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기후위기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면 세계의 미래를 고민하는 사람이 아니다. 예술계에서도 기후위기와 관련된 인식과 활동들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예술가들이 기후위기 캠페인에 참여하는 것이나 작품의 주제로 기후위기를 다루는 경우가 있는가하면, 아예 작업이나 활동방식을 기후위기에 맞춰 바꿔내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좌담회를 통해 기후위기 속에서 지속가능한 예술 활동을 고민하고 있는 분들과 함께 현재 상황에 대한 진단과 다양한 사례, 제도정책 차원에서 필요한 일, 예술가들의 인식 변화와 연대의 필요성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일시/장소: 2021. 12. 13.(월) / 온라인 화상회의
진행: 안태호(웹진≪예술경영≫ 편집장)
참석: 곽재원(트래쉬버스터즈 대표, 이하 곽재원)
박지선(프로듀서그룹 도트 피디)
정헌영(그린임팩트 대표, 이하 정헌영)
최지원(기후변화센터 지식네트워크 팀장, 이하 최지원)


안태호
자기소개와 더불어 어떤 활동들을 하고 계신지 말씀해주시기 바란다.

곽재원(트래쉬버스터즈 대표, 이하 곽재원)
일회용품 문제 해결을 위해 만든 스타트업 트래쉬버스터즈의 대표이다. 2019년 축제와 행사장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일회용품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현재는 코로나19로 인해서 행사가 불가한 상황이라, 기업 탕비실, 카페, 장례식장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서 일회용 쓰레기가 많이 배출되는 곳에 다회용기를 제공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최지원(기후변화센터 지식네트워크팀장, 이하 최지원)
기후변화센터에서 지식네트워크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예전에는 10여년 정도 문화재단에서 공연·축제 기획 일도 하고, 레코딩 스튜디오 운영과 전통예술을 기록하는 민간 기업에서도 일했었다. 그러다가 문화예술 분야 외에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마침 기후변화센터에서 기존의 교육이나 캠페인이 아닌 색다른 방식으로 미래 세대를 위한 기후위기 인식 제고 활동을 준비한다는 것을 알게되어 흥미를 느껴 합류하게 되었다. 센터에서 오피니언 리더들과 MZ세대를 대상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을 제고할 수 있도록 사업과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기후변화와 예술, 환경과 예술이 서로 이질적일 수도 있지만 분명 접점을 갖고 기후변화 이야기를 전시나 공연 같은 예술을 매개로 해 전달하는 등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거라 생각해 전업하게 되었다.

정헌영(그린임팩트 대표, 이하 정헌영)
그린임팩트 대표이자 한국문화기획학교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2018년 밤도깨비 야시장 행사에서 ‘지속가능성 모니터링’을 처음으로 만들고 쓰레기 문제를 비롯해 여러 이슈에 대해 모니터링을 진행했다. 2019년에는 ‘한강몽땅축제’에서 지속가능성 감독 역할을 맡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의 모든 축제, 전시, 박람회 같은 다양한 행사가 지속가능한 매니지먼트 방식으로 운영해 보자는 생각에 같은 해 10월에 그린임팩트를 설립했다. 환경뿐만 아니라 장애인의 접근권, 공정무역 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 ‘지속가능성’을 추구하고 있다.

박지선(프로듀서그룹 도트 피디)
공연예술 분야에서 ‘프로듀서그룹 도트’라는 프류듀서 콜렉티브 그룹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창작 랩(lab)이나 레지던시, 워크샵, 프로젝트, 해외 공연 유통 영역에서 다양하게 일하고 있다. 기후위기 관련해서는 2020년 초 화천 지역에서 ‘예술 텃밭 기후변화 레지던시’를 공동 기획하면서 작년과 올해 총 14명의 예술가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공연예술 분야에서는 기후변화에 대해 접근하는데 있어, 주제적 접근을 가장 수월하게 하고 있는데, 주제 접근을 넘어 창작활동의 지속가능성을 모색하며 '더 씨어터 그린북'이라는 자료를 기획자·예술가 등 6명이 번역하고 있다.

안태호
기후위기와 예술활동을 연계해야겠다는 각성의 순간이 있었다면 언제인가?

