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된 예산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경쟁이 치열해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면 그만큼 다양항 이해관계가 분출되기 마련이다. 문화예술 영역의 심사 역시 정책의 방향과 취지에 맞는 단체와 예술가를 선발하기 위해, 현장의 요구와 이해를 반영하기 위해, 새로운 경향의 도입과 실험을 위해 다양한 방식의 심사가 만들어지고 운영되어 왔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심사방식은 적절한 것일까.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접근하고 해결해야 할까. 현장에서 창작에 몸담고 있는 예술가 두 분과 행정 영역에서 심사를 다루는 두 분을 모시고 심사 제도의 원칙과 방향, 운영 방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일시/장소: 2021. 11. 5.(금) / 온라인 화상회의
진행: 안태호(웹진≪예술경영≫ 편집장)
참석: 김수희(극단 미인 대표), 김화용(시각예술 분야 작가·기획자),
송시경(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창작본부 본부장),
유상진(경기도청 문화종무과 자문관)


먼저 본인이 심사를 받거나 했던 경험, 심사 자체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해주시는 걸로 좌담을 시작하면 좋겠다.

김수희(극단 미인 대표, 이하 김수희)
극단 대표이기 때문에 이맘때쯤 각 기관에 올라오는 지원사업 공고문을 주시하게 된다. 11월부터 1월까지는 사실상 지원서를 쓰는 시즌이라 해도 무방하고, 모든 연출들이 카페에 앉아 지원서를 쓰고 있다. 심사 경험은 사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 심사위원 풀(pool) 안에 포함되어 있기도 해서 심사를 하고 받는 양쪽 입장에 모두 해당된다.
지원서를 쓰는 입장에서는 해당 심사를 신뢰하는 편이다. 결과 발표 때 받게 되는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을 내가 써낸 지원서에 붙여놓고 함께 읽는다. 그리고 그다음 지원서를 쓸 때 많이 참고한다. 심사위원이나 심사 결과를 의심하거나 부정하게 되면 애초에 지원서를 낼 수가 없을 거 같다.

김화용(작가, 이하 김화용)
시각분야의 경우 비평과 기획 분야의 지원도 여럿 존재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예술가가 지원할 수 있는 범위와 종류가 더 다양한 편인 것 같다. 본인의 경우 기획도 겸하고 있긴 하지만 창작자의 위치에서 활동한 경험이 더 많았고 심사를 한 경우보다는 심사를 받은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활동 영역이 경계에 있어서 그런지 지원했던 사업의 종류를 떠올려보면 시각예술 창작 분야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고 공공 프로젝트나 전시 기획 혹은 다원, 문화예술교육 분야까지 다양한 종류였다.

유상진 자문관님과 송시경 본부장님은 역할을 고려해 약간 다른 질문을 드리고자 한다. 심사위원 풀을 구성하거나 심사계획을 짤 때 무엇을 중심에 두는가? 심사위원이 피심사자에게 상처를 주거나, 모욕적인 언사를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하는 반면, 심사 포인트를 잘 짚어내어 피심사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경우도 있을 것 같다.

유상진(경기도청 자문관, 이하 유상진)
먼저 심사위원 풀은 해당 분야 심사에 참여하셨던 분들, 또는 환경, 공동체, 생활문화 등 그 지원사업과 연관된 다른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보유한 분들 중 심사 경험이 많은 분들로 구성하려 한다. 심사위원 풀 구성에는 기준이 가장 중요하다. 해당 분야의 전문성이 가장 중요하고, 역량과 자질도 살펴봐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심사와 선정 기준을 사전에 마련하더라도 현장에서는 심사위원의 역량과 경험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심사 전 오리엔테이션 시간을 갖고 해당 사업에 대해 심사위원이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해 개인적인 판단을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도 심사 비용이나 일정상 고려하기 쉽지 않다.

