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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지역문화진흥법>이 제정된 지도 반년이 지났다. 법이 제정된 이후 여러 기대감이 쏟아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법안 개정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무엇보다 법 자체가 2000년대 이후 지속되었던 지역과 문화의 결합이라는 시대적 현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고, 지역 문화라는 ‘지역 중심의 문화를 만드는 법’임에도 지역이 아닌 중앙정부를 중심으로 설계되었다는 점, 때문에 중앙정부의 권한은 많되 의무는 없고, 지자체는 계획 의무는 있으나 실질적인 지역 문화 발전에 대한 의무 사항이 없는 점 등에서 얘깃거리가 된다. 그렇다면 <지역문화진흥법>은 어떤 문제를 담고 있는 것일까?
과연 지역친화적인 법인가? |
▲ 2014 전주 동문예술거리 축제 모습(사진출처: 전주동문예술거리 홈페이지) |
<지역문화진흥법>이 갖는 의미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2000년대 이후 지속되어 온 지역과 문화의 결합 현상을 제도화함으로써 좀 더 체계적이고 안정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거나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실로 2000년대는 지역과 문화의 ‘결합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0년대 초반 문화지구와 더불어 문화도시론이 부상했고, 2000년대 중반에는 예술이 지역에 접목되면서 ‘지역엔 혁신을, 예술엔 공동체 예술’이라는 새로운 현상이 야기되었다. 예술과 지역 모두 공진화를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어 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에 이르러 지역 곳곳에 ‘비정형적인’ 문화공간이 창출되면서 지역이 하나의 관찰 대상이나 여행의 장소가 되는 현상이 생겨났다. 대구의 근대골목을 찾는 사람들, 통영 동피랑 마을과 부산 감천문화마을을 순회하고, 군산의 옛 일본 가옥(히로쓰 가옥)을 돌아보며, 전주의 한옥마을을 음미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새로운 문화공간과 공간을 탐미하는 ‘관객’들의 새로운 모습이다. 과연 이 모습을 얼마나 법안이 담아내고 있었는가? <지역문화진흥법>이 담고 있는 핵심 의제 중 첫 번째는 이것이다.
▲ 대구 근대골목 투어 중 이상화 고택 앞 연극공연 모습(사진출처: 대구광역시 중구 골목투어 홈페이지)
<지역문화진흥법>은 지역문화진흥계획 등을 언급한 총칙과 지역의 생활문화(2장), 지역 문화진흥기반(3장), 문화도시·문화지구 지정(4장), 문화재단 설립(5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위계상으로 보면, 지역과 예술의 결합을 통한 새로운 지역(문화)의 창출은 문화도시·문화지구에 해당한다. 그리고 간접적으로는 지역문화진흥기반인 문화인력 양성 등에서 읽힌다. 그런데 과연 이걸로 지역과 예술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지역의 문화 현상을 담아낼 수 있을까?
보다 더 적극적으로 되려면, <지역문화진흥법>은 최소한 두 가지는 보장했어야 한다. 그 첫째는 이러한 지역과 예술이 결합하여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는 현상에 대해 ‘어떤 지원을 할 것인가’의 문제를 담고 있었어야 한다. 더불어 둘째, 관계된 부처나 관련법에 대한 조정 내용을 담고 있었어야 한다. 예컨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지역과 예술을 결합한 문화적 재생이 논의된다면, 이는 ‘지역 재생’을 총괄하고 있는 국토부와 관련법인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법> 등에 관련된 관계를 논의해 놓았어야 한다. 그러나 법은 모호한 ‘문화도시론’과 이전 <문화예술진흥법> 상의 ‘문화지구’ 제도만 규정해 놓았을 뿐, 도시 및 지역 재생과 이 법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설명해 놓고 있지 못하다.
둘째, <지역문화진흥법>이 갖는 두 번째 가치는 법명 그 자체에서 보이는 것처럼, ‘지역’에 관한 문제가 핵심으로 명기됐어야 한다. 즉, 지역이 갖는 자기 주도권과 결정권에 대한 문제를 얘기했어야 하고, 그건 관점하에 서술되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법은 거의 중앙정부 중심의 시각으로 되어 있다. 지역문화진흥체계를 구성하는 제1장을 보면, 그 관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법 총칙 제6조를 보면, 정부(문화체육관광부)는 지역문화진흥계획을 수립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같은 조 제4항을 보면, 이(중앙정부의) 기본 계획을 반영하여 지방자치단체가 그 ‘시행계획’을 수립하도록 되어 있다. 나아가 시행령 제4조는 “시도지사는 다시 시장·군수·구청장 등 기초지자체 장에게 시군구 시행계획을 짜도록 강제”하게 되어 있고, 시군구청장은 ‘시도의 지역문화진흥 시행계획’에 근거하여 시군구 시행계획을 짜도록 되어 있다. 그 어디에도 자율권이 없이, 광역은 정부가 짜놓은 계획에 의해, 기초는 광역이 짜놓은 계획에 의해 그 ‘시행계획’을 수립하도록 되어 있을 뿐이다.