박지선
저를 비롯해 함께 작업하는 예술가들은 환경뿐만 아니라 최근 몇 년 동안 도시, 경계, 세대, 젠더 등 다양한 이슈에 집중해왔다. 그러다 ‘예술 텃밭’이란 이름으로 예술가 레지던시를 구성하면서 첫 주제로 기후변화를 선택했다. 레지던시가 있는 화천에서 열리는 유명한 ‘산천어 축제’의 반생태성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늦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모두가 열심히 공부했고, 오히려 주제 중 하나로 흘려보낼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전반적인 변화를 이쪽으로 이끌어내야 하지 않나 싶다. 각성의 순간이란 게 굉장히 늦게 온 것 같다.

예술텃밭 예술가 레지던시 2020년 다큐멘터리 영상
출처: 유튜브 Producer Group DOT

최지원
돌아보면 어떤 순간이 있었다기보다는 공연과 축제 일을 하면서 오랜 시간 동안 환경에 대한 인식, 감수성이 축정되어 왔다고 본다. 학창시절 국악을 전공했는데 자연 소재로 만들어진 악기를 다루고, 자연의 이치를 음악으로 구현하는 게 중요하고 큰 가치라고 배웠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자연을 해치는 행동들을 불편해하는 마음이 생겨났던 것 같다. 관객이 예상만큼 오질 않아 포장도 뜯지 않은 인쇄 홍보물을 그대로 버린다던지, 1억 원 이상의 비용을 들여 만든 오페라 무대 세트를 다음 공연의 기약이 없어 폐기한디던지, 그런 불편함 경험들로 축적된 환경감수성이 기후변화센터에서 근무하면서 되살아나고 극대화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곽재원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연극을 시작해 20대 초반까지 기획자, 배우로 활동하다가 그 이후 축제 쪽으로 넘어와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을 비롯한 여러 활동을 해왔다. “예술은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문장을 계기로 연극을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내가 하고 있는 예술 자체가 정말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지 체감할 수 없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축제기획팀장으로 3년 정도 근무하면서 1년에 200번의 전시, 공연, 행사를 진행했었다. 그러다 서울시 산하기관들 대상으로 한 ‘일회용품 사용 가이드라인’이란 걸 안내받았는데, 행사와 축제 쪽은 그렇게 일회용품을 비롯한 쓰레기가 많이 배출됨에도 가이드라인에 해당사항이 없더라. ‘시민분들에게 권고’하라는 것이 전부였다. 이게 계기가 되어 다회용기를 사용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하게 되었고, 업사이클링 예술가, 디자이너 등 예술을 기반으로 한 동료들을 모아 트래쉬버스터즈를 만들었다.

정헌영
문화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던 중 2018년 서울시밤도깨비야시장 모니터링 업무를 하다보니 쓰레기에 대한 문제가 너무 심각해 역제안을 한 적이 있었다. 사회 환경의 변화에 맞춰 서울시 정책사업으로 진행하는 행사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2019년 지속가능성 모니터링 프로젝트를 맡아 일회용품 대체용품 사용, 제로 웨이스트, 공정거래 관행 등의 전략들을 만들었다.

안태호
예술을 기후위기와 연결짓기가 아직 한국에서는 낯선 듯하다. 예술계에서도 활동의 층위나 방식이 여러 가지가 있을 것 같은데, 각자의 경험이나 사례를 이야기해주시면 좋겠다.

곽재원
일단 인식개선이 먼저이다. 친환경 굿즈라는 이름으로 만들어내는 기념품들, 홍보를 위한 현수막, 인쇄물이 그렇다. 당연히여겼던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는 일, 일상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단계별로 목록화해보는 것부터 해보면 어떨까.
나는 이런 변화에 대한 좋은 사례로 ‘마르쉐 농부 시장’을 꼽고 싶다. 패키징에서부터 지속가능성을 생각하는 종합 장터인데, 문화예술 쪽에서도 하나 둘씩 변화 지점을 만들어가는데 참고하면 좋겠다.

