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장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올드&뉴“

▲전시장 출구와 비엔날레에서 처음 시도된
패브릭으로 된 파티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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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에 처음 개최된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올해로 5회째를 맞이하였다. 짝수 연도에는 비엔날레를, 홀수 연도에는 디자인비엔날레를 개최하고 있는 광주비엔날레재단은 그동안 디자인비엔날레를 통해 다양한 관점으로 디자인의 지향점을 제시해왔다. 그러나 순수예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고, 장르가 융합되고 다원화되어 가고 있는 현시점에서 기존의 디자인비엔날레가 보여주었던 전시 형태는 비엔날레와 차별화를 두기 어렵다는 문제 제기가 꾸준히 있어왔다. 때문에 전시를 준비하기 이전부터 올해 “디자인비엔날레“의 포지셔닝에 대한 진지한 점검이 요청되던 시점이었다. 또한 2013년은 광주광역시가 “아시아 디자인 중심도시 광주“로 도약하기 위해 디자인 산업화 원년으로 선포하고, 디자인 산업육성에 본격적으로 나서며 디자인 비엔날레의 산업화를 역점 프로젝트로 추진하고 있는 해이기도 하다. 올해 전시 기획을 맡은 이영혜 총감독은 이러한 광주비엔날레재단의 고민을 함께 숙고하였고, “디자인의 산업화를 통한 부가가치 창출과 연결“이라는 비교적 선명한 사명으로 전시를 기획했다.
이영혜 총감독은 전라도의 지역어인 “거시기 머시기“를 주제어로 상정하고, 보편적인 “것“(anything)에서 창의적인 “멋“(something)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인식으로 전시를 기획했다. “OLD&NEW“라는 주제관에서는 우리가 미처 디자인이라고 인식하지 못했던 소쿠리, 키, 골무, 엿장수 가위 등과 같은 전통적 오브제나 우리의 문화 속에 녹아있는 미의식을 찾고자 노력했다. 또한 자전거, 밥솥 등과 같은 일상 사물의 디자인적 진화를 선보임으로써 생활 속 제품 디자인이 추구하고 있는 실용성과 그 가치의 변화 과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밖에도 다양하게 변주된 의자 디자인, 런던 디자인 박물관의 컬렉션으로 구성된 섹션과 스포츠와 디자인의 접목 방식, 지역 특산물인 대나무를 이용한 건축적 공간의 구축까지, 이번 전시는 비교적 편안하게 대중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생활 속 오브제의 혁신적인 디자인 변형의 역사를 제시하였다.
자연과 소통하는 전시
세상의 모든 것은 주변 자연환경에 영향을 받고 자연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을 때 아름답다. “자연은 최고의 디자이너”라는 말을 실현하듯, “2013 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자연으로 들어가 자연으로 나가게 하는 동선으로 이루어졌다.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광장에 꾸며놓은 정원을 지나 전시를 관람한 후 출구로 나오면 눈앞에 숲길과 공원이 다시 이어진다. 이는 광주비엔날레가 1995년 열린 이래 처음으로 입구와 출구를 변화시킨 덕분에 가능했다.
또한 일반적인 건축 소재가 아닌 패브릭이나 재생 골판지를 사용한 공간 구성과 전시 구조물도 주목할 만하다. 일반적으로 대형 행사를 기획하는 데 있어 큰 공간을 섹션별로 구획하기 위해서는 가벽이나 시설물 설치를 하게 된다. 이것들은 보통 전시가 끝난 이후 파기되기 마련인데,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철거 파기물을 최소한으로 줄이고자 했다. 나무 합판의 가벽 대신 패브릭으로 된 파티션을 이용하는 “패브릭 조닝“은 이번 비엔날레에서 최초로 시도한 방법이다. 천으로 된 파티션은 분리되고 차단된 전시 공간이 아닌, 자유롭게 동선의 이동이 가능하고 소통과 융합을 이루는 열린 공간을 상징한다. 또한 재생 골판지로 만든 작품 전시대도 환경친화적인 에코 시스템 디자인을 이번 전시 속에서 실행하고자 했던 노력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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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를 상징하는 전시물 설치된 “광주에서 가장 소중한 것“과 광주시에서 제작하게 될 “택시 기사 유니폼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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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과 삶으로 스며드는 디자인
전시장 안 5개 공간 중에는 “광주관“이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갤러리가 구성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지역 정체성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도록 하여, 지역의 색채가 국제적인 면모와 어우러질 수 있도록 그 구체적 실현을 전면적으로 시도했다. 예를 들면, 1천 명의 광주 시민이 참여하여 “광주에서 가장 소중한 것“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후, 가장 많이 나온 단어 20가지 샘플을 만들었다 이를 수틀, 천, 도안, 수실, 바늘 등을 넣은 키트에 담아 광주 시민 1천 명에게 배포하고 완성된 작품을 수거하여 전시장 안에 거대한 등으로 제작하였다. 또 광주 택시기사 유니폼 디자인, 광주 시내 5개 구에서 쓰일 쓰레기봉투 디자인, 광주와 전남의 9대 명품 쌀 포장 디자인 등 디자인 결과물을 광주 지역에 남기는 작업을 추진했다.
