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상상해보자. 당신은 한 공원의 벤치에 앉아 한적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당신의 시선으로부터 20m 앞에 놀이터가 있다. 유치원생 또래의 아이들 10여 명이 한데 어울려 정신없이 뛰어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다. 아이들의 표정, 움직임을 상상해 보라. 어떤가? 아이들의 해맑은 표정과 웃음, 자유롭고 거침없는 행동, 서로를 돕고 의지하며 함께 무엇인가를 만들고 있는 행복한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우리가 꿈꾸는 직장이 이 놀이터와 같은 신나는 공간이라면 어떨까? 어떤 사람은 직장이 무슨 놀이터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직장이라면 즐거움에 겨울뿐 아니라 우리가 꿈꾸는 소통과 협력은 물론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실험이 늘 일어나는 공간이 될 것이다.

자, 이제 시선을 돌려 놀이터의 부모들을 바라보자.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아마도 스마트폰에 심취에 있을지 모르고, 수다를 떨지도 모르고,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부모의 중요한 역할이 있다. 그것은 아이들을 관찰하며 혹여 있을지 모를 위험 속에서 아이를 지키는 것이다. 놀이터 바닥에 이물질이 보인다면 얼른 달려가 치울 것이고, 아이들 간에 다툼이 일어난다면 중재할 것이며, 도움을 요청한다면 언제든지 도와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놀이에는 개입하지 않는다. 개입은 놀이를 방해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조직의 리더가 보여야 하는 행동들이다. 놀이터는 바람직한 조직문화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상상하는 하나의 은유다. 특히 문화예술 경영단체라면 더욱더 그러하다. 그래야 창의와 혁신이 살아날 테니 말이다.

조직문화를 만드는 핵심은 리더에게 있다. 놀이터가 즐거운 것은 간섭과 통제가 없기 때문이다. 부모는 간섭하지 않음으로써 놀이터를 더욱 신나는 공간으로 만든다. 만일 통제와 간섭이 난무한다면 놀이터는 금방 지옥으로 변할 것이다. 왜 많은 조직문화가 구성원들에 고통을 주는가? 그것은 조직이, 조직의 리더가 통제력을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첫째, 통제가 빠르고 효율적으로 결과를 만든다는 산업사회의 믿음이다. 통제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하고, 그 결과 무질서가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다. 강력한 ‘손’이 있어야 질서를 잡을 수 있다는 홉스식의 유령에 붙들린 것이다. 둘째는 통제력을 갖지 못할 때 자신의 권위나 존재감을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존재감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리더의 두려움은 조직구성원들의 행동을 위축시키고 조직의 장래를 어둡게 만드는 망령이다.

뉴욕 줄리아드 음대 출신 줄리언 파이터가 1972년에 창단한 오르페우스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세계 유일의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다. 이들은 지휘자 대신 공연마다 새로운 악장을 투표로 선출하고, 악장은 의견 충돌과 토론을 중재하며 해결책을 제시한다. 리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단원이 마치 하나의 심장으로 숨을 쉬듯 훌륭한 앙상블을 만들어 낸다. 케빈 켈리는 『통제 불능』이라는 책에서 만일 신의 역할을 하고 싶다면 두 가지를 하라고 말한다. 첫째, 통제하지 말 것과 둘째, 숨기지 말 것이다. 자유의 허용과 투명성은 설령 무질서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해도 결국에는 자율조정을 이루어낸다. 실제로 자연의 생태계는 어떤 통제 없이도 실수와 혼돈의 뒤범벅을 언제나 다시 새로운 혁신과 안정성으로 돌려놓았다. 코로나19의 광풍이 전 세계에 몰아쳤지만 한국 정부는 놀라운 대처능력을 보여주었다. 자유의 허용과 투명성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미국의 퇴역 장군 스탠리 맥 크리스털은 고도의 훈련과 최신의 무기로 무장된 미군의 정예부대가 오합지졸에 가까운 이라크 알카에다에 고전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지휘체계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기민하게 수축, 확산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환경의 복잡성과 불확실성을 헤쳐나갈 수 있는 능동성과 창조성은 구성원들의 재능이 자유롭게 발현되는 자율조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놀이터가 신나는 공간인 이유는 안전한 울타리가 있고, 어른들의 보호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른들의 놀이터에는 한 가지가 더 있다. ‘목적과 결과’다. 아이들의 놀이터는 놀이 자체가 목적이고 결과이지만, 어른들의 놀이터는 명확한 목적이 있고 구체적인 결과를 요구받는다. 그러므로 목적과 결과가 있고, 울타리가 있어 안전한 곳이라는 믿음을 주는 공간, 거기가 바로 사람들의 재능과 개성이 만개하는, 창조와 혁신의 놀이터다!

