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현금을 의미하는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은 사회적 지원 정책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키고 있고, 의도적으로 또는 의도치 않게 변화된 경제적 여건은 많은 나라와 도시들이 기본소득제도를 현실적으로 재고하게 하는 요건을 강화했다. 이미 팬데믹 이전부터 독일, 스위스, 핀란드 등 유럽에서 제도 도입을 위한 투표 또는 실험이 진행되었고, 미국의 경우에도 일부 주에서 파일럿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미국 그리고 한국 정부의 재난지원금 등도 임시적이지만 기본소득제도와 일부 유사한 목적으로 진행된 정책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시도들 중에서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의 예술가와 예술 인력을 대상으로 하는 기본소득 시범 프로그램은 사회 안전망의 사각에 빠지기 쉬운 예술가들을 위한 첫 번째 경제적 인프라 구축 시도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Guaranteed Income Pilot’ 프로그램 이미지
출처: 예르바 부에나 예술센터 홈페이지

예술가를 위한 보장소득 (Guaranteed Income)

예르바 부에나 예술센터(Yerba Buena Center for the Arts, 이하 YBCA)가 운영을 맡은 ‘Guaranteed Income Pilot’은 코로나19의 여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130명의 샌프란시스코 예술가들에게 6개월간 매달 1,000달러, 한화로 약 112만 원을 제공하는 보장소득 시범 사업이다. 샌프란시스코 예술위원회(SFAC)와 예술 보조금(GFTA)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예술 영향 기부(Arts Impact Endowment, AIE)를 설립하여 87만 달러의 지원금을 조성하였고, 이 중 79만 달러를 선발된 예술가에게 분배한다. 대상자는 창작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와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는 18세 이상의 예술가들이다. 공연예술, 무용, 문학, 사진, 설치미술, 시각예술, 음악, 연극, 영화 등 활동 영역과 장르의 제약은 없고, 예술가 교사, 예술교육자, 그리고 수공업자도 지원 대상에 해당된다. 지원자는 팬데믹으로 인한 소득 손실 피해를 증명하여야 하고, 일정 소득 기준 미만이라는 소득 입증이 필요하며, 거주지 및 활동지 제한 요건을 충족하여야 한다.

‘Guaranteed Income Pilot’의 지원가능한 가구당 기준 소득제한
출처: 예르바 부에나 예술센터 홈페이지 자료 번역
샌프란시스코 13개 구역의 zip code 지역 맵
제공: 필자 재구성
참고자료: 예르바 부에나 예술센터 및 미국 인구조사국(United States Census Bureau) 홈페이지

현재 인종 평등 및 공정성이 가장 중요한 사회적 사안 중 하나인 미국이기에, 이 프로그램은 예술가들의 경제적 안정성 보장이라는 큰 틀 아래 흑인, 원주민 및 유색인종(BIPOC), 이민자, 장애인, 성 소수자(LGBTQ+) 커뮤니티 등 지역사회에서 활동 중이며 상대적으로 소외된 예술인에 대한 지원을 목표로 한다. 최종 선별된 인원의 개인 정보 및 기타 재정 정보는 공식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전체 2,594명의 지원자들 중 130명이 선발되었으며, 이들 중 95%는 사회적 소수자로 정의되고, 백인은 전체 인원의 35%라고 발표되었다.

최근 트위터와 스퀘어(Square)의 최고 경영자인 잭 도시(Jack Dorsey)의 #StartSmall 자선 이니셔티브를 통한 346만 달러의 지원이 결정되면서 이 프로그램의 12개월 확장이 발표되었다. 추가로 50명의 예술가를 대상으로 총 18개월 동안, 매월 1천 달러를 지급하는 2차 지원도 확정되었다. 2차 대상자는 먼저 진행된 1차와는 다르게 YBCA와 다섯 곳의 샌프란시스코 예술기관이 협력하여 선별적으로 모집할 예정이다.

