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높은 곳을 욕망한다. 높은 곳에서는 아래를 다 내려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옥상은 아무리 누추해도 요즘 말로 ‘플렉스(flex)’ 하다. 우리에게도 그런 느낌을 확실히 가져볼 수 있게 해준 곳이 있다. ‘동대문옥상낙원DRP(Dongdaemun Rooftop Paradise, 이하 DRP)이다. 이제 이곳이 한 시즌을 마감하고 ‘DRP+’라는 이름으로 새 멤버들과 함께 한단다. 새로운 시즌에 대한 구상과 지난 소회를 듣기 위해 DRP를 찾아 작가 박찬국을 만났다.

DRP에서 특별한 풍경과 이야기를 즐기며 놀았던 경험은 정말 신선했다. 하지만 DRP를 단편적인 장면들로만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애초에 추구한 방향이나 활동은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하다.

아시다시피 DRP는 2013년에 청년들, 도시・건축 전문가 등과 리서치 중에 발견한 신발창고에서 출발했다. 초반 몇 개월은 청년허브에서 지원이 있었고, 청년들을 위한 실용적이고 의미 있는 활동에 대한 조직 차원의 목표가 있었다. 나의 경우는 일상과 일상 아닌 것들 속에서 다른 감각들, 다른 이해들을 불러오는 것이 주된 관심사였고, 그것이 나에게는 예술이다.
동대문에 들어와서 돌아다녀 보니까 흥미로운 것이 가득했는데, 그 흥미로움이 먼저였지 사업을 하는 게 먼저는 아니었다. 이곳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나 하는 호기심 때문에 지역을 들여다본 것이고, 총체적으로 어떤 흐름이 있고 어떤 문제나 가능성이 있나, 이렇게 하면 더 낫지 않을까 구상하게 되었다. 이 지역을 산업사회의 끝자락으로만 사람들이 주목하는데 이들을 ‘리스펙트’하는 다른 방식이 필요해 보였다. 이를테면 이곳의 거래를 떠받치고 있는 제작자들 중에는 재봉사들이 있는데 이들은 아무리 얘기해도 자신들의 오리지널을 인정받을 수 있는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동대문 오리지널’(기성품 티셔츠에 총을 쏴서 구멍을 내고, 재봉사들 스스로의 아이디어와 방식으로 그것을 메꾸는 재봉질을 통해 자신만의 티셔츠를 만들어내도록 한 작품)이라는 작업을 했다.
그분들도 우리와 만나는 것을 흥미로워했다. 특별한 이익이 없는데도 만나면 즐거워했다. 쾌적하지도 않고 불편한 곳에 있는 조금은 이상한 것에 대해 깊이 있게 알지는 못하지만 재미있다고 느낀 것 같다. 그래서 ‘옥상 불판’이란 걸 만들어서 고기를 구우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때는 멤버들만이 아니라 누구라도 오게 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입소문이 났다. 청년들과 봉제학교를 같이 운영해본달지, 만나는 폭을 넓히고 지역적 색깔도 더 입히려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지역 활동은 어떤 것이라는 고정된 인식에 대한 균열을 내는 시도도 있었다.
신발도매상가의 상인들은 처음엔 정치적인 어떤 우려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와서 보고는 옥상 바닥이며 벽면이며 그대로 둔 걸 보고 돈이 얼마나 없으면 이런 데서 생활하나, 엄청 짠하게 생각했다. 알바라도 하려면 얘기하라고 하면서 관계가 풀렸다. 또 상인들이나 메이커들뿐만 아니라 지역 청년들도 오기 시작했고 새로운 인연들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굉장히 다른 분위기, 다른 스타일의 사람들이 모였고, 모두 같은 세계에 속해 있지만 얼마나 서로 다른 가치를 가졌는지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동대문옥상낙원DRP 전경
*출처: 동대문옥상낙원DRP 페이스북

그 후로 ‘동대문’과 관련한 이슈는 잘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 2018년부터는 여기 지역과 관계하는 횟수가 줄었다. DRP가 소문이 나면서 만나는 사람들이 엄청 많아졌고 그건 멤버들의 다른 욕구들을 자극했다. 젊은 청년 멤버들과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했다, 특히 외국인들과 교류가 늘어나면서 삶의 다른 차원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었고, 우리도 그런 모색을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결국에는 굳이 동대문일 필요가 있나 하는 데까지 갔다. 상인들은 어쨌든 최선을 다해 살아야지 하는 생각에 갇혀 있기 때문에 다른 조건과 가능성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그런 것들이 한계로 여겨졌다.

