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들이 대자연을 맛보고자 떠나는 근거리 휴양지의 대명사 ‘가평’은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에 위치한다. 지역 특산품으로는 ‘잣’이 전부이던 이곳의 인구는 6만 2,402명, 총면적은 843.6㎢로, 서울의 1/166 정도 되는 인구가 서울의 1.5배 큰 지역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이곳에 지난 10월 3일에서 6일까지 총 4일간 27만여 명이 다녀갔다. 가평 전체 인구의 4배를 웃도는 인구가 “재즈”를 들으러 자라섬에 모여든 것이다. 어쩌다 가장 소박한 도시에 이런 세련된 음악이 입혀지게 되었을까.

민(民)과 관(官), 꿈을 공유하다

2003년 가을, 인재진 대표(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총감독)는 어느 특강에서 재즈페스티벌을 구상하고 있다는 포부를 밝혔는데, 때마침 가평군의 한 말단 공무원이 자리해 있었다. 당시 가평군은 관광지로서의 매력도가 몰락하고 있던 시점으로 지역 이미지 개선 및 브랜드 구축, 그리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대한 고민이 컸다. 이듬해인 2004년 1월 군에서 대책 방안으로 ‘문화축제’가 거론되고 있을 때, 특강에서 만난 강사를 떠올린 공무원이 ‘재즈’를 제안했고, 그해 가을 황무지의 자라섬에서 축제가 시작되었다.

가평군의 강력한 요구로 시작된 만큼 출발은 순탄했으나 공무원들의 ‘재즈’ 페스티벌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난항을 겪고 있던 여름, 인 대표는 그들과 함께 핀란드의 ‘포리재즈페스티벌(Pori Jazz Festival)’을 참관하게 된다. ‘Since 1966’의 긴 역사를 가진 이 페스티벌은 인 대표가 만들고 싶었던 페스티벌의 모티브이자, 자라섬을 보자마자 오버랩되던 이상향의 페스티벌이었다. 공무원들 역시 수만 명의 관객들이 자연 속에서 음악을 들으며 행복해 하는 모습에 감동했다. 첫 해의 잔인한 폭우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두 번째 해를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은 핀란드의 경험이 단순한 벤치마킹 차원의 출장이 아니라 기획자와 지자체 담당 공무원 사이에 공유된 ‘꿈’ 때문인지 모른다.

민관의 충분한 이해와 협력으로 축제는 안정적으로 운영되었으나 사실 2007년까지 섬 안에서만 축제가 진행되면서 가평 군민들에게도 호응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여름철 외에 한 번 더 생긴 성수기에 상인들과 숙박업주들의 지지는 한결같았지만, 농림업이 주업인 일반 군민들이 초대권 없이 티켓을 사서 축제를 즐기러 오는 것은 사무국에서조차 기대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선거법에 의해 주민에게 초대권이나 할인된 금액의 티켓을 발행하는 것이 2005년에 금지되었다).

▲2005년 개관한 자라섬재즈센터(구 가평읍사무소)

▲ 2005년 개관한 자라섬재즈센터(구 가평읍사무소)

▲2009년 공공미술프로젝트 일환으로 설치한 재즈 벽화

▲ 2009년 공공미술프로젝트 일환으로 설치한 재즈 벽화

▲2013년 가평밴드 콘테스트 포스터

▲ 2013년 가평밴드 콘테스트 포스터

지역사회에 재즈를 전파하는 자라섬재즈센터

2005년 8월에 구 가평읍사무소를 리모델링하여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의 사무국이자 가평 내 문화예술교육의 구심점이 될 ‘자라섬재즈센터’(이하 ‘재즈센터’)가 개관했고, 이듬해 ‘사단법인 자라섬청소년재즈센터’(이하 ‘사무국’)가 설립된다. 프로그래밍과 페스티벌 운영에 대한 노하우를 인정받은 것이다. 2006년에는 6개의 문화강좌를 개설하며 재즈센터의 상시 운영을 위해 외부 지역에서 출퇴근하던 전 직원이 가평읍내로 이주하게 된다. 대표를 비롯 사무국 5인 모두 가평주민이 되며, 군민들의 의심의 눈길이 한층 희석되었다.

