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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문화예술계 진단
사회 부산은 청년문화의 수도를 지향한다. 청년문화의 활성화시키고, 이를 지역 문화발전의 동력으로 만들어 지속적인 문화도시로 나아가고자 한다. 이번 좌담회에서는 부산문화예술의 ‘지속성’ 문제해결을 위한 과제를 다루어 보고자 한다. 먼저 청년문화와 부산비엔날레, 대안공간 이슈를 중심으로 부산문화예술의 특색 및 현황부터 이야기해보자.
김건우 청년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다. 청년문화가 보통 ‘젊은 사람들이 하는 문화’, ‘주류가 아닌 비주류’, ‘저항문화’로 간주된다. 이는 과거 저항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386세대의 시각을 반영한 접근이 아닐까 싶다. 과연 그러한가. ‘지금’의 ‘젊은 문화’에서는 과거에 비해 저항문화적인 요소는 적다. 오히려 서브컬처라는 관점으로 접근했으면 한다. 이런 맥락에서 재미난 복수와 아지트는 청년문화라는 가치를 가지고 개별적으로 이루어지던 인디/비주류/서브컬처 활동의 네트워크를 만들어가고 있다. 거리 공연과 상시적 행사를 열고 있다. 특히 2011,2012년 ‘회춘프로젝트’가 청년문화를 널리 알렸다고 볼 수 있다. 부산문화는 교류가 활발한 항구라는 토양 위에 거리문화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과거 인디씬이 현재까지도 남아 있으며 마니아적인 인프라를 가지고 있다. 최근 힙합 문화에도 부산 출신의 아티스트가 많다. 부산문화의 이러한 특징이 현재의 청년문화에 뿌리내리고 있다.
김성연 부산지역 미술계를 보면 인프라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부산비엔날레, 아트페어와 같은 큰 규모의 미술행사가 있고, 비엔날레관인 제 2시립미술관이 건립될 예정이다. 외형적으로는 나아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양성과 실험성이 결여된 내부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작가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환경이 소극적인 분위기다. 가령, 대안공간 반디가 그만 둘 시점인 2011년에 작가를 발굴하고 실험적인 계획을 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반디라는 공간이 젊은 작가들과 대외적으로 미술계에서 하는 고유의 역할이 있었다. 공간이 사라지면서 또 다른 대안이나 시도가 나오길 기대했지만 아직은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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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섭 국내에서는 비엔날레 하면 전시의 키워드가 난해하고 다소 이론적으로 접근한다는 평가가 많았다. 주제뿐만 아니라 작품도 어려워 관람객들이 현대미술, 특히 비엔날레는 접근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2010년부터 ‘도시 안에서 움직이는 비엔날레’를 변화의 키워드로 삼고 현대미술을 대중화 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2012년 비엔날레 ‘배움의 정원’에서는 대중화의 방안으로서 전체 전시를 시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결과보다는 과정인 ‘배움’에 집중했다.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배움위원회에 참여하는 시민, 기획자, 작가가 생각을 공유하고 과정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비엔날레로 이해했다. 이 위원회에 참여한 시민위원들은 작품활동 참여를 넘어 전시와 마무리 관람객과의 전시의 매개 역할까지 해낸 것은 중요한 의미로 볼 수 있다.
사회 문화예술 현장에서 느끼는 실질적인 문제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점에 대해 현장의 목소리는 어떠한가.
김건우 최근 부산지역에서는 '인디’가 주목받고 있지만 접근 방식이 잘못 되어있다. 제도권에서는 뭔가를 해준다고 하는데 도리어 방해가 된다. 제도권에서는 공간을 먼저 만들어놓고 청년문화 기획가들에게 그 공간을 쓰라고 한다. 정작 청년문화를 하는 사람들의 의견이나 기획은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물리적 공간만 만들어 놓고 활동하라고 요구한다. 이렇게 하면 활동공간도 적합하지도 않을뿐더러 활동가들 역시 힘 빠지고 심리적인 박탈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청년문화의 젊음을 상품이나 ‘싼’ 노동력쯤으로 여기는 인식이 팽배해 있는 것 같다. 아지트의 경우 위탁운영 제안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제도권으로 들어가면 독립성이나 자율성, 저항성을 잃기 쉽다. 문화는 지역에 발붙이는 게 중요하다.