‘어반잼(urban jam)’ 활동이 시작된 것과도 관련이 있나? ‘영토해킹’과 어반잼 활동에 대해서도 설명을 부탁드린다.

2017년 봄 영광 법성포에서 버려진 한 창고를 만나면서 소멸해가는 지역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었다. 건축물과 풍경만이 아니라 그곳을 살아온 지혜, 구체적인 삶의 기술이 녹아든 음식이며 술, 사소한 사물 등 여러 가지 것에 흠뻑 빠져들었고, 이때부터 아름답고 멋진 곳들이 쇠락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사람들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것이 2018년 서울미디어시티 비엔날레에 참여한 〈영토해킹, Hacking territory〉이라는 작업으로 이어졌고, 쇠락 지역을 투어하는 ‘어반잼’ 활동으로 발전했다.
법성포를 시작으로 고창, 고흥, 진해 등등 여러 곳을 돌아다녔는데, ‘재미있다’라거나 ‘아름답다’는 건조한 말의 차원을 훨씬 뛰어넘어 감각적으로 깜짝 놀랄 정도의 감동을 경험할 수 있었다.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건축가, 회사 사장, 기획자, 게임메이커, 블록체인 연구자, 귀촌 희망자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는데 같은 풍경, 같은 활동이라도 관측자에 따라서 입자와 파동이 달라지는 것처럼, 누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르고, 또 그것들이 서로 반응해 나가는 것도 흥미로웠다. 지역 사람들도 여기가 이렇게 대단한가, 이게 재미있나, 맨날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곳이 전혀 다른 관점에서 포착될 수 있음을 경이로워했다. 바닷가 노을이 아름답다고 하면 거기는 노을이 아름다운 곳으로 고정되고 그 외에 갖고 있는 디테일들이 사라진다. 그게 굉장히 심하다. 주로 관광지가 그렇게 소비된다. 그렇게 피상적으로 뻔하게 보고 말 수 있는데, 공간을 같이 돌아보며 다른 관점을 주고받으니까 각자가 가진 구체적인 결핍이라든가 다른 관점을 수용할 수 있는 지점도 생겼다. 그게 마치 연습 없이도 이쪽에서 음을 치면 저쪽에서 받아서 치는 그런 즉흥 연주(jam) 같았다.