트래쉬버스터즈의 축제·행사 다회용기 서비스
출처: 유튜브 Trash Busters 채널

박지선
최근 2년 동안 공연예술계에서도 많은 예술단체들이 기후 문제를 주제나 소재로 다루기도하고, 창작 환경을 바꿔나가기도 한다. ‘블루밍루더스’, ‘콜렉티브 뒹굴’, ‘바람 컴퍼니’와 같은 예술단체들이 에너지 문제, 공장식 축산 문제를 가지고 작업을 하기도했다.
그리고 시기와 상관없이, 공연 세트를 제작하고 사용하고 폐기하면서 우리가 너무 많은 쓰레기를 생산한다는 생각은 오랫동안 갖고 있었다. 특별히 기후위기를 인식한 활동이 아니더라도, 가령 극단 907은 모두 재활용 가능한 자재들로 세트를 제작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횡단하는 물질의 세계에서〉에서 라이브 퍼포먼스를 보여준 김보람 작가는 소품으로 사용하는 박스를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에게 빌려서 사용하고 되돌려드리기까지 했다. 이런 과정 자체에 시간와 노력이 더 드는 셈인데, 스태프들과 처음부터 공유하고 고민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해외 사례로는 기후위기로 인하 노력 중에서도 탄소배출을 줄이는 측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영국의 ‘Pigfoot Theatre’ 컴퍼니는 ‘탄소 중립 극장’이라고 명명하면서, 작품 창·제작 모든 과정에 드는 탄소량을 계산하고 줄여나가며, 결과를 공유하고 있다. 사실 공연예술계는 다른 산업군에 비해 탄소배출량 자체가 적다. 그런데 이 극장이 리서치한 결과에 따르면 일련의 공연계에서 발생하는 탄소발자국의 78%가 공연관람을 위한 관객의 이동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그래서 단체는 이 결과를 관객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고 탄소발자국을 줄이자는 캠페인에 동참하도록 권유한다. 이렇게 관객들에게 예술가들의 실천을 공유하고 함께하도록 설득하는 과정 자체가 저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정헌영
말씀하신 것처럼 한 건의 이슈, 홍보성의 분절적인 행위가 아니라 이것들이 모여 전체적인 체계에서 움직이도록, 주변 환경과 사회 구조가 함께 바뀌어야 한다. 축제 장소를 선정하는 일, 현장에서 스태프들의 식사 메뉴를 정하는 일부터도 탄소배출량이 좌우되는 일이 될 수 있다. 장소 선정은 관객들의 이동수단이나 시간으로 인한 탄소배출량이, 식사 메뉴는 식재료들을 공수하는데서 탄소배출량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개인이 고민하고 연구할 일이 아니라, 여러 단체와 주체들이 집단적으로 역할 하면서 각자의 실천과 고민을 공유하는 과정을 거쳐야 가능한 일들이다.

박지선
무의식과 관습을 바꿨던 사례로, 작년 ‘변방연극제’에서는 고심 끝에 일체 어떠한 인쇄물도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굿즈를 스태프들이 직접 기르고 추수한 감자로 지급했다고 한다. 이 지점에서 ‘친환경에 대한 강박’을 언급하고 싶다. 가령 다들 굿즈를 만들긴 해야하는데 환경을 의식해서 대나무 칫솔, 에코백 같은 품목을 만든다. 그런데 사실 칫솔도 머리 부분은 재활용이 되질 않는다. 최근엔 실천과 행동이 쌓여서 점차 그러한 강박을 이기는, 그 다음 단계의 변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정헌영
단시간에 극단으로 행동하기보다는, 지향점은 명확하되 약간의 허용이 함께했으면 한다. 갑자기 모든 일회용품을 다회용품으로 교체하기엔 재원도 인력도 부족하기 마련이다. 하나씩 시도하고, 완충적인 대안도 마련해나갈 필요가 있다.

박지선
예술가들과 이와 관련해 항상 하는 이야기가, ‘남들에게 죄책감을 주는 방식으로 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레지던시에서 채식을 하는데, 비건식을 하긴 하지만 그 안의 모두가 비건은 아니다. 모두가 서서히 천천히 변할 수 있게 서로 도와야지, 뭔가 하나 잘못하면 큰일이 나는 것처럼, 환경 축제에서 누군가 일회용품을 쓰는 걸 봤다고 민원을 넣어버리는 것처럼 죄책감을 지우거나 벌을 준다는 사고로 이 논제에 접근하면 곤란하다.

