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구글이 선정한 최고의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Thomas Frey) 다빈치연구소 소장은 2030년까지 20억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예측하였다. 이런 미래학자의 조언에 따라 한국고용정보원에서는 ‘인공지능 시대’에 살아남을 직업을 연구했는데, 그중 1위부터 7위까지가 모두 예술 관련 직업으로 1위는 화가 및 조각가, 2위는 사진작가 및 사진사, 3위는 작가 및 관련 전문가가 차지하였다.
그런데 그 기사가 나오기 며칠 전에는 미술·사진·문학 등에 종사하는 예술인의 연 수입이 1천만 원에 불과하다는 문화체육관광부의 보도자료가 있었기 때문에 예술인에 대한 찬란한 전망이 와 닿지 않았다. 예술 관련 직업은 창의성과 감성을 요구하는 분야로 2020년 자동화로 대체되는 시기에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 시점이 채 5년이 남지 않은 이 순간에도 천만 원 미만의 연 수입으로 결혼도 하고 아이도 키워야 하는 직업인으로서의 예술가들이 주변에 가득하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예술가 대부분이 배고픈 직업이라는 건 모두 알고 있지만, 과거와는 환경이 다르다. 이전에 예술분야의 창업은 공공지원이 일반적이었고, 따라서 예술적 성취만으로도 조직을 느슨하게 운영하면서 고유의 목적 사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부 기금 지원이 지속적으로 줄어들면서 비영리, 임의 단체 형태로는 살아남기 어려워졌고, 자체적인 수익 창출을 고민하는 예술 법인 혹은 단체 형태의 스타트업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창업을 권하는 사회이기도 하고, 또 예술 전공의 특성상 전공을 살려 취업할 수 있는 자리가 적다 보니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문화예술 스타트업을 고민하는 친구들이 연락을 한다.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지난 10년간 스타트업을 하면서 거북이처럼 기어왔던 나의 고백이기도 하며, 이렇게 버티다 보니 주변에 소소한 조언을 해주면서 함께 방법을 찾아가고 있는 주변 친구들의 문화예술 스타트업 분투기이기도 하다.

사례1. 500원으로 만든 법인

사례 1) 영국에서 공연예술 석사까지 마치고 온 친구 A는 지금 고민 중이다.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서 박사를 시작해야 할지, 아니면 잘되리라는 보장이 ‘더’ 없는 창업을 해야 할지 말이다. 그래도 일단 석사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으니 영국에서 함께 공부하며 꿈을 키웠던, 전공과 상관없이 능숙한 영어 실력 덕에 취업한 친구들과 스타트업 준비를 해보기로 했다. 스타트업 콘텐츠는 지난 20대 내내 공부하고 경험했던 예술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공연 콘텐츠다. A는 ‘회사’가 되어야 지원도 하고 제안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자본금 500원으로도 며칠 안에 설립이 가능한 ‘법인’을 설립했다. 문제는 이때부터이다. 덜컥 법인격이 되었지만 지원사업 어디에도 A와 창업 멤버들의 생활고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지원금은 없었다.

예술 창업을 지원하는 곳은 고용노동부의 문화예술 사회적기업 관련 프로그램 혹은 문화체육관광부나 미래부 산하 창업 지원 기관의 지원 프로그램들이었다. 프로그램은 크게 아래 세 가지로 유형을 나눌 수 있다.
1) 대표자나 임원의 급여를 제외한 고용인원의 인건비와 사회보험료 지원
2) 사업자금(시설/운영) 융자 형태의 재무적 지원과 법인세 감면 등의 세제 혜택
3) 판로 개척 등 사업을 위한 경영 컨설팅 (마케팅, 회계, 법률 등 전무 컨설팅 포함)

당장 사무실도 없는 A에게는 인건비 지원이나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1, 2번은 소용이 없었다. 사무실이나 투자 연계를 지원해 주는 창업 프로그램도 있었지만, 이는 대부분 순수 예술이 아닌 IT 기술과의 결합이나 관광 등의 결합을 통해 수익 모델이 확실한 경우였다. 이런 ‘창조경제’ 스타트업 프로그램에 지원하려면 최근 유행하는 VR(가상현실)이 접목된 공연이라도 새로 기획하라는 조언을 받았다. 물론 이 분야에 아는 게 없으니 당장 VR 콘텐츠 구현이 가능한 개발자를 찾으려고 했지만 1분에 1,000만 원이라는 제작 견적을 받았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3번 컨설팅을 받으려고 했지만 실제 문화예술에 대한 사업 경험이 없거나 대부분 일반적인 사업계획서를 양식을 주고, 이것을 같이 채워 나가자는 앵무새 같은 얘기만 하는 컨설턴트들을 만났다.