과연 이런 상태에서 (기초)지자체의 자율권은 있는 것일까? 중앙집중형 문화를 바꿔 지역 단위, 지역 기반의 문화를 만들어보자는 게 지역문화진흥법의 취지인데, 과연 이렇게 정부 입장에 기초한 계획만 만들어도 되는 것일까? |
▲ 2014년 3월 6일 개최됐던 ‘지역문화융성 대토론회’ 모습(사진출처: 문화체육관광부 홈페이지) |
혹자는 이게 (기초)지자체를 압박하는 힘이 될 것이고, 수준이 떨어지는 기초보다는 중앙정부가 이끌어 계획을 잘 만들도록 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기초를 압박하는 수단을 만들고자 했다면, 각 (기초)지자체별로 ‘의무적으로’ 문화진흥계획을 수립하도록 했어야 하고, 정부가 예산 등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나섰어야 한다. 그래야만 지역이 책임감을 갖고 문화계획을 수립할 것이며, 이 과정이 반복되어야만 지자체의 수준도 올라간다. 어떻게 권한 없이 책임이 생기며, 자율성에 대한 경험 없이 자기결정권과 계획력이 발전하길 기대할 수 있을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진정한 지역문화 번영을 위한 제언
요는 정부가 더 많은 책임을 지고, 지역 문화 발전에 대한 의지를 (기초)지자체가 갖도록 하는데 집중했어야 한다는 게 나의 주장이다. 정부는 문화진흥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기초)지자체가 이에 응하도록 하는 데 주력할 것이 아니라, 관련 부처와의 협의를 갖고 더 많은 지역이 예술을 통해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거듭나는 데 주력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사업이 보다 효율적으로 추진되도록 관련 예술가의 육성 및 새로운 기회 제공 등에 노력해야 한다. <지역문화진흥법>은 정부가 구성해 놓은 지역문화진흥체계 내 지자체가 들어오도록 하는 법이 아니라, 지역이 자기 주도권을 가지고 문화를 형성하며, 중앙정부가 이를 지원하는 법체계로 구성됐어야 한다는 얘기다.
때문에 지금 당장 법안 개정이 어렵겠지만, 그래도 개정이 된다면 난 법을 좀 더 가볍게 만들었으면 한다. 우선, 지역 중심의 문화진흥체계에 대한 고민을 담았으면 하며, 이를 중앙정부가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을 법에 담았으면 한다. 그리고 다른 부처와 협력을 통해 더 많은 사업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관련 법에 대한 관계 설정을 해 놓았고, 잘하고 있는 지역들에 포상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 각 자자체가 좀 더 적극적으로 지역 문화를 육성하는 사업에 나설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를 지원할 수 있는 인력과 재원에 대한 얘기를 분명히 밝히고, 중앙정부가 이를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도 규정했으면 한다. 그래야만, 실력 있는 예술가와 문화기획자들이 육성되어 지역을 혁신하고, 지역과 결합한 새로운 유형의 예술을 발전시켜가는 주체가 형성되지 않겠는가?
21세기는 창조경제 시대라 말한다. 이 창조경제란 특화된 지역, 이른바 ‘뾰족한 산’을 필요로 한다고 한다. 지역이 아주 매력적인 곳으로 변해야 (창의적인) 사람을 끌어들이고, 그런 매력적인 지역을 많이 가진 국가가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라도 지역은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그 주체는 언제나 한결같이 지역이다. 바로 지역(주민)이 스스로 결정하고 자기문화권을 가지려는 노력을 할 때, 지역은 혁신되는 것이다. 바로 그 지역 중심의 결정권, 문화권을 가지려는 의지와 노력을 갖도록 하는 것! 그것이 중앙정부의 일이 아닐까?
늘 안 된다고 하지 말고, 새로운 가능성을 가진 주체로 지방(지자체)을 바라보고 정부가 가진 기능을 혁신할 때, 진정한 지역 문화는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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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링크 지역문화진흥법 시행령 [시행 2014.7.29.] [대통령령 제25509호, 2014.7.28., 제정] 지역문화진흥법 시행규칙 [시행 2014.7.29.] [문화체육관광부령 제175호, 2014.7.29., 제정] 관련기사 보기 [이슈] 지역문화진흥법-지역문화재단의 역할과 위치와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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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라도삼은 중앙대 신문방송학과와 동대학원 신문학과에서 석․박사과정을 마쳤으며, 2001년부터 현재까지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서 문화정책을 연구하고 있다. 지역발전위원회 창조특위 위원, 문화체육관광부 '문전성시사업 컨설팅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교류협력강화소위 위원, 서울시 서울형 사회적기업 실무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한 바 있으며,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계획연구소의 객원연구원으로 활동 중이기도 하다. 이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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