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이어진 특집 ‘예술경영, 지역을 사고思考하다 Ⅱ’는 6대 광역시(광주, 대구, 대전, 부산, 울산, 인천)와 특별자치도 제주의 문화 인프라 및 네트워크 현황, 지역 예술경영인들의 화두를 전하며 전국의 문화예술 지형도를 보여주는 듯했다. 그러나 도내에 광역시가 없고, 제주도에 비해 면적이 10배에 달하는 강원도가 빠지면서 그 꿈은 완성되지 못했다. 이에 ‘강원도 문화예술 지형도 그리다’ 특집을 준비했다. 2014년 9월 선보이는 1편에서는 강원도 문화예술을 움직이는 정책과 제도, 그리고 곳곳에서 ‘강원도의 힘’을 발휘하고 있는 문화공간들을 소개함으로써 강원도 문화예술 지형도의 밑그림을 그려본다./[칼럼] 강원도 문화공간 현황과 문화예술 생태계 조망/[이.상.공간] 복합문화공간 감자꽃스튜디오/[정책제도Q&A] 강원도 문화예술사업을 움직이는 정책·제도

자연, 문화예술 그리고 사람 중심의
강원도 문화공간을 둘러보다

상상마당 공연
 전영철
 피노키오


▲ 뮤지엄 산과 하슬라아트월드의 전시 모습

문화공간하면 대체로 공공의 영역에서 만들어낸 그만그만한 것이 다수를 이루던 시절이 있었다. ‘국립000’, ‘시립000’ 등의 이름으로 불리어진 이러한 문화공간들은 그 위엄을 자랑하듯 규모도 크고 화려하기만 하다. 강원도도 예외가 아니어서 여러 국공립 문화시설들이 주를 이루던 것이 최근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소위 ‘민간’이라는 타이틀을 단 사설 문화공간이 그것이다. 최근의 실험적이고 인터랙티브(Interactive)한 예술의 경향을 반영한 춘천의 ‘상상마당’이나 국립 문화시설 못지않은 규모와 예산을 자랑하는 원주의 ‘뮤지엄 산’, 그리고 정동진이라는 자연을 앞뜰에 둔 자연 친화적 문화공간인 강릉의 ‘하슬라아트월드’가 대표적이다.

‘KT&G 상상마당 춘천’은 홍대 앞을 시작으로 충남 논산에 이어 세 번째 개관한 문화공간으로 2014년 4월, 故 김수근 건축가의 작품이었던 춘천어린이회관을 리모델링하여 문을 연 문화공간이다. 호숫가에서 예술과 함께 머무는 ‘아트스테이(Art+Stay)’라는 콘셉트하에 문화예술을 즐기기 위해 마련된 각 공간들을 통해 창작자에게는 상상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향유자에게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다양한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개관 초기 조금은 지역에 생소한 실험적 예술을 통한 접근과 기존의 어린이회관이라는 시민들의 인식으로 쉽게 자리 잡기 어려울 것 같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다양한 지역의 젊은 예술가들과의 협업과 꾸준한 예술 활동을 통해 점차 안정을 찾으며 춘천의 또 다른 문화 명소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상공에서 본 KT&G 상상마당 춘천


▲ 상공에서 본 KT&G 상상마당 춘천

‘뮤지엄 산’은 원주시 지정면 산상(山上)에 위치한 종합 뮤지엄으로 1997년부터 운영해 온 종이박물관과 2013년에 개관한 청조갤러리로 이루어져 있다. 건축가 안도타다오의 작품이기도 한 ‘뮤지엄 산’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자연의 품에서 문화와 예술의 선율을 느낄 수 있는 전원형 뮤지엄이다. 넓은 부지에 난 오솔길을 따라 걸으며 만나는 조형미 가득한 공간과 미술품들은 작품과 자연을 하나로 느끼게 한다. 백남준 선생의 작품과 제임스 터렐의 ‘빛’, ‘공간’, ‘지각’, ‘경험’의 키워드로 작업한 ‘지평선의 방(Horizon Room)’이나 ‘하늘공간(Skyspace)과 같은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뮤지엄 산은 한솔오크밸리라는 리조트 시설과 더불어 휴식과 문화예술의 만남이 제법 어울리는 문화공간임에 틀림없다.

강릉의 하슬라아트월드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강원도의 문화공간 중 하나이다. 고구려시대, 신라시대 강릉의 옛 지명인 하슬라로 이름 짓고 정동진의 푸른 바다를 가슴에 품고 2003년 개관한 하슬라아트월드는 ‘환경과 공존하는 예술’, ‘사람과 공존하는 예술’을 꿈꾸는 문화 허브이며 박신정, 최옥영 두 예술가 부부의 오랜 꿈을 실현해 주는 꿈의 예술 정원이자 자연과 문화가 주는 여유로움을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건축과 조경과 길과 예술이 함께하는 풍경이다.

하슬라아트월드는 돌, 나무, 야생화와 같은 자연을 조형의 소재이자 배경으로 활용하며 그 자체가 작품인 ‘예술 정원’과 다양한 기획전이 열리는 ‘아트 뮤지엄’ 그리고 단순한 숙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모든 객실이 예술 작품인 ‘뮤지엄 호텔’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에서는 전 세계 예술가들이 매년 참여하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운영과 주민과 방문객을 위한 예술 체험 행사가 끊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곳은 현재진행형의 살아있는 공간이다. 백두대간과 푸른 동해를 배경으로 254,000㎡의 대지에 지금도 작품으로 채워 나가는 두 예술가의 캔버스인 셈이다.

