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동준

2006년 1월 예술의전당 서예관의 작은 사무실에서 시작했던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벌써 1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예술 현장의 자생력 강화와 예술단체의 경영 전문화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펼쳐왔고, 사업 규모의 확대와 함께 내실을 다지기 위한 노력과 변화도 적잖았다. 그중 문화예술단체 운영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하여 변호사, 회계사, 노무사 등 각 분야별 전문가들의 답변을 제공하는 예술경영 컨설팅 역시 온라인 상담에서 재원조성, 홍보마케팅, 재무회계, 조직경영 전략 컨설팅까지 다양한 층위의 문제 해결을 위한 중층적인 설계가 이뤄졌다. 예술경영 컨설팅은 예술단체의 성장과 문제 해결에 얼마나 도움이 되고 있을까? 그간 예술경영 컨설팅을 가장 활발히 이용한 정가악회 설동준 기획실장을 만났다.

예술단체로 온 공학도

남은정 대학에서 원자력공학을 전공했다고 들었다. 어떻게 예술단체의 경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

설동준 대학교 때 마당극 동아리를 하며 탈춤, 풍물, 연극을 너무 좋아했다. 동아리에서의 삶이 굉장히 영향을 많이 줬다. 동아리 선후배들 중에 극단 북새통 김소리 대표, 타루에서 활동한 곽동근, 민경준 등이 있다. 타루는 창단 공연하는 것도 도왔을 만큼 인연이 깊다. 정가악회는 동아리에서 굉장히 친하게 지낸 친구가 부대표였기 때문에 알고는 있었지만, 나한테는 작품이 너무 어려워서 별로 좋아하는 곳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여기서 일하게 되었다.(웃음)

대안학교 교사, 학원 강사, 신문사 기자 등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늦은 나이에 군대를 갔다 와서 첫 직장으로 생각하고 들어간 곳이 공연장 컨설팅하는 건설 회사였다. 그런데 건설업계 ‘관행’이라는 것이 수용이 안 되더라. 군대도 그렇고, 건설 회사도 그렇고, 원칙을 벗어난 관행이 만연한 사회에 과연 내가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겼었다. 그래서 좋아하는 공부나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정가악회에서 함께 일하자고 연락이 왔다. 예술단체에서 일하는 게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딱 하루 고민했다. 예술이 가진 힘이 나를 사회와 직면하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러고 나면 두려움이 사라질 것 같았다.

법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메울 수 있는 방법은?

설동준

남은정 (재)예술경영지원센터와는 2010년 정가악회가 문화예술 분야 사회적기업 육성사업에 참여하면서 처음 만났었다. 정가악회 역시 단체의 운영 방향을 재정립하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교육에서도, 컨설팅에서도 질문이 굉장히 많았기도 했지만, 다른 단체에서 흔히 하지 않는 질문을 자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설동준 그 당시 사회적 일자리 창출 사업과 관련한 인사노무, 세무회계 교육과 컨설팅을 많이 받았고, 질문을 많이 해서 함께 교육받는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렸을 것이다.(웃음) 사실 교육에서는 원칙을 배울 뿐, 적용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단체에 적용하는 방법을 예술경영 컨설팅에 질문했다. ‘아, 법이 이렇구나. 그럼 우리 단체는 불법이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단체와의 접점을 찾고 싶었다. 법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메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당시 문화예술 분야 사회적기업은 예술단체에게 어마어마한 변화였다. 고용노동부도 그 이전에 일자리 창출사업에 참여했던 업종과는 너무 달라서 서로 어려움이 컸다. 고용부에서는 매월 제출받은 출근부와 이런저런 자료들을 꼼꼼히 보고 하나하나 묻는데, 함께 일하는 예술가들은 출근부를 쓰는 것 자체도 익숙하지 않았다. 엄청난 갭(gap)이었다. 함께 일하는 연주자들에게 이것이 사회의 보편적 규정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함께해 달라고 요청했다. 또 한편으로 고용부 관계자들에게는 예술단체의 특수성을 강조하고 양쪽을 조율하는 역할을 했다. 내가 했던 질문들, 답을 찾고자 했던 노력들은 다 이 과정 속에 있었다.

내가 정말 싫어하는 것이 ‘가라(가짜) 행정’이다. 거짓말하지 않고도 예술단체의 특수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경영 형태를 만들어보겠다는 욕심이 있었다. 그때 근로기준법, 4대 보험 관련 법률, 보조금 사용규정 등 자료를 찾아서 하나하나 읽어보고, 궁금한 게 생기면(예술경영 컨설팅에) 묻고 또 물었다.

남은정 예술단체의 근무 형태와 예술 분야 직무의 특수성을 설명하는 데 정가악회를 비롯해 당시 문화예술 분야 사회적기업 육성사업 참여 단체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었다. 공통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고용부도 좀 더 유연하게 인정해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회적기업 인증 과정은 순조로웠나?

설동준 사회적기업 인증을 준비할 때, 유일하게 한 번 울었던 것 같다. 굉장히 힘들었다. 인증 신청 6개월 전에 법인격을 갖춰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단체가 많지 않았다. 법인격을 갖추지 못해 인증 신청의 기회조차 없고, 남은 3년 동안의 일자리 지원금을 다 포기해야 하고, 이 많은 단원들에게 급여를 줄 수 없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을 때, 정말 절망적이었다. 그래서 문화부와 고용부를 찾아가서 설득을 했고, 기적처럼 예외적으로 딱 한 번 인증받을 기회가 주어졌다. 그때부터 6개월간 법인설립-사업자등록-인증 신청까지 한 번이라도 관련 서류가 반려되면 안 되는 힘든 과정을 거쳐,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사회적 일자리 창출사업에 참여하기 전에 정가악회는 예술가 동인으로서 철학을 공유하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면, 그 후에는 노무관리, 회계관리 등 경영의 보편성을 이해하고 수용해야 했다. 이것이 자리 잡히기까지 3, 4년쯤 걸렸다. 실제로 사회적 일자리 창출사업에 참여하던 많은 예술단체들이 노무관리가 힘들어서 이탈했다. 정가악회는 단원들과 함께 가기 위해서도 꼭 필요했고, 개인적으로도 창작 예술단체로서 생존해 내는 사례를 꼭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정가악회도 나 자신도 많이 단련되었다.

