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경기 불황이 예술계에도 큰 파장을 미치리라는 우려가 크다. 그러나 막연한 우려 이상으로 논의가 전개되고 있지 못한 것도 현실이다. [@예술경영]은 경기전망을 벗어나 경기변동기 예술의 혁신 사례를 살핌으로써 거시적인 관점을 제안한다./ 편집자 주

IMF 이후 공연시장을 나타내는 두 가지 대표적인, 그러나 모순적인 키워드가 '시장확대'와 '양극화'다. 크고 화려한 공연에 모든 것이 쏠리는 양극화의 최대 수혜자는 신뢰와 명성을 바탕으로 하는 브랜드 강자다. 특히 IMF 시기나 요즘과 같은 경제불황의 시기에 그런 경향이 더욱 강화되는 것은 자명하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 한다. 문화산업이 경제를 지배할 것이라 한다. 할리우드 영화가 전 세계에서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지 실컷 보고 나서, 우리는 비로소 영화 애니메이션 등 ';돈 되는'; 영상산업 투자에 눈들 돌리기 시작했다. 문화예술에 투자하는 돈은 한동안 메아리 없는 외침처럼 들리더니 이제는 상업적 판단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새로운 왜곡의 기미가 보인다.

클래식 음악, 연극, 무용, 오페라, 국악 등 ';돈 안 되는'; 순수예술은 다시 뒷줄 차지가 될까 우려된다. 실제로 대중적인 악극, 뮤지컬, 대중음악에만 투자가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순수예술이 쪼그라든 문화적 불균형이 빚어질 것이다.’


어제 쓴 것 같은 위의 글은 1999년 한 일간지 기자(그는 지금도 같은 신문사에서 문화를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가 쓴 ‘불황에도 문화예술 투자는 필수’라는 글의 일부다. IMF 구제금융 사태는 경제적 번영을 지상과제로 삼았던 한국에게 총체적 혼란이었다. 낮선, 초유의 사태 앞에 시행착오와 판단착오가 되풀이되었다. 문화예술 부문도 마찬가지였다. 해외 유명 단체의 내한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고 공연장가동율과 객석점유율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 와중에 아시케나지가 출연조건을 대폭 양보하면서 내한공연을 고집한 것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을 짠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로부터 10년.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당시 사태의 한가운데에 한국 등 아시아국가가 있었고 신속하고 극적으로 V자 곡선을 그리면서 국가 부도의 위기를 탈출했다면, 이번 사태의 진원지는 자본주의의 맹주인 미국이고 불황 지속기간이 L자를 그리며 훨씬 길 것이라고 전망되고 있다. 원인도 다르고 진단에도 차이가 있다. 이제는 우리가 비교할 대상이 있다는 점도 큰 차이다.




“IMF 때보다 더 나쁘다”


2008년 연말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표한 『문화예술관광 동향 분석』(12월 30일)에 따르면 문화예술 전문가와 일반 소비자 모두 현 경제상황이 IMF 구제금융시기보다 더 심각하다고 느끼고 있다. 특히 IMF의 기억이 생생한 연령대에서 더욱 비관적이었다. 조사시기가 작년 11월 하순이므로 불황이 본격화된 지금은 오히려 더욱 비관적일 가능성이 크다. 관객들은 소비를 줄이고 작업자들은 사업 자체를 망설였다. 문화예술소비계획이 있었던 사람들 중 53%가 그 계획을 취소하거나 축소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계획대로 할 것이라는 답은 47%에 불과했다. 원래 아무 계획이 없었고 그러므로 새롭게 추가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답한 사람은 총 응답자의 60%에 육박했다.


LG경제연구원에서 발간하는『Weekly 포커스』1030호에 실린 ‘경기 하강에 취약한 우리의 소비구조’(강중구)는 소위 ‘선택적 소비재’에 속하는 ‘문화서비스재’가 기초소비재나 교육비 등에 비해 불황에서 우선적으로 위축되고 위축의 기간도 훨씬 길다고 지적하고 있다.