이런 조직문화를 어떻게 만들까? 여기에는 세 가지 핵심적인 요인이 필요하다. 첫 번째는 목적에 대한 믿음으로 맥락을 만드는 것이고, 두 번째는 모든 간섭이 없는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며, 세 번째는 언제든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목적의 맥락화는 놀이터의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자유로움은 놀이터의 조건을, 안전감은 놀이터의 부모 역할과 같다. 그런 점에서 이 세 가지는 서로서로 지탱하는 트리오라 할 수 있다.

목적의 맥락화

목적은 조직의 존재 이유를 밝힌 것으로 우리가 함께 일하는 궁극적인 이유를 말한다. 이에 대한 강력한 믿음은 조직의 맥락(context)을 만든다. 맥락이란 각자의 이해관계가 공동의 목적으로 직조되어 동일한 믿음체계를 가진 상태다. 맥락의 조성은 조직문화의 핵(核)이다. 그것은 선언의 수준을 넘어선다. 신념의 수준으로 각자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려야 강력한 울타리가 된다. 소속감, 일체감을 만들고, 긍지와 자부심을 부여하며, 자율성과 창조성을 촉구한다. 목적이 신념의 수준으로 안착하여 있지 않다면 조직의 울타리가 무너진 것이다. 그런 조직은 다시 통제의 욕망에 사로잡힌다. 온갖 통제와 감시 장치들이 난무하고 구성원들의 자발성을 꺾는다. 다양한 개성과 가치관의 충돌, 세대 간의 갈등, 일하는 방식 등의 차이로 인한 분열이 극대화된다. 목적에 대한 믿음이 맥락화되어야 차이와 갈등이 역동하면서 창조적 대안으로 수렴된다. 목적을 맥락화하는 일을 소홀히 하는 조직은 어떤 노력을 한다 한들 강력한 문화를 만들지 못함을 유념해야 한다. 다음의 질문은 목적에 대한 믿음이 조직의 맥락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점검하는 지표가 될 수 있다.

● 선명성: 우리 조직의 존재 이유와 목적은 선명한가?
● 정당성: 이것은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정당성을 부여받았는가?
● 매력성: 매력적이어서 구성원들에게 자부심과 긍지를 주는가?
● 교감: 동의와 합의의 절차를 걸쳐 신념의 수준으로 내려와 있는가? 적어도 그렇게 하기 위한
지속적인 소통이 일어나는가?
● 일관성: 목적에 기반하여 일관된 의사결정이 내려지고 있는가?

불간섭의 자유

놀이터의 두 번째 조건은 불간섭의 자유로 전적인 재량권을 제공하는 것이다. 재량권은 세 가지 경로를 통해 만들어진다. 첫 번째는 목적에 대한 믿음이다. 목적에 대한 믿음을 공유한 구성원들은 동일한 대본을 갖게 된 것이므로 서로를 파트너이자 동지라고 간주한다. 언제 어디서고 각자의 지식, 기술, 역량을 자유롭게 공유하고 협업할 수 있다. 목적에 대한 믿음이 맥락화됨으로써 신뢰를 높이고 자율성을 촉진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목적의 맥락화는 불간섭의 자유를 만드는 전제조건이다. 두 번째는 구성원이 갖는 효능감이다. 효능감이란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말한다. 효능감은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결정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성공 체험들을 축적하는 가운데, 그리고 주변인들의 긍정적인 기대와 지지를 획득하는 가운데 축적된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구성원이 미숙해 재량권을 줄 수 없다고 말하지만 이는 오해다. 구성원은 미숙한 것이 아니라 성숙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지 못한 것뿐이다. 성숙한 구성원들이 있을 때 조직은 창의적이고 혁신적이다. 불간섭의 자유를 보장하는 세 번째 경로는 투명하고 즉각적이며 공평한 정보의 공개다. 투명하고 즉각적이며 공평한 정보 공개는 구성원들에게 스스로 정보를 해석하고 통합할 수 있는 권한을 줌으로써 구성원을 문제의 주인으로 만든다. 주인은 문제를 자기화하고 주도적으로 행동한다. 다음은 불간섭의 자유를 점검하는 지표가 될 수 있다.

