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공연시장의 주요 이슈는 긍정과 부정이 묘하게 맞물렸다. 코로나19 가운데 희망과 절망이 내전(內戰)을 벌였다. 친환경, 1인극, 메타버스·숏폼, 뮤지컬 독립 장르 분리 표기 등 키워드들이 얽히고설켰다.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은 계속돼 왔다는 것이다. 스태프, 배우, 관객이 각자 방역 수칙을 준수하며 공연장을 지켜준 덕분이다.

공연계도 친환경

감염병으로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공연계는 더 나은 환경을 위해 고민했다. 분야를 막론한 ‘친환경 바람’이 공연계에도 분 이유다. 물론 2010년대 초반부터 무대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고민은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2013년 개설됐던 웹사이트 ‘공연 후 쓰고 남은 무대 소품·세트 재활용 커뮤니티(공쓰재)’다. 연극의 소품이나 무대 세트 등을 폐기하는 대신, 필요한 사람이 다시 사용할 수 있게끔 연결해주는 온라인 장터 역할을 했다. 또 2010년대 중반엔 대형 오페라 무대 세트 장치를 보관할 창고가 마땅치 않아 이를 폐기하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자 고민했으나 건강한 공연계 생태계 조성으로까지 발전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올해 들어 적극적인 논의가 나오기 시작했다. 국립극단 김광보 예술감독은 올해 초 ‘국립극단 2021년 주요 사업’을 발표하면서 예술단체로는 이례적으로 ‘적극적 기후 행동’을 강조했다. 탄소 경감과 생태 행동을 통해 ‘탄소 발자국’을 줄일 것이라고 예고했다. 또 소비재를 줄이고 공유 개념 활성화를 통해 지구 위기에 대응하겠다고 약속했다. 코로나19 상황이 길어지면서 적극적인 실천은 힘들었으나 국립극단은 지속해서 ‘물품나눔사업’, ‘업사이클링 기념품 제작’ 등을 계획 중이다.

환경·세계·지구에 대해 고민한 연극〈렁스〉는 올해 재연하면서 손수건·에스텐 텀블러·장바구니 등 친환경 머천다이즈(MD)를 대거 선보였다. 조승우·오만석·이규형·고은성·뉴이스트 렌 등 스타들을 대거 앞세운

서울 분점을 낸 쾨닉 갤러리 홈페이지 / 2022년 9월 서울 개최 예정인 프리즈 아트페어
〈헤드윅〉인스타그램,〈위키드〉공식홈페이지

뮤지컬 <헤드윅>도 올해 시즌에 친환경을 위해 나섰다. MD 구매 시 제품을 담는 데 가방이나 장바구니 사용을 권장했다. 불가피한 경우를 대비해 ‘생분해 봉지’를 유상으로 판매했는데, 판매금은 유기견 보호를 위해 전액 기부했다. 안락사 위기에 처했던 유기견 ‘곰자’를 입양한 ‘조드윅’ 조승우의 아이디어였다.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도 다회용 빨대와 텀블러를 이용했다. 올해 상반기 흥행한 뮤지컬 <위키드>도 친환경 캠페인을 펼쳤다. 작년 말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공연한 극단 ‘여기는 당연히, 극장’의 연극 <오직 관객만을 위한 두산아트센터 스트리밍 서비스 공연(오센스)>은 종이 아끼기 등의 차원에서 프로그램북을 선주문받아 후제작해서 배송했다. 실제 공연 전이나 초반에 제작된 리플릿과 프로그램북이 버려지는 경우도 상당수다.
클래식 음악계 역시 오래전부터 탄소 줄이기에 몰두했다. 장비를 가득 싣고 비행을 반복해야 하는 대형 오케스트라 투어가 특히 고민이 많았다. 이 고민은 현재 진행형이다. 바이올리니스트 파트리샤 코파친스카야는 되도록 비행을 하는 대신 기차로 연주 투어를 다니기 위해 노력 중이다. 광활한 자연을 배경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선보여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경우도 있다.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루도비코 에이나우디가 노르웨이 인근의 빙하를 배경으로 피아노를 연주한 것이 보기다. 국내 클래식계에선 그간 눈에 띌 만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연습실 전구를 고효율 LED로 바꾸는 정도였다. 그런데 올해 기후 위기에 적극적 대응을 촉구하기 위한 글로벌 프로젝트 ‘사계 2050–더 [언서튼] 포 시즌스(The [uncertain] Four Seasons)’에 임지영과 소속사 뮤직앤아트컴퍼니가 참여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인공지능(AI)이 2050년 기후변화 데이터를 통해 비발디의 ‘사계’를 편곡한 ‘사계 2050’을 들려주는 프로젝트. 원곡에서 생생하게 묘사한 새소리는 사라지고 거칠고 황량해진 분위기는 기후 위기를 감성적으로 경고했다. 미국 공연계의 성지 브로드웨이에선 지속 가능한 환경을 위한 단체 ‘브로드웨이 그린 얼라이언스’가 일찌감치 만들어졌다. 각 프로덕션이 공연의 친환경 사례를 공유하며 나눴는데 코로나19 시대 이후 더 주목받는 모양새다. 실제 팬데믹 이후 공연 참가자들의 개인 위생에 대한 방법론이 강구됐다. 팬데믹 위기에 국내 공연계도 뭉치는 분위기가 형성됐는데, 이참에 지속 가능한 환경에 대해 고민하자는 일부 의견도 나온다.