사업이라는 건 수익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걸 안다. 하지만 예술 시장이 실패한 분야라는 평가가 괜히 나왔겠는가? 일반적인 기업과는 달리 문화예술 스타트업은 창업자의 역량(특히 본인의 예술 전공)과 밀접한 사업 아이템이 나온다. 일단 창업팀의 예술적 성취와 유대를 통해 문화예술 사회서비스를 제공하여, 대중의 예술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그 거시적인 목적이다. 물론 이에 따라 고학력 문화 예술인들의 소득을 개선하고 지역 발전에 기여한다는 부수적인 효과도 늘 같은 레퍼토리이다. 물론 A의 사업계획서 역시 첫 장은 이 문구로 시작한다. 이게 사실이니까. 그리고 정말 그렇게 하고 싶으니까!

이렇게 기존과 미래시장의 기회를 보고 아이템과 수익모델을 만들어 창업을 시작하는 일반적인 벤처와는 달리 문화예술 스타트업 기업가는 어릴 때부터 꿈꾸던 것을 어쩔 수 없이 이어나가기 위한 ‘수단’으로 창업을 한다. 따라서 이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할 수 있는 동일한 전공을 가진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창업팀이 된다. 이때 가장 어려운 점은 창업 후 돈을 벌 수 있는 모델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례2. 상업 기획자와 순수 예술가 간 온도차

사례 2) 친구 B는 모 대기업 신사업 팀에서 5년을 다니다 퇴직하고, 아트 콜라보레이션 에이전시 사업을 올해 1월부터 시작했다. 물론 퇴직 전부터 다양한 전시를 보러 다니고, 아트 상품 제작을 위해 1년 전부터 시각예술 작가들과 준비를 해왔다. 이전 회사에서 배웠던 대로 수익 배분에 대해 작가들과 논의하고, 공급자와 유통사로서 명확하게 계약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런 현실적인 논의가 시작되면 대부분의 작가들은 실제 작품이 시장에서 판매된 적이 없기에 ‘시장가’에 대해 객관적으로 이야기하지 못했고, 갤러리와의 독점 계약에 대한 안 좋은 경험 때문인지 공식 계약서를 두려워하기도 했다. 심지어 공급받기로 한 날짜에 맞춰 작가에게 연락하면 전화가 꺼져있기도 하였다. B는 일하면 할수록 상업 기획자와 순수 예술가 사이의 온도 차가 크다는 느낌을 받았다. 예술 작가와 몇 번의 트러블 후에 정색할만한 계약서 대신 술자리에서 허심탄회하게 사업을 구상하고, 일정에 대해서도 여유를 가지기 시작하면서 일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 후에 발생했다. 순수 예술을 부가가치 높은 콘텐츠로 인정하지 않는 유통 파트너들을 만나면서부터였다. 예술가가 참여하여 건물에 설치 작업을 할 때는 인테리어 업자와 비교 견적이라는 산을 넘어야 했고, 힘들게 소비자 가격을 낮춰서 만든 아트 상품은 50%의 유통 마진을 내야 했다.(국립현대미술관 내 갤러리 아트존 입점 기준)

현재 국내에서 예술 관련 스타트업을 한다는 것은 시장과 타협한 ‘제품화된 작품’을 만들겠다는 결심이다. 사실 아이디어 싸움도 아니고(창의적인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며, 비슷비슷하게 어디에선가 이미 시도 중이다)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는 것이 관건이다. 해외처럼 다양한 롱테일 시장이 있어서 바로 돈을 벌 가능성도 작고, 일반 스타트업처럼 각 시리즈별 투자와 scale up을 반복하다가 M&A나 기업공개(IPO)가 되는 exit의 사례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예술 스타트업을 위한 제언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예술가들에게 제공했던 복지형 지원 정책은 보완되어야 한다. 결국 사업으로써의 역할을 기대한다면 문화예술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예술가와 타 분야의 전문가가 신뢰를 통해 협업할 수 있도록 하고, 시장에서 유통될 수 있게 하는 것이 초점을 맞춰야 할 때이다. 이를 위해서 아래 세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최근 국내외 일반적인 스타트업의 진원지는 코워킹스페이스(co-working space)이다. 여기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팀이 생성되고, 자금이 연결되며 초기 사업을 시작한다. 기존의 예술재단 사업의 작업 레지던시가 아닌 시내 중심에서 자연스럽게 예술가와 이를 중심으로 사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전문가들이 협업할 수 있는 판 – 문화예술 스타트업 코워킹 스페이스가 필요하다. 관광이나 IT기술과 연계되는 시장성 있는 문화콘텐츠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200명이 넘는 순수 예술가와 패션 기획자가 모여 있는 런던의 콕핏 아트(COCKPIT ARTS) 콕핏 아트에 입주한 사운드 아티스트와 디자이너가 함께 만든 원단