송시경(한국문화예술위원회 본부장, 이하 송시경)
예술위에는 ‘문화예술진흥기금사업 지원심의 운영기준’이 마련되어 있고 이 내규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심의위원 풀이 있고, 주로 그 풀 내에서 지원사업의 특성에 맞게 심사위원을 선정하는 절차를 거치고 있다. 심의위원 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소정 자격에 맞아야 한다. 예를 들면 창작, 비평, 연구, 기획, 교육, 예술경영, 문화정책, 행정, 언론 등 해당 분야에서 10년 이상 경험이 있다든지 하는 식이다. 심사위원 풀은 대분류는 장르별로, 여기에 다시 소분류를 두어 소장르 분야별로 구성한다. 예를 들면 무용의 하위 갈래로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 등으로 구성한다. 심사위원 풀은 이런 여러 요소들을 골고루 안배하여 다양하게 구성하고 있다. 예외도 있는데, 10년 이상의 경험이 아니더라도 그와 동등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위원회가 인정하는 사람을 심사위원으로 정할 수 있다. 실제로 20~30대가 심사위원 풀에 들어가 있다.
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기추천과 협회나 기관을 통한 타천이 있었다. 그런데 2019년도부터 온라인 시스템을 갖추면서 정보공개동의 등 본인이 직접 허락해야 하는 영역이 있어 본인 추천 방식으로 변화했다. 본인이 추천(본인이 소정 시스템에 등록) 하였다고 바로 심의위원 풀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고, 심의위원 풀 선정을 위한 별도 위원회를 가동하여 동 위원회의 심의 의결을 받아야 풀에 들어 갈 수 있다. 현재 약 1,800명이 심의위원 풀에 등록되어 있다. 개별 등록자는 본인 전문 분야를 하나 혹은 두 개 선정할 수 있는데, 그 총수가 2,800개이다.

심사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요소는 신뢰 문제로 보인다. 피심사자가 심사자들을 인정할 수 없거나 혹은 심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와 관련한 사례나 경험을 이야기해주신다면?

김화용
심사자 개인을 신뢰한다 안 한다 보다는, 심사위원 기준 혹은 심사 윤리가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젊은 심사위원의 경우 경험이 한정적일 수 있지만, 특정 영역에서는 가치지향을 더 잘 드러내거나 새로운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가치들을 잘 포착해 심사할 수 있는 분으로 심사위원을 배정한다면 다양한 세대 지역 등이 안배되는 것은 유의미하지 않을까.
이번에 문제가 된 동료비평의 경우 분명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맘도 들었다. 예술위는 워낙 전체 지원사업 규모가 큰 곳이기에 여러 시도도 할 수 있고, 또한 시도를 해야하는 위치이기에 이슈도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그 시도를 할 때 과정에 있어 섬세한 점검이 결여되었던 것이다. 시간이나 자원의 문제가 해결된다면 앞으로도 개선의 여지는 있다고 본다. 한 지원사업에서 지원서에 워크숍, 강연 방식을 포함한 내용을 담은 적이 있는데, 심사위원이 ‘아는 지인들 열댓 명 모아놓고 사진 찍고 했다는 시늉만 하려는 것 아니냐’, ‘뭘 하려는 지 모르겠다. 논문 쓰듯이 이론만 가득 적어 놓았다’는 말을 하면서 서류를 집어 던지는 일이 있었다. 이런 불쾌했던 경험들을 복기해보면 심사자가 피심사자를 동료나 동등한 위치로 대한다기 보다는 권위적인 태도로 갑을관계처럼 대하게 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 많다고 생각된다.
지원사업 운영기관이 사업을 구성할 때 기획 의도, 방향, 기대하는 바를 촘촘히 범주화하는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 그것을 바탕으로 심사위원을 선정하고 사전 오리엔테이션 등을 통해 심사위원이 사업에 대해 이해하는 과정은 중요하다. 그런데 심사위원이 마치 기관 분들보다 더 전문가인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어 내부적으로 이런 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없다고 느낀 경우도 있었다. 기관 내부 분들이 심사위원이 될 수 없더라도, 그 사업의 담당자라면 실은 누구보다 사업의 취지나 이해도가 높은 사람일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심사자들에게 지원사업에 대한 정보와 의도를 충분히 전달할 필요가 있다. 심사자의 개인적 취향이나 그가 아는 것만을 기준으로 갑의 위치에서 을을 평가하는 언어를 사용하며 심사에 임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사안이다. 이를 내부적으로 제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김화용 시각예술 분야 작가·기획자 유상진 경기도청 문화종무과 자문관
김화용 시각예술 분야 작가·기획자 유상진 경기도청 문화종무과 자문관
송시경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창작본부장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
송시경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창작본부장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

심사 진행 과정까지 전반적인 이야기를 두루 해주셨다. 심사의 본질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심사위원들도 결국 예술인의 동료라는 인식이 있어야 함에도 가르치려 드는 게 김화용 작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위계에 따른 것이 아닐까. 김수희 대표님의 생각은 어떠신가?