코로나19 시대, 1인극 주목

우리가 환경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건 코로나19의 영향이 크다. 환경 파괴로 인한 심각한 후유증의 하나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 가운데 올해 무대 위에 배우 홀로 오르는 1인극이 유독 몰렸다.〈일리아드〉,〈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데미안〉,〈액트리스 원: 국민로봇배우 1호〉,〈액트리스 투: 악역전문배우〉,〈발이 되기〉,〈내게 빛나는 모든 것〉등 크고 작은 작품을 다 따지면 10편가량 됐다. 국립극단의〈코오피와 최면약〉은 관객이 서울로7017을 홀로 걸으면서 공연을 접하는 ‘1인 관람극’이었다. 작년 코로나19 기간에도〈그라운디드〉,〈대심문관과 파우스트〉,〈콘트라바쓰〉같은 1인극이 올랐다.〈콘트라바쓰〉는 내년 1월 다시 공연한다.
물론 1인극 열풍이 코로나19 때문에 전적으로 양산이 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공연계 물리적 환경과 창작자들의 내면이 지금 시대와 조우하면서 빚어진 풍경인 건 부인할 수 없다. 프로덕션이 최소 규모다 보니, 방역 지침을 지키기가 더 수월하다. 올해만 해도 일부 연극 프로덕션은 방역 지침을 지킬 수 있는 크기를 보유한 실내 연습실을 구하지 못해 공연이 무산되기도 했다. 그런데 프로덕션 규모가 작아지면, 실험적인 형태의 공연도 자연스럽다. 배우 양종욱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내려간〈데미안〉이 예다. 소규모라 대중적인 부분을 포기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 코로나19 이전 같았으면 시도하지 못했을 실험이 나온 것이다. 아울러 코로나19는 우리가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계기를 줬고, 그건 자아를 돌아보는 과정과도 이어졌는데 1인극은 그런 사색에 가장 알맞은 형식이기도 하다.

