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경기 불황이 예술계에도 큰 파장을 미치리라는 우려가 크다. 그러나 막연한 우려 이상으로 논의가 전개되고 있지 못한 것도 현실이다. [@예술경영]은 경기전망을 벗어나 경기변동기 예술의 혁신 사례를 살핌으로써 거시적인 관점을 제안한다./ 편집자 주 연재순서: ④ 미술
1930년대 대공황기 미국의 예술뉴딜정책은 예술가들에게 일거리를 찾아주고, 예술가들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을 사회공동체가 자산으로 삼는다는 기조를 유지한다. 예술뉴딜정책은 예술가에게 사회적 노도 가치를 요구함으로써 정책의 정향성을 판단하고 정책 확정에 따르는 제반 문제를 객관화시키는 중요한 기초를 마련한다. 정책을 통해 사회공동체가 예술가 개인이나 단체에 요구하는 최종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세계가 경기불황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경제를 다른 무엇보다도 사고의 중심에 놓고 하나의 기준으로 삼은 세상에서, 세계를 이루는 모든 것들은 경제 불황이라는 조건 앞에서 자신의 진로를 모색해야 하는 숙제를 떠안게 되었다. 이런 지경에 내몰린 이유를 분석하는 데는 나름의 전문가들이 있을 터이고, 예술이 본디 경제적 관점과 그리 밀접한 연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인간의 활동 중 하나로서 현대산업사회의 사회적 일익을 담당하는 터라 경기불황이 미치는 영향과 예술에 대한 갑론을박에서 쉽게 벗어날 수는 없어 보인다. 대개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유사 사례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삼아 새로운 길을 모색하거나 여러 제안들의 타당성을 검토하기 마련이다. 이제 우리 예술, 아니 미술에 경기불황이 미치는 영향이 어떤 사례를 통해 극복되거나 문제를 시사점으로 부각시켰었는지 되돌아볼 이유가 생긴 셈이다.




5천개 일자리 예술가에 특정하여 제공,
결과물을 사회공동체의 자산으로


‘경제 불황과 미술진흥책’의 명제적 접근에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논의에서 다루어진 내용은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절 루즈벨트 대통령이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제안했던 ';예술뉴딜정책';(New Deal Art During the Great Depression) 이다. 이 정책은 경제부흥정책으로 채택되었던 뉴딜정책의 기본적인 지향성, 즉 부를 분배하는 정책기조에 따르는 정책적 일관성 안에서 예술가와 예술가들의 노력이 만들어내는 산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사례를 살피면서 정책 입안의 방향성을 이해하고 정책 실행의 결과를 분류,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예술뉴딜정책은 1935년 5월 확정된 ';일자리 창출 정책';(WPA, Works Progress Administration)의 정책 방향과 맞물린 특정 사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것은 예술가들에게 일거리를 찾아주고, 예술가들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을 사회공동체가 자산으로 삼는다는 기조를 유지한다. 물론 최소한의 개인적 경비를 정부가 지출한다는 조건에서다. 여기서 최소한의 경비란 결코 실생활비가 아니라는 점에서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제안된 정책이 바로 ';연방 미술 프로그램';(FAP, Federal Art Program)이다.


이 기본 정책 안에서 파생된 정책이 또한 ';예술가 일자리 제공 정책';(PWAP, Public Works of Art Project)이다. 이 정책을 통해 당시 미국 사회는 약 5천 개의 일자리를 예술가들에게 특정하여 제공하였으며 그로 인하여 약 22만 5천 개의 공공성이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게 된다. 대체로 이 정책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은 벽화, 공공시설물의 개선, 사진 기록집, 영상기록물 등이었으며 별도로 미국농업안정국(FSA)의 의뢰를 받아 당시 피폐해진 농촌 현실을 기록하는 사업에 유명 사진작가들이 참여한 사례가 있다.




예술가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노동가치로 환원


도로시아 랭, <이주민어머니>, 농업안정국프로젝트 마지막 작품사진, 1936년.


미국 대공황 시기의 예술뉴딜정책은 성공적인 사례인가? 이 물음은 다양한 논점을 제공하는 논쟁을 불러온다. 정책적으로는 상당한 결과를 만들었고 실질적으로 지표화된 일자리 창출과 지수로 확인되는 결과물들로 일면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예술정책의 타당성 문제는 정책적 지표와 지수만으로 평가되기는 어렵다.(본 원고는 사례를 소개하고, 사례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도록 정보를 가공하는 역할이기에 평가부분에 대한 논의는 피하고자 한다.)


