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Start up), 성장보다는 생존이 우선

시경(詩經)에 탕(蕩)이라는 시가 전해진다. 은(殷) 나라의 국가 경영 실패를 풍자한 시이다. 이 시에 ‘미불유초 선극유종(靡不有初 鮮克有終)’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이는 ‘시작이 있지 않은 것은 없으나, 능히 그 끝이 있는 것은 드물다’라는 뜻이다. 인생설계나 기업 경영 또는 국가운용 등에 있어서 부단한 성찰과 정진해야 함을 의미하는 말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창업기업 5년 생존률이 32.1%에 불과함을 생각하면 더욱 마음에 와 닿는 경구이다. EU나 미국의 경우에도 5년 생존율이 50% 내외임을 감안한다면 창업의 성공 요인은 성장의 관점보다 생존의 관점에서 접근해 볼 필요성이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각국별 창업기업의 1년 및 5년 생존율>

(단위 : %)

구분 산업전체 Arts, Entertainment and Recreation
1년 생존율 5년 생존율 1년 생존율 5년 생존율
한국 64.8 32.1 63.2 20.9
독일 78.5 38.5 74.5 30.0
프랑스 81.8 48.8 82.0 42.1
핀란드 83.4 49.1 85.4 49.2
미국 71.6 50.3 71.1 57.4
네덜란드 95.9 59.5 97.3 68.9

자료 : (韓) 통계청 기업생멸행정통계 (2020), (美) U.S. Bureau of Labor Statistics, Survival rates of establishments, by year started and number of years since starting, 1994 - 2020, (EU) Eurostat, Business demography 2008-2019

죽음의계곡 (Death Valley)과 생존(survival)

기업을 생존의 관점에서 접근할 때 ‘죽음의 계곡’을 많이 언급한다. 이것은 창업아이템이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즉 경영 비용이 원가를 초과하여 손실이 지속됨으로써 기업의 생존이 위협받는 기간을 일컫는다. 이는 매출이 발생하지 않는 상황뿐만 아니라 매출이 발생하더라도 이익이 발생하지 않는 기간을 포함한다. 이 기간 동안 기업은 비즈니스 모델을 입증하지 못하기 때문에 외부 자금조달이 쉽지 않아 자본을 잠식하면서 연명한다. 죽음의 계곡에 빠져있는 기간은 통상 생존율과 반비례의 관계에 있다. 이 기간이 길면 길수록 성장 이니셔티브에 투자하고 비즈니스를 확장하는 것이 더 어렵기 때문에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의 계곡에서 살아남는 것은 창업기업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Howard Love는 그의 ‘J 커브’ 이론에서 창업성장 단계를 6단계로 분류하였다. 이중 2단계부터 4단계까지의 시제품 출시(Release), 변화와 전환(Morph), 최적화(Model) 단계가 여기에 속한다. 다만 죽음의 계곡에서의 소요비용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J 커브 이론보다는 제품 론칭 단계별 활동에 주목한 Yoshitaka Osawa와 Kumiko Miyazaki가 제시한 ‘사업화 프로세스’가 보다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 이론에 따르면 사업화 프로세스 중 제품 및 서비스 개발(Research & Development), 생산(Production), 마케팅을 통한 상업화(commercialization)의 단계별 소요비용을 우선적으로 측정해야 한다.

<창업기업의 사업화 과정>

자료 : Yoshitaka Osawa and Kumiko Miyazaki, 2006, 「An Empirical Analysis of the Valley of Death: Large-scale R&D Project Performance in a Japanese Diversified Company」, 『Asian Journal of Technology Innovation』 14(2), 95

측정된 소요비용을 모두 자체 조달할 수 없다면 공모전이나 공공 지원금을 검토해 보아야 하는데 이를 지원하는 기관들은 다음과 같다.

