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문화도시 열풍이 일며 거버넌스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서울문화재단이 올해 개관을 준비하고 있는 예술청의 핵심도 거버넌스에 있다. 거버넌스가 행정의 알리바이로 사용되기 위한 단기간의 동원과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왕왕 있어왔지만, 예술청은 준비과정부터 비교적 탄탄하게 현장예술가들과 협력의 시간을 쌓아온 점이 눈에 띈다. 서울문화재단은 동숭아트센터를 매입해 몇 년 동안 예술가들과 함께 개관 사전작업으로 준비단을 운영하고 사전프로젝트를 진행해 오며 예술청의 운영방향을 가다듬어 왔다. 운영이 본격화되면 예술가들의 논의를 바탕으로 한 실험의 결과를 제도로 피드백하는 과정을 모색하고 있기도 하다. 예술가 2인과 행정 1인을 포함한 3인의 공동예술청장 제도도 흥미롭다. 예술현장의 의견을 중시하되 행정의 책임성이 균형을 이루기 위한 장치처럼 보인다. 예술청은 빠르면 6월에서 7월 입주를 마치고 활동을 시작한다. 3인의 공동청장을 만나 예술청의 취지와 향후 운영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서울문화재단 예술청의 공동예술청장 3인
(왼쪽부터 김서령, 여인혁, 장재환 공동청장)

우선, 자기소개부터 부탁드린다. 어떤 작업을 하고 있으며 예술청장에 지원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여인혁 시각예술 작업과 기획·행정 일을 하고 있다. 시각예술 프로덕션을 운영하며 설치미술 작업과 기업과의 협업 프로젝트들을 주로 해왔다. 미술 스튜디오, 문화예술기획 단체, 사회적협동조합, 공공기관과 관련된 업무를 경험해왔다. 사실 공공기관에서 하는 사업에는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뜬구름 잡는 언어들이 많다고 느꼈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지나치게 희망적인 말들이 와닿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예술가가 다치거나 도구로 사용될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어려움을 개선하고자 하는 마음과 이를 실제로 바꾸고 개선해내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우연히 공동예술청장 공모를 보게 되었는데 상당히 실험적인 모델로 느껴졌다. 이 정도 이슈라면 어쩌면 무언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희망적 메시지 전달이 아니라 현실적인 것을 해나가고 싶었다.

김서령 공연, 축제를 기반으로 장르 경계 없는 창작 콘텐츠를 제작하고 예술-사람-공간을 매개하는 독립 기획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다. 20여년 간 다양한 장르, 세대의 독립 예술가·예술 단체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예술 활동의 지속성과 예술인의 안전, 권익 등 근본적이고 현실적인 예술 생태계의 문제들을 고민하게 되었다.
예술청과 관련해서는 초기에 자문 역할로 참여했었고, 2019년에는 8명의 기획단과 함께 비어있는 동숭아트센터에서 공간 활용 프로젝트와 공론장으로써 동숭예술살롱 등을 운영하면서 현장 예술가들과 예술청의 청사진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2020년에는 운영준비단으로 기획단과 워킹그룹, 재단 예술청팀까지 더욱 확장된 거버넌스 실험에 참여했다. 그 과정을 통해 오랜 기간 꿈꾸던 민관 협치의 새로운 모델과 예술인 주도의 온·오프라인 네트워크 플랫폼의 실현을 그려보게 되었다. 2년여 간 준비단계에 참여했던 경험은 기대감과 동시에 부담감으로 작용했지만, 그동안 여러 현장 예술인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상상했던 예술청을 실현해나가는데 미약하나마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라며 용기를 내어 1기 공동예술청장 공모에 도전했다. 예술청을 통해 조금은 진일보한 민관 협치의 혁신적 거버넌스 플랫폼이 만들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장재환 서울문화재단에서 2004년 재단 출범부터 근무했다. 예술경영을 공부하다가 공연기획으로 예술계 일을 시작했다. 재단에 들어와서 주로 축제, 예술교육, 지역문화, 극장 운영 등 다양한 사업들을 경험했다. 최근 1년간은 감사실에서 재단 행정의 틀거리를 돌아보며 공부할 기회를 가졌다.
예술청은 관찰자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번에 예술청운영단의 운영단장으로 발령 받게 된 이유는 예술청의 향후 활동들을 고려했을 때 기관의 맥락을 연결하는 고리가 될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던 것 같다. 아직 선명하게 사업이 드러나진 않았지만 과정이 중요하다고 보고, 어떤 시너지를 낼지 기대된다. 그간 거버넌스 프로그램들은 있었으나 재단 직원들이 당사자이자 거버넌스 멤버로서 동등하게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거버넌스 방식은 흔치 않았다. 사실, 실무자에게는 행정 책임만 부여되고 직접 참여보다 서포트만 하다 보니 재단 내부에서는 기존 거버넌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었다. 그런 만큼 예술청 활동을 통해 조직 내에서도 거버넌스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형성되리라 기대하고 있다.