어반잼(UrbanJam) 활동의 계기가 된 법성포 방문 현장
*출처: 어반잼(UrbanJam) 페이스북

‘영토해킹’은 단지 투어로 끝나지 않고, 쇠퇴 또는 소멸이 진행되는 소도시나 농촌에서 기존의 국가 정책이나 시스템에 구애받지 않고 새로운 영토를 구성하는 것을 상상했다. 새로운 영토는 기존의 것을 쓸어버리고 새롭게 건설하는 게 아니라 기존의 삶 위에 얹혀져야 한다고 보았다. 빈집이 늘고 기존 시스템이 망했어도 오래된 삶의 기술과 지혜들은 여전히 남아있고, 인간이 사라진 자리에는 또 다른 생명들이 서식한다. 새로운 것은 그저 새로운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과 함께 모색하는 삶이어야 하지 않나. 우선 예술가들이 좀 더 예민하게 감각적으로 접근하고 참여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고양이 스타일로 자기 자존감을 지키면서. 그런 의미에서, 기존에 있는 것을 활용해보자는 의미에서 ‘해킹’이라는 말을 썼다.
갈수록 소유가 극단화된 조건이 증폭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소유에 대한 의식이 바뀌는 부분도 있다. 소유가 생기는 ‘경계’를 땅 혹은 영토로 좁혀 생각해보면, 우리가 개인적으로 맘대로 들어갈 수 있는 땅이 실제로는 엄청나게 적다. 공적인 길 외에는 대체로 다 통제된다. 이번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중국 광저우를 보면, 어떤 언질도 없이 인구 천만 도시를 완전히 고립시켜버렸다. 한 도시가 어떤 순간에는 버려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하지만 영토의 경계란 어떤 면에서 무척 애매한 영역이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여권이 생긴 건 1910~20년대 즈음이라고 알고 있다. 그전에는 대다수 나라가 통제할 능력이 없었다. 당시엔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은 문제가 아니고 인구가 유출되는 것이 문제였다. 1960년대엔 우주인이 달에 갔다가 호놀룰루 항으로 들어오며 입국절차를 밟았다. 나갈 땐 아무 문제도 절차도 없었는데 말이다. 지금은 테슬라에서 위성을 띄우고 우주를 사용한다. 한쪽으로는 경계를 넘지 않도록 통제하고 또 다른 쪽에선 그걸 가뿐히 넘어선다. 그럴수록 더 어떤 사람들에게는 통제할 수 없는 이익이 발생한다. 잃어버리게 된다거나 재편된다고 느끼는 쪽에서는 두려우니까 심하게 더 관리하려고 하고. 그런 지점을 생각하면 영토의 경계가 얼마나 유효한 것이냐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영토해킹이다.

2018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영토해킹, Hacking territory〉 라운드테이블 안내문
*출처: 박찬국 작가 페이스북

‘새로운 영토의 구성’ 실현에 다가서는 실재적이고 물리적인 결과물은 있었나? 일반인들도 많이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집이나 땅을 구입했다거나 투자를 받든 지원을 받든 살아본다거나...

그런 필요를 느끼기는 하지만 현실화하지는 못했다. 첫 투어에 참여할 사람을 모집하느라 한밤중에 SNS에 공지를 올렸는데 아침에 인원이 바로 차버렸다. 그렇게 인기 폭발일 줄은 몰랐고 우리도 매우 놀랐다. 투어 외에 빈집에 대해 구체적인 상상을 해보고 빈집 고치는 방법을 알아보는 워크숍이라든가 그런 과정을 두 차례 했다. 다수가 왔다 갔다 하려면 사전 답사라든가 매뉴얼이라든가 여러 가지 조직적 대응이 필요한데 아직 그런 레벨까지는 못 갔다. 작년에 코로나 팬데믹이 없었으면 진전이 더 있기는 했을 것이다.