<기관별 지원금 종류>

사업화단계 지원기관 지원금 종류 상환의무
제품 및
서비스 개발
예술경영지원센터, 창업진흥원,
팁스(TIPS) 프로그램, 엔젤 투자
예비창업패키지,
초기창업패키지 등
없음
(지원금)
생산 중소벤처진흥공단,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기술보증기금, 신용보증지금, 지역신용보증기금, 펀딩
융자, 보증,
크라우드펀딩 등
있음
(융자)
마케팅 및
상업화
예술경영지원센터, 창업진흥원, 지자체 예술분야 성장기업
사업도약 지원사업 등
없음
(지원금)

상기 표에서 사업화 단계별 지원 기관은 절대적 분류가 있는 것은 아니며 모두 창업 초기 단계의 지원이 가능하고 지원내용이 중복적이기도 하므로 지원금액과 가능성을 종합 검토하여 특정 프로그램에 기업 역량을 집중하여야 한다. 아울러 많은 예술인들이 팁스(TIPS) 지원은 첨단 제조기술만을 지원하는 것으로 생각해왔으나 4차 산업혁명 분야에는 실시간 공연 VR 중계 플랫폼, AI 창작 플랫폼도 포함되어 있어 기술 기반의 예술 창업의 지원 범위도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지원 기관과 지원 방법 선택에 있어서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예술 창업 분야가 배타적 첨단 기술 개발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투자금 조달이 용이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투자 받을 기회가 있으면 우선 긍정적으로 접근하지만 경영권 안전성과 미래가치를 보전하기 위하여 크라우드 펀딩은 주식형을 피하는 게 좋다. 팁스(TIPS) 자금도 자기 자본을 감안하여 지분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경우라면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또한 융자의 경우는 실패 시 신용불량의 나락에 빠져서 재기의 기회가 사라지기 때문에 은행 등 민간 금융 융자는 피하길 바란다.

죽음의 계곡 기간은 통계적으로는 2~3년 정도로 나타난다. 이 기간 동안 손실을 버텨낼 수 있는 자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취업을 하면서 창업 준비를 병행하기를 권한다. 미국의 경우 창업 생존율이 높게 나타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창업자들이 학교나 회사에서 겸업을 하며 비즈니스 모델 개발에 주력하고 자금조달은 제품과 서비스의 매출 단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지원금을 받기 위해 개발 단계부터 다소 성급하게 창업을 함으로써 창업 준비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다. 물론 지원금 교부기관의 성과평가 기준이 대부분 창업 비율임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창업 준비 기간이 향후 창업의 생존율과 비례하기에 창업을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윈의 바다(Darwinian Sea)를 건너 고성장(Scale up)으로

죽음의 계곡을 넘어섰다면 다윈의 바다(Darwinian Sea)가 기다린다. 다윈의 바다는 ‘치열한 시장경쟁 상황’을 의미한다. 창업자의 상당수는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성공기업들을 벤치마킹한다. 그런데 창업의 성공은 단지 성공 요인들을 답습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간들은 매시간 다른 경영 환경을 제시하고 있기에 원인이 같다고 결과까지 동일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금융 투자자들과 학자들은 1980년대부터 투자 전략의 수단으로서 창업의 성공 요인을 밝히는데 몰두하였다. Gartner는 경영자, 조직, 환경, 과정의 4가지 요인을 중심으로 성공 요인을 분석하였고 Covin & Slevin, Cooper는 성공요인에 전략을 포함하여 분석하였다. 최근의 연구들은 개별 요인들 보다는 다양한 복합요인들 간의 상관관계를 규명하는데 집중되고 있다.

매출이 발생하기 시작하면 성장과 확장의 기회가 찾아온다. 이를 스케일업(Scale up)이라고 말한다. 스타트업의 핵심이 비즈니스 모델의 최적화라면, 스케일업의 핵심은 고성장(exponential growth)과 시장 개척(market development)이다. 스케일업과 관련하여 언급되는 단어가 가젤(gazelles)이다. OECD에서는 이를 최근 3년간 연평균 매출 또는 고용증가율이 20% 이상인 종업원 수 10명 이상의 기업으로 정의한다. 고성장 기업을 가젤로 정의하는 이유는 영양과 동물인 가젤이 점프를 즐기기 때문이다. 가젤이 중요시되는 것은 기업 중 5%~10% 내외의 가젤이 신규 일자리의 40% 이상을 창출한다는 연구결과들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선진 각국의 창업 지원 정책은 스타트업과 스케일업의 두 가지 정책을 축으로 하고 있다. 강소기업, 히든챔피언, 월드클래스, 고성장기업 모두 가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스케일업의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스케일업의 개념이 등장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 스타트업과 구별되는 스케일업의 성공 요인에 대한 연구는 아직은 부족하다. 하지만 필자의 경험에서 구별하여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이 표로 나타낼 수 있다.

