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함께 해외여행이 불가능해지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는 동시에 미술작품 소비가 대폭 증가했다.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고소득자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미술품이 MZ세대를 중심으로 타깃층이 넓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아트바젤이 낸 『2021 아트마켓 보고서』를 보면, 100만 달러(약 11억 원) 이상 자산가 컬렉터 2,596명 중 56%가 20~30대로 확인됐는데, 50대 이상 베이비부머세대에서 MZ세대로 투자층이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급진적인 변화에 갤러리들도 새로운 타깃을 위한 작가군과 작품가격 및 프로모션 방향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미술작품의 주 고객이 아니었던 젊은 소비자를 미술시장에 끌어들일 수 있었던 성공 요인은 신선한 작품 스타일도 있지만, 오리지널 작품에 한정되지 않고 에디션 작품과 굿즈 작업으로 팬층을 더욱 견고히 한 것을 간과할 수 없다. 어찌 보면 폐쇄적이고 보수적일 수 있는 미술시장에서 이런 시도는 대중과 미술의 접점을 찾는 혁신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세계적 명성을 지닌 프랑스의 페로탱 갤러리(Galerie Perrotin)는 파리 갤러리 입구 오른편에 있는 작은 북스토어에서 소속 작가들의 아트북과 함께 모리조 카틀란(Maurizio Catellan), 미스터(Mr.), 다카시 무라카미(Takashi Murakami) 등의 굿즈와 에디션 작품들을 판매하였다. 해외 셀러브리티들 사이에서 페로탱 소속 작가의 아트상품들이 SNS 속 사진에 빈번하게 등장하며 팬들과 일반 대중에게까지도 작가들의 이름이 알려졌고 수요가 급증했다. 이에 페로탱 갤러리는 뉴욕 갤러리에도 스토어를 오픈, 포스터, 에디션, 미니어처 상품들을 공격적으로 개발·제작하고 온라인 스토어를 통해 파리, 뉴욕을 넘어 해외 국가까지 프로모션하는 등 아트상품으로 갤러리의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파리 페로탱 갤러리 북스토어 ©Perrotin Gallery

스위스 취리히에서 시작하여 조지 콘도(George Condo),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 등의 굵직한 작가들과 작업하는 ‘하우저 앤 워스(Hauser & Wirth)’ 갤러리도 온라인 스토어를 오픈하여 에디션을 비롯해 작품이 그려진 스카프, 스케이트보드, 생활용품 등 다양한 아트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자체 개발 및 유통에 그치지 않고 외부업체와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는데, 몇 년 전 한국에도 들어온 인테리어 리빙 편집숍 ‘더콘란숍(The Conran Shop)’과 London Design Festival 2019 기념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작가의 작품과 굿즈를 판매하였고, 럭셔리 가죽 백 브랜드 ‘만수르 가브리엘(Mansur Gavriel)’과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 작품이 그려진 가방을 한정 판매하였다.

몇 년 전만 해도 작가가 나서서 상업성을 추구하는 것은 세속적으로 인식되었고, 작가는 미술에만 전념하며 시장의 논리에는 무심한 이미지였다. 그러나 디올(Dior)과 카우스(Kaws), 루이비통(Louis Vuitton)과 다카시 무라카미,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과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등 동시대를 대표하는 현대미술과 기업 간의 컬래버레이션이 이루어지면서 대중과 예술의 간격을 좁히고 있다. 예술가와 기업의 협업이 예술 대중화에 기여하는 지금의 상황이 에디션, 리미티드 굿즈 등 작품의 2차 가공 제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는 이유일 것이다.

