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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술의전당 콘텐츠영상화사업(SAC on Screen)’
은 공연·전시 콘텐츠를 영상물로 제작하여 전국적으로 배급하기 위한 사업이다. 2013년에는 11월 16일 실황 중계됐던‘토요콘서트’외 〈시크릿뮤지엄〉(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이디트헤르만 안무의 〈Into Thin Air(증발)〉(국립현대무용단),〈호두까기 인형〉(국립발레단) 등 세 편이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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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산업은 스타가 필요하다. 스타는 그 분야를 효과적으로 대중화시킨다. 단군이 나라를 세운 이래로, 피겨 스케이팅은 한국인들에게 먼 나라 남의 스포츠였다. 그러나 김연아가 우아한 백조마냥 빙상 위를 날아다니며 세계 대회를 차례로 석권하며 피겨의 여왕이 되자, 피겨 스케이트는 단숨에 국민 스포츠가 되었다. 김연아의 트리플 턴, 더블 악셀 등이 얼마나 대단한지 아사다 마오와 비교하며 너나없이 열광했다. 여기서 간과되는 중요한 점이 하나 있다. 대부분은 경기장이 아닌 텔레비전을 통해 김연아의 경기를 관람했다는 사실이다. 즉 트리플 턴의 도약과 공중회전의 슬로우 장면, 음악에 실려 일자를 이루며 길게 뻗은 다리, 넓은 빙상 위를 자유로이 노니는 장면, 피겨화의 칼끝에서 부서져나가는 얼음조각의 클로즈업 등 각종 카메라 효과와 영상 편집기술이 극적으로 결합되면서, 실제 경기장면과는 차이나는 김연아의 모습을 텔레비전은 보여준다. 그리고 그 영상에 의해 김연아는 대중적인 스타가 되었다. 따라서 만약 텔레비전이 없는 시대였다면 김연아는 분명 지금과 같은 열광적인 인기는 얻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경기장과 거실 즉 실황과 중계의 차이는 크다. 경기 내용과 결과는 같지만, 그것을 통해 얻는 우리의 경험은 완전히 다르다. 그렇다면, 백건우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와 장한나의 비발디 첼로 협주곡 실황을 영화관에서 중계한다면 어떨까?
위기는 기회다
새로운 매체의 등장은 관련 산업을 긴장시킨다. 클래식 음악사에서 1981년에 발생한 두 사건은 아주 중요했다. 우선, 콤팩트디스크가 발매되었다(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베를린필하모닉). 그리고 매일 24시간 동안 뮤직비디오를 방영해주는 유료 채널 엠티브이(MTV)가 방송을 시작했다. 당시 상황을 정확히 표현하듯, 엠티브이의 첫 뮤직비디오는 더 버글스(The Buggles)의 “비디오는 라디오스타를 죽였다(Video Killed the Radio Star)”이었다. 록과 팝음악의 강세로 젊은 층은 더 이상 클래식음악을 듣지 않게 되었고, 점점 줄어드는 시장에서 카라얀 등 기성 클래식 스타들은 바흐, 베토벤, 브람스 등을 벗어나 새로운 레퍼토리를 개발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엠티브이는 사람들의 음악감상 태도를 완전히 바꾸었다. “그동안 엠티브이가 해낸 것은 로큰롤 음악을 영상 세계에 돌입시키면서 사람들이 이를 진정한 엔터테인먼트인지 장사꾼 놀음인지 판단할 수 없게 만들었다”라고 롤링 스톤스의 스티븐 레비(Steven Levy)는 비판했지만, 대세는 이미 기울었다. 대중들에게 음악성만큼 음악의 시각적인 쾌감도 중요했다. 이제 음악은 듣지 않고, 보고 즐기는 것으로 바뀌었다. 현란한 안무와 압도적 비주얼의 뮤직비디오를 내세운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는 단숨에 월드 스타가 되었다.