우선 예술가들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노동가치로 환원함으로써 예술정책에서 중요한 실행원칙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예술가를 지원할 것인가? 이 문제는 정책적으로 원대한 포부를 천명하기는 하지만, 정책 실행에서 지원 대상인 예술가와 예술장르, 프로젝트의 정당성 등에 대한 평가의 공평성과 예술가들에게 기회의 평등권을 정확하게 확보하는 데에 어려움이 따른다. 그러나 예술가에게 사회적 노동가치를 요구함으로써 정책의 정향성을 판단해야 하는 정책 입안자와 실무자의 입장에서는 정책 확정에 따르는 제반 문제를 객관화 시키는 중요한 기초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정책적으로 적절한 내용을 기준으로 제시한 셈이 된다.


또 하나의 특성은 이러한 정책을 통해 사회공동체가 예술가 개인이나 단체에 요구하는 최종 목적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결과물들은 비록 현존하는 것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당시에도 예술성 평가에서 탐탁지 않았던 작품들이었지만 22만 5천여 점이라는 현실적 성취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런 정책 목표의 내용적 타당성은 예술뉴딜정책을 이해하는 중요한 시사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이 사례의 시점이 1930년대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두 가지 측면에서 이런 사례가 우리에게 새로운 사고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하나는 이미 우리 시대 미술가들은 미술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스스로 숙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미술은 공공미술이라는 확장된 미술개념을 가지고 있으며 이런 저런 노력과 결과들을 성공과 실패라는 연속성 안에서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일자리와 벽화사업, 일자리 제공과 그 결과물로서의 공공시설물 개선이라는 등식은 현재 한국 미술계에 어떤 영향력도 가질 수 없다. 오히려 공공미술의 사회적 과업을 정책적으로 어떻게 입안하고 지향성을 제안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편이 옳은 판단이 될 것이다.


또 하나, 예술뉴딜정책은 당시 대공황이라는 화급한 사회문제와 결부되어 일자리 창출이라는 정책목표를 가지고 미국 문화예술계에 단편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이었다는 점이다. 또한 부의 분배라는 큰 지향성을 통해 최소 경비 지급이 갖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상황을 전제하는 정책이었다는 점도 놓쳐서는 곤란하다. 우리 사회가 어떤 합의점을 도출하기 위해 서로 양보하고 토론하며 이타적 사고를 발휘할 수 있을까? 아니 그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하여도 어떤 정부 정책이 그러한 가능성을 현실적으로 실행단계까지 이끌 수 있을 정도의 정책적 합리성을 가질 수 있을까? 사례를 들어 이야기하면서도 사례분석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를 숙고하려는 기본 입장이 결여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기조차 하다.




미래를 앞당겨 준비하는 정책의 지속 가능성


미국의 예술뉴딜정책과 달리 영국의 최근 사례들은 우리 현실에 수용 가치가 보다 높다고 할 수 있다. 영국의 예술정책은 오늘처럼 대공황 또는 경제 불황을 전제하면서 나온 예술진흥책이 아니다. 그러나 예술진흥책이 가져야 할 덕목들을 고루 잘 갖추고 있어 참고하고 분석대상으로 삼을 만하다. 우선 영국에서는 크게 두 가지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진흥책을 구가하고 있음을 유의해서 보아야 한다. 물론 그 정책의 최종 목적은 본질적으로 예술을 예술답게, 예술가를 예술가답게, 그리고 정책입안 주체로서 영국을 보다 영국답게 만들고자 하는데 결집되어 있다.


하나, 영국공예진흥원의 사업 내용을 보자. 영국이 예부터 유럽 여러 국가 중 공예분야에서 탁월한 지위를 누리고 있었는가 하는 것은 핵심적 사안이 아니다. 영국공예진흥원은 다음과 같은 목적을 현실화 하고자 한다. 일반인들이 공예를 하나의 전문적 영역 안에서의 고유한 예술 활동이라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공예 관련 전문가 양성에 개인, 학교, 유관 단체, 화랑과 미술관 등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 나아가도록 유도하려 한다. 다른 기관들과 연계하는 최종 목표는 관련 지식과 기술, 자료를 융합하고 각 지역별 가치가 충분히 반영되는 차별화 사업을 중복 없이 펼쳐나가고자 함이다. 이를 국가적 차원에서 지속적인 교육정책을 통해 지원한다. 이상과 같은 구체적인 목적이 각각의 목표에 의해 성립되고 정확한 방향성을 유지하는 데 영국공예진흥원의 사업 내용들은 실현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타당하게 수립된 전략이다.

이런 진흥책은 언제나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의 발전을 앞당겨 준비하는 것으로서 사실상 정책의 지속 가능성을 무한히 확장하는 것이다. 정책의 지속성은 관련 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어 정부가 예측하는 일자리 이상을 자립적으로 창출하게 되고 이렇게 마련된 일자리는 자생적으로 재교육을 통해 확장되기 때문이다.