도입 배경 및 요건

이 프로그램의 도입을 가능하게 한 몇 가지 요건들이 있다. 첫째는 북부 캘리포니아의 보장소득에 대한 관심이라 하겠다. YBCA의 파일럿은 캘리포니아에서 진행 중인 여러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다른 시도들의 근거가 되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스톡턴(Stockton) 시에서 2018년도에 도입된 보장소득 실험이다. 경제적 역량 강화를 목적으로 시는 2년간 연소득 4만 6천 달러 미만의 주민 125가구에 매월 5백 달러의 기본소득을 지급했고, 2021년 1월 프로그램이 종료되었다. 최근 발표된 2019년의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지원금의 60% 이상이 식료품과 공공요금에 사용되었고, 술 등 기호식품 소비는 전체 지출의 1%에도 미치지 않았으며, 고용과 정신건강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개선이 있었다고 보고되었다. 이후 YBCA의 예술가 파일럿을 포함 마린 카운티(Marin county), 오클랜드(Oakland), 샌타클래라 카운티(Santa Clara County), 사우스 샌프란시스코(South San Francisco) 지역에서 다양한 대상을 위한 선별적 지원 시범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둘째, 시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다. YBCA 프로그램의 도입은 샌프란시스코 시 정부의 문화예술기관에 대한 지원 그리고 이를 통한 경제 회복 노력하에 이루어졌다. 2020년 8월, 샌프란시스코 시 경제회복대책팀(Economic Recovery Task Force)은 예술계를 위한 새 펀딩 정책, BIPOC 커뮤니티 지원, 예술을 통한 지역경제 회복에 대한 권고를 발안했다. 2021년 3월 샌프란시스코 시장 런던 브리드(London Breed)는 시의 소규모기업 대출 지원금 중 3만 달러를 ‘Music and Entertainment Venue Recovery Fund’에 할당해 공연 엔터테인먼트 기관에 대한 지원을 공표하였고 이어서 1만 달러의 추가 지원을 결정했다. 이 외에도 275만 달러의 예술가 구제기금(Artist Relief Fund) 조성, 예술 지원 정보 등을 제공하는 온라인 채널인 Arts Hub 자금 제공, 아티스트 레지던시 또는 예술가 협력 프로그램 운영 등 지속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최근 낮은 세금 수입으로 인해 발생한 예술 기금의 격차를 메우기 위해 1,620만 달러 상당의 투자를 발표하기도 했다.

적극적인 시 정부의 투자는 이 도시가 문화예술 분야에 높은 가치를 두고 있음을 뜻한다. 샌프란시스코의 문화산업은 지역경제에 약 17억 달러의 경제적 효과, 3만 6천 명 이상의 고용 창출 효과를 지닌 시장이다. 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9년 시가 문화예술계에 투자한 1백만 달러 당 약 1,750만 달러의 경제적 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Bay Area Council Economic Institute, 2021). 그런데 캘리포니아 주 예술위원회가 2020년 3월 발표한 통계자료는 예술기관과 개인예술가들의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분석되었고 이어 7월 샌프란시스코는 ‘Covid-19 Arts Impact Survey’를 통해 약 7천3백만 달러의 경제적 손실을 예상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문화예술계의 투자는 도시의 문화적 다양성과 문화예술 보전의 문제만이 아니라, 해당 시장의 취약성과 불확실성에 대한 극복 그리고 이로 인해 창출되는 사회적·경제적 효과에 대한 고려인 것이다.

기대와 우려

기간제·계약직 근로자, 프리랜서 또는 겸업의 비중이 높은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의 시장·고용구조를 고려했을 때, 기초 생활 보장을 위한 직접적인 경기 부양 지원은 긍정적으로 보인다. 미국 내 전시나 공연 기반 관객과 방문자를 대상으로 하는 예술기관(Visitor-serving organizations)의 경우 2022년부터 기존 관객 유치 추세 회복이 예상된다고 한다(IMPACT experience, 2020). 그러나 지역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현장성에 의지하는 예술가들은 여전히 높은 불확실성 속에 놓여있다. 수입의 불안정성은 단순히 창작 활동의 위축만이 아닌 실질적 생활고를 의미한다. 예술 노동에 대한 경제적 보상,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 제공. 창의적 작업 활동의 보장 그리고 이로 인해 발생할 문화적·사회적·경제적 효과는 일회성이 아닌 장기간 보장소득제도 도입에 따라 연속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긍정적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의 도입과 운영을 위한 재정 확보와 그 장기적 지속성에 대한 보장은 체계적인 고려가 필요하다. YBCA의 보장소득 프로그램을 비롯하여 대다수의 기본소득 시범 운영을 가능하게 한 것은 민간 자본의 유입을 통한 재원 확보이다. YBCA 실험의 경우 반년에서 18개월로 프로그램이 확장될 수 있었던 것은 잭 도시의 지원 덕분이다. 앞서 언급된 스톡턴 시의 실험 역시 세금이 아닌 페이스북 공동창업자 크리스 휴스를 포함한 민간의 기부를 통해 이루어졌다. 미국의 예술 지원 소스는 다양하다. 공공 지원보다는 민간재단이나 개인의 기부에 높은 의존도를 보인다. 샌프란시스코가 문화예술 영역에 계속적인 투자를 진행하고 있으나, 시 정부 자체 재원이 장기적 안정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브리드 시장의 정책 역시 공식적으로 개인 민간 투자자들의 참여를 독려하며 기대하고 있다. 미국의 기부 문화를 당연하게 여기더라도, 경제적 불확실성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예술이 기부자들의 우선순위에 들지 못하여 재원 확보가 불가능해진다면 보장소득의 지속은 어려울 것이다. 현재의 예상치 못한 경제 위기 속에서 큰 규모의 예술기관들도 인원 감축 등을 통한 긴축 재정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YBCA 역시 2020년 예정되어 있던 모든 행사를 취소해야 했고, 전시 공간 폐관 등을 결정했으며, 20명 이상의 직원을 해고했다. 제도의 실효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하더라도 재정의 확보와 투자 측면의 분석은 필수적이다.