3인 청장구조도 낯설지만, 조직 구성이 좀 남다른 것 같다.

김서령 2020년 운영준비단 내 워킹그룹 중 운영모델수립 그룹에서 예술청의 기본 운영모델 기초안을 제시하였고 수차례의 토론을 통해 재단 직원을 포함한 운영준비단 50여 명이 기초안을 다듬고 결정하는 과정에 참여했다. 기존에 예술지원본부 안에 팀으로 존재했던 예술청을 본부(단) 단위로 독립시키고, 공동예술청장 두 명을 공모로 선발하고, 재단의 본부장급 직원 한 명이 내부 공동청장으로 활동할 것, 제도를 통해 권력 집중을 분산한다는 등의 내용이 이 시기에 결정되었다. 운영위원은 10명으로 제안되었으나 공모를 통한 심의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9명이 선정되었다. 재단 직원들도 단순 행정 서포터 역할을 넘어 예술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목소리를 내고 서로 보완적 파트너십을 형성하면서 새로운 협치 모델을 만들고자 한다.

예술청 공동예술청장, 운영위원 공모문
출처: 예술청 함께 만들기 공론장 페이스북

동숭아트센터 자리에 예술청 외에 서울문화재단 팀들도 일부 이전해 오는 걸로 알고 있다.

장재환 한 건물 안에 일부 예술청 기능이 있고, 그 외에 문화시민본부, 예술교육본부, 극장운영단 등 4개 본부가 들어올 예정이다. 지하의 블랙박스 공공극장을 극장운영단(예전 남산예술센터 팀)이 운영한다.

김서령 현장에서는 동숭아트센터 건물 전체가 예술청이 될 것으로 오해하시는 분들도 많은 것 같다.

그렇다. 왠지 예술청이라고 하면 시민청에 대응하는 커다란 공간을 떠올리게 된다.(웃음)

김서령 아쉽게도 그렇지가 않다.(웃음) 동숭아트센터 건물 자체가 시민청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사이즈고, 전체를 예술청이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원래 처음에는 재단 본부들 중에서 예술가들과 접점이 가장 많은 예술지원본부가 들어오기로 했으나, 인원이나 공간 협소 문제로 내부 논의가 있었고, 들어오는 부서가 바뀌었다. 그동안 예술 생태계 안에 있으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갑을 관계라고 생각하는 공공행정과 예술현장이 한 지붕 아래 교류하는 것에 대한 기대가 있다. 공공과 민간 사이 언어가 다르고 둘 사이 간극이 크다는 것, 그 사이를 연결하는 시도가 절실하다는 것을 오랫동안 느껴왔다. 실제로 준비단 50여 명과 함께 활동하면서 벽이 조금씩 낮아져가는 것을 목도했다. 그런 만큼 정식으로 예술청 공간이 생기고, 사업으로 이어졌을 때 기대하는 효과가 있다. 희망적인 가능성을 갖고 열어보려 한다.