당연한 지적이다. 불황의 시기에 관객은 다음과 같은 태도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추정한다. 첫째는 소비의 양적인 감축이다. 다른 소비에 비해 빠르게, 그리고 큰 폭으로 줄인다. 특히 예술의 주요 관객을 구성하는 중산층에서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진다. 둘째는 선택의 신중함이다. 지출에 대한 상대적 가치가 높아지고 소비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강화되면서 모험적인 선택을 배제하게 된다. 안전하고 보수적인 선택은 양적인 감축과 반비례로 증대된다. 공연가격 못지않게 신뢰가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예술의전당, 1998년 역사상 최대 관객 기록

예술의전당 외관1988년 1차 개관에 이어 1993년에 전관 개관한 예술의전당은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의 예산이 투입된, 새로운 개념의 문화적 ‘그랑 프로제(Grand Projec t)’이다. 대개 이런 류의 사업이 그렇듯 문화예술적 니즈보다는 정치적인(또는 정책적인) 동기가 더 강하게 작용했지만 한편으로는 전용극장이니 아트 콤플렉스니 문화공원이니 하는 지금 봐도 선진적인 개념들이 전격적으로 도입되었다. 그 이후 20여 년 간 예술의전당은 지속적인 하드웨어 확충 정책의 대표적 사례로 꼽혀왔다. 그러나 도시의 섬과 같은 지리적인 거리감과 낯선 개념에서 오는 정서적 거리감은 예술의전당 초기운영에 큰 걸림돌이었다. 이 때문에 예술의전당이 그렇게 빨리 우리 문화예술의 대표 주자가 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예술의전당은 전관 개관 후 4년여 만에, 그것도 우리나라가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후 가장 엄혹한 시기를 겪던 시기에 연달아 새로운 기록을 달성하며 명성과 영향력을 동시에 획득하며 자리를 잡게 된다. 예술의전당이 자랑하는 &lsquo;연간 관람객 2백만 명&rsquo; 시대에 들어선 것이 1997년이다. 이듬해인 1998년에는 2백 32만여 명을 기록했다. 이처럼 큰 폭으로 관객수가 늘어난 것은 주로 미술관의 &lsquo;흥행전시&rsquo; 개최여부에 따라 달라졌다. <중국문화대전><이집트미술전> 등 우리나라 대형 이벤트 전시가 한 건의 전시만으로 수십만 명의 관람객을 끌기 시작한 것이다. 공연 관객이 크게 늘지는 않았지만 시장의 위축과 축소에는 아랑곳없니 공연장은 가동률과 관객수를 유지했다.




1백억여 원의 잉여


이 기간 동안의 재정 성적표도 비슷한 추세를 보인다. IMF기간 동안 지출은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소폭 조정되지만 수입은 크게 늘어 큰 폭의 잉여를 기록한다. 연간 잉여 규모는 33억여 원(1999년), 45억여 원(2000년) 등으로 총지출대비 19%, 24%에 이른다. IMF 사태가 본격화된 1998년에도 16억여 원(지출대비 약 9%)의 잉여를 기록했다. 이 3년간의 잉여금만도 1백억여 원에 달했다. 많아야 10억여 원의 잉여를 기록하던 이전과 이후의 재정운영상황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비정상적인 시기다.


연도별 지출과 수입변동


이러한 수입과 잉여의 증가는 두 가지 측면에서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자체수입의 증가다. 이 기간에 공공재원은 오히려 소폭 감소하고 있다. 이에 비해 자체수입은 1백억여 원(1996년)에서 165억여 원(2000년)으로 크게 증가한다. 예술사업수입, 부대사업수입, 대관수입 등 거의 전 부문에서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IMF 기간 동안 예술의전당 사업은 위축되기는커녕 더 활발했던 것이다. 둘째는 비용의 상승억제효과다. 위의 그래프에서 보는 것처럼 지출은 IMF 기간 동안 소폭 줄었거나 비슷한 수준을 이어간다. 이처럼 급격한 생산성 향상이 운영개선만으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은 무리다. 문화예술기관의 특성이나 같은 기간의 수입확대 추세로 볼 때 더욱 그렇다. 결국 예술의전당이 IMF라는 특별한 시기에 특별한 지위를 가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비용은 줄이고 수입은 늘었으니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잉여를 기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경영혁신과 공격적 프로그래밍


확실히 이 시기의 예술의전당은 재빠른 순발력을 보인다. 내부적으로는 문화예술기관답지 않은 신속하고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문화예술부문에서는 처음으로 &lsquo;팀제&rsquo;를 도입하는 등의 경영혁신 조치가 1998년 가을에 일치감치 마무리된다. 경영혁신의 핵심은 기능 중심의 유연하고 효율적인 운영방식의 채택과 사실상 정리해고에 해당하는 구조조정이다.(이 시기에 벌어진 우리 사회 초유의 정리해고 사태는 아직도 사회적 트라우마로 남아있음을 느낀다.)


