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서울아트마켓(PAMS)이 10월 7일부터 1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국립극장, 국립극단에서 열렸다. 올해는 'Cross+Contemporary, Continent, Culture(3CC)'라는 주제로, 서울아트마켓은 동시대의 대륙 간 문화적 이질성을 뛰어넘어 창조적인 협업의 플랫폼으로 거듭나고자 했다. LIP 프리젠테이션은 서울아트마켓에서 국제공동제작의 파트너를 찾는 프로그램으로, 2013년 LIP 프리젠테이션에서는 한-북방아시아, 한-프랑스, 한-호주 등의 공동제작 작품을 포함한 총 9개 프로젝트가 소개되었다. / 2013 PAMS 특집  ① 포커스 세션1-아시아 문화예술 파트너십:경계 없는 협력 / ② 포커스 세션2-아시아 문화예술 리더십:아시아적 리더십 / ③ LIP(국제협력파트너찾기) 프리젠테이션

바람에 떨어진 나뭇잎이 머리에서 몸을 타고 발밑으로 떨어진다. 이리 비틀, 저리 살랑거리는 잎을 담으려는 손짓은 춤이 되고 몸이 일으키는 파동은 리듬을 부른다. 밸리댄스는 그런춤이었다. 공연예술은 기억 너머에 자리했다가 손끝으로 빠져나오는 호흡을 풀어 누군가의심장을 움켜쥐고, 어떤 이가 떨군 눈물을 올올이 엮어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몸을 얘기하고 몸이 품은 역사를 오늘의 화법으로 사람들과 나누겠다고 한다. 서울아트마켓 9년,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고 했다. 그래서 내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 내 작품을 위해 기꺼이 손 내밀어줄 누군가에게 공개적으로 구애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바로 ‘국제협력파트너찾기(LIP, Looking for the International Partners, 이하 LIP)’ 프로그램이다. 그간 너와 나의 생각이 만나 웃고, 울고, 끌어안으며 나이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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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에는 열정과 우정이, 소통과 확장에는 의지가

올해 LIP의 두드러진 특징은 한-호주 공동작업 결과물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것, 이는 2012년 한-호주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호주문화예술위원회(Australia Council for the Arts)와 주한호주대사관이 적극적으로 나서 양국 예술교류에 집중 투자하도록 한데서 기인한다. 이제 이들을 무대에 올릴 파트너를 찾으면 이국 문화 간 조화와 균형을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다른 해석을 내놓을 누군가가 나타나 왔던 길 반대편으로 돌아가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적극적 의지가 만들어낸 특정 계기를 기점으로 두드러지게 집중적인 문화 협력이 이루어졌고, 이는 분명 어떤 형태로든 창작뿐만 아니라 예술과 교류 전반에 적잖은 자극이 되었다는 것이다. 매 10년 주기로 국교 수립을 기념하는 나라는 수없이 많지만 공공과 민간 문화 주체가 대규모로 나서 기념하는 나라로는 프랑스와 일본, 호주 등을 대표적으로 꼽아야 할 것 같은데, 지난해 호주와의 수교 기념에는 특히 민간의 자발적 참여가 두드러졌다.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부르지만 인류는 신화와 제의를 공유한다. 생긴 모양과 양식이 달라도 세상 어디에서나 접신 의식을 통해 사람들은 치유 받았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인간의 몸을 재료로 연극, 음악, 춤이 나왔다. 그래서 상이해보이는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이 통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무의식을 지배하며 흐르는 신화와 리듬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양국 아티스트들은 고대 제의 의식에서 모티브를 찾았다. 특히 한국 전통이 강하게 동기를 부여했음을 밝힌다. 낯선 풍경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앵글 너머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겠다는 사람도 있다. 칭기즈칸의 후예들과 사막 모래 바람을 씹으며 사진을 찍고 연주하다가 훌쩍 떠나기를 몇 년. 이제는 사막에 몸 던지겠다는 사람들에게 좀더 넓게 문 열어주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프랑스 연출가 파트리스 셰로 ▲▲AMRITA Performing Arts와 포스트 에고 무용단의 프리젠테이션

▲프랑스 연출가 파트리스 셰로
▲▲암리타 퍼포밍 아츠와
포스트 에고 무용단의 프리젠테이션

파트너를 찾습니다

오데옹 유럽극장(Od&eacute;on-Th&eacute;&acirc;tre de l&lsquo;Europe)의 <당신 뜻대로(As You Like It)>