실무적인 이유에 공감이 가지만 대중의 입장에서는 국가나 시스템 바깥에서 더구나 소유의 경계를 넘어서 뭔가 해본다는 시도가 너무 급진적이어서 두렵거나 혹은 너무 낭만적이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물리적인 영토가 있고 거기에 개입해 들어간다고 했을 때, 익숙한 것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 텐데 이런 격차나 다양성을 인정할 때만 흥미로운 지점이 생긴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국가에 대한 의식이 약한 사람들이 꽤 많다. 일종의 히피생활자들이나 다거점생활자들이 꽤 있고, 젊은 친구들이 정말 자유로운 방식으로 작은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모습을 적잖이 볼 수 있다. 우리는 재미있다고 하는데 정말로 놓아버리고 사는 그런 그룹을 찾기 어렵다. 그게 아쉬운 지점이긴 하다.
인구가 줄고 도시화는 더 강렬해지고 농촌이나 작은 마을은 이미 소멸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중소도시는 있다고 해도 더는 홀리스틱하게 존재할 수가 없고 기능이 많이 바뀌어야 한다. 엄청 강고해 보여도 둑이 허물어지는 것은 한순간일 수 있다. 가까운 일본이 그걸 보여주고 있고, 우리나라도 급격히 그런 시기에 접어들었다. 지금부터 십 년은 이런 상황이 더 심각해지고 빨라질 것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움켜쥐려 해도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지역에 가보면 어떤 곳은 다 비어있고, 늙어가고 있는데 비워놓긴 해도 팔지는 않는다. 팔아봐야 큰 재산이 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갖고 있다’는 것 자체에 집착한다. 이용하지도 심지어 팔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한마디로 ‘헛소유’인 것이다. 그래서 소유 자체의 생각을 비워내는 게 중요하다. 그게 ‘빈 소유’이다.
누구든 무슨 짓거리로든 그곳을 채워 넣을 수 있게 비워두는 것이다. 누가 들어와서 무엇인가 한다고 해서 그 사람 것이 되는 건 아니다. 어떤 때는 다 치워놓고 막상 활용하려는 터를 엉뚱하게 다른 이가 차지하는 것을 보기도 한다. 하지만 소유한다고 어떤 일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래서 헛소유를 인지하는 게 중요하다. 예를 들면 베이비붐 세대가 노인 취급을 받지만 아직 힘은 넘치고 굉장히 떠 있는데, 큰돈이 아니어도 돈을 내서 시골집을 사고 외국인이나 청년들이 이용하게 해주면, 일 년이든 며칠이든 이용할 수 있다. 집이 허물어지면 이제 소유하는 사람이 돈을 내고 처리해야 하는 시기가 곧 올 텐데 이렇게 접근한다면 자신도 잃는 게 없고 상생이 가능하다. 정책화 이전에 사적으로 하면 매우 자율적으로 할 수 있다. 지자체라든가 정부는 (소유니 임대니 계약관계를 보장해줘서) 쇠락 지역에서 빈집을 고쳐서 살고 이용하겠다는 민간이 있으면 무조건 가능하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런 지역에 들어와서 활동하면 하는 대로 이익이니까. 위기만이 아니라 가능성으로 봐야 하는데 상상이 너무 빈약하고 행동도 굼뜨다.

2020년에는 나주에서 나주문화도시조성지원센터장을 맡아 일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작가 박찬국과는 참 어울리지 않는 선택으로 보았는데 센터장의 경험은 어땠나?

망설여졌지만 막상 일을 시작했을 때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했고 그 일이 아니었으면 생존이 어려웠을 것이다. (웃음) 사실 문화도시 사업이 어떤 것인지 또 경쟁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인지는 잘 몰랐다. 문화도시보다도 나주가 고향이라 거기서 뭔가 한번은 해봐야지 하는 생각이 컸다.
역시 나주에도 많은 공간들이 비어있었는데, 토지의 비용이라든가 세력 간 갈등이나 경쟁의 작용으로 비게 된 경우가 많았다. 선한 의지만으로는 거버넌스나 협치도 쉽지 않음을 느꼈다. 여기저기서 동사무소니 공공도서관이니 공공 공간들의 이름이 변하고 있는데 그건 기능이 변하는 것이다. 거기에 자동화까지 되니 인구는 없는데 엄청나게 공간이 낭비되고 있었다. 이왕에 변화라면 이런 공간이 여기 실제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지금 필요로 하는 방식으로 바뀌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역에서 노인이나 아이들은 사실 갈 데가 없다. 소도시에서조차도 카페는 늘어나고 있지만 젊은 층이 소비하고 있고, 이들은 거리에 나뒹구는 의자나 턱에 앉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개인들의 자존감이 상할뿐더러 커뮤니티 기능이 활성화되지 못한다. 투표권 외에는 이들 몫이 생기지 않고 있다.
예를 들면 시립도서관 1층은 누구라도 와서 머물 수 있어야 하는 곳이다. 그렇다면 주차장이라든가 마당 공간을 터버려서 접근성을 높이고, 사람들이 머무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의자를 놓을 것이다. 무료로 제공되는 초라한 의자가 아니라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근사하고 편안한 흔들의자나 안락의자를 놓는다. 거기 앉으면 누구든 내가 왕이 되는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거기 가면 내가 대접받을 수 있고 나라는 존재를 고마워한다고 여길 수 있도록 그런 공간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문화도시에 대한 투표권을 준다. 이제까지 목소리가 없었고 표가 아닌 것으로는 의견을 말할 수 없었던 사람들로부터 의견을 들을 수 있도록.