김성연 관주도의 프로젝트로 시작되는 게 아닌, 주민에게서 나온 아이디어나 민간 차원에서 지역의 독립적인 기획자들이 밑에서부터 만들고 정책이 그걸 도와주는 게 중요한데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리고 중요한 활동들을 해 온 기존 단체들도 항상 존폐의 위기와 박탈감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미 자발적으로 지속되어온 활동들을 잘 보살피면서 동시에 새로운 시도들이 싹 틀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상섭 부산은 아무래도 국제영화제를 비롯해 영상, 영화분야가 산업과 연관하여 비중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다른 문화예술 분야에 지원이 좀 취약하다고 보여질 수 있다. 순수예술이나 창의적 공간에 좀 더 지원된다면 괄목할 만한 발전이 있지 않을까? ‘아지트’나 ‘반디’는 부산 문화예술의 거점이다. 특히 ‘반디’는 비엔날레 출품 작가들이 이곳에서 시작하거나 레지던시 작가들이 해외에 픽업되는 경우도 많았다. 미술계에서 볼 때, 반디가 문을 닫은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순환가능한 부산문화생태계 조성
사회 최근 진행되고 있는 공모사업이 부산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는가. 이러한 프로젝트 사업이 지속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김건우 문화 공모사업은 과정이 중요한데 공공기관이나 재단의 공모사업들은 결과물을 내야한다는 압박이 크다. 큰 예산의 사업이 생기면서부터 결과물을 남겨야한다는 압박이 있고, 성공을 위해서는 스타급 기획가가 참여해서 대중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 반면 활동가들의 자발적 프로젝트는 그런 압박감이 없다. 네트워크를 만들고 신뢰를 쌓는 게 좋았고, 재미난 실험을 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 지금은 그런 자발적 프로젝트가 거의 없다. 프로젝트 규모가 커질수록 힘들다. 예산을 써야하는 항목과 비율이 정해져 있고 인건비는 제대로 쓸 수조차 없다. 심지어 프로젝트를 마친 후 그것을 담을 수 있는 문화공간이나 역량이 없어 지속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작은 공간과 아티스트, 기획자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문화적인 잠재력을 키워갈 수 있는 그릇을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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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연 ‘잘 키운 기획자 하나 열 작가 안 부럽다’는 말을 많이 한다. 프로젝트나 단체의 지속성 이전에 기획자들의 생존권 문제를 이야기 하고 싶다. 나 또한 열정으로 일을 했지만 후배들에게는 쉽게 권하지 못한다. 기획자 인건비를 지급할 수 있도록 지원비 활용 범위를 넓히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기획자 자신에 대한 보상을 못 받는 상황에서 사업이나 다른 작가만을 지원해야 하는 모순된 상황이 일어난다. 하지만 정책과 지원은 양날의 검이다. 특정 사업에 정책이 강하게 작용해 쏠림현상이 생기고 여러 단체들은 지원을 받기 위해 그 사업에 참여하기도 한다. 이벤트 위주의 사업과 그 사이에서 소신 가지고 활동 하는 아티스트나 기획자는 소외될 수밖에 없다. 기획자, 공간, 단체가 자발적이라면 기금이나 정책과 무관하게 자신의 활동을 지속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지원 없이 하기에는 힘든 부분이 많다. 당연히 기금의 도움이 크지만, 일정부분 자율성이 제한받거나 결과물에 대한 압박이 생긴다. 틀을 정해놓은 상태에서 해보라는 게 아니라, 정책과 다른 맥락이라 해도 독립성을 보장하면서 지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상섭 기획력의 부재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문제는 관 주도의 공공예술 사업이 창작자들을 제약하고 있다는 점이다. 청년문화 사업을 보자. 기존의 다양한 활동들이 청년문화로 묶여 사업화 되고 전체적인 틀이 정형화 되면서 결과에 대한 압박이 생긴다. 예산활용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예산이 보다 유연하게 사용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사업 자체에만 지원되는 실정이고, 기획자와 스텝에게는 지원되는 게 별로 없다. 공간의 경우도 공간의 물리적 운영에만 지원되지 공간운영자가 지원받을 여지가 없다. 그래서 부산비엔날레는 기획자와 협업해서 진행할 수 있는 프로젝트, 기획자나 인력에 대한 지원에 노력하고 있다.