김수희
서울문화재단 청년예술청 공동운영단에서의 경험을 공유하고 싶다. 먼저 청년예술청은 기관 내부 사람 외에도 나와 같은 외부 예술가들도 포함한 공동운영단으로, 거버넌스형 조직이다. 그래서 지원사업 설계부터 모두가 함께 했는데, 실행 단계에서 해당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으니 별도의 심사 풀을 활용하거나 외부 심사위원을 꾸리지 말고, 운영단이 직접 심사를 하자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공동운영단은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의 젊은 창작자들로 구성되어있었는데, 직접심사에 대해 우려와 걱정도 많았지만 그만큼 성실하게 임했다. 그리고 동일한 사업이 4회차 정도 되자 그 사업 심사에 대한 전문성도 생기고, 사업의 방향성도 구체적으로 잡을 수 있었다. 다만 같은 패턴으로 심사를 하면서 특정 성격이 생겨나게 되는 걸 방지하고자 이후에는 외부 심사위원을 심사과정에 추가하게 되었다. 외부 심사위원들에겐 사업 개요와 진행과정, 이전 선정 팀과 그들의 활동내용까지 방대한 양의 자료를 전달하고 숙지하게끔 요청했었다. 그런데 이런 섬세한 방식은 사실 예술위 정도의 규모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갭을 극복한다는게 참 어려운 일이다.

지원기관 내부 사람 혹은 거버넌스 구성원이 심사에 직접 참여한다는 건 책임성을 그만큼 강화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영국 예술위 같은 경우는 직원들이 직접 심사를 담당한다. 심사위원의 자질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심사위원의 신뢰나 책임성을 어떻게 회복하고 구성할 수 있을까?

유상진
심사 과정과 선정이 요즘과 같이 촘촘하고 세밀하게 된 이유는 심사위원의 신뢰성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외부 심사위원 풀을 구성하게 된 이유가 객관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내부 심사가 이루어질 경우에 거기에 대한 신뢰성을 또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문제가 된다. 내부 심사는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어렵다고 본다.

블랙리스트 이후에 심사의 공정성에 포커스가 맞춰진 것은 사실이다. 그 이후 옴부즈멘 제도나 블라인드 심사 같은 새로운 제도나 방식이 생겨났으니까.

송시경
예술위 전신인 문예진흥원 시절에는 심사결재문서 상에 사무처 직원들이 현장 전문가들을 심사위원으로 추천하면 결재 라인을 따라 결정되는 식이었다. 그리고 2010년 책임심의위원제를 실시해 각 분야별 문화예술 현장 및 경영행정 전문가 그룹이 1년 동안 문예진흥기금사업에 대한 지원 상담과 심의를 전담했었다.
현재는 심사위원을 선정할 때 무작위 추첨, 적격심사, 전담심의위원 이렇게 세 가지 형태를 사용하고 있다. 무작위 추첨은 심사위원 풀에서 3~5배수를 선정한 다음 컴퓨터로 섭외 순위를 정하는 방식이고, 적격심사는 예술위원회 소관 장르 위원이 2배수, 사무처가 2배수, 총 4배수를 선발해 컴퓨터로 섭외 순위를 정하는 방식, 마지막으로 전담심의위원은 창작산실 사업처럼 1차 심사 로 선정 후, 2차 쇼 케이스 심사를 하고, 3차 최종 창작비를 지원하는 심사 등 여러 과정을 단계별로 심사하는 사업이나, 국제분야, 다원예술 등 심사 시 기존 심사위원 풀이 적을 경우에 추진한다. 앞서 공유해주신 것처럼 기관의 내부 사람이 심사에 직접 참여하는 경우는 없다.

피심사자를 선정하고 심사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사업마다 다르지만, 경우에 따라 토론을 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점수를 내도록 하기도 한다. 토론하는 과정에서 특정 팀을 지지하거나 다른 심사위원에게 피력해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차단하는 거다. 그런데 각자 점수만 내는 방식은 심사나 사업의 전체 맥락을 잘 살리지 못할 수도 있다.