<스타트업과 스케일업의 성공요인>

경영요소 스타트업 (Start up) 스케일업 (Scale up)
창업자 (Eentrepreneur) 혁신정신 선도정신
자원 (Resources) 조직의 유연화, 일반화
의사결정의 신속성
실험과 도전
운전자금 조달
조직의 시스템화, 전문화
의사결정의 시스템화
리스크관리, 내부통제
투자자금 조달
시장전략 (Strategy) 시장의 차별화
수익성
시장의 개척
사회적 책임
경영성과 (Performance) 비즈니스모델 최적화
선형적 성장
Doubling down
기하급수적 성장

자료 : 필자 자체 구성

특히 스케일업 단계에서의 가장 큰 기업의 변화는 자원으로서의 조직이다. 기업의 규모가 커져가면서 창업자가 모든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단계에 도달하게 된다. 이때부터는 각 부문별 전문가 팀을 필요로 하고 의사결정의 중요도에 따라서 일부는 위임함으로써 조직이 스스로의 사고과정을 통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자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 되어야 한다. 그것이 시장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특히 예술 창업의 경우 스케일업 단계에서 재무 전략과 마케팅 전략의 스페셜리스트 영입은 필수적이다. 더 나아가서는 전문경영인 영입까지도 고려하여야 한다. 창업자는 여전히 조직을 통제하게 되지만 권위적 지시자가 아닌 선도적 안내자의 역할로 전환되어야 한다.

아울러 스타트업과 스케일업을 가리지 않고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성공 요인은 ‘제품과 서비스의 차별적 가치 제고’이다. 이를 위해서는 나의 관점, 나의 해결 방안, 나의 생각을 버리고 시장과 고객과 부단히 상호작용해야 한다. 그래서 고객 피드백을 중시하는 린 스타트업(lean start up)의 창시자 스티브 블랭크(Steve Blank)는 경영자들에게 끊임없이 “사무실을 벗어나라(Get out of the building)”고 주문하고 있다. 마이클 레이너(Michael Raynor)는 위대한 기업을 만드는 3가지 룰에서 “값싼 것보다는 더 좋은 것-가격이 아닌 차별화로 경쟁하라(Better before cheaper-in others, compete on differentiators other than price)”고 강조하고 있다.

최근 몇몇 예술 창업자를 면담하였다. 이중 악기를 제조하는 한 회사는 지난해 3억 원의 매출과 3천만 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하였다. 크지 않은 매출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 회사가 창업한 것은 2017년이었고 2년 동안 매출이 없다가 2019년의 첫 매출이 곧바로 흑자로 시현되었고 현재까지 10% 이상의 영업이익률을 달성하고 있다. 한국의 창업 현실에서 죽음의 계곡을 2년 만에 탈출하고 비교적 안정적인 매출 기반을 확보한 것이 놀라웠다. 대표이사는 그 비결이 7년에 이르는 창업 준비 기간에 있었고, 그 기간은 세상에 없던 제품을 만들기 위해 필요했던 최소한의 기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피 제품의 범람으로 경영 환경이 쉽지만은 않다고 고백하면서도 시장과 고객과 소통하며 제품 가치를 제고하는데 노력하기에 지속성장과 스케일업을 자신하고 있었다. 가보지 않은 창업의 길을 걷다 보면 예상치 못한 많은 리스크와 맞닥뜨리게 되고 심지어 부도덕한 사업가들도 만나게 된다.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여 스타트업과 스케일업에 성공하려면 보다 많은 준비와 시간이 필요함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 필자소개

    안재동은 미국과 프랑스의 BI를 연구하여 1993년 한국에 창업보육센터를 처음 건립·운영하면서 창업지원과 인연을 맺은후 현재까지 중진공에 몸담고 있다. 그 당시 예비창업자라는 단어를 처음 만들어 사용했다. 25년간 미술품과 문화유산을 수집하여왔고 베이징청년국제문화예술협회 국제협력이사를 맡고 있으며 최근에는 학교에서 문화유산 연구를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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