예술가 스스로가 사회적 인력으로 되살아나는 정책


Ruthin Cafe Centre 전경또 한가지 영국의 예술진흥 프로그램은 보다 근본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다. 국제시각예술연구소(InIVA, Institute of International Visual Arts) 프로그램과 방문자예술사업(VAO, Visiting Arts Office)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VAO 프로그램은 예술의 상호주의를 사업의 기본 내용으로 하여 그 실행정책을 입안하고 실천하고 있다. 영국에서 활동하고자 하는 예술가들과 예술단체들을 지원함으로써 영국의 예술 환경이 곧 미래에 세계 예술 환경이 되도록 하나의 규준점을 마련하게 하는 장대한 진흥 계획으로 파악된다. 이 프로그램은 영국문화원, 예술평의회, 외무부 등에서 기금을 지원받으며, 자국민 대상의 지원책을 넘어 세계의 예술가들을 지원하기 위한 예술경영 관련 자국민 전문 인력 양성에 주안점을 두고 있음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영국의 예술진흥책에서 경기침체기에 직접적으로 적용시키기는 곤란하지만 응용사례로 검토할 만한 프로그램은 InIVA(Institute of International Visual Arts) 프로그램이다. InIVA의 프로그램은 전시기획과 진행, 출판사업, 디지털환경에서 멀티미디어 영역 그리고 교육과 연구 프로젝트 분야로 나뉘어 구성되어 있다. 모든 세부 프로그램은 시의성에 따라 구체적인 사회적 요구와 필요에 부합되도록 재설계되며 실행계획에 따라 진행된다. 이러한 프로그램 운용방식에서 우리는 무수히 많은 일자리를 상상할 수 있다. 시의성을 지니는 개별 프로그램의 요구와 지향은 관련 인력을 재교육하고 재배치하게 하면서 인력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그로 인해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라는 선순환적 구조를 만들어내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문인력 양성을 바탕으로 각 프로그램들은 영국의 작가들을 국제무대에 소개하는 일차적 목적에 집중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영국의 현대미술은 전 세계적으로 널리 소개되는 효과를 얻게 되며 동시에 영국의 미술은 국제적인 다양한 연결망의 중심에 놓이게 되고 운용의 주체로서 부각된다.


InIVA(Institute of International Visual Arts)는 전시, 출판, 연구, 교육 및 연구 등으로 나눠 각 분야에서 그 때마다 관련 인력을 공모하고 지원하도록 되어 있다. 일례로 작가가 일정한 기간에 지정된 공공시설에 체류하면서 심층적으로 그 장소와 시설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고 환경에 맞는 작품을 제작하게 하는 &lsquo;Artist-in-Research Program&rsquo;이 있다. &lsquo;Artists Fellowship&rsquo; 프로그램은 학교에 예술가를 파견하여 연구, 강의를 수행하게 하고 이를 일정 금액의 보조금으로 지원하는 제도이다. 이처럼 예술가들이 프로그램을 통해 재교육을 받거나 재배치됨으로써 예술을 위한 예술을 넘어서 예술가들이 사회적 역할과 지위를 가진 사회적 인력으로 스스로 되살아나도록 지원한다.




실질적인 정책은 삶의 자리에서


InIVA 참여작가 요코 무타, <A Tale of Two Sun>, 2008.12~2009.1경제에는 늘 불황과 활황이 있게 마련이다. 한 사회의 경제시스템이 혼돈에 빠지거나 경제 자체가 곤궁해질 때, 예술은 자신의 다양한 역할을 재고할 수밖에 없다. 활황기에 예술은 공공부문에서 자신의 지위를 망각한 채 예술가 개인이 누릴 수 있는 다양한 혜택을 지향점으로 잡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또한 예술의 온전한 몫은 아니다. 삶이 힘들어질 때 예술은 삶 자체를 긍정적으로 되묻고 그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힘을 사회에 되돌려주어야 한다.

사례를 분석하는 일은 정책 입안에서 실수를 줄일 수 있는 반성적 입장을 견지하게 하지만, 실질적인 정책은 바로 삶의 자리를 깊숙이 들여다보고자 하는 각고의 노력에서만 비롯된다. 미술이 혁신되어야 한다면, 굳이 경기변동이 그 기회를 마련하지는 않아도 좋다. 미술인들과 우리 사회의 미술은 내부적으로 혁신의 필요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가? 미술인이 먼저 대답해야 한다. 그리고 정책 입안자들은 외국의 좋은 사례라는 허울을 벗어나 우리 사회의 혁신 가능성과 그 실질적인 필요가 사회 일익에 어떤 영향을 가질 수 있고 지속 가능한지를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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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섭

필자소개
이섭은 전시기획자로서 미술의 기존 개념을 넘어서는 미술을 꿈꾸며 삶의 자리와 연결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나무화랑, 아트컨설팅서울, 일주아트하우스 기획부문에 종사했으며, 3회 광주비엔날레 영상부문, 주안미디어페스티벌 전시부문, 2005년 광복 60주년기념전 ';시련과 전진'; 예술감독 등을 역임했다. 또한 2007년 ';종촌, 가슴에 품다';, 2008년 ';마음속에 마음을'; 등 농촌지역에 작가들이 개입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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