유상진
지원사업 심사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심사위원의 경력이 아무리 오래됐다하더라도, 특히 지역 기반의 지원사업 공모에 응하는 지역 활동가들을 전부, 깊이 이해하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원사업 유형을 보아도, 단체가 오래 진행해 온 레퍼토리 사업은 그 사업을 리뷰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만, 창작지원사업의 경우는 서류에 기재된 연출가, 안무가 등 세세한 영역을 들여다봐야하는데 그럴 경우 모르는 사람이 많을 수도 있다. 지역별·세대별로 구분된 지원사업의 경우 심사위원 안배를 포함해 사전에 심사위원에게 공유할 정보를 가이드라인을 지키면서 적정선에서 제공하는 것이 효과적일거라 본다.

김수희
선정 과정에 아무래도 나의 경험이나 취향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 점이나 정보의 한계가 있는데, 그럴 때 다른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여러명이 정보나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피심사자의 적격 여부가 가려졌던 경험을 했던 터라 심사위원간 토론은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심사위원 본인의 적격성 여부도 중요하다. 요즘은 서약서를 작성하는 과정이 있어 범죄사실이나 제척사유가 필터링되기도 한다. 그런데 한번은 미투 문제로 논란이 되었던 사람이 심사위원으로 위촉되는 경우도 있었다. 심사위원 풀에 그들의 개인정보를 어디까지 탑재하고 사전에 확인할 수 있는지도 살펴볼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심사위원의 결정사항 중 지원금 액수는 가급적 건드리지 않았으면 한다. 심사하는 입장과 지원금을 받는 입장 모두를 경험해보니 이런 경우가 있었다. 전체 지원금은 정해져있는데 지원대상 수를 늘리고 싶은 경우 다른 지원자들이 필요로 하는 지원금액에서 십시일반 모아 몇 곳을 추가 지원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특히 공연 분야는 워낙 여러 인원이 참여하는 프로젝트다보니 지원금액이 예상보다 적어질 경우 진행에 변수가 생길 수도 있다. 심사위원들이 심사하는 프로젝트의 예술적 가치, 사회적 영향력 등을 평가할 수는 있어도 예산 금액에 대해 지원자보다 잘 알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송시경
김수희 대표님이 말씀하신 것 중 먼저 심사위원 적격성에 대해서는, 위원회에서는 심사위원 후보 확정 단계에서 불공정행위, 성희롱·성폭력, 블랙리스트 전력 이렇게 세 가지를 체크한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성희롱·성폭력은 워낙 개인적인 정보라 알기 힘든데 경우에 따라 서약서에 준해 해촉을 할 수는 있다.

김화용
기계적으로 평가해 더 많은 수혜자에게 지원금이 돌아갈 수도 있지만, 의미 있는 기획에 대해 소수를 대상을 뽑는 사업에서는 토론이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심사위원 각자가 준 점수를 서로가 납득하는 과정, 그리고 문제로 발전할 수 있는 구멍을 메울 수 있는 게 이 토론 단계이기 때문이다.
심사위원들이 지원금액을 정하는 경우엔 지원서 낸 금액을 기준으로 모든 걸 평가하는 것이 맞나 싶을 때도 있다. 가령, 동일 지원사업에 지원한 A와 B가 있는데, A는 적정 수준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을 만큼의 예산안을 편성한 반면 B는 혹시나 심사에서 떨어질 것을 우려해 기획비나 인건비를 줄여 적은 금액을 산정했다고 하자. 두 프로젝트가 모두 심사를 통과해 지원서에 적어낸 100%의 예산을 받았을 경우 B는 프로젝트 규모 대비 낮게 예산을 받은 만큼을 본인이 메꿔야 하는 것이다. 만일 심사위원들이 예산 적정성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고 이를 조정할 수 있다면 이런 경우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김수희
선정자·선정단체별로 천차만별로 책정하기 보다는, 지원금 배분 방식은 행정적으로 형식화 하거나 사전에 심사위원에게 가이드라인을 주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유상진
각각의 지원사업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지원금액을 내부적으로 정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앞서 언급된 각각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완벽한 지원사업 제도는 사실상 없다는 생각이다. 다만 심사 과정에 대한 공정성과 정의로움을 위해 여러 제도를 두는 것이다. 여러 제도 중 특히 옴부즈맨 제도는 제3자가 심사의 과정과 결과의 공정성을 판단하는 제도인만큼 더 확장시키고 강화해야 하겠다.
근본적으로 지원사업에 대한 이슈들은 공공재원은 적은 반면 수요는 너무나 많아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좀더 이야기하자면 다른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의한 민간 재원 조달 등 대체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제도가 함께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송시경
사업비 단가의 경우, 오래 전에는 물가 정보를 보고 참조를 했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연구 용역을 몇 차례 진행해 보기도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도 표준 계약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창작 대가 기준 등의 방식도 적용해봤다. 물론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없어 구간을 두고 운용하지만 애로사항이 많을 수밖에 없다.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인과 단체의 사업이나 재정운영 등에 대한 투명한 시스탬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본다. 미국의 경우 예술단체는 규정에 의거 사업·인적·재정적 내용 등을 제도적으로 공시하고 있어 투명성을 확보하고 있음을 보았다. 한국도 점차 투명성이 높아져야만 이걸 기반으로 코로나19 같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예술인 단체나 개인에게 직접 지원하는 혹은 보상하는 규모를 결정할 때 활용 할 수 있고, 평상시 지원에서도 특정 유형에 대하여 어느 정도를 지원할지 그 규모를 합리적으로 정하는 준거로 활용할 수 있다. 지금은 사실 대략하여 지원규모를 정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를 시스템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해당 지원사업 내에서 심사 전에 선정 결과에 대한 방향설정을 하는 것이 가능할까? 예술 장르라기보다는 세대나 성별, 분야별 안배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에 대한 의견이 궁금하다.