이런 MTV시대에도 클래식 음악계는 예전처럼 공연장에 앉아서 관객을 기다렸다. 듣는 음악을 고집했고, 보는 음악은 불필요하고 심지어 타락이라는 기류가 지배적이었다. 음반과 공연장 연주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글렌 굴드와 요요마, 베를린필하모닉과 빈필하모닉 등 스타 연주자(단체)들의 실황 비디오가 간헐적으로 제작되었지만, 대체로 영상수준은 조악했다. 여기에 엠피쓰리(MP3)의 보편화로 ‘음악은 공짜’가 되었고, 음반 산업은 순식간에 궤멸했다. 그런데 여기서 극적 반전이 생겨났다. 음반 산업은 무너졌지만, 사람들이 록페스티벌과 콘서트장으로 밀려들었다. 이어폰으로 좋아하게 된 가수의 노래를 공연장에서 라이브로 직접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현재 공연 산업의 호황은 우연이 아니다. 물론 음반이라는 한 쪽 날개를 잃은 클래식 음악계는 그렇지 못했고, 새로운 시도를 감행한다.
클래식 실황의 감동, 스크린으로 옮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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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의
‘메트 라이브 in HD‘ 공식홈페이지
▲▲ 베를린필하모닉의 ‘디지털 콘서트홀’
공식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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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은 2006년부터 ‘메트 라이브 in HD(The Met: Live in HD)’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오페라 무대를 전 세계로 송출하고 있다. 올해는 63개국 2천 여 개 영화관에서 상영하는데, 영국 로열 오페라하우스, 이탈리아 라 스칼라, 오스트리아 빈 슈타츠오퍼 극장 등 유럽의 유명 공연장도 이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녹화중계뿐 아니라 실시간 전송 서비스도 확대되는 추세인데, 베를린필하모닉은 2009년부터 세계 최초의 오케스트라 공연 실황 중계 서비스인 ‘디지털 콘서트홀(Digital Concert Hall)’을 시작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25주년 기념 공연처럼, 무대 뮤지컬작품도 영화적으로 촬영해서 극장에서 개봉해서 좋은 결과를 얻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렇게 공연계는 관객을 찾으러 나섰고, 음악을 영상과 결합시켜 영화관에서 상영했다.
이런 세계적인 흐름에 한국을 대표하는 공연장인 예술의전당도 첫 발을 내디뎠다. 지난 11월 16일 오전 11시에 시작한 ‘예술의전당 토요콘서트’는 경기 연천(연천수레울아트홀), 전남 여수(GS칼텍스 예울마루), 경북 안동 (안동문화예술의전당), 전북 전주(한국소리문화의전당) 등 전국 4개 도시 문예회관과 전국 5개 CGV 무비꼴라주관(서울 압구정, 분당 오리, 대구, 부산 서면, 광주터미널) 등에 실시간으로 생중계됐다. 이날 실황중계는 올해 초부터 진행해 온 ‘예술의전당 콘텐츠영상화사업(SAC on Screen)’의 일환이었다. ‘SAC on Screen’은 예술의전당의 우수한 공연, 전시 콘텐츠를 고화질의 영상물로 제작하여 전국 영화관, 문예회관, 학교 등에 배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다른 문화예술 장르에 비해 진입 장벽이 높게 느껴지는 발레, 오페라, 클래식, 현대무용 등 순수예술 장르를 대중친화적인 매체를 통해 저렴한 관람료로 즐길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서울-지방간 문화 격차를 줄이고, 영상물로 순수예술 장르를 먼저 접한 이들을 실제 공연장으로 이끄는 잠재 관객 개발의 역할도 기대된다. 또한 일회성으로 끝나버리는 공연을 영상물로 보존, 공연 콘텐츠의 가치를 재생산하는 긍정적 효과도 지닌다.