또한 예술인 보장소득에 있어 선발기준과 과정의 공정성도 중요하다. 수혜자의 입장에서는 누가, 얼마만큼, 어떻게 지원을 받을 것인가, 반대로 수여자의 경우에는 누가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그 과정이 공정 또는 공평한가가 중요하다. YBCA의 파일럿 프로그램도 이 점에서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YBCA는 프로그램의 인종 평등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역사적으로 소외된(historically marginalized) 커뮤니티 아티스트를 우선순위에 두었다. 비평의 대상이 된 것은 이 목적이 아닌 과정이었다. 프로그램이 안내된 것은 3월 25일, 지원 마감은 4월 15일로 지원자들에게는 3주의 짧은 기간만이 주어졌다. 실질적으로 지원이 필요한 소외지역 예술가들에게 정보가 충분히 제공되었는지 또 그들의 지원이 가능했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다. 최종 대상자의 선별은 랜덤 추천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그들의 정보가 공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실제 대상자들이 지역 커뮤니티의 다양성과 현실성을 대표하는지 확인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시되고 있다. 운영 과정에 대해서도 공정성 문제가 피력되었다. 작년 10월 87만 달러의 자금을 운용하고 프로그램을 진행할 기관 입찰 과정에서 한 달 밖에 주어지지 않았던 입찰 기간은 실질적으로 소외그룹 예술가들을 가까이서 지원하고 함께 일하는 소규모 예술기관의 참여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는 이유였다. 또한 시에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지역 커뮤니티기관들의 참여 없이 비공개적으로 너무 빠르게 이루어졌다는 점도 언급되었다. 이러한 비판의 목소리 때문에 2차 모집 방법을 바꾼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선별적인 예술인 기본소득에 있어 지급 대상 선정과 운영 과정이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사항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Guaranteed Income Pilot’ 프로그램 추진절차
출처: 예르바 부에나 예술센터 홈페이지

이 보장소득 프로그램은 파일럿이다. 실험적 실행을 통해 보편적, 장기적 소득 분배가 예술가들에게 줄 수 있을 효과에 대해 학습하는 목적을 갖는다. 현재의 선별적 소규모 시도들을 고려하여 실제 보편적 정책이 도입된다면 사회의 사각지대가 커버될 것인가, 또 현재의 시범 실행들이 긍정적 효과를 얻는다고 하더라도 실제 제도가 동일한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인가 등 답을 알 수 없는 문제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YBCA의 시범 프로그램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은 예술가들에게 기본소득이 필요한 이유를 예술의 사회적·경제적 가치 때문이라고 설명하기 때문이다. 이 실험이 결과적으로 예술이 기여하는 시장과 사회의 회복력과 경제 안정화 효과를 증명한다면, 단순히 보편적 기본소득제도에 대한 근거가 될 뿐만 아니라 예술의 가치와 필요성에 대한 증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에 따라 여러 비영리 민간 기관에서는 예술가와 소규모 예술단체를 지원하는 프로그램들을 실시했다. 주 정부와 시 정부의 지원 확정 이전에, 그리고 연방 정부의 ‘CARES Act(Coronavirus Aid, Relief, and Economic Security Act, 코로나 바이러스 원조, 구호, 경제안보 법)’ 발표 이전에 진행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개인예술가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은 미국 연방 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주 정부, 시 정부 또는 지역기관이나 민간단체들이 중개자나 일차적 서포터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길어지는 팬데믹 상황 속에서 점점 공적 차원의 지원 논의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고, 보장소득 또는 기본소득제도 역시 이전보다는 확대된 정부 차원의 정책적 논의가 요구되는 사안이다. 미국 주 예술위원회연합(National Assembly of State Arts Agengcies, NASAA)는 이번 가을 개인 예술가 지원 현황을 소개하고 개선 방향을 모색하는 워크숍 'New Paradigms for Artist Support'을 준비 중이다. 미국 내의 정책적 접근에 관심이 있다면 정보를 얻을 기회가 될 것이다.

  • 이나경
  • 필자소개

    이나경은 현재 미국 주 예술위원회연합(NASAA, National Assembly of State Arts Agencies)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예술행정, 교육, 정책을 전공하였고, 예술과 건강(Arts and Health)과 평생교육(Lifelong Learning)을 중심으로 예술과 다른 학문이나 영역 사이의 협력과 소통이 주 관심 분야이다. 직업적으로는 문화예술 프로그램 또는 정책 데이터 분석 및 비주얼리제이션을 주 업무로 하고 있다. 이메일

  • 페이스북 바로가기
  • 트위터 바로가기
  • URL 복사하기
정보공유라이센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