● 의미감: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대한 의미감, 목적의식을 느끼고 있는가?
● 자율성: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충분한 권한이 부여되어 있는가?
아울러 사람들은 특별한 장애 없이 소통하고 협력하는가?
● 효능감: 사람들은 자신의 역량에 대한 긍정적 믿음이 있는가? 이를 위한 성장 체험이 있는
도전적인 과제가 실험되고 있는가? 결과에 대해 주변인들의 격려와 지지가 있는가?
● 정보의 공개: 정보는 투명하고 즉각적이며 모두에게 공평하게 제공되어 불안과 불확실성을
제거하는가?

심리적 안전감

놀이터의 세 번째 조건은 심리적 안전감이다. 이는 놀이터에 있는 부모의 역할과 같다. 심리적 안전감은 어떤 말과 행동, 심지어 실패와 실수가 있다 하더라도 비난받지 않고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이다. 심리적 안전감은 자유로운 의견의 개진과 감정의 노출, 새로운 도전과 탐색을 가능하게 하고, 역경 속에서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제공한다. 심리적 안전감은 구성원의 고통과 상처를 바라보는 조직의 긍휼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긍휼감은 방어막을 내리고 어떤 표현과 공격도 사랑의 마음으로 읽어낸다. 당연히 비난과 처벌 대신 실수와 실패로부터 다시 배울 수 있는 관행을 뿌리내린다. 심리적 안전감을 느낄수록, 다시 말해 조직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낄수록 구성원들은 일에 대한 책무감을 갖고, 이에 상응하는 성숙하고 자율적인 행동하게 된다. 다음은 심리적 안전감을 점검하는 지표가 될 수 있다.

● 사람들은 어떤 말과 행동을 해도 비난받지 않는가?
● 사람들은 자신의 실수를 어려움 없이 고백하는가?
● 사람들은 편견 없이 피드백을 주고받는가?
● 실패를 환영하고 여기서부터 배우는가?
●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일어나는가?
● 담대하고 도전적인 실험을 장려하는가?

어떻게 시작할까?

많은 문화예술 경영단체들은 조직적 한계와 제약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사람들은 직장과 자신을 분리하기 시작했고, 부조리한 문화, 관행, 제도들에 인한 이탈도 일어난다. 새로운 문화의 정착과 개발이 어려운 것은 1)경영진의 정치적 입지, 또는 리더십의 문제, 2)인력과 시간 등 자원의 한계, 3)조직구조 상의 제약, 4)참여자들의 생각과 가치관의 차이, 5)예술부문과 경영부문 간의 갈등. 6)부정적이고 냉소적으로 변해버린 구성원들, 7)조직문화 구축과 관련한 인식과 방법의 무지, 또는 이를 내부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협상력의 빈곤 등이다. 하지만 조직문화는 단박에 기적적으로 어떤 획기적 비법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목적에 대한 믿음이 구체적인 결과가 만들어지는 가운데 각자의 마음 안에서 천천히 자랄 뿐이다. 마치 과수원을 운영하는 농부와 같은 마음이 있어야 조직문화를 구축할 수 있다. 농부는 계절의 변화를 읽고 미리미리 해야 할 일을 찾아 토양을 정비하고, 잡초를 뽑으며, 제때 비료와 물을 주면서 가꾸고 보살피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농부는 나무가 스스로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관리하는 것이지 나무를 억지로 키우지 않는다. 이런 원리를 이해한다면 조급함을 버리되, 담대한 용기를 갖는 일이 중요하다. 보다 큰 그림, 즉 바람직한 단체의 문화에 대한 담대한 상상을 하되 이를 현실화할 수 있는 과제를 만들고, 실험을 시작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당신이 단체의 문화에 관심을 두고 있고, 이를 진심으로 개선하고자 한다면, 조건이 바뀌고 타인이 문제를 해결해야한다고 생각하기 전에 다음을 묵묵히 시작해보자. 거기가 희망의 진원지다.