아라리오 아트숍

아라리오갤러리는 세계적인 아시아 작가들을 한국에 소개하고 실력 있는 한국 작가들을 아시아 미술시장에 선보이며 아라리오갤러리만의 독보적인 정체성을 구축해왔다. 날리니 말라니(Nalini Malani), 수보드 굽타(Subodh Gupta), 김구림, 최병소 등 각 장르에서 선구자인 작가들의 작업을 미술 애호가들과 관계자들에게 소개하며 작가들의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미술계에서의 인지도와는 달리 대중들에게 현대미술은 여전히 난해한 분야였다. 아라리오갤러리는 이러한 대중과 현대미술의 간극을 인지하였고, 미술의 물리적 접근의 한계를 줄이기 위해 해외 현대미술작가의 외서 판매와 작가 아트상품 판매를 온·오프라인에서 운영하게 되었다. 

천안 아라리오갤러리 모던샵 ©ARARIO GALLERY

‘모던샵’은 오프라인 아트숍으로 해외 미술을 접하기 어려운 천안 시민들이 외서를 편하게 열람·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자는 취지로 2018년 천안 갤러리 1층에 오픈하였다. 아라리오갤러리 전속 작가뿐 아니라 피카소, 고갱, 샤갈, 세잔 등 모던 아트의 주요 작가들부터 백남준, 앤디 워홀, 바스키아, 데이비드 호크니, 키스 해링 등 20세기 대중적인 현대미술 작가, 루이즈 부르주아, 신디 셔먼, 트레이시 에민, 사라 루카스와 같은 주요 여성 작가 등 다양하고 광범위한 현대미술 도서와 패션, 건축, 디자인 등 예술 관련 1,000여 권의 서적들을 비치하였고, 손님들이 여유롭게 독서 즐길 수 있도록 앉을 수 있는 공간을 한 쪽에 마련하였다.

아라리오갤러리 웹사이트와 블로그페이를 통해 만날 수 있는 ‘아라리오샵’은 이익 실현보다 대내외적 홍보 매체로써 일반소비자 판매를 통한 전시 및 작가 홍보와 아라리오갤러리 이미지 제고를 위해 시작되었다. 아라리오샵은 상품개발의 기획부터 유통까지 직접 진행하며, 제작 브랜드 및 유통 채널과의 협업 등을 통해 최상의 퀄리티와 부담 없는 가격으로 소비자의 공감을 가져올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브랜드 콜라보레이션을 통한 아트상품 제작

작품을 기반으로 하지만, 제3의 제품을 생산하는 것은 작가와 갤러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기획 전반은 아라리오샵에서 주관하지만 제작은 전문 제작자의 조언과 도움을 얻어 진행한다. ‘사진 조각가’ 권오상 작가는 안경 업체 어크루(ACCRUE)와 디자인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그의 대표 조각 시리즈인 ‘뉴스트럭쳐(New structure)’ 이름을 딴 선글라스를 제작하였다. 평소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던 권오상 작가가 선글라스 디자인에 참여하여 예술가만의 독특한 디테일이 녹아든 선글라스는 현재까지 꾸준히 판매되고 있는 아라리오샵 대표 상품이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은 최근 해체주의적인 디테일과 실험적인 패턴으로 LVMH 프라이즈 준결승에 오른 패션브랜드 ‘포스트 아카이브 팩션(Post Archive Faction)’과 파격적인 전시로 20~30대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었다. 전시 이후에도 전시가 계속 회자되도록 파프 디자인의 모자, 티셔츠, 미니어처 등의 굿즈를 제작하였는데, 온라인상에서 관람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게 되면서 해당 상품을 사기 위해 오프닝 당일에 갤러리 앞에서 줄을 서서 입장하는 이례적인 해프닝이 일어났다. 갤러리의 주요 컬렉터와 미디어를 통해서 한정적으로 홍보되었던 전시가 아트상품을 통해 젊은 세대에 빠르게 알려지면서 40대 이상의 미술 애호가들이 주를 이뤘던 갤러리 방문객의 전격적인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아라리오갤러리와 '포스트 아카이브 팩션' 협업전시 〈포스트 아카이브 팩션: 파이널 컷〉에서 제작한 티셔츠, 모자 굿즈
©ARARIO GALLERY, Post Archive Faction
아라리오갤러리와 '포스트 아카이브 팩션' 협업전시 〈포스트 아카이브 팩션: 파이널 컷〉에서 전시된 작품의 미니어처
©ARARIO GALLERY, Erika Cox