안태호
말하자면 정의로운 전환이나 단계적 전환에 대한 이야기일텐데, 기후위기로 지구와 인류가 멸망한다는 이야기들이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포기하거나 체념하게 만든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최지원 팀장님이 이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주신다면?

최지원
기후변화센터에서 근무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놀랐던 점은, 기후변화가 완전히 에너지와 산업의 이슈라는 점이었다. 더 이상 생태환경적 접근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각자의 영역에서 에너지, 기술, 폐기물 등 여러 이슈들을 종합적으로 바라보면서 과정과 구조를 바꿔나가야 한다. 이런 부분에 있어 예술인들도 아직 명확히 인지하지 못했었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최근에는 앞서 말씀해주신 사례들처럼 깊이있는 프로젝트와 시도가 생겨 반갑게 여기고 있다. 예술가들이 기후위기에 대해 더 관심 가지고, 본인들의 예술적인 언어로 해석해내는 좋은 사례들을 만들고 시민들의 인식을 더 좋은 방향으로 함께 갈 수 있는,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그런 방향으로 이끌어 갔으면 좋겠다.
영국의 경우 2019년 멸종 저항운동이라는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을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이에 맞춰 기후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음악산업계의 커뮤니티가 'Music Declares Emergency'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커뮤니티의 대표적인 슬로건이 'No music on the dead planet'이다.죽은 지구에 음악은 없다는 거다. 6,000명 이상의 음악인이 서명을 통해 참여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아직 그런 움직임들이 나오고 있지 않아 아쉽다.
밴드 ‘콜드플레이(coldplay)’가 2019년 지속가능한 방식을 찾기 전까지 더 이상 투어를 진행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일은 예술활동을 기후위기에 맞춰 바꿔냈던 대표적인 사례라고 본다. 그들은 2년 만에 지속가능한 투어 방식을 소개하는 별도의 웹사이트를 구축하고 탄소 저감에 대한 12가지 대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투어 재개를 선언했다.
또, 최근 K-POP 팬들이 만든 ‘K-Pop 4 planet’이라는 웹사이트는 그들이 좋아하는 아이돌들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활동할 것을 엔터테인먼트사와 산업계에 요구하고 자료를 제시하고 있다. 역으로 예술을 향유하는 관객들이 움직이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기후변화센터의 사업과 기후 이슈를 담은 뉴스레터
기후변화센터의 사업과 기후 이슈를 담은 뉴스레터
출처: 기후변화센터 홈페이지

안태호
방금 말씀하셨던 것처럼, 기후위기는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한 문제이고 그래서 정부기관이나 정책과 직결된다. 예술계에서도 정부의 역할, 공공기관의 역할, 정책으로서의 역할이 있을텐데 어떤 것들을 제안할 수 있을까?

정헌영
일회용 쓰레기 같은 경우 지금은 시민들의 인식도 많이 바뀌어서 가이드라인을 감당할 수 있다. 그런데 축제에 탄소 저감 방안을 제출하라고 하면, 일단 측정을 할 수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측정 자체가 보통 일이 아니다. 그리고 얼마만큼 저감할 수 있는지도 문제가 된다. 예산도 축제 예산 안에서 해결하라고 하면 답이 없다. 그래서 탄소측정이 가능한 방법을 마련해주거나, 체크리스트를 편하게 만들어주거나, 관련 에너지를 공공으로 지원해주는 등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

최지원
지원사업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예술계를 고려했을 때, 영국 예술위원회처럼 지원사업에 기후위기 성과지표를 포함하는 방식이 시도할만하고, 예술가들에게 이슈를 인식시킬 방법일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기후위기에 대한 충분한 담론 형성과 공론화, 인식을 제고하는 과정 없이 급작스럽게, 강제로 친환경 정책 수립을 요구하거나 성과를 제출하라고 한다면 근원적인 해결책은 나올 수 없을 것이다.
매튜 본이 창단한 ‘뉴 어드벤처스’가 마련한 그린 투어링 방안도 실은 그들이 내셔널 포트폴리오 오가니제이션((National Portfolio Organization, 이하 NPO)으로 선정되면서 영국 예술위원회 차원에서 친환경적 단체 운영을 요구한데서부터 고민을 시작했다고 한다. 투어를 많이 다니는 팀이라 본인들과 직접 관련있고 필요한 투어링 영역으로 방안 도출을 고민했다는 것이다.
일단 정헌영 감독님 말씀처럼 정책적으로는 문화예술계에 맞는 탄소 측정 툴을 만들어서 제공하고 활용법을 안내하는게 선행되어야 한다. 정책에 참여하는 예술인들이나 관람객들 대상으로 인센티브 등을 제공해 참여율을 높이는 방안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인프라 측면에서는 정부이 탄소중립 정책 중 문화예술 분야에 적용 가능한 부분을 찾아서 적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령 노후한 공연장이나 박물관 같은 시설에 국토부의 ‘그린 리모델링 지원사업’을 연결한다거나 하는 식이다.