① 통제 가능한 울타리를 만들어라.
조직 전체를 바꾸는 것은 가능하지 않고, 현실적이지 않다. 일단 시작해볼 수 있는 영역을 한정하고 바운더리를 설정한다. 예를 들어 ‘SNS를 활용한 단체 프로모션’, ‘00사례 공모전’, ‘00부서 가을 이벤트’ 등과 같이 한정된 프로젝트를 타겟으로 삼는다. 주변 여건이 우호적이지 않다면, 즉 저항이 예상되거나, 자원과 시간의 부족이 있다면 더 작은, 통제가능한 바운더리를 만들어야 한다. 울타리는 예상되는 외부의 저항을 차단하고, 충분히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환경을 설정하는 전략이다.

② 두려움, 의심, 염려 등과 암묵적 가정을 확인하고, 이를 친구로 삼아라.
조직문화를 새롭게 구축하기 하는데 있어 진짜 전쟁은 사람들의 반응이다. 특히 의심, 부정, 두려움, 염려, 근심과 같은 부정적 반응이다. 제도, 자원, 정책은 정작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적 동요와 에너지를 이해하지 않고 변화는 성공할 수 없다. 함께 두려워하는 것을 말하고, 이를 공유하며, 공감하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이 과정이 충분히 일어나야 두려움을 다룰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을 찾을 수 있다. 내가 아는 한 분은 자기안에 벌어지고 있는 두려움을 인정한 뒤, 두려움과 화해하는 체험을 했다고 고백했다. 두려움을 감춘다면 언제든 변화는 이전으로 되돌아 간다.

③ 균열을 찾아 씨앗을 뿌려라.
모든 제도, 조직, 사람들은 균열이 존재한다. 현재의 관행이 정당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틈이 있다. 이 틈을 찾아 거기에 씨앗을 뿌려야 한다. 내가 하는 한 분은 단체내 계약직 직원들이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 있는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이를 공론화하는 대신 그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그들의 동기를 높였다. 사람들은 점차 이 사람의 행동을 보며 계약직 직원들에 자신들의 행동을 돌아보기 시작했고 마침내 다수의 공감을 얻어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냈다. 처음부터 커다란 나무를 심는 것은 현실가능하지 않다. 작은 틈을 찾아 거기에 묘목을 심어야 한다.

④ 전략적으로 연대하라.
심은 묘목은 작은 열매를 맺기 시작한면 사람들의 벤치마크가 될 수 있다. 같은 뜻과 꿈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날 수 있다. 필요하면 소그룹을 만들고 그들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 새로운 대안들을 함께 모색한다. 그리고 조직 내외에 보다 큰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들과 연결하여 지원을 끌어내 힘을 키워야 한다. 그것이 마침내 임계점을 넘는다면 조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된다.


조직 무형의 실체다. 그 안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과 철학, 행동의 집합체다. 조직문화의 문제를 다른 누군가에게 떠넘기는 것은 넌센스다. 그렇다고 앞으로 나서 장기나 바둑을 두듯 말들을 배치하고 통제한다고 해서 문화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묵묵히 시간을 견뎌 씨앗이 자라는 토양이 구축되어야 비로소 개성이 만발한다. 목적을 맥락화하고, 자유를 허용하며, 안전감을 제공하는 일말이다.

  • 이창준
  • 필자소개

    이창준은 구루피플스㈜아그막의 대표이사이고 경영학 박사다. 한국조직경영개발학회 수석 부회장, 진성리더십아카데미 원장을 역임하고 있고, 아주대, 이화여대 등에서 겸임교수로 활동했다. 국내 다수의 기업 및 비영리단체의 리더들을 대상으로 리더십과 조직문화 컨설팅, 강의, 자문을 해왔으며 <리더십패스파인더>라는 독창적인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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