보는 클래식, 재미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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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문화예술의전당에서 상연중인 ‘SAC on Screen-예술의전당 토요콘서트 실황중계’
▲▲‘SAC on Screen’ 안내 현수막
(한국소리문화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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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 라이브 in HD’나 베를린필하모닉의 ‘디지털 콘서트홀’에 대한 반응은 크게 둘로 나뉘었다. 영화관에서라도 공연을 접할 수 있으니 긍정적이라는 의견과 공연장을 벗어난 영상화된 공연은 진짜 음악을 망친다는 부정적인 의견이다. 둘 다 나름의 근거를 갖춘 견해이다. 이런 시도가 보다 긍정적인 효과를 만들어내려면, 영상 산업적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예술경영측면에서 보자면, 30여 년 전 팝음악처럼 듣는 클래식을 넘어서 ‘보면서 듣는 클래식’을 시도하며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러 나선 점은 가치 있다. 그렇다면 이제 콘서트홀의 공연을 어떻게 영화관의 관객들에게 전달할 지 짚어봐야 한다. 첫 술에 배는 부르지 않더라도 맛은 있어야한다. 스마트폰 시대의 관객들은 5분 이상 집중하기 힘들어한다. 적절한 영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쇼팽의 녹턴마저도 지루해한다. 이래선 클래식을 들을 수 없으니 다른 음악 들으라, 고 개인은 말할 수 있지만 시장관계자들은 그럴 수 없다. 관객을 탓해서는 아무 소용없다. 영화는 영화적인 사실감을 획득해야 되듯이, 스크린의 공연실황은 사운드의 현장성보다 장면의 현장성으로 다가가야 유리하다. 영화관에 앉은 관객은 영화처럼 공연을 본다. 내가 무엇을 볼 지 카메라가 정해서 스크린에 펼쳐 주기 때문이다. 공연장에서의 시선의 자유는 더 이상 누릴 수 없다. 나는 보여주는 것만을 보는 수동적인 관객으로서, 화면을 우선적으로 보면서 소리를 듣는다. 관객은 관습적으로 관람태도를 결정짓는다. 공연장에선 눈감고 음악을 듣지만, 영화관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지난 11월 16일 토요일 압구정 CGV에서 몇몇 관객만이 예술의전당에 있는 관람객들처럼 연주가 끝난 후 박수를 쳤다. 그 박수는 머뭇거리듯 시작되어 금방 끝났다. 누구도 영화관에서 영화가 끝났다고 박수를 치지 않기 때문이다. 잘 보았으면 되지, 잘 듣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실황상연은 영상 연출과 편집이 관건이다. 음악 자체의 중요도를 낮춘다는 비판이 벌써부터 귓가에 들려온다. 뮤직비디오가 처음 나왔을 때도 그랬다. 하지만 시대와 관객이 바뀌면 예술도 전달방식도 변화에 적응해야한다. 역사적으로, 음악 연주회방식은 손님을 위한 초대 연주회에서 소수의 사람들을 위한 예약 연주회를 거쳐 현재의 입장료를 지불하는 미지의 청중을 위한 공개 연주회로 변화해왔다. 그러니까 실황영상 연주회도 새로운 시대에 부합하려는 연주회의 새로운 방식으로 볼 수도 있다.
스마트폰 시대의 새로운 방식의 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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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6일 실황중계 영상 속 플루티스트
한여진의 연주 모습(CGV 압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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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영상화된 공연은 보다 폭넓고 쉽게 연주자를 스타로 만들 수 있다. 관객과 연주자의 물리적 거리를 줄일 수 없는 공연장과 달리, 김연아의 경우처럼 카메라 촬영 기법과 편집․음향 기술이 뒷받침 된다면 영화관에서는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미지의 스타가 태어날 것이다. 지난 16일 공연실황에서도 13세의 플루티스트 한여진은 대단히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렇게 등장한 스타는 당대의 대중들에게 보면서 듣는 공연의 즐거움을 적극 알릴 것이다. 출판계가 줄어든 판매부수를 작가를 내세워 강연과 팟캐스트(pod cast)로 영역을 확장해 시장을 창출해내고 있듯이, ‘SAC on Screen’도 영화관에서 만난 관객을 공연장으로 끌어들일 것이다. 연주가 끝나고 영화관에서도 자연스럽게 박수가 나올 때, ‘SAC on Screen’은 성공했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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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이동섭은 한양대 광고홍보학과를 졸업한 후 파리8대학(Université Paris VIII)에서 예술과 공연학으로 석사와 박사(수료)를 마쳤다. 2013년 베를린 영화제 단편경쟁 초청작 〈연애놀이〉의 아트디렉터, 뮤지컬 〈그날들〉의 드라마투르기로 활동한 바 있으며 영화진흥위원회와 CJ제작지원 선정작인 〈레이디〉,〈뱅커〉등의 시나리오를 썼다.『뮤지컬의 이해』,『당신에게 러브레터』,『패션코리아 세계를 움직이다』등 문화 다방면에 걸쳐 책을 썼으며, 현재 성신여대, 청강대, 한예종 등에서 ‘뮤지컬과 대중문화’, ‘스토리텔링과 콘텐츠기획’ 등을 가르치고 있다. 얼마 전부터는 SBS 컬처클럽 ‘수다의 품격’의 진행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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