재즈센터에서는 사무국 법인명에서 드러나듯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드럼, 기타 등 악기 강좌에서부터 다문화가정이 많은 가평의 특수성을 살린 일본어/중국어 노래교실, 인구수가 적어 들어서지 않는 영화관을 대행한 입장료 1천 원의 ‘금요시네마’, 가평읍 5일장에 나온 가족을 타깃으로 한 ‘장날콘서트’, 주말에 휴식이 필요한 맞벌이 부모를 위해 기획한 ‘서울문화나들이’ 등이 대표적이다. 또 재즈센터의 2층 홀에서 아동만화도서관을 운영하고 있어 매년 재즈센터를 찾는 고정 수요가 늘고 있으며, 현재 월 2백여 명의 학생들이 재즈센터를 방문한다. 대부분 강좌들은 6개월 전부터 대기해야 들을 수 있으며, 특강, 콘서트 모두 선착순으로 당일 매진될 정도로 모든 프로그램이 두루 인기가 많다. 장날 콘서트에서는 재즈 공연 시 관람 방법과 에티켓을 함께 교육하는 것 외에는 대부분 실제로 재즈를 다루고 있지 않지만, 재즈센터의 프로그램들이 지역 주민들에게 호응이 높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하는 바는 크다.


문화예술 프로그램은 지역을 대상으로 재즈와 친숙해지도록 장르와 그 범위를 넓혀 진행됐다. 관내 학교 및 군부대에 강사들을 파견하여 악기 강좌를 개설했고, 가평군 6개 읍면에서 <찾아가는 자라섬 재즈> 콘서트로 가평에 자리 잡고 있는 문화에 소외된 지역이 없도록 했다. 2009년에는 공공미술프로젝트로 페스티벌 관객 동선을 따라 가평읍내 17개소에 재즈 벽화를 설치했는데, 이는 특히 관공서의 도움과 주민들과의 충분한 커뮤니케이션 없이는 이뤄낼 수 없는 사업이었다. 이러한 사무국의 적극적인 움직임에 가평 내 공기의 흐름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현재 관내 주민밴드 수가 급증하여 25여 팀에 이르며, 사무국에서는 이를 지원하는 차원에서 2012년부터 가평밴드 콘테스트를 개최하여 수상한 3개 팀은 페스티벌 무대에 오를 수 있게 하였다. 그 결과 본 행사는 관내 하계문화행사로 페스티벌 못지않게 부흥 중에 있다. 이와 함께 ‘위곡분교 윈드오케스트라’, ‘미원초 합창부’ 등 가평지역 초∙중∙고교 음악 동아리 및 밴드 7개 팀이 올해 10주년을 기념하여 페스티벌 프로그램을 함께했다.

점차 축제의 주인이 되어가는 지역민

2009년 여름에 큰 위기가 찾아왔다. 당시 신종플루 확산 방지로 인해 전국 지자체 주최의 대규모 행사들이 속속들이 취소되었으며, 가평군 역시 축제 한 달 전 국가전염병 재난단계가 ‘심각’에 들어가며 긴급대책회의를 소집하여 6회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은 그야말로 행사 취소의 기로에 서 있었다. 하지만 회의에서 예상을 뒤엎고 가평주민과 의회가 뜻을 모아 가평군의 하반기 행사들을 전면 취소하더라도 국제적 신뢰와 1회 때 폭우에서도 무대를 지켜준 관객을 위해 재즈페스티벌만큼은 강행하기로 결정한다. 결국 그해 폭발적으로 방문객 수가 증가했음에도 신종플루 관련 단 한 건의 문제도 발생하지 않아 그야말로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었다. 현재 사무국에는 가평군청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다 이직해온 4년차 직원이 있고, 자라섬 마니아를 자청한 가평주민인 한 대학생은 축제 기간에 3개월간 인턴으로 활약했다. 매년 가평 및 춘천 출신 자원봉사자 지원이 늘고 있으며, 특히 외지에 있는 가평 출신의 젊은 친구들은 축제 참여와 별개로 우리 축제를 자랑으로 삼으며 티켓 오픈 일자를 홍보한다는 소식도 듣는다. 주민이 축제를 지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평읍에 들어서면 ‘째즈헤어(미용실)’ ‘재즈하우스(모텔)’, ‘자라 재즈(패스트푸드점)’ 등 심상치 않은 상점 간판들이 보인다. 들어가면 막상 재즈를 들려주고 있지는 않지만, 질문들을 많이 받아 그런지 페스티벌과 재즈에 대한 이야기를 어느 정도 설명해줄 만큼은 정보에 밝다. 새로 생긴 읍내 사거리 대형 커피숍에서는 재즈 음악이 상시 흐르고 있으며, 올해 ‘미드나잇 재즈카페’라는 페스티벌 심야 프로그램에 장소를 협조해주며 페스티벌 관객에게 프로모션 가격에 음료를 제공했다. 모던한 콘셉트의 맥주바에서는 인테리어에 페스티벌 포스터와 코스타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자라섬 뱅쇼와 재즈 막걸리