▲ 정동진의 푸른 바다를 품은 하슬라아트월드

위에서 살펴 본 세 군데 문화공간은 모두 도심 근교에 위치하며 각 지역의 랜드마크가 될 만큼의 건축적 의미와 다양한 문화예술 체험과 더불어 숙박까지 제공하는 자연 친화적 문화공간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호수, 산, 바다라는 강원도의 특징을 잘 살려 수려한 자연경관과 문화예술이 어우러지는 문화공간으로 강원도를 대표한다. 대부분의 공공 문화시설이 부지 확보의 어려움이나 예산상의 문제로 주변 경관이나 주민의 문화적 활동 반경과는 동떨어진 곳에 생뚱맞게 위치해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민간의 투자 감각이 도드라져 보인다.

또 하나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끊임없는 자기 투자가 반복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유명 건축가의 예술적 건축물을 완성함으로써 그 자체가 볼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이들 공간은 단순한 문화시설에 머무르지 않고 늘 새로운 문화 콘텐츠를 생산해 낸다. 다양한 기획전과 이벤트 그리고 교육 사업 등은 한 번의 방문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는 재방문의 이유를 제공하며 즐거움을 선사한다. 많은 문화시설들이 단순 대관이나 형식적인 연례행사로 공간을 채우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어디에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또 다른 실험, 대안적 문화공간에 주목한다

최근의 강원도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다양한 대안문화공간이다. 단순한 비주류 예술의 장을 넘어서 다양한 실험들을 통해 당당하게 문화예술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작가들의 실험적인 작품을 수용하는 열린 공간을 표방하거나 문화예술과 청년, 공유 경제, 사회적 가치 등 다양한 분야와의 융합을 시도하기도 한다. 춘천시문화재단이 만들어 입주 작가들과 함께 운영하는 ‘아르숲’이나 전통시장인 낭만시장 2층에 위치한 ‘궁금한 이층집’, 강릉의 ‘봉봉 방앗간’등이 대표적이다.

‘아르숲’은 공간을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지역의 젊은 작가들과 같이 고민하고 함께 만들어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선 지역의 젊은 작가들의 소통의 장이 되고 있다. 또한 다양한 토론과 교육 프로그램 그리고 파티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궁금한 이층집’은 지역의 청년 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공간으로 20여 명의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고민하고 있는 청년들이 모여 작은 동아리를 만들고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10여 평 남짓의 작은 공간이지만 이 공간이 만들어 내는 지역의 젊은 에너지는 춘천의 문화 지형을 바꿀 만큼 강력하다. 강릉의 ‘봉봉 방앗간’은 전시와 커뮤니티 공간으로 주변의 ‘소극장 단’, ‘명주 사랑채’와 더불어 마을 문화의 거점으로 그 역할을 다 하고 있다.

대나무

▲ 궁금한 이층집 발표회 포스터와 봉봉방앗간 전경

(사진출처_궁금한 이층집, 봉봉 방앗간 블로그)

이러한 대안문화공간의 특징은 커뮤니티 기반으로 운영된다는 점과 단순히 보고 즐기는 것을 넘어서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며 때로는 격론을 펼치는 토론의 장이 된다는 것이다. 공간의 조성과 기능적 차원에서 보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새로 만들기보다는 기존의 공간에 적은 비용을 들여 효용성을 높인다는 특징이 있다. 기존의 문화예술 시설이 예술을 수용하기 위한 기능성을 강조했다면 대안문화공간들은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주목한다.

‘생활 속 문화예술’의 가치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현시대의 요구를 수용해 ‘문화공간’보다는 ‘문화적인 공간’을 표방하는 대안문화공간의 필요성은 점점 더 커진다. 주민의 삶 속으로 들어간 문화예술이야말로 문화예술의 근간이 되어 줄 것이며 대안적 문화공간은 지역문화예술 생태계의 자양분이 된다는 점에서 강원도에도 다양한 대안적 문화공간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하며, 나아가 이러한 문화공간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정책적 대안이 만들어 지기를 희망해 본다.

문화공간을 바라보는 시선과 철학

문화공간은 시설로 볼 것이 아니라 쓰임새로 보아야 한다.

많은 지역의 문화시설들이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다. 공간을 채우고 있는 콘텐츠도 별로이며 예산만 축내는 골칫덩어리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매년 새로운 문화시설을 지어내는 모습은 의아하기까지 하다.

처음 설립할 때는 지역 주민을 위한 시설이니, 지역 발전을 위한 동력이 될 것이니 하는 온갖 미사여구로 설립의 당위를 포장해 내지만 이내 성가신 존재로 취급당하기 일쑤고 조성 당시의 취지는 잊은 채 경제적 효과만을 중심에 둔 판단을 한다. 더구나 청소년, 문화예술, 농촌 문화 등 분명 전문성이 강조되는 분야임에도 실력 없는 인사들이나 낙하산 인사로 인력을 채우는 모습을 볼 때면 한숨이 앞선다.

지역의 문화공간을 대할 때는 단지 유지 관리해야 하는 자산이 아니라 지역과 사람을 위한 쓰임새로 만드는 자원의 개념으로 보는 가치 철학이 필요하다. 공간을 바라보는 가치 철학이 바로 섰을 때만이 인적, 물적 투자도 콘텐츠 개발도 비로소 가능해진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지역의 문화시설은 경제적 자산이 아니라 활용되어야 할 자원이다. 조금만 둘러보면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너무도 많은 강원도다.


사진제공_상상마당, 하슬라아트월드, 전영철(상지영서대 교수)



필자사진_권순석 필자소개
권순석은 문화컨설팅 바라(지역의 문화예술축제, 문화재단 중장기 계획 수립, 문화예술기관 컨설팅, 문화인력 양성교육 등) 대표이며, (사)한국문화의집협회 상임이사이다. 현재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생활문화센터조성사업’,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지역협력형사업’, 한국문화원연합회 ‘생활문화공동체사업’ 등을 컨설팅하고 있다.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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