동숭아트센터의 ‘유산’을 어떻게 이어받고 있는지 궁금한 지점이 있다. 얼핏 생각하면 연극 쪽 목소리가 컸을 법도 한데, 실제 준비단계에서 진행된 프로젝트를 보면 동숭의 유산을 폭넓게 해석하고 접근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인혁 동숭아트센터 시절을 아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간의 맥락이 다양하다. 나 역시도 그 부분에 대한 경험이 없다. 그러니 동숭에 대한 맥락이 다양하게 나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서령 예술청 기획단이 총 10회 추진했던 <동숭예술살롱>의 3월 첫 주제가 <씻김과 기억>이었다. 동숭아트센터에 대한 기억으로 여러 분들이 참여했고, 공연과 예술영화, 꼭두박물관 등 문화로 충만했던 소중한 기억을 가진 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텅빈곳 공개프로젝트> 공모를 통해 온 예술가분들은 장르별로도 시각, 음악, 전통예술, 퍼포먼스 등 너무나 다양했다. 우리에게 동숭아트센터는 극장이었으나 이 시대 예술가들에게는 새로운 시도를 할 만한 공간이라는 걸 체감했다. 동숭아트센터 건물에 있던 꼭두박물관, 공연장(동숭홀, 동숭소극장, 꼭두소극장), 예술영화를 다뤘던 ‘하이퍼텍 나다’ 등 문화사적 기억과 기록들은 동숭아트센터를 예술청으로 전환하는 모든 과정 안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동숭아트센터가 연극, 무용 등 공연 분야 예술인들에게 익숙한 공간이고 대학로라는 위치적 특성상 연극인들의 참여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기획단과 운영준비단을 꾸릴 때는 다양한 장르 예술가들의 참여와 확장에 신경을 많이 썼다. 예술청의 준비과정에 참여했던 연극계 분들도 연극만을 위한 공간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탈 장르, 다 장르 예술가를 만나는 곳, 치우쳐지지 않은 공간으로의 바람이 많았다.

장재환 대학로 연극계의 참여나 관심, 의견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예술청이 대학로라는 문화사적 공간에 있기 때문에 연극계를 소홀히 할 수 없고, 여러 실험과 융복합·탈 장르가 작동될 계획인 만큼 연극계의 참여는 당연하다. 연극계 전체로 본다면 현재 리모델링 공사 중인 서울연극센터가 내년 하반기에 재개관할 예정이고, 2023년에는 한성대입구역 인근에 건립 중인 성북창작연극지원시설도 개관할 예정이다. 연극계의 특화된 거점이 연이어 생기는 셈인데, 예술청도 그와 함께할 기회가 있을 거라 본다.

예술청 설립과 운영을 위해 참고한 사례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개별 사례에서 어떤 것을 주로 참고했는지 궁금하다.

김서령 공동운영단 체제, 거버넌스로 운영되는 기관, 민간 사례 등 국내외의 여러 모델들을 참고했다. 서교예술센터는 1기부터 지금까지 현장 예술가들의 거버넌스가 지속적으로 개편되는 모델이다. 공유성북원탁회의, 문화비축기지부터 해외사례로 프랑스의 썽꺄트르(LE CENTQUATRE) 또한 많은 참고가 됐다. 그러나 사실, 썽꺄트르 같은 경우에는 규모부터 비교 불가라고 해야 한다. 동숭아트센터 건물 중 예술청이 운영할 곳은 1, 2층과 5층 일부, 그리고 옥상이다. 물리적으로 공간이 넓진 않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활동의 가치가 더 크다. 예술가들이 주도하는 연결과 연대, 확장을 구체적으로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 사례 참고도 필요하지만, 기존에 없었던 것, 못했던 것, 비어있던 것들을 채우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왼쪽부터 김서령, 여인혁, 장재환 예술청 공동예술청장

실제 공간 구성에도 예술가들의 의견이 반영됐는지 궁금하다.