박지선
올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축제·행사 지원사업 지원서 항목 중에 ‘친환경 방안’을 적는 항목이 있다. 그런데 그 항목을 성과지표로 넣기 전에 앞서 지원 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계획과 과정을 위한 충분한 시간이 필요함에도 그런 시간을 갖기가 예술단체는 쉽지 않다. 예술계의 모든 창작 시간이 기금의 일정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지원제도가 예산 사용 방식이 뭔가를 만들고 제작하는 것에서 사람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만 예술계 내에서 이런 시도들이 가능해진다. 지원 제도나 정책이 이런 문제들을 예술가나 단체에게 무조건 실천하라고 떠넘기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같이 해결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인식의 변화도 필요하다. 최지원 팀장님이 언급하신 매튜 본의 사례도 여러 요소가 함께 어우러져 가능한 일이었다. 먼저 NPO에서 단기가 아닌 중장기 지원을 받은 것이었고, 그린 투어 방안을 단독으로 고민한 것이 아니라 ‘줄리스 바이시클(Julie's bicycle)’이란 환경단체이다. 이 단체는 단체들이 기후위기 속에서 지속가능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그리고 문화예술을 도구처럼 활용하며 오랫동안 지속된 곳이다. 매튜 본은 이곳과 함께 작업한 끝에 친환경 그린 투어 인증도 받게 되고 구체적인 성과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추가로 지속가능성 감독처럼 전문인력, 매개인력의 존재가 아주 중요하다. 예술단체나 공공기관에 기후변화에 관련한 정보나 지식을 가진 사람이 없다. 기후 문해력을 위한 교육프로그램과 인력운용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개개인의 실천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최지원
영국의 자료를 보면, 예술단체나 기관에서 지속가능성 영역만을 전담하는 직책이 있는지, 그 인력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지표가 있다. 매년 인력이 증가하는 추세이고, 지속가능성과 관련된 예산도 별도로 편성을 하고 있다. 정책적으로 이런 부분을 중요하게 봐야할 것 같다. 문화예술 분야에서의 그린 뉴딜 일자리는 지속가능성 감독과 같은 영역이 필요하고 커져야 한다고 본다. 단체에 대한 전문성과 함께 환경, 에너지 이슈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인력이 단체마다, 기관마다 포진이 되어서 실제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환경 정책이 되어야 한다.

곽재원
트래쉬버스터즈는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시스템을 바꿔보자는 목표도 갖고 있다. 예전에 서울시는 축제나 행사장 대상으로는 일회용품 사용 자제에 대한 대응방안이 아예 없었는데, 우리와 같은 다회용기를 사용하는 방안이 있다는걸 알고 없던 조례를 만들기도 했다. 일종의 레퍼런스를 제공한 셈이다. 공공은 관심은 있어도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모델이 생기면 그걸 따라하기는 쉽다. 다른 측면에서는 발상의 전환으로 SIB(Social Impact Bond, 사회성과연계채권) 모델의 도입을 고려해볼만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지금까지 SIB가 주로 범죄율을 낮추거나 복지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에서 논의됐다고 하면, 기후위기에 대한 접근을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행정에서도 리스크를 낮추고 기후위기 이슈에 접근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거다.

정헌영
SIB가 잘 되려면 좋은 행정 파트너가 꼭 필요하다. 기업이나 투자사들이 단체만 보고 사업에 참여하지는 않는다 행정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는 있겠지만, 행정의 태도나 진행방식이 적합하지 않으면 결국 성과를 내기 어려워진다.