DRP 시즌 1을 자평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7~8년을 온통 여기서 어떻게 쏟아부으며 살았냐 하는데 실용적인 관점에서 한 해 한 해 어떻게 살아가나 고민했다면 금방 그만두었을 것이다.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이 잘 맞았던 멤버들과 함께 한 덕분이었다. 밀머리미술학교를 비롯해서 후배들과 학생들, 청년들과 같이 오랫동안 활동해왔다. 학교나 교육에 관심이 많지만, 또 그렇게만 규정되지 않으면서 어떻게 다른 에너지를 만들 수 있고 경험을 나눌 수 있을까 하는 게 고민이었다. 예술에서 핵심적인 게 탐구와 비평이고 또 실행인데, 그런 과정들을 이곳에서 충분히 공유할 수 있었다. 멤버들뿐 아니라 관여하거나 그냥 둘러보거나 하는 외부인들과도 우리의 생각과 관점을 공유할 수 있었다는 것이 좋았다.
처음부터 이곳을 ‘놀이터’로 이용하기로 했기 때문에 어떤 결실을 말하긴 애매하다. 코로나로 꽉 막히긴 했지만 한국을 넘어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놀이터로 인식하고, 영토를 넘어서 서로 깃들고 교류하고 소유 없이 오갈 수 있는 장소로서 활발했던 것도 좀 뿌듯하다.

동대문옥상낙원DRP 활동들
*출처: 동대문옥상낙원DRP 페이스북

DRP+ 에서는 무엇이 달라지게 되나?

아직 명확히 정해진 바는 없다. 우선은 자주 모여서 공부하는 공간으로 출발할 것 같다. 자율적 조건 내에서 공공적 공간에 대해 시민들과 뭔가 해본 경험이 너무 일천하고 대체로 관치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 공간은 관치를 벗어난 공간이었는데, 그래서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다고 본다. 같은 이유로 뭔가 더 해보지 못한 측면도 크다. 여기에 공부의 이유가 있다.
국가도 기업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들이 이미 도래했는데 포퓰리즘에 영합하지 않고 어떤 사회적인 목표를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의미하는 바가 뭔지, 도덕적인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이고 여전히 애매하게 다루고 있는 영역이나 협력은 어떻게 해야 할지 맨날 이야기해온 것들이지만 어느 선을 못 넘어가고 계속 이야기가 맴돌다 끝났다. 그것을 넘어서는 공부와 토론이 필요하다. 그런데 혼자는 못 하니까 모여서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이번엔 그 선을 한번 넘어보자는 거다.
새로 들어와 활동할 사람들은 도시와 커뮤니티에 관심이 많은 작가와 큐레이터들이다. 이전과 달리 공간과 활동은 분리될 예정이다. '로보탑'이라 불리던 공간은 새 멤버들의 근거지가 될 것이고, 나는 '랩토리(LAB-TORY)'라 불리던 가운데 공간을 쓰면서 기후 위기에 관심을 가진 몇몇 활동가들과도 함께 할 예정이다. 물론 그냥 각자의 작업실이나 사무실이 되는 건 아니다. 그동안의 활동이나 지향의 연장선에서 새 멤버들과의 공통지점도 모색하게 될 것 같다. 이곳을 주목하게 했던 일들이 있었고 이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장소는 생활공간이라기보다 메시지였으니까. 같은 신(scene)에 있다고 하지만 서로 뭘 하는지 자세히는 모른다. 그런 것들도 공유될 수 있으면 좋겠다.

  • 백현주
  • 필자소개

    백현주는 미술사를 전공하고 미술계와 디자인계 언저리에서 에디터로 청년기를 보냈다. 민간과 공공, 시민사회 등을 오가며 교육과 예술의 접점에서 연구와 기획 등에 참여해왔다. 가장 최근에는 수원시평생학습관을 퇴사하고 자유인이 되었으며 ‘예술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함께 성장할 것인가’에 생각과 힘을 집중하고 있다.

  • 페이스북 바로가기
  • 트위터 바로가기
  • URL 복사하기
정보공유라이센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