김서령 2018년 공모 설계가 이미 끝난 상태에서 현장예술인들과 예술청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서울문화재단 청사 이전이 주목적이었다가 이후에 서울시 예술인플랜 중 예술청 사업이 가동되면서 재단 대학로 청사와 예술청의 결합이 결정된 것이다. 층별 기능은 이미 정해진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동숭예술살롱이나 운영준비단에서 공간 구획, 극장과 1, 2층 간 공간 분할, 인테레어 콘셉트 등을 직접 보고 의견을 제시해 반영한 부분이 많다. 2020년 운영준비단 워킹그룹 멤버 중 자발적 참여로 공간 TF가 구성되어 공간 답사와 수차례의 미팅을 통해 의견을 제시하고 반영하는 등 적극적으로 소통했다. 2019년 <텅빈곳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예술가와 관객들은 공간을 다 채우지 말고, 비워둔 상태에서 예술가들이 채우게 해달라고 많이들 이야기했다. 현재 공간 디자이너가 공간을 비우거나 이동에 용이한 방향으로 콘셉트를 잡고 작업 중인 것으로 안다. 내부 인테리어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있지만 새로이 구성된 1기 공동운영단에서도 공간 조성과 관련해 시설팀과 소통하며 적극적으로 의견을 나누고 있다. 현재 조성 중인 층별 기능을 소개하자면, 앞서 잠시 언급되었던 지하 블랙박스 극장은 극장운영단에서 별도로 운영하게 되고, 마당과 연결되는 1층은 시민과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소통하는 라운지, 2층은 예술인 멤버십으로 운영될 공유 오피스와 쉼터, 회의실, 세미나실이 마련된다. 3, 4층은 재단 사무실, 5층은 창작과정과 발표를 위해 사용 가능한 다목적 공간, 옥상은 공유 주방이 있는 개방 공간 등으로 예정되어 있다.

장재환 현재 서울문화재단 용두동 청사는 포화상태라, 대학로 청사로 일부 부서가 이전하면 근로환경이 나아질 거란 직원들의 기대감이 컸었다. 서울시에서 시민청 기능과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예술가를 위한 공간, 예술청 공간 조성 계획이 있었고 서울문화재단 청사 이전 이슈와 맞물리면서 재단의 역할과 기능과 연계된 예술청 공간조성이 추진된 것이다.

예술청은 별도의 지원 사업도 계획하고 있는가? 그 밖의 사업모델은 어떤 게 있는지 말씀해달라.

김서령 재단 내에 창작지원본부를 주축으로 다양한 형태의 지원사업이 진행되고 있기에 예술청에서는 기존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예술가 자율 참여제와 참여 예산제는 일부 공공기관에서 이미 시도하고 있고, 예술청 운영준비단에서 여러 사업을 통해 테스트해보고 있었다. 예술가가 기획, 제안,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까지 책임져보는 과정을 함께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지원사업 심의의 문제와 현장의 불만들을 개선할 수 있는 새로운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으고 담아내는 역할을 할 예정이다. 공론화도 주축사업 중 하나다. 오프라인의 동숭예술살롱 등 공론장도 진행하겠지만, 수시로 현장 이슈를 발굴하고 변화를 위한 연결고리나 디딤돌이 되게 하고 정책 반영, 조례 제정, 지원제도 개선 등 현장의 변화로 환류하는 것까지 함께 해보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예술인 권익사업’도 주요하게 다루는 갈래 중 하나다. 안전, 평등, 복지 등 다양한 관련 사업들이 제안되고 실행될 것이다. 예술인 권리보장법, 예술인 고용보험 등 예술가에 필요한 법적, 제도적 문제들을 공론의 장에서 다루고 힘을 싣는 것도 예술청의 역할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확실히 공론화 과정을 통해 예술가들을 많이 만나고 이야기를 듣는게 중요하겠다.

김서령 예술청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가 알고 교류하던 예술가들은 예술청에 생각보다 많이 모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다양한 층위의 예술인들을 만날 수 있다. 그동안 장르를 불문한 예술 매개 활동을 통해 꽤 많은 예술가들을 만나고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예술계에 이렇게나 다양한 사람들과 활동이 있음을 새삼 알게 됐다. 그렇게 넓고 다양한 예술 생태계의 구성원들을 연결하고 응원하는 역할을 하게 될 예술청의 필요성을 다시금 느꼈다. 예술청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서울문화예술시스템에도 예술청 공론화 페이지가 들어갈 예정이다. 소통을 중요하게 바라보고 있고, 다각도로 시도하려 한다.