최지원
실제 현장에서 굉장히 필요한 부분이 파트너십, 파트너 네트워크의 형성이다. 트래쉬바스터즈처럼 구체적으로 기후위기 이슈에 접근해 솔루션을 내줄 수 있는 파트너가 문화예술 현장에 절실하다. 공공기관이 매개자 역할을 해 기후환경 분야의 민간 기업들, 단체들을 예술 창작 활동 파트너로서 인증해주는 방식은 어떨까. 예술가들이 기후위기라는 개념에 접근하거나 실천 방안을 찾는 일에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을 껏이다.

안태호
기후위기와 관련된 것들이 오히려 규제로 작동하거나 예술가들의 표현의 영역을 제한하게 되는 부작용은 없을지 우려가 된다. 어떠한가?

정헌영
행정 부담 커지기 때문에 일단 운영 차원에서 제약이 많을 것이다. 지역에서 300이나 500만원 정도의 작은 예산에 대한 실행과 정산에 대해서도 지치는데, 기후위기와 관련된 활동은 단순히 선언만 하는 게 아니라 사전 사후에 대한 내용들을 측정하고 하는 것들이 병행된다. 이런 제약때문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 같다.

2019년 한강몽땅 축제에서 진행된 환경캠페인
2019년 한강몽땅 축제에서 진행된 환경캠페인
출처: 서울특별시 블로그

박지선
얼마 전 극장 관계자와 대화를 하는데 ‘우리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예술가들에게 가능하면 세트를 만들지 말고 빈 무대에서 공연하라고 한다’ 고 말했다. 세트를 안 만드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술활동, 전반에서 어떤 전환이 가능할 것인가 방법을 논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되는 거다. 얼마 전에 영국에서 지속가능한 제작, 지속가능한 건물, 지속가능한 운영에 대한 매뉴얼 북을 기획했는데, 현재 두번째 책까지 나왔다. 나를 포함한 축제 관계자 기획자, 행정가 등 여섯이 모여 번역 작업을 했고 그걸 기반으로 스터디를 하고 있다. 이 매뉴얼에 의하면 첫 번째 단계는 초대하기(invite)이다. 지속가능한 프로덕션을 만들기 위해 기관의 이사회며 스태프들 모두를 모아 각자에게 동의서를 받고, 함께 논의하는데서 출발하라는 것이다.
연출 혼자 고민하면 세트를 안 만드는 방식밖에 찾을 수 없다. 그런데 무대 디자이너나, 실제 제작하는 분들이 같이 고민하면 다른 대안들을 찾아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같은 방식이 창작에 있어 굉장히 제한적인 요소가 될 순 있겠지만, 그럼에도 모두가 모여 고민할 때 현재의 표현의 자유를 넘어서서 보다 창의적인 방식으로 작업을 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곽재원
박지선 피디님의 이야기는 기업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가진 비전을 회사 직원들뿐만 아니라 연관된 사람들이 함께 나누고 고민하는 것이 기본이란 생각이 든다. 거버넌스를 형성하고 예술가들과 예술계의 영향력 있는 분들이 더 많이 행동하고 나섰으면 한다.

최지원
기후위기 대응이 거대한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 일이라 개인이 무기력증에 빠지거나 기후우울증을 겪는 경우가 생긴다. 예술가는 감수성이 예민하고, 이슈에 금세 몰입하는 경향이 있어서 이런 증세를 더 심각하게 느끼는 것 같다. 자신의 예술 활동이 오히려 지구를 병들게 한다고 생각해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게 지구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예술가들이 무기력증에 빠지지 않기 위해, 함께라면 할 수 있다는 연대의 힘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박지선
레지던시를 운영하면서 기후위기와 관련해 과학자, 생물학자, 인권학자들을 모시고 강의를 듣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예술가들, 특히 젊은 예술가들이 본인의 창작 활동에 대해 굉장히 좌절감과 회의를 느끼는 분들이 많다. 기후우울증이란건데, 이때 혼자 이걸 감당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같이 이 문제를 함께 논의하고 지식과 정보, 영감을 주고받으면서 방법을 찾아나가는 연대의식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 연대를 지속해 네트워크를 조금씩 확장해나가는 것이 예술계의 변화를 만드는데 있어 또한 중요한 부분이다.