▲ 자라섬 뱅쇼와 재즈 막걸리

올해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은 10주년 기념 공식음료로 ‘자라섬 뱅쇼(Vin Chaud, 북유럽에서 겨울철 원기회복과 감기예방을 위해 마시는 따뜻한 와인)’를 출시했다. 페스티벌 사무국에서 기획, 가평특선주영농조합의 협력으로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셰프를 가평으로 초빙, 가평 내 포도 농가와 와인 공장을 둘러본 후 가평 현지의 재료를 베이스로 한 레시피를 개발했다. ‘자라섬 뱅쇼’는 가평의 포도와 와인 소비를 촉진하여 가평 지역의 부가소득을 창출하게 될 새로운 기념상품으로, 축제가 끝난 지금도 온라인을 통해 인기리에 판매 중이다. 한편 축제의 브랜드화를 위해 진행한 지역과의 첫 콜라보레이션 작으로 가평 대표 양조업체인 ‘우리술’과 작업한 ‘재즈 막걸리’도 있다. 막걸리가 숙성될 때 살아있는 효모에 당해 출연 아티스트의 음악을 들려주는 것을 메인 아이디어로 하여 2010년부터 매해 흑미, 잣, 유자 등 원재료를 달리하며 출시하고 있으며, 한번 맛본 관객은 매년 행사장에서 으레 찾게 되는 효자 상품이다. 가평요식업지부에서 야심차게 선보인 가평잣피자, 가평 와인으로 숙성시킨 목살스테이크 등이 인기리에 팔려나갔다. 가평축협에서는 축제 때마다 재즈한우콤보를 내놓는다. 지역에서 페스티벌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가치 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점점 자연스러워지고 있는 추세다.

▲ 제10회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현장

▲ 제10회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현장

재즈, 가평 특산물이 되다

사실 문화 중 대중에게 가장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장르가 ‘음악’임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미술이나 연극, 무용에 비해 감상자의 사고가 덜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악 중 ‘재즈’라면 얘기는 다르다. 재즈의 스펙트럼은 워낙 넓어서 이지리스닝 재즈도 있지만, 소위 재즈 마니아, 또는 재즈 연주자가 말하는 ‘재즈’는 현대 인류가 고안해낸 가장 어려운 음악이기도 하다. 알고 들어야 가치와 깊이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재즈는 입문한다는 말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학구적인 음악이다. 그런 쉽지 않은 음악을 들고 축제를 열어보겠다고 가평군에 먼저 찾아갔다면 지금의 재즈 페스티벌이 존재했을까?

우연과 인연이, 상상력과 노력이 겹겹이 쌓여 지금의 10주년까지 왔다. 이제 가평군에서는 지역홍보부스를 전시할 기회가 있으면 자연스레 ‘재즈’를 특산품으로 홍보하게 되었다. 페스티벌로 바쁜 시기 울산 중구청, 포항시청 등에서 머나먼 가평까지 벤치마킹하러 가평군청에 방문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오면 축제계 담당 공무원은 난색을 표하면서도 동시에 우리 페스티벌의 현주소를 실감한다.

지역축제 관계자 외에도 모든 장르를 불문한 공연 관계자, 각종 중앙정부 부서, 유수기업 마케팅팀, 각국 주한대사관 및 문화원에서도 연중 반드시 방문해야 하는 ‘잇(it)’ 페스티벌이 되었으며, 해외에서도 아시아 파트너들과의 협업은 물론 점차 유럽 문화기관에서 자국 아티스트들에 대한 포커스 프로그램을 제안해오고 있다. 사단법인 자라섬청소년센터는 ‘자라섬 재즈 장학금’을 신설, 가평 관내의 학생이 음악대학을 진학할 경우 이를 후원하게 되었다. 올해 ‘자라섬 크리에이티브 뮤직캠프’로 시작한 국내 재즈 뮤지션을 위한 교육사업도 더욱 발전시켜 전개할 계획이다. 관객이 자연과 음악 속에 행복하게 젖어들 수 있도록 지역과 하나 되어 한 층 한 층 쌓아 올린 계단이 가평을 뛰어넘는 “자라섬”이라는 현재의 브랜드를 가능하게 했다. “한국 재즈의 고향, 가평”이 되는 그날까지,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의 행보는 이어질 것이다.

사진제공_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사무국


임정진 필자소개
하나민은 숙명여대 문화관광학과를 졸업,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사무국 기획팀에 입사하며 '재즈 사랑'을 실천하는 가평군민이 되었다.
이메일

  • 페이스북 바로가기
  • 트위터 바로가기
  • URL 복사하기
정보공유라이센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