인생 참 알 수 없다지만 올 LIP는 발표 바로 전날 저녁 과로로 숨진 연출가 파트리스 셰로(Patrice Ch&eacute;reau)를 위한 오마주로 시작했다. 더는 공연을 할 수 없기에 발표가 무의미하다는 발제자에게 &ldquo;그를 기리며 동영상을 보자&rdquo;고 권했다. 그리고 그가 땀 흘리고 숨 쉬었던 무대 뒤 어느 한 자리에서 흔적을 훑으며 치열했을 연출가의 삶과 이제 볼 수 없는 그의 작품을 역사에 흘려보냈다.

암리타 퍼포밍 아츠(AMRITA Performing Arts)와 포스트 에고 무용단(Post Ego dance company)의 <프레이즈 II 수평의 삶(&rdquo;Horizontal Life&rdquo; Phase II)>


어느 열성적인 미국인이 있다. 프레드 프럼버그(Fred Frumberg). 국내 공연계에도 꽤 알려진 그는 16년간 캄보디아에서 미국에 법적 자격을 갖고 있는 비영리 기관을 설립해 캄보디아에 현대무용을 도입하고 협력 아티스트를 찾아 캄보디아 무용의 국제무대 활동 영역 확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와 협력했던 일본 안무가는 아시아에서, 한국 안무가는 한국에서, 그는 벨기에에서 캄보디아 현대무용의 개성과 비전을 전한다.


메타기획컨설팅(METAA)의 <유목창작여행 프로젝트(Nomadic Artists&rsquo; Journey)>


메타기획컨설팅은 가수 하림, 사진작가 성동훈을 비롯해 다양한 예술가들과 함께 사막을 유랑했다. 물론 유목민들의 생활을 재연할 수는 없었을 게다. 다만 지금을 사는 이들의 일상에 동참해 그것을 기록으로, 작품으로 남기며 어쩌면 우리 조상 중 누군가와 형제였을 그들과 목소리를 합하고 몸짓을 모아 즉흥으로 공연하며 오아시스를 찾고 소소한 것에 감사하는 여정이었으리라. 이제 관객들과도 감동과 여운을 나누고자 한다.


오스트레일리안 댄스 시어터(Australian Dance Theatre)의 <서카디아(Circadia)>


우리 관객의 취향은 예술적 고려와 상관없이 유럽을 향해 있었으니 호주 공연예술이 눈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그러나 청키 무브(Chunky Move)와 루시 게런은 분명 호주 아티스트다. 할리우드를 주름잡는 멜 깁슨(Mel Gibson)도, 니콜 키드먼(Nicole Kidman)도 호주 출신이다. 이렇게 호주 예술은 드러나지 않게 요소요소에 자리하며 우리 눈과 귀를 자극하고 있었다. 곧 창립 50주년을 맞을 오스트레일리안 댄스 시어터는 영국을 비롯해 세계무대를 놀라게 한 고유의 독특한 춤언어를 <서카디아(Circadia)>로 한국 관객들과도 나눌 것을 희망한다.


루디 컴퍼니와 니하이(Kneehigh) 극단의 <겨울이 창문에게(From Winter to Window)>


<겨울이 창문에게>라는 제목, 왠지 낯설다. 어법에도 전혀 맞지 않으니 영어 표기를 찾아봤으나 . 결국 세련되지 않은 의역이라 미루어 짐작하며 발표를 청했다. 작업을 주도한 루디 컴퍼니와 호주 니하이(Kneehigh)은 관람 장소 및 방법의 변화를 의도한다고 밝힌다. 또한 비디오아트, 음악, 무용 분야 예술가들이 장소에 맞는 각각의 스토리텔링으로 관객들과 만나며 실험과 발전을 거쳐 2015년 초연할 예정이다. 애인에게 속삭이듯 겨울은 창문을 노크하고 있었다.


시너지 타악(Synergy Percussion)과 택오즈(TaikOz)의 <파 템플 프로젝트(Far Temple Project)>


북소리는 심장 리듬과 가장 가깝다고 한다. 그래서 좋은 연주자를 만나면 북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호주의 타악 그룹 시너지 타악과 택오즈는 한국 무속, 시조, 판소리 등과의 음악적 교류를 원했고, 국내 노름마치를 위시해 다양한 팀들과 협연하며 한국 장단을 흡수해서 &lsquo;울드럼 페스티벌&rsquo;, &lsquo;통영국제음악제&rsquo; 등에서 공연한 바 있다. 한국 타악의 새로운 영역에까지 서슴없이 들어가보겠다는 것이 이들의 희망이다.