쌀 포장은 쌀 소비 촉진, 핵가족화와 싱글족을 위한 1인분 소포장 판매, 지역 특성에 맞는 포장 디자인 등을 시도했는데, 쌀과 농사 등 삶과 밀접하면서도 너무 일상적이라 간과했던 것들에 대한 디자인적인 확장을 도모하고자 했던 감독의 의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택시 기사 유니폼 디자인“은 시민투표로 우수작을 선정하여 협의를 거친 후 광주시가 실제로 제작하여 상용할 예정이다. 사소하지만 실현 가능한 디자인, 전시의 주제처럼 작은 것에서 디자인의 멋을 실현할 수 있는 시도가 현실화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광주 시민들의 직업에 대한 프라이드, 공공서비스 마인드, 광주 이미지를 재고할 수 있는 확장된 공공디자인의 형태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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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어린이집의 새로운 형태인 “콩다콩 어린이집“

▲관람객들이 남북한 동시입장을 기원한 국기 디자인을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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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 디자인
이번 전시의 첫 작품은 비엔날레 전시관 광장에 꾸며놓은 “가든 디자인, 밭을 디자인하다(City Farmer';s Garden)“이다. 무거운 물건을 적재하여 옮길 때 사용하는 나무 팔레트와 폐천막을 소재로 도심 속 텃밭을 만들어 꽃과 식물의 성장을 체험하고, 비엔날레 기간 중인 10월에 수확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 근래 화두가 되고 있는 힐링과 슬로우 라이프에 관한 현대인의 생활과 문화의 흐름을 읽어내 많은 이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고 있다. 광장 한편에 마련된 “농부의 빵(Farmer';s Bread)“ 코너에서는 “고대에는 공동으로 마을 오븐에서 빵을 굽느라 자기 빵을 표시하기 위해 그 모양을 다르게 하면서 빵 디자인이 시작되었다“는 모티브로 전시 기간 내 참여자들이 직접 구운 다양한 디자인의 빵을 진열해 보여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한편 전시장 한 구역에서는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었다. 국내 어린이집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자 디자인된 “콩다콩 어린이집“이 그것이다. 어린이집은 전국적으로 8천여 개에 이르고 있는데, 그중에는 어린이를 위해 적합하지 않은 공간 구성을 한 곳도 많다. 이번 전시에서는 아이들의 정서 안정과 제품의 안전성을 기준으로 한 어린이집에 필요한 요소들을 모듈화하여 가장 우수한 어린이집 모델을 제안하였다. 이 구역은 행사 기간 내 어린이들이 직접 체험하며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디자인되었다.
2015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남한과 북한의 동시 입장을 상상하며 디자인된 “남북한 단일기“ 또한 대표적인 공공디자인으로, 90여 명의 디자이너들에 의해 새롭게 제작되었다. 푸른색 한반도 기의 단조로움과 식상함을 넘어 이번 비엔날레와 함께 제작된 남북한 단일기들은 우리나라의 대외적 이미지와 문화적, 국가적 정체성이 함의된 다양한 방법으로 디자인되어 관객들에게 스포츠를 통한 통일된 한국을 생각해볼 기회를 주었다.
이번 “2013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주제어는 대화 중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게 되는 “거시기 머시기“로 일견 모호한 맥락의 말이다. 그러나 각자가 지닌 문화적 습관과 특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면, 그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정감 있게 이해할 수 있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번 “2013 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이심전심의 마음, 즉 서로의 소통과 연결을 보여준 전시라 할 수 있다. 현대사회는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이미 사용자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것을 사용자의 취향과 특성에 맞춰 창의적으로 만들어내기를 오늘날의 디자이너는 요구받고 있다. 사용자와 디자인 간의 이심전심 통하는 마음, 거대하고 난해한 담론의 추구가 아니라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것에서 새롭고 창조적인 미래를 보여주는 “거시기 머시기“한 디자인이 이번 디자인비엔날레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사진제공_안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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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weekly@예술경영] 편집위원. 안미희는 경북대학교와 동대학원 서양화과 졸업 후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Pratt Iistitute)에서 현대미술사를, 뉴욕대학교(NYU)에서 미술관학을 전공했다. 뉴욕에서 독립큐레이터로 활동하며 다수의 전시를 기획했으며, 2005년 뉴욕 퀸즈미술관 전시자문, 2007 스페인 아르코(ARCO) 주빈국 특별전 프로젝트 디렉터를 역임했다. 2005년부터 재단법인 광주비엔날레 전시팀장으로 근무하며 2006년 김홍희, 2008년 오쿠이 엔위저, 2010년 마시밀리아노 지오니 총감독과 광주비엔날레 전시실행을 총괄했다. 현재 동재단의 정책기획팀장으로 재직 중이다. 이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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