프로그램 측면에서는 과감하고 공격적인 편성에 점수를 줄 수 있다. 당시는 예술의전당과 같은 대규모 공연장에서 주로 공연되던 국내외 대형 프로그램이 급격히 줄어든 상태였다. 회당 5만 달러 이상이 소요되는 중대형 해외예술단체의 내한공연이 1999년 상반기에는 단 한건도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전해의 같은 기간에는 20건이었던 것과 대조를 보인다.


아래의 그림은 이 시기의 공연관객수의 변화를 표시한 것이다. 큰 기복 없이 음악당과 오페라하우스가 각 50여만 명의 안정적 관객기반을 유지하고 있다. 1998년을 저점으로 완만한 상승을 보이는 정도다.


공연관람객현황


그런데 아래의 그림을 보면 또 다른 측면을 볼 수 있다. 기획공연의 비율이 크게 증가한 것이다. 전속단체를 가지지 않는 극장의 전형인 예술의전당은 20~30%의 기획공연과 나머지 다수의 대관공연으로 극장을 운영한다. 그런데 특히 오페라하우스를 중심으로 이 시기에 기획공연이 큰 폭으로 확대된다. 그 결과가 그림에서 보는 기획공연의 관객비중이다. 1999년에는 오페라하우스의 기획공연 관객이 전체 관객의 과반을 차지하고 있다. 시장의 위축을 기획공연으로 돌파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예술의전당이 한 달 동안 레퍼토리시스템을 시험해본 &lsquo;오페라 페스티벌&rsquo;이 등장한 것도 이 무렵이다. 오페라 등 제작비가 많이 드는 사업이 우선적으로 급감한 상황에서 민간오페라단과 협업한 이 기획은 IMF의 특수한 상황이 가능케 한 프로그램이다. 공격적인 자체 기획 프로그램은 이후 예술의전당 브랜드의 중요한 자산으로 작용한다.


기획공연관람객 비율


2000년 1월에는 국립극장에 속해있던 국립발레단 등 3개의 국립예술단체들이 법인화되며 예술의전당 상주단체로 이사한다. 덩달아 이사한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와 이미 입주해있던 서울예술단, 한국예술종합학교, (담 없는 이웃) 국립국악원 등과 함께 예술의전당의 대표성이 크게 강화되었다. 사실상 이 때를 즈음하여 문화예술공간의 주도권은 강남으로 완전히 넘어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후 새로운 브랜드파워로 등장한 LG아트센터를 비롯한 다양한 공연주체들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예술의전당이 갖고 있던 독보적 지위는 많이 약화되었다. 이 글은 오늘의 예술의전당을 다루는 것이 아니므로 몇 년 전부터 대두되고 있는 소위 &lsquo;예술의전당 위기론&rsquo;은 애써 무시한다.)




IMF사태와 문화예술의 양극화


경제, 사회적으로도 그렇지만 문화예술 측면에서도 IMF사태는 본격적인 양극화의 신호탄과도 같다. 이 글의 첫 부분에 인용한 조사에서 전문가와 일반 소비자는 양극화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답하고 있다. 현재 양극화가 상당한 수준이라고 답한 비율이 76.5%(전문가), 72.4%(일반 소비자)에 달하고 앞으로 더 진행될 것이라고 답한 비율은 특히 전문가 그룹에서 83.7%에 이르렀다.


IMF 이후 공연시장을 나타내는 두 가지 대표적인, 그러나 모순적인 키워드가 &lsquo;시장확대&rsquo;와 &lsquo;양극화&rsquo;다. 필자가 추정하기로 우리나라 공연시장은 약 5년마다 2배씩 확장되어왔다. 이러한 시장확대와 동시에 예술생태계는 종다양성을 걱정하는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크고 화려한 공연에 모든 것이 쏠리는 양극화의 최대 수혜자는 신뢰와 명성을 바탕으로 하는 브랜드 강자다. 특히 IMF시기나 요즘과 같은 경제불황 시기에 그런 경향이 더욱 강화되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므로 예술의전당이 IMF 시기를 통과하면서 브랜드 강자로 자리 잡은 것은 예술의전당 자체의 노력만으로 가능했다고 말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중소 예술단체나 공연장이 웬만한 노력으로 이와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이런 때는 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견디는 것이 적절한 전략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때문에 IMF와 양극화의 큰 파도 덕을 톡톡히 본 예술의전당의 사례가 요즘같이 어려운 시기에 상대적 박탈감을 더하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다.



이승엽

필자소개
이승엽은 1987년부터 예술의전당에서 극장운영과 공연제작 일을 하다가 2001년 한국예술종합학교로 자리를 옮겨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본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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