2019년 동숭예술살롱 1회차 공론장
제공: 서울문화재단

이런 활동들이 제도 내부로 되먹임되어 정책을 바꾸는 방식으로 작용할 수 있을까?

장재환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기존 틀 안에서 말씀하신 예술가 참여 예산제나 주도적 기획 지원사업은 몇 번의 실험이 있었다. 정산을 하지 않는 것은 기존 행정의 틀을 넘어서야 하기 때문에 제도의 변화를 끌어내야 하는 부분이다. 현재 갖춰진 틀 안에서도 하겠지만, 그 결과치를 갖고 변화시키는 몫도 예술청의 역할이라 본다. 기존 재단의 다양한 창작활동지원 사업은 유지되지만, 예술청 운영단은 최근 재단이 조직개편되면서 별도 본부급으로 분리되었다. 조직 차원에서도 기존 예술지원 사업을 유지, 계승, 발전시키겠지만 그 안에서 예술가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근본적 치유가 될 수 있는 시도들을 예술청에서 실험하겠다는 거다. 기존의 틀 안에서 틀 밖의 것을 실험하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행정의 틀을 만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예술청을 통해 만들 수 있다고 본다. 행정 내부에서는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려우니 그런 시도를 예술청을 통해 다양한 주체들이 만나면서 만들어내겠다는 거다.

제도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실험을 하고 그것을 제도 안에 적용해 내는 것. 방금 말씀하신 내용들이 예술청의 가장 핵심적인 일이 될 것 같다.

장재환 ‘뭘 해도 안 되겠다’ 보다는 ‘뭘 하면 되는구나’라고 여기게끔 다양한 시도나 데이터를 축적해 정책기관들에 제안을 할 수 있다는 거다. 그런 시도들이 받아들여진다면 근본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지 않겠나.

김서령 가장 우려되면서 기대하는 방향이다. 문제를 바꾸기 위해 ‘가자!’라고 외쳤는데 아무도 함께해주지 않으면 곤란하다.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서 목소리를 내줘야 변화가 가능하다. 공동운영단이라고 해봐야 20명인데 7만 서울 예술인의 환경을 이들의 힘만으로 변화시키긴 어렵다. 누가 해주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해야 한다. 그런 요구들을 모아내는 플랫폼 역할을 하는 게 예술청이다.

지금까지 사전프로젝트에 참여한 예술가들은 분포가 어떤가. 아무래도 젊은 예술가들이 많을 것으로 보이는데, 특정 세대에 한정되지 않을 확장의 방향도 궁금하다.

김서령 작년에 ‘숫자로 보는 예술청’이 인스타에 올라왔었다. 운영준비단 참여 연령은 25~53세 정도로 분포되어 있었는데 생각보다 다양한 연령층을 수용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워킹그룹 모임 초기에는 분위기가 다소 불편했었는데 다양한 장르와 세대의 사람들이 모이니 각자의 입장에서 느끼는 예술현장에 대한 불만들이 너무 많았다. 함께 10개월 정도 시간을 보내며 프로젝트를 해보고 고민을 나눠 보니, 날 서게 대립했던 청년 예술가와 중장년층 예술가의 태도가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서로를 대하는 태도와 활동 과정을 통해 변화 가능성이 보였다. 아무래도 기존에 거버넌스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서교예술실험센터나 청년예술청에서 청년 세대를 중점적으로 수용하고 있기 때문에 예술청에는 보다 다양한 세대와 장르가 모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속적으로 작동될 수 있는 온· 오프라인의 다양한 플랫폼형 참여 구조를 논의하고 있으며 그를 통해 점진적인 확장성을 실험해보고자 한다.

2020년 예술청 준비단 거버넌스 프로젝트
<점진적 연결망 증폭기>(좌), <실험적 아트프로젝트 B>(우)
제공: 서울문화재단

개관까지 타임라인은 어떻게 되는가.