김화용
꼭 해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흔히 공공자원이 우리를 성장하게 만드는 토대가 된다는 것을 망각한다. 이것은 예술계도 마찬가지다. 지역에 비해 예술적 인프라가 두터운 서울이라는 지형은 더 많은 비가시적 지원을 받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사업 참여자들은 공적자원을 지원을 통해 작품이나 활동의 결과물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선보일 수 있는 성장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지원사업이 특정 지역이나 세대 등을 구분해서 지원한다는 건 성장의 동력을 제공하는 나름의 백그라운드가 있는 셈이다. 공공 자금으로부터 소외되는 존재들을 어떻게 포섭할 것인가를 항상 유념해야 할 것이다.

김수희
전적으로 공감한다. 심사위원의 비율도 마찬가지다. 공연 분야만 하더라도 시설이나 인력이 거의 80% 정도가 서울에 몰려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원사업 심사위원들의 성비, 연령대, 장애 유무에 상관 없이 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끔 열어두는 것이, 그 지역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보기에도 우리의 목소리나 작업들이 소외되고 있지 않다는 걸 보여줄 수 있기에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심사위원들이 심사를 하면서 주는 피드백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모두 존재할 것 간다. 언급해주실 만한 게 있을까?

김화용
사실, 심사위원들의 피드백이 도움이 되는 경우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심사 안에서 크리틱(비평)이 일어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마치 심사장이 본인 취향을 피력하는 곳 또는 본인이 수업하는 교실로 착각하는 심사위원들이 간혹 있다. 실제로 피심사자에게 도움이 되는 피드백은 해당 지원사업의 목적이나 방향에 견주어 지원서 내용의 실현 가능성과 보완지점, 지원금 예산의 분배 등에 대한 내용이다.

미묘한 부분이란 생각이든다. 지원서 상의 작품이나 프로젝트를 심사한다고 했을 때 그에 대한 판단이 비평과 완전히 분리될 수 있을까?