사회 청년문화인들이 부산지역에서 자생하지 못하고 수도권으로 집중하는 원인과 대안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김성연 부산에 자생적인 문화생태계가 없는 게 큰 문제라고 본다. 기획자나 예술가들이 자꾸 서울로 가는 것은 부산의 예술이 자생력을 가지고 순환되고 있지 않다는 반증일 것이다. 지원 조금 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미술을 예로 들면 관람객과 미술시장 없이 작가들의 지속적 활동이 있을 수 없고, 이런 문화생태계는 작가와 시민, 언론, 담론장, 교육, 정책 등이 함께 맞물려 있다. 규모가 작더라도 자생력 있고 순환 되면 건강한데 그게 단절돼 있다. 다양한 공간, 단체에서 각자의 목표와 성격에 따라 문화생태계를 만드는 노력들이 중요하다.
이상섭 더 많은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만들고 폭넓은 경험을 하기 위해 서울로 가는 건 문제가 아 니다. 지역에서 생활이 안 돼 서울로 가는 게 문제다. 청년문화로 대표되는 단체, 기획가 그룹이 제도화 되는 것에 대한 비판이 있지만, 어떤 식의 제도화인가가 중요하다. 연합체 방식으로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단체가 생겨나고, 가령 문화기획자 아카데미와 같은 것들이 비엔날레와 결합할 수 있는 범위를 넓혀줄 것이다. 지금은 문화재단, 부산시와 같은 관과 청년문화그룹이나 비영리 공간 그룹이 너무 양분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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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우 생존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야 하는데 생존 때문에 문화현장을 떠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마음이 많이 아프다. 제도화가 대안으로 대두되기도 하지만 사실상은 제도 안에서 문화적 실천을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시의원이나 공무원을 만날 때 지향하는 문화적 색깔을 조금만 빼고 얘기하라는 부탁을 자주 받는다. 이건 폭력적인 요구다. 자율과 독립을 제일 중요한 가치로 삼으면서 대안에 대한 고민을 계속 이어가야 살아남을 수 있다.
부산문화 발전을 위한 제언
사회 끝으로 부산의 특색을 살린 문화예술 제안, 지속가능한 부산 문화발전을 위한 제언을 부탁한다.
이상섭 2012부산비엔날레의 유료관람객은 증가했지만 다소 정체기에 들어선 것이 사실이다. 부산비엔날레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려면 지역의 많은 주체들과 협업이 필요하고 이것이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새로운 발전을 위한 중요한 방법이라 생각된다. 지역의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기획자가 제언하는 것을 담아갈 수 있는 문화 활동가들의 협업을 통해서만 부산비엔날레가 지향하는 ‘부산성’을 담아낼 수 있을 것이다.
김건우 자신이 사는 곳에 대한 ‘애정’과 돌아보기, 존중하기가 더욱 중요하다. 그래야만 상대의 공간에 대한 존중과 배려도 가능하다. 이것이 다양성이고 서브컬처를 관통하는 주요 가치다. ‘자기가 있는 곳을 돌아보고 다져가는’ 작업들이 필요한 시점이다. 함께 고민하고 운영할 사람이 없다. 2003년 시작할 때 막내였는데 지금도 막내다. 기획자가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건 많은데 현실적인 제약이 크다. 아마 문화기획자는 결혼을 쉽게 못할 것 같다.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24시간 일에 올인 해야 하고, 수입은 거의 없다. 개인적인 성취감을 떠나 위태위태한 직업이다. 전문적인 운영에 대해 고민하고 기획을 할 수 있는 인력을 더 많이 육성하여야 한다.
김성연 지역의 독특한 문화현상을 잘 살펴야 한다. 부산에는 훌륭한 활동가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성과 다양성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목할 만한 단체는 소수이지만 그 활동은 괄목할 만하다. 준비되지 않은 시점에서 관 주도의 프로젝트만 키우기보다는 우수한 단체에 대한 안정적 지원과 함께, 시민 속으로 들어가는 활동가, 장르특성적인 공간, 대안적인 시도 등 다각적인 자생적 활동에 주목해야 한다. 이들 크고 작은 실천들이 비록 지속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활발한 동력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관심을 보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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