설동준

남은정 법인설립부터 운영까지 모든 단계를 압축적으로 거쳤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고민을 해결하는 데 예술경영 컨설팅이 도움이 되었나?

설동준 예술경영 컨설팅이 답을 찾아주었다기보다는 답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해준 것 같다. 결국 문제 해결은 나와 우리 단체가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단체의 특수한 사항이 이러한데 이렇게 하면 될까요?”라고 질문하면, 거의 대부분 “단체 상황이 그러하다는 것은 알겠으나, 법은 그렇지 않습니다.”라는 답이 온다. 그렇지만 나중에 어떤 문제가 생길지 예상하게 된다. 그때부터 답을 찾는 시간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답을 찾으려면 법을 찾든, 사례를 찾든 해야 하지 않나? 그때 어떤 걸 찾아야 할지 알려주었다는 면에서 도움이 된 것 같다. 예술경영 컨설턴트분들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굳이 갈 필요 없는 길을 조언을 해주고, 남은 길 중에서 직접 선택하게 해주는 것이다.

사람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가장 큰 과제

남은정 그사이 5~6년이 흘렀다. 정가악회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경영적인 이슈도 인사노무나 세무회계에서 다른 차원으로 넘어갔을 것 같다.

설동준 인사노무나 세무회계는 경영상 지켜야 하는 최소치는 넘어선 것 같다. 가이드라인 준수를 넘어서고 나면 꼭 따라붙는 과제가 HR(human resources, 인적자원관리)인 것 같다. 지금 시점에서는 사람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가 제일 큰 과제이자 의무인 시기이다. 단원 하나하나가 밖에서도 욕심낼 만한 실력을 갖추지 못하면 민간예술단체로서 스무 명이 넘는 조직 규모를 유지하기 어렵다.

사회적기업 지원이 종료되었고, 2014년부터 서울시로부터 남산골 한옥마을과 남산국악당을 위탁받아 메타기획컨설팅과 공동 운영하고 있다. 이제 ‘생존’이라는 또 다른 경영적 이슈가 생겨났다. 지원 종료 후에도 전 단원을 상근직으로 고용하는 창작 예술단체는 우리가 유일하다고 들었다. 대표와 둘이 마주앉아 다음 월급날을 걱정했던 것이 몇 번인지 모른다. 그 실험의 끝자락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는 우리 단체가 가지고 있는 예술적 방향이나 철학, 문화를 ‘고용’을 통해 들어온 단원들에게까지 전달하고 공유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기업 형태로 운영하다 보니 고용한 사람과 고용된 사람, 업무를 지시하는 사람과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사람이 나뉘는 것이 고민이다. 단원 모두가 주인의식(ownership)을 가지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설동준

남은정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컨설팅을 비롯해 센터에 거는 기대와 바람이 있다면?

설동준 설동준 사람을 키워냈으면 좋겠다. 예술단체에서 일할 중간 관리자를 훈련하고 키워내야 한다. 예술경영이라는 용어조차 익숙하지 않았던 이전 10년 동안 가장 기초적인 경영의 씨앗을 뿌렸다면, 향후 10년간은 예술단체에서 어떻게 사람을 키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수많은 예술경영 분야 인력들이 예술단체에서 소모되고 다른 분야로 이직한다. 왜 유능한 인재들이 이 분야에서 떠나는가에 대해 연구해야 하고, 이 분야에서 성장할 수 있는 트랙이 만들어져야 한다.

남은정 앞으로 어떤 예술경영인이 되고 싶나?

설동준 후배를 잘 키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를 비롯한 예술단체 기획자들 대부분이 처음에 아무런 도움 없이 생으로 부딪쳐서 배웠다면, 앞으로는 후배들에게 노하우를 전달하고 역량을 전수할 수 있는 체계를 디자인하고 싶다. 맨땅에 헤딩하지 않도록 매뉴얼이든, 시스템이든 그런 것을 만들어 주고 싶다. 신임 기획자들에게 줄 수 있는 실무 매뉴얼을 작년부터 만들어 보고 싶었는데, 업무가 밀려 못했다. (재)예술경영지원센터에 그런 것도 좀 부탁하고 싶다. 『예술경영FAQ』 에 그런 요소가 있긴 한데, 그것을 좀 더 실무적으로 만들어주면 좋겠다. 예술경영 서식 공유센터도 만들어보고 싶다. 온라인 사이트 비○폼, 예○폼에 유료 회원 가입해서 정말 많은 서식을 다운받아 봤는데, 일반 기업에서나 쓸법한 서식이다. 서식 안에는 일의 체계와 큰 틀, 문화가 반영되어 있다. 예술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서식을 모아 공유하면 좋을 것 같다.



설동준
필자소개 필자소개
남은정은 (재)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5년 반 동안 정보지원, 인력양성, 컨설팅 업무를 두루 담당했다. 지금은 웹진 《아르떼365》(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제작‧운영 프로젝트 총괄기획과 문화예술협력네트워크 추진단(한국문화예술위원회) 프로그램 디렉터를 맡고 있다. 정성스럽게 일하고 재미지게 노는 새콤달콤한 삶을 궁리 중이다.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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