김수희
어떤 심사는 소위 압박면접이라고 할 만한 곳도 있었다. 심사위원과 지원자 간 스킨십을 중요시하고, 자문이나 멘토링을 지속해 관계를 만들어가려는 곳들이 있는 반면 규모 큰 지원사업 시행기관은 이런 모델을 시행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지속적으로 피심사자들을 만나거나 살펴볼 수 없고 한 번의 기회로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공격적이고 날카로운 질문이 오가는 것일 수 있다. 과연 지원서대로 사업이 구현될 수 있을지, 일이 진행될 수 있을지를 따져물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유상진
민간기업의 경우 압박면접에서 역량면접으로 트렌드가 바뀌었다. 짧은 시간이 아니라 2-3일 동안 지원자를 자세히 관찰하고 결론을 내리는 거다. 중요한 것은 면접을 마치고 기업에서 탈락자에게 면접에 대한 피드백을 상세하게 준다는 것이다. 지역문화진흥원에 있을 때 진행했던 지원사업의 경우 1차 서류, 2차 인터뷰, 3차가 다시 대면심사로 세 차례의 심사과정을 뒀었다. 특히 2차에서 한 팀당 30여분에 걸쳐 길게 해당 팀을 인터뷰함과 동시에 지원서 컨설팅을 했었고 3차에서는 2차 인터뷰 결과를 반영해 새로 제출한 지원서로 최종 심사를 진행했었는데 이에 대한 반응이 무척 좋았다. 그러나 실행 기관 입장에서는 심사 일정이 길어지고 심사위원 초빙을 위한 예산이 많이 들어 녹록치 않았다. 지역에서 참여하는 팀들의 비용이나 시간 문제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지원사업의 취지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라면 그러한 설계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지원사업 심사의 완성도를 높이고 적확한 평가를 도출하기 위해 필요한 바람직한 심사의 방향이나 방식에 대한 의견을 주시면서 마무리했으면 한다.

송시경
최근 예술위에서 시도한 동료평가제도가 크게 이슈가 됐었다. 다원예술지원사업이 블랙리스트로 인해 사라졌다가 다시 복원하는 과정에서, 전문가들만의 심의로는 한계가 있다는 현장의견에 기반해, 심의제도 혁신의 일환으로 도입하게 된 게 동료평가, 정확히는 동료집단평가이다. 지원신청을 한 사람들이 자기 외 다른 신청자의 사업을 평가를 하는 것인데, 결과적으론 대략 다음의 이유들로 실패했다. 첫 번째, 심사가 아닌 비방, 폄훼, 비하가 오갔고, 둘째로는 저작권 이슈가 언급되었는데, 즉 지원서 기재 내용인 사업 아이디어가 누출되므로 (이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관련 서약서를 받기는 하였으나) 완전하게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 이었으며(사실, 저작권법은 아이디어까지 보호하지는 않는다), 마지막으로는, (당초 공고 시부터 동료평가심사비용은 지급하지 않다고 공고가 있기는 했지만,) 심사를 한 노동의 댓가를 주지 않는 것은 문제라는 것 등이다. 현재 예술현장과 간담회 등을 통해 동료평가제를 폐지할 것인지 개선할 것인 지 등 관련 의견을 수렴 중이다. 사실 당초 동료평가제를 도입하면서 열 여서 일곱 차례 현장 전문가 및 내부의 의견 수렴을 거쳤지만, 또 시범으로 추진하며 설문조사를 통해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미리 예고도 하였지만, 결과론적으로는 데미지가 너무 커 예술위 내부는 향후 동료평가제는 하지말자는 의견이 대세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느낀 바가 많다.

김수희
지원사업을 시행하는 기관 행정가들이 계속 제도를 고민하고 실험할 수 있는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현장에서 느끼기에는 지원사업 자체가 생겼다가도 너무 빨리 없어진다고 느껴질 때도 있는데, 어떤 심사 방식이나 제도 자체가 문제가 됐다고 해서 바로 철회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문제점을 계속 보완해나가면서 원래 목표로 한 제도의 장점들을 끌어내야 하지 않을까.

김화용
유상진 자문관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이전 같으면 심사 장소로 가는 교통비 역시 만만치 않았을텐데, 요즘 코로나19로 인해 도입된 온라인 심사 같이 새롭게 습득한 방법을 적극 활용할 수도 있다. 이번 좌담회를 통해 지원사업의 진행 과정을 다면적으로 고민하는 분들과 이야기 할 기회를 가져 반가웠다.

  • 안태호
  • 필자소개

    안태호는 한국문화정책연구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 민예총 활동가를 시작으로 웹진 ‘컬처뉴스’ 편집장, 부천문화재단, 제주문화예술재단 팀장 등을 거쳤다. 함께 쓴 책으로 『나의 아름다운 철공소』, 『노년예술수업』 등이 있다. 스무 살 무렵 빼어난 재능들에 주눅 들어 창작에서 도망친 후, 예술 동네 근처에서 얼쩡거리며 문화정책과 기획 관련 일을 해왔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왕성한 문화 소비자가 꿈이며, 여전히 만화를 보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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