▲ 200명이 넘는 순수 예술가와 패션 기획자가 모여 있는 런던의 콕핏 아트
(COCKPIT ARTS)

▲ 콕핏 아트에 입주한 사운드 아티스트와
디자이너가 함께 만든 원단



순수 예술가뿐만 아니라 IT 개발자, 기획자가 입주하여 협업이 일어나고 있는 런던 라임워프(LIME WHARF) 라임워프의 입주기업 TECHNOLOGY WILL SAVE US. 악기를 만드는 DIY KIT를 소개해 주고 있다

▲ 순수 예술가뿐만 아니라 IT 개발자, 기획자가 입주하여 협업이 일어나고 있는 런던 라임워프(LIME WHARF)

▲ 라임워프의 입주기업 TECHNOLOGY WILL SAVE US. 악기를 만드는 DIY KIT를 소개해 주고 있다



300여 명의 예술 작가와 기획자의 코워킹스페이스, 샌프란시스코 ae ▲ 300여 명의 예술 작가와 기획자의 코워킹스페이스, 샌프란시스코 ae

둘째, 융합이라는 게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닌 만큼 위 제안처럼 예술 관련 종사자이 자연스럽게 모여서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판’을 깔아 주는 게 우선일 것이다. 그 다음은 유통될 수 있는 에코 시스템을 제공해야 한다. 작년 성공적으로 뉴욕 증시에 상장한 엣시닷컴(etsy.com)은 엣시 이코노미(etsy economy)라는 용어를 탄생시킬 정도로 Art&Craft 플랫폼의 역할을 하고 있다. 기능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여 공급자와 수요자를 모은 것이 아니라, 상품성 있는 작가들과 아트상품을 꾸준하게 온·오프라인에서 양성해왔다. 2008년 당시 엣시(etsy)와의 협업을 위해 샌프란시스코의 작은 사무실을 방문했을 당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엣시의 기준(즉, 중저가 예술 시장 분석 및 판매가 가능하도록 소비자의 요구사항을 정리하고 이에 맞춰서 작가들에게 작업을 가이드하는 것)에 맞는 Art&Craft 작가들에게 광고료나 입점료 혜택을 줄 뿐만 아니라 엣시 사무실의 한쪽을 내어 작가들의 작업 공간이나 소비자에게 프로모션을 할 수 있는 워크샵 공간으로 무상 제공하고 있었다.



예술 스타트업의 제품을 판매하는 엣시닷컴 ▲ 예술 스타트업의 제품을 판매하는 엣시닷컴

공연이나 전시를 할인해주고, 작품 구입비를 보존해 주는 소비 촉진의 정책은 결국 소비자에게 아주 낮은 가격으로 높은 퀄리티의 문화예술 콘텐츠를 소비하거나 무료로 수혜받는 것을 익숙하게 만드는 셈이다. 물론 대중의 예술 감상 교육 혹은 저변 확대에는 부합하지만 이미 많은 곳에서 무료 전시와 공연 초대장을 구할 수 있는 걸 보면 이제는 공급자가 자생할 때까지 판로를 개척해 주고, 보조해 주는 형태에 집중을 하는 정책이 더 필요한 시기이다. 예를 들어 예술 콘텐츠 유통 기업에 대한 지원을 하거나 혹은 좋은 유통 채널의 진입 장벽을 낮춰주는 것이다.

사실 지원을 받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예술가답게! 정말 순수하게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툭 터놓고 예술가도 가장이 되고, 삶을 영위하는 직업인이 되어야 한다. 마침 사회 역시 그렇게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예술가들이 필요하다. 재정적인 지원 외에 함께 창의적인 문화를 만들어 가고, 사회 서비스로의 역할을 기대한다면 오늘도 어디선 치열하게 대중과 만나고 싶어 고민하는 문화예술 스타트업을 수혜자로 보기 보다는 ‘전략적 파트너’로서 손을 잡아 주자.

허미호필자소개
허미호는 이화여대 경영학과와 카이스트 경영대학원에서 사회적기업을 전공했다. 선교사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35개국이 넘는 나라를 혼자 여행하며 삶에서 예술을 즐기는 사람들을 만나고, 99%의 예술을 동경하게 되었다. 야후 코리아에서 글로벌 플랫폼을 국내에 적용하는 PM으로서 대중과 콘텐츠를 잇는 플랫폼을 경험하였고, 이후 2007년 문화예술 사회적기업 <위누>를 창업하여 사회 이슈를 풀어내는 전시, 축제 및 온라인 예술 경험 서비스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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