장재환 일단 6월 말 사무공간 입주를 완료하면, 7월 중에는 공간을 가오픈할 예정이고, 약 3~4개월 기간 동안 건물의 안전성 점검과 사업 운영 테스트를 거쳐 하반기 중에 정식 개관할 예정이다. 물론, 일정은 코로나19 등으로 유동적일 수 있다. 연말까지는 예술청 공동운영단을 중심으로 다양한 예술인들과 함께 영역별로 준비된 것들을 순차적으로 선보일 거다. 내년 3월 전후 블랙박스 공공극장이 문을 연다. 서울연극센터가 내년 하반기 중에 재개관하고, 뒤이어 성북창작연극지원시설이 오픈하는 등 대학로를 중심으로 한 문화거점들이 순차적으로 생긴다. 서울문화재단 대학로 청사 안에 예술청, 블랙박스 공공극장, 재단 사업부서가 자리하고, 서울연극센터와 성북창작연극지원시설이 나란히 한다면 대학로에 새로운 문화지형도가 만들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여인혁 성대한 행사나 퍼포먼스가 주를 이루는 개관은 아닐 수 있다. 코로나에 의한 상황도 있지만, 보여주기 식의 퍼포먼스를 최소화하여 담백하게 하자는 예술청 공동운영단의 논의가 있었다. 예술청이 어떤 곳이고 앞으로 어떤 활동들이 있을지 알리는 것에 집중할 것 같다.

거버넌스 관련 이야기를 지금까지도 여러 차례 해주셨다. 지금까지 논의된 내용들을 포함해 거버넌스 운영과 관련한 넘어서기 힘든 지점이나 고민들이 있다면?

김서령 협치는 공동의 발언과 토론, 결정과 책임이 뒤따르는 문제다. 그러다 보니 논의와 결정의 과정에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몇몇의 결정으로 진행해오던 일반적인 운영 방식과 달리 매우 느리고 조심스럽게 하나하나 다지면서 가는 과정이다. 밖에서 보기엔 답답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도 주 2회 4-5시간 씩 치열한 논의의 시간을 갖고 있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민간 운영위원과 공동예술청장이 모두 풀타임 근무를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예술청 업무에 비해 투여할 수 있는 절대적 시간이 부족한 것이 염려되는 지점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의 속도와 거버넌스의 속도의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가운데 서로 시간의 간극을 좁히고 유연하게 조율하면서 1기 공동운영단만의 건강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과 소통, 확장의 방법론과 우리만의 호흡을 찾아갈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여인혁 거버넌스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조금은 머뭇거려진다. 거버넌스에 답은 없고 그에 대한 경험과 생각도 조금씩 바뀌기 때문인 것 같다. 보통의 업무는 효율적인 방식을 추구하며 진행되기 마련인데, 거버넌스는 그런 측면에서 매끄럽지 못하고 오히려 껄끄럽기까지 하다. 상반된 의견들이 대치되고 계속 버무려져 있을 때 논의는 길어지고 결정은 보류된다. 뜻밖이지만 이 과정에서 생각지 못했던 아이디어도 떠오르고 나와 다른 생각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다만 앞으로 예술청 공동운영단이 이런 시간을 더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충분히 숙고하고 취합하는 시간이 항상 확보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장재환 행정의 속도와 거버넌스 속도가 차이가 있고, 그로 인해 거버넌스 속도를 행정이 기다려주지 못해 협치라는 이름하에 민과 관이 함께한 프로그램들에서 갈등이 많았다. 예술청 경험을 통해 상대의 속도를 이해하면서 그에 맞춰줄 수 있도록 서로의 속도를 조절하며 함께 걷는 것이 거버넌스의 성패를 좌우할 중요한 지점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 부분에서 어느 선까지 현장 창작자들과 예술가들, 재단 공공 영역 종사자들이 손바닥 부딪혀 소리가 제대로 날지는 잘 모르겠다. 상황이 바뀌고 있고, 시정과 정책의 변화 등이 진행되는 가운데 이 거버넌스들이 지속될지 걱정되기도 한다. 예술가들이 중심이 되어 제도를 만들고 사업을 이끌어갈 수 있는 방식, 예술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구조가 만들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시도들이 더 많이 있어야 한다. 행정 조직 인력들이 열린 마음과 시각, 관점으로 소통을 중간에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재단에서도 예술청이라는 거버넌스에 대한 여러 우려의 소리도 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인내하고 지켜봐 주고 차이를 인정하면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면 좋겠다.