마더보드 프로덕션(Motherboard Production)의 <대홍수(Deluge)>


장기 레지던스에서 인연을 맺은 아티스트와 머리를 마주했다. 그리고 통제할 수도 저항할 수도 없는 자연의 무서운 섭리 앞에 맨몸으로 나섰다. <대홍수>를 만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다. 그래서 고대 신화 속 신들을 불러내 노래와 춤으로 의례를 올린다. 제작자 마더보드 프로덕션은 문화, 생각, 언어 사이의 틈을 찾아 이를 경험하도록 유도해 관객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하는 등 사회를 반영하는 문화 체험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폴리글롯 시어터(Polyglot Theatre)의 <높디높은 하늘(How High the Sky)>

호주 폴리글롯 시어터는 1세 미만 영아들과 부모를 위한 체험 공연 <높디높은 하늘>을 소개하고자 한국을 찾았다. 벨기에, 영국, 덴마크 등 유럽 아동 극단들로부터 자료를 받아보고 적잖이 놀랐던 것이 10여 년 전의 일이다. 영아용 프로그램에서 연령별로 대상층을 세분화해 작품을 제안하니 처음부터 대화는 쉽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국내 영유아용 공연물이 길고 깊은 역사를 가진 유럽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하는 것은 무리다. 따라서 이미 성과를 내고 있는 이들의 결과를 발전 계기로 삼아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아시아나우(AsiaNow)와 렉스 온 더 월(Legs on the Wall)의 <사물놀이 이야기(The Tale of Samulnori)>


서커스는 캐나다, 애크러배틱은 프랑스를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도 호주와 만나 사물놀이판 애크러배틱 서커스 가족극을 가지게 되었다. 이번에 아시아나우와 렉스 온 더 월이 내놓은 것은 그림책 <사물놀이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가족 관객을 위해 만든 서커스 음악극이다. 여기에 한국 전통 애크러배틱과 미디어아트를 접목했다고 하니 듣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조합이다. 전통이 현대적 소통 방법을 찾고 국경 너머 관객들이 독특한 이국 문화의 매력에 박수 친다면 또 하나의 멋진 작품이 세계무대를 누빌 것이라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 LIP 쇼케이스로 선보인 <Kekkai: beyond fixed boundary>
▲ LIP 쇼케이스로 선보인
< 케카이: 한정된 세계를 넘어>

그리고 극단 노뜰(Nottle Theatre)과의 작업 결과, <케카이: 한정된 세계를 넘어(Kekkai: beyond fixed boundary)>를 쇼케이스로 보여준 토니 얍 컴퍼니(Tony Yap Company). LIP가 끝나고 컴퍼니 매니저 캐스 파파스(Kath Papas)가 찾아왔다. 동영상까지 들고 와 조언을 구하겠다며 나를 붙잡고 놓지 않는다. 결국 함께 작업한 아티스트와 충분히 상의해 누구를 만나보라 하며 돌아섰는데, 문득 서로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놓은 새로운 다리가 어쩌면 우리를 볕 밝고 소담한 정원으로 이끌어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올 LIP에서는 열정이 만났고, 그래서 함께 한 짧은 시간이, 그들의 땀과 노력이 알알이 맺힌 곳으로 우리를 이끌어 박수 치며 기뻐할 수 있게 해줄 것이란 기대로 설레게 한다.


관련자료

[해외동향] 2013 요코하마 공연예술미팅(TPAMiY)
[PAMS 2012 특집] ③ 국제협력파트너찾기 LIP(Looking for International Partners) 리뷰

김신아 필자소개
김신아는 서울세계무용축제, 다수의 국제교류 프로젝트 및 공동제작, 디지털 댄스 페스티벌, 공연저널리즘 서울포럼을 비롯해 아프리카․아랍문화축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2011년까지 서울세계무용축제 사무국장으로 재직했으며 현재 프리랜서 아트 프로듀서로 무용 및 음악 국제교류 프로젝트를 기획, 운영하며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등 심사위원, 매체 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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