안태호
이야기를 듣다보니 해외 사례에서 출발해 현장에서 필요한 것들을 논의를 통해서 만들어내고 과정을 구축해놓는 과정들이 마치 KTS(한국공연예술자치규약) 작업과도 비슷하게 느껴진다. 그 외에 자리를 마무리하는 차원에서 마지막 발언을 해주시면 좋겠다.

정헌영
개인, 단체, 기업, 지구가 다 함께 지속가능했으면 좋겠다. 기후위기 이전에, 문화예술계 사람들은 다른 산업 분야 종사자들보다 훨씬 더 많은 성과와 일들을 하고 있음에도 매일같이 개인의 생존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안타깝다. 지속가능성, 기후위기에 관한 역할을 하면서 개인의 삶과 단체의 삶도 지속가능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지원
이번 자리를 통해 생각보다 아주 깊이 있는 논의가 진행이 되고 저희가 본질적인 얘기를 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모인 분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일하면서 주변에 계신 분들에게 기후위기의 이슈와 실천을 전하고 넓혀나갈 것이란 기대가 든다.

곽재원
이야기를 나눠보니 우리 회사가 해결할 수 있는 부분도 오히려 우리가 도움을 받을 부분도 있어 보인다. 기후변화 이슈는 어느 한 분야나 영역에 특화된 소재가 아니다. 서로가 함께 모여 예술계를 비롯한 사회에 더 큰 임팩트를 줄 수 있길 바란다.

박지선
예술계 전반에 우리가 기후위기 문제를 함께 인식하고 함께 공동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되는지에 대한 태도를 만들기 위해서, 예술계 안팎의 많은 분들과 같이 협력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 안태호
  • 안태호
    안태호는 한국문화정책연구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 민예총 활동가를 시작으로 웹진 ‘컬처뉴스’ 편집장, 부천문화재단, 제주문화예술재단 팀장 등을 거쳤다. 함께 쓴 책으로 『나의 아름다운 철공소』, 『노년예술수업』 등이 있다. 스무 살 무렵 빼어난 재능들에 주눅 들어 창작에서 도망친 후, 예술 동네 근처에서 얼쩡거리며 문화정책과 기획 관련 일을 해왔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왕성한 문화 소비자가 꿈이며, 여전히 만화를 보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 곽재원
  • 곽재원
    곽재원은 일회용품문제 해결을 위해 설립한 국내 최초의 다회용기 대여 서비스 트래쉬버스터즈 CEO이다. 서울시 산하기관에서 서울시 축제 및 행사를 진행하며 발생하는 쓰레기문제 해결에 아이디어를 얻게 되어 사업을 시작했다. 문화기획 분야에서 10년간 일을 하며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 문화재 운영, 음악축제 감독, 아티스트커뮤니티 운영 등 다양한 장르의 기획들을 진행한 바 있다.

  • 박지선
  • 박지선
    박지선은 연극, 무용, 다원,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 걸쳐 활동하는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로, 축제, 레지던시 기획, 공연예술작품 제작 및 국제 네트워크(아시아 프로듀서 플랫폼/APP)를 기획,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도시, 경계, 기술과 예술, 기후변화 등 다양한 주제를 중심으로 예술가와 새로운 탐험을 하며 예술의 동시대성을 탐구하고 있다.

  • 최지원
  • 최지원
    최지원은 고양문화재단 공연기획팀과 축제사업팀에서 클래식, 오페라를 중심으로 여러 장르의 공연을 기획·제작했고, 악당이반에서 레코딩 스튜디오와 레이블을 운영하며 다양한 소리 콘텐츠 제작 및 기록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20년부터 기후변화센터에서 MZ세대와 오피니언 리더 대상 교육, 인식제고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으며, 문화예술계의 기후위기 대응과 예술을 통한 기후변화 인식제고 활동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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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헌영
  • 정헌영
    정헌영은 ㈜그린임팩트 대표로, 2019년 서울시밤도깨비야시장에서 지속가능성 모니터링 PM을 맡은 것을 계기로 이후 연수씨페스타, 한강몽땅축제에서 지속가능성 감독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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