오프라인 무대로 나온 메타버스·숏폼

공연계 실험은 온라인 공연, 영상과도 맞물린다. 하지만 이건 이미 얘기가 될 만큼 됐다. 그 논의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를 실험 중이기도 하다. 국립극단이 네 번째 극장으로 연극 OTT 플랫폼 ‘온라인 극장’을 론칭한 것이 예다. 이제 다른 형식과 얘기가 나올 때다. 온라인의 상황이 오프라인에서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 그렇다. 지난 11월 국립극장에서 공연한 독일 베를린의 극장 폴크스뷔네의 연극〈울트라월드〉는 게임 속 가상현실(VR)을 무대 위에 구현했다. 연극에 메타버스를 녹여내 가상현실 속 아바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서울시극단의 연극〈천만 개의 도시〉는 서울 시민의 평범한 일상을 숏폼(short-form)의 47개 장면으로 담아냈는데, 짧은 클립 영상에 익숙한 세대에 안성맞춤인 형식이었다. 서울예술단 ‘웹뮤지컬 공모’ 대상작인〈더라스트맨〉은 현재 무대 위에서 공연 중이다.
반대로 공연장 안에서 연극의 물성을 강조하는, 러닝타임이 3시간이 넘는 ‘롱폼’ 작품들도 쏟아졌다.〈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1·2부 공연 시간이 무려 6시간(인터미션 90분 별도)에 달했다.〈엔젤스 인 아메리카〉역시 두 번의 휴식 시간 포함 러닝타임이 4시간에 달했다. 이 작품은 총 2부작이다. 내년 초에 공연하는 2부까지 포함하면 총 8시간에 달한다. 이 밖에도〈그을린 사랑〉,〈리어왕〉,〈로드킬 인 더 씨어터〉등이 3시간 안팎 동안 관객들을 만나면서 호평을 들었다.

국립극단 온라인 극장 안내영상
출처: 국립극단 유튜브 채널

결국 중요한 건 안정된 산업구조…공연 원천 원 소스 멀티 유즈 가능할까

공연계 내에서 다양한 플랫폼에 대한 고민이 이어지는 건, 결국 안정적인 산업화 구축을 위해서다. 공연 장르 중 가장 상업적인 뮤지컬계가 산업화를 위해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달「공연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소위 심사를 거쳐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해 뮤지컬계는 환영하고 있다. 개정안의 골자는 기존 공연법상 분류(음악, 무용, 연극, 연예, 국악, 곡예 등)에서 연극의 하위 장르 정도로 인식되던 뮤지컬을 별도 장르로 분리, 명기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 뮤지컬 산업을 체계적으로 지원, 육성하자는 취지다. 뮤지컬은 국내 공연산업 매출의 60% 이상을 차지하며 연간 4,000억 원 규모 시장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한국 뮤지컬 산업의 기점으로 통하는〈오페라의 유령〉라이선스 초연(2001~2002년)이 20년 전인 것을 감안하면 산업화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뮤지컬계도 그간 법규상 독립 장르로 인정받지 못해 체계적인 지원정책 마련이나 기초연구 및 통계정보 등이 미흡한 측면이 있었다고 공감해왔다. 그래서 이번 개정안이 업계의 숨통을 틔워줄 것이라는 게 뮤지컬 업계의 기대다. 향후 국회 본회의 의결까지 순조로울 것으로 예상된다.

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발표한 「공연법」 일부 개정안
출처: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보도자료

