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 오케스트라 현황(클릭시 표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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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은 크게 기악과 성악으로 나뉜다. 악기를 이용한 기악은 일정한 물적 토대와 인적 훈련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성악은 사람의 몸만 있으면 된다. 이러한 조건 때문에 클래식 음악이 유입되기 시작하던 일제 시기부터 많은 이들이 성악에 종사했다. 이러한 성악의 발전이 있은 후에 ‘양악’과 ‘클래식 음악’이라는 개념이 적극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기악을 중심으로 하는 교향악 문화가 정착되었다.
우리나라 교향악단의 역사는 1926년 중앙악우회로부터 시작된다. 1956, 1957년 KBS교향악단과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창단되면서 교향악단 설립의 기반을 다졌고, 1962년 부산시립교향악단을 시작으로 지방 중소 도시에 시립교향악단이 생겨나 오늘에 이르렀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많은 교향악단이 창단되었다. 이 시기는 1960년대부터 시작된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의 결실이 최고조의 모습으로 가시화되었던 때다. 어떤 시기보다도 물질적 풍요로움이 넘쳐흘렀다. 이런 문화는 지역 교향악단 창단의 거름이 된다. 또한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이 가져다준 문화 호황과 지방자치제도 큰 몫을 했다.
하지만 이러한 교향악단의 설립은 수용자를 중심으로 한 요구라기보다는 음악가 자신들에 의한 경우가 많았다. 교향악단은 오페라와 함께 유럽예술의 대표적인 장르였다는 믿음이 강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저렴한 공연 티켓
‘클래식 음악’이라 하면 곧바로 ‘고급문화’라고 생각한다. 내용에 있어서는 어렵고, 관람하기는 비싸다고 한다. 각 교향악단은 한 달 기준으로 한 번씩 갖는 정기연주회에서 1부에 서곡과 협주곡, 2부에 교향곡 전곡을 선보인다. 레퍼토리는 잘 알려져 있는 모차르트·베토벤부터 말러·브루크너까지 다양하다. 협연자 또한 세계 유수의 콩쿠르에서 입상한 클래식 스타들이다. 해외 유학을 마친 수준 높은 단원들과 지휘자들이 예나 지금이나 교향악단으로 몰려 있기도 하다. 서울 지역을 제외하고는 좌석 가격이 대부분 5천 원부터 2만 원대였고, 인천시립교향악단의 경우는 R석 1만 원, S석 7천 원으로 책정되어 있었다. 이런 면면들을 따져봤을 때 저렴한 가격으로 티켓을 관객(소비자가)에게 공급하고 있는 셈이다. ‘지방’이라는 편견만 없다면, 서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셈이다(여기에 1~2천 원 상한을 시도한 교향악단도 있다. 하지만 실행 후, 텅 빈 객석을 보며 원위치로 돌리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레퍼토리와 연주 능력 향상에 비해 운영 면에서는 문제점들이 많다. 이 교향악단들은 대부분 도(道)와 시(市)에서 도민·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된다. 그렇다 보니 운영 주체도 관공기관이다. 자체적인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민간 교향악단과 달리 그에 대한 부담과 압박이 덜하다. 상대적으로 생존 경쟁에 대한 체감이 낮은 편이다. 그래서 적극적인 마케팅과 관객개발은 물론 ‘연주를 했다’는 데에 의미를 두는 곳도 많다. 하지만 이런 문제점을 제기하면 그들도 할 말은 많다. 정기연주회 외에 각종행사 및 특별·기획연주회 수행, 열악한 근무조건, 낮은 인건비 등이다.
왜 그들은 ‘우리’ 편이 되지 못하는가
교향악단마다 지역명이 붙어 있다. 따라서 관객도, 그들의 음악을 듣는 ‘팬’도, 모두 ‘홈그라운드’에서 나와야 한다. 하지만 관객들은 무관심과 외면으로 대한다. 그래서 도·시의 운영을 점검해보는 감사에서 직접적인 존폐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에 비슷한 위기에 처하는 경우가 많다.
살펴보면 각 교향악단의 운영에 있어서 ‘경영’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단원들은 교향악단 단원이라는 것을 내세워 레슨과 같은 부수입 창출에 노력한다. 악단을 단련·제련시키는 지휘자는 재임 기간이 짧기에 이리저리 옮겨 다닐 수밖에 없다. 문제점만 보이고 대안은 없기에 홈그라운드에서조차도 ‘우리의 교향악단’이 되지 못한다. 실질적인 운영도, 관객의 마음을 경영하는 것에도 모두가 실패인 셈이다.
여기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① 최상의 음악을 생산·제공할 수 있도록 수준을 높여야 하고, ② 동시에 시민이 있는 낮은 곳으로 흘러들어 가야 한다고 말한다. 각 교향악단이 내놓은 타개책이 아니라, 선례와 세계 각국의 오케스트라가 택하고 있는 방식이다.