거버넌스 체계나 실험은 행정체계 안에 있으니 ‘성과’를 피할 수 없을 텐데, 그 부분은 어떻게 정리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장재환 아주 일반적인 참여자 수, 성사 건수, 회의 개최 수, 네트워킹 건수 등 정량적·가시적 성과가 있겠지만, 이면을 봐야 하고 의미를 찾고 확산시키는 것, 그게 중요한 지점이다. 예술청의 성과가 무어냐고 물어본다면 그걸 우리가 어떻게, 무엇으로 드러낼 수 있을지 내부에서 논의를 통해 정립할 필요가 있다. 순수하게 행정적 대응을 해야 한다면 행정의 언어로 정리해야 한다. 그러나 그 성과중심의 정량적 기준 그대로를 예술가에게 요구할 순 없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점은 재단 직원들 다수가 기획자나 현장 예술가 출신이라 단순하게 행정가로만 규정하기 어렵다. 현장의 정체성을 갖고 행정하는 사람들은 분명 다른 색깔과 관점이 있다고 본다.

김서령 결과지향이 아닌 건 확실하다. 목표지향적 성향이 예술청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정량·정성 기준이나 논의방식이 교차하고 촘촘해질 방법을 생각한다. 수치 내는 건 어렵진 않다. 그보다는 내용적인 성과가 중요한 부분이고 변화라고 본다. 지속적으로 이슈를 찾고 해결하려는 변화의 노력이 필요하고, 그걸 성과 지표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여러 가지 실험과 거버넌스를 위한 상호노력이 기대되는 동시에 성과를 둘러싼 고난(?)이 예상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각 청장님들의 마무리 발언을 부탁드린다.

장재환 본격적으로 예술청 업무에 함께 참여하게 된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지만, 오늘의 인터뷰와 같은 과정을 통해 복잡한 생각들이 정리되는 측면이 있었다. 그 정리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리라 기대하고 있고, 거버넌스 멤버로 참여하게 되는 재단 직원이나 예술가들이 그에 합당한 권한과 책임이 동시에 작동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책임감 있고 성실하고 공정한 자세로 참여했으면 한다.

여인혁 예술청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공동운영단 회의에서도 매번 다양한 의견, 대립된 의견으로 논의가 뜨거워지지만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열린 형태로 수많은 현장의 예술가가 참여해 훨씬 다양한 생각이 맞닿는 장이 될 것이다. 예술가로서 할 수 있는, 해볼 수 있는 것의 한계를 예술청에서 시도해보면 좋겠다.

김서령 거버넌스란 다름에 대한 이해와 존중 아닐까. 예술청은 공동운영단만의 과제가 아니라 확장된 거버넌스로 같이 만들어가야 하는 플랫폼이다. 중요한 건 현장 예술인들의 관심과 참여, 그리고 변화된 예술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가기 위한 우리 모두의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길을 터 볼 테니 함께해주었으면 좋겠다.

  • 최선영
  • 필자소개

    안태호는 한국문화정책연구소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 연수문화도시 PM을 맡고 있다. 민예총 활동가를 시작으로 웹진 ‘컬처뉴스’ 편집장, 부천문화재단, 제주문화예술재단 팀장 등을 거쳤다. 함께 쓴 책으로 『나의 아름다운 철공소』, 『노년예술수업』, 『생애 전환 학교』 등이 있다. 스무 살 무렵 빼어난 재능들에 주눅 들어 창작에서 도망친 후, 예술 동네 근처에서 얼쩡거리며 문화정책과 기획 관련 일을 해왔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왕성한 문화 소비자가 꿈이며, 여전히 만화를 보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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