뮤지컬 시장의 규모가 커진 데는 아이돌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김준수가 지난 2010년 뮤지컬〈모차르트!〉로 이 시장에 진입한 것을 기점으로 아이돌들의 뮤지컬 러시가 이뤄졌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런데 유독 올해 아이돌의 뮤지컬 출연이 많은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엑소 시우민 같이 인기 아이돌이 뮤지컬(〈하데스타운〉)에 데뷔하는 경우도 많았고, 아이오아이와 구구단 출신 김세정도 사실상 첫 프로 데뷔작인〈레드북〉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슈퍼주니어 은혁은 이달 막이 오른 뮤지컬〈알타보이즈〉를 통해 뮤지컬 연출가로 데뷔한다. 이런 흐름 역시 코로나19와 무관하지 않다. 팬데믹으로 인해 아이돌 그룹의 해외 투어가 전면 중단됐고, 대신 뮤지컬로 눈을 돌린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육군본부가 군 복무 중인 한류 아이돌을 전면에 내세운 창작 뮤지컬들을 최근 몇 년 동안 매해 제작한 것도 아이돌 뮤지컬 출연에 힘을 싣고 있다. 시우민이 평소에 관심이 없던 뮤지컬 무대에 오르게 된 것도 군 복무 시절에 출연한 뮤지컬〈귀환〉의 영향이 컸다. 뮤지컬이 순수 공연예술보다 상업예술 카테고리에 더 가까워진다면 아이돌 러브콜은 더 잦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문화 전 분야에서 지식재산권(IP)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공연계 역시 IP가 화두였다. IP를 원천으로 삼은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로 사업을 다각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비컬(영화+뮤지컬)’, ‘드라마컬(드라마+뮤지컬)’, 웹툰 기반 뮤지컬 등의 예에서 보듯 그간 공연계는 다른 장르의 IP를 활용해온 비중이 컸다. 공간·시간 제약이 있는 장르 특성상 서사가 약하다는 지적을 만회하기 위해서다. 연극도 소설, 드라마 등 다른 장르 원작이 많았다. 하지만 특히 올해 전환점이 보였다. 작년 초연한 창작 뮤지컬〈차미〉가 드라마로 옮길 채비를 하고 있다.〈차미〉의 제작사 페이지1은〈차미〉를 스튜디오레드, 오로라미디어와 함께 드라마로 만들기로 했다. 국내 창작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첫 드라마 제작 사례다. 16부작으로, 내년 편성을 계획 중이다.〈차미〉는 한껏 설정으로 가득한 SNS 속 자신이 현실에 나타난다는 상상력에서 출발한 작품. 최근 트렌드인 가상인물, 메타버스의 세계관을 활용해 볼 수 있는 소재다. Z세대와 공감대를 형성할 여지가 충분히 크다. 뮤지컬도 이야기가 좋으면 다른 장르의 원천 소스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다. 드라마〈차미〉의 성공 여부에 따라 뮤지컬에 관심을 갖는 다른 장르 제작자들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영화계에선 뮤지컬 원천 소스의 영화가 많다. 대표 주자는 장유정 감독이다. 그녀는 자신이 작·연출한 뮤지컬〈김종욱 찾기〉와〈형제는 용감했다〉를 영화로 옮긴〈김종욱 찾기〉와〈부라더〉를 감독했다. 안중근 의사의 삶을 그린 뮤지컬〈영웅〉은 윤제균 감독이 뮤지컬 영화로 옮겼다. 안중근 역도 뮤지컬에서 같은 역을 맡았던 배우 정성화를 그대로 내세웠다. 코로나19로 개봉이 미뤄지고 있지만, 공연계와 영화계의 기대를 동시에 받고 있다. 뮤지컬 산업이 발달한 외국의 경우 뮤지컬을 원천 소스로 활용한 사례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올해 국내 개봉한 뮤지컬 영화 〈인 더 하이츠〉는 브로드웨이 흥행 뮤지컬〈해밀턴〉으로 이름을 알린 뮤지컬 창작자 린마누엘 미란다의 2008년 브로드웨이 데뷔작이다. 미란다는 ‘천재 뮤지컬 작곡가’ 조너선 라슨이 본인의 이야기를 뮤지컬로 쓴 원작이 바탕인 넷플릭스 영화〈틱, 틱... 붐!〉을 연출하기도 했다. 뮤지컬 고전〈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영화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연출한 영화가 돼 내년 초 국내 개봉 예정이다. 브로드웨이 대표작인 뮤지컬〈위키드〉도〈빌리 엘리어트〉로 유명한 스티븐 달드리가 감독을 맡아 영화 개봉을 앞두고 있다. 한편에서는 공연 IP의 다양한 활용을 코로나19에 대한 반작용으로도 풀이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찾아온 오프라인 무대에 대한 위기감으로 인해, 영화관·온라인 등 다른 통로를 모색한다는 해석이다.

  • 이재훈
  • 필자소개

    이재훈은 2008년 뉴시스에 입사해 사회부와 문화부를 거쳤다. 약 10년간 공연을 담당했고 대중음악을 맡고 있다. 현재 한국대중음악상(KMA) 선정위원, 네이버 온스테이지 기획위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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