최상의 음악을 생산하라!
이 미션은 국내 교향악단의 발전사에 있어서 늘 고질적인 문제로 존재해왔다. 교향악단이 양적으로 팽창하던 1980년대에는 그들의 ‘현주소’를 점검하는 문제 제기와 기사가 많았다. 결론은 대부분 지휘자와 단원의 음악적인 역량, 앙상블 등으로 귀결됐다. 음악의 1차 생산자를 문제 삼은 것이다. 이러한 배면에는 음악의 ‘질’이 객석을 채우는 관객의 ‘양’을 보증한다는 지론이었다.
이에 모범적인 사례를 낳은 것은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였다. 그들은, ‘금기’까지는 아니어도 ‘용기’가 부족하여 쉽게 올리지 못했던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전곡을 2008년부터 4년간 선보이는 대장정을 감행했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는 안톤 브루크너 전곡 연주를 감행했다. 국내 음악계의 레퍼토리는 협소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부천 필의 노력으로 말러와 브루크너가 주요 레퍼토리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그들은 ‘홈그라운드’를 점령했다. 모험과 시도를 통해 중앙 악단(樂壇)을 바꾼 부천 필은 부천 시민들에게 ‘우리 오케스트라’가 되었다. 후원회가 조직되었고, 지금은 제야음악회 주최, 단원 복지지원 사업, 음악감상반 운영 등의 활동을 후원회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

▲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유럽투어(사진제공: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홈페이지)
낮은 곳으로 흘러들어라!
최근 들어 오케스트라는 관객개발에 대한 한 방편으로 오케스트라 교육을 통해 클래식 음악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인해 일반인의 접근성이 높았던 장벽을 허물고, 여러 가지 문화적 장치를 통해 주민의 삶과 일상 속에 클래식 음악이 놓이게 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가 이룩한 성공이 대표적인 예다. 물론 엘 시스테마는 자본 획득을 일차 타깃으로 실행한 관객개발 프로그램이 아니다. 음악이 지닌 화합의 효과를 상징화하여 빈민가에서 시작된 프로그램이다.
지금의 각 오케스트라들은 이 프로그램을 자기화하여 실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2007년부터 YOLA(Youth Orchestra Los Angeles)라는 아동·청소년 오케스트라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엘 시스테마가 낳은 스타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이 LA 필을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YOLA는 세계의 이목을 끌기 쉬웠다(YOLA와 관련된 동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보면 각양각색의 피부색을 가진 아동·청소년들이 오케스트라 속에 모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인종 문제가 많은 미국 내에서 이와 같은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다. 지휘자 마린 올솝의 적극적인 리더십 하에 진행되고 있는 볼티모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오키즈(Orchkids)를 비롯하여 애틀랜타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애틀랜타 뮤직 프로젝트를,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청소년 음악 축제 등을 실행하고 있다.
이들은 자기화(현지화)를 이루고, 이러한 교육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많은 힘을 쏟고 있다. 그러면서 지역-주민-오케스트라의 연결 고리는 더욱더 단단해진다. 이러한 ‘오케스트라-학교’ 모델의 지향을 통해 (전인·감성교육→전인교육)과 ‘풀뿌리’ 오케스트라 형성은 물론이고 관객개발과 이를 위한 다양한 인프라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완성된 음악’을 제공했던 오케스트라들은 ‘완성되는 음악’의 즐거움을 (예비) 관객과 나누고 있다.

▲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공연된 ‘2014 꿈의 오케스트라 합동공연’(사진출처: 아르떼365 홈페이지)
결론은 관객의 '마음 경영'이 아닐까
현장에서 위와 같은 이야기를 하면 당사자가 아니라 고충을 모른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그들은 이런 희망보다는 지금에 처한 상황 즉, 비생산적이고 불합리한 경영구조, 상임지휘자와 음악감독의 이상적인 분리 및 전문화의 절대적인 필요 등을 말한다. 그들의 불만을 개선하는 것이 교향악단의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많은 교향악단들은 금전의 직접적인 이득보다는 ‘관객의 마음’이라는 상징자본을 획득하기 위해 문제점을 다양화하고 있다. 예전에 강남심포니의 지휘자 서현석과 나눈 대화 중 한 부분이 떠오른다. 그는 “‘보통 CEO에게 지휘자가 오케스트라 운영하듯 회사를 운영해야 한다’는 말은 오케스트라는 정말 운영하기 힘든 곳이기에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면 모든 회사를 다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단 한 명의 영웅(=지휘자)에 대한 기대, 운영과 행정에 대한 불만은 이제 낙후된 고민이 되고 있다. 보다 다양하고 총체적이고 생산적인 고민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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