유통 채널 콜라보레이션을 통한 아트상품 판매

아라리오샵은 사람들의 일상에 미술이 녹아들 수 있도록 대중적 인지도가 낮은 갤러리의 전통적인 유통 채널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공유하는 유통 채널들과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아트상품을 소개하고 있다.
올해 3월부터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에서 전시 중인 세계적인 도예가 이헌정의〈흙의 일상〉과 연계해 테이블 오브제와 꽃병, 달항아리를 온라인 아라리오샵과 팝업스토어에서 판매하였다. 특히, 개인전에서 전시 중인 2.6m의 거대한 세라믹 조각을 미니어처 사이즈로 제작한 ‘브레이브 맨’은 생활용품부터 디자인 제품 등 다양한 아이템을 선보이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와디즈’와 콜라보레이션하여 한정 작품을 크라우드 펀딩하였고, 목표했던 금액을 달성하며 판매에 성공하였다. 또한 이번 여름, 카카오톡 내 디지털 자산 지갑인 ‘클립’에서 노상호, 돈선필 작가의 대체불가능토큰 (NFT)을 판매, 짧은 시간에 모든 작품이 품절 되기도 하였다.
미술계에선 낯선 유통 채널에서 작가들의 아트상품과 작품들이 대중들에게 빠르게 흡수되는 경험은 향후 아트숍 사업 방향을 결정하는 데 상당히 고무적인 영향을 주었고, 지속적으로 대중의 마음을 읽고 미술 밖의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한 리서치와 용기가 필요함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작품의 연장선, 에디션, 미니어처, 포스터

작품 소장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관심이 커지고 원본성에 대한 가치 변화가 일어나면서 전문 갤러리가 아닌 마켓에서도 누구나 구매할 수 있는 부담 없는 가격대의 작품과 상품 판매를 시도하고 있다. 그 홍보 채널 또한 주목할만한데, 과거에는 갤러리를 통해 실물을 보고 구매했다면, 코로나 이후 온라인을 통한 작품 구매 비중이 높아지면서 더 많은 대중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인스타그램, 틱톡 등 소셜네트워크를 활용한 홍보와 판매가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최근에는 일반 아트상품 보다 실제 작가의 미니어처 작품이나 에디션, 포스터, 드로잉과 같이 하나의 작품으로써 그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아트상품의 수요가 급증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라리오샵도 이러한 흐름에 맞춰 돈선필, 인세인 박, 원성원 등 젊은 작가들의 에디션, 포스터를 비롯해 작가와 가구 디자이너의 콜라보레이션 퍼니쳐 아트워크를 선보였다.

권오상, 김민기 작가가 협업한 스툴 제품
©ARARIO GALLERY, Gwon Osang, Kim Minki
노상호 작가의 드로잉
©ARARIO GALLERY, Noh Sangho

전통 미술시장의 판매와 유통은 갤러리에서 논쟁의 여지가 없는 주요한 사업이지만, 온라인숍 운영과 아트상품 제작, 판매는 갤러리에서 일반적으로 진행됐던 프로젝트가 아닌 만큼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인력이 부족하다. 그러나 갤러리도 타깃층을 확산하기 위한 수단이 필요하다. 갤러리 소속 작가의 다양한 작품과 작가의 가능성을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트렌디하게 풀어내어 미술을 난해하게 생각하던 대중들도 일상에서 미술을 향유하고 소비할 기회를 마련할 때 미술시장이 더 확대될 수 있을 것이다.

  • 한아리
  • 필자소개

    한아리는 프랑스 IESA 예술경영을 졸업, 아트조선에서 전시기획 담당을 하였고, 현재 타이베이교육대학교에서 대학원 과정 중이자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아트페어, 온라인숍 업무를 비롯한 세일즈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정보라이선스-정보공유라이선스2.0

facebook twitter

댓글 0

확인
Top
  • 페이스북
  • 트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