나 교류, 이동성을 효과적으로 이루어낼지를 이야기했다. 예를 들어 일회성 투어를 지양하고, 공동 창작의 경우 온라인 리서치 과정을 포함시키거나, 단기 이동과 국가 간 이동 횟수를 줄이는 대신 체류 기간을 늘리는 방식을 제시하였다.

국제이동성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담론과 기준들

# 물리적 작품의 이동에서 콘셉트(Concept)와 콘텍스트(Context)의 이동
많은 사람들에게 언급되고 있는 올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작품 중 제롬 벨의 <갈라>와 그 외에 다양한 라이센싱 작업이 보여주듯, 물리적 이동은 제한하고 온라인을 통해 현지 예술가와 협력을 창작하는 방식이 화두가 되었다. 이는 국가와 지역의 맥락에 따라 원작을 재해석 혹은 재맥락화하는 창작·제작 방식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제롬 벨 <갈라> 공연 이미지들 한국가구박물관의 중정뜰 전경
제롬 벨 <갈라> 공연 이미지들
ⓒPhotographer Josefina Tommasi, Museo de Arte Moderno de Buenos Aires (Argentina, August 2015) ⓒPhotographer Bernhard Müller, Salzburg Sommerszene (Austria, June 2016)

# 디지털-피지컬 혼합 제작(Digital & Physical hybrid production) 방식의 새로운 국제협업/창작 방법론
디지털 플랫폼이라는 쌍방향 소통 구조를 통해서 공동 창작하는 계기를 가속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동시대의 초국가적인(transnational) 이슈를 각기 다른 나라에 있는 예술가들이 온라인 레지던시를 통해서 창작하고, 각 국가에서는 현지 관객과는 물리적인 만남으로, 다른 나라와 세계의 관객은 온라인으로 함께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크리에이티브 바키와 프로듀서그룹 도트, 레지덴츠 테아터의 작품 <보더라인> 은 독일과 한국의 각기 다른 물리적 공간과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버추얼 공간을 공연 공간으로 활용한 좋은 사례이다.
더불어 네덜란드의 <9개의 호텔(Nine hotels)>, 영국의 <원더랜드(Wonderland)>와 같은 테크놀로지 이머시브(immersive) 연극이나, 게임과 연극의 만남을 가상과 실제 공간에서 실험하고 있는 독일의 ‘마키나엑스(nachina eX)’ 사례를 들 수 있다. 언급한 다양한 사례들처럼 작품 창작 초기 단계에서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디지털 콘텐츠화 작업이 이루어지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작품 <보더라인> 독일 공연 실시간 송출 작업현장 ⓒ김근우 작품 <보더라인> 독일 공연 실시간 송출 작업현장 ⓒ김근우
작품 <보더라인> 독일 공연 실시간 송출 작업현장 ⓒ김근우

# 디지털 온라인 플랫폼의 가능성과 한계
팬데믹 기간 중 많은 온라인 쇼케이스 프로그램과 다양한 플랫폼들이 만들어져서 적극적으로 해외의 프로그래머와 연결시키거나, 그동안 물리적 이동성이 불가능했던 지역과 사람들에게 많은 참여의 기회를 제공한 것은 매우 긍정적인 변화였다. 그러나 디지털 온라인 플랫폼은 앞으로 물리적 이동성을 위한 지원 및 홍보 도구로만 존재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유통 체계로 디지털/온라인 콘텐츠의 수익 창출로 확장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남기고 있다. 또한 온라인 상의 저작권 문제와 새로운 형식에 대응하는 계약 방식의 변화도 중요한 과제로 남게 되었다. 최근 맨체스터 인터내셔널 페스티벌(Manchester International Festival)에서 시작한 '버추얼 팩토리(Virtual Factory)'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좋은 사례로 언급되고 있다.

# 새로운 연결과 연대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 모두가 같은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이 오히려 예술가의 연대를 강하게 만들었다. 유럽은 이동이 제한된 상황에서 지나친 국가중심주의 혹은 우경화에 대한 예술의 역할을 강조하며, 초국가적으로 작업 중인 젊은 예술가들을 지원하거나, 극장과 축제 간의 새로운 협력과 연대를 지지하고 있다. 아시아의 경우에는 근거리 국가 간의 교류와 새로운 연결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었다. 따라서 뉴노멀 시대를 열기 위한, 위기에 대한 공동 대응으로서의 연결과 연대 그리고 국제협력과 국제이동성의 지속성을 위한 창의적인 대안의 형식으로 연결과 연대에 대한 질문을 우리에게 남겨 주었다.

팬데믹은 예술계의 국제교류와 국제이동성 영역에 커다란 피해와 위기를 만들고 있다. 미래의 국제교류와 국제이동성을 위하여 현재의 피해와 위기에 대응하여 새로운 적응의 기술을 만드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더욱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기회와 표준을 만들기 위하여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 질문이란 팬데믹이 만든 동시대의 사회 현상에서, 예술이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고, 예술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리얼리티에 대응하는 예술의 역할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질문에서부터 출발하여, 왜 우리가 국제적으로 상호 연결되어야 하는지, 국제교류와 국제이동성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위기는 항상 우리에게 커다란 피해와 상처를 남긴다. 어떤 피해와 상처는 잠시 멈추고(pause) 다시 재생할 수 있지만, 또 다른 어떤 것은 이제 정지(stop)하고 새로운 방법과 형식을 필요로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예술가의 새로운 상상력이 더욱더 필요하다.

  • 최석규
  • 필자소개

    최석규는 최근 2년간 동시대 중요한 화두 중, ‘예술과 도시’, ‘예술의 다양성과 포용성’ 그리고 ‘예술과 테크놀로지’ 주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리서치, 워크숍, 레지던시를 기획하고 있다. 또한 춘천마임축제, 안산국제거리극축제, 2017-2018 한영상호교류의 해 등의 공연예술축제에서 축제감독과 예술감독으로 일했다. 2005년 창립한 아시아나우(AsiaNow)를 통해, 지난 10년간 한국연극의 국제교류, 다양한 국제공동창작, 국제레지던시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프로듀서와 드라마투루기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2014년부터 시작한 아시아 프로듀서들의 다양한 프로젝트 개발을 위한 협력 네트워크인 ‘Asian Producer’s Platform’과 APP Camp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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