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인적이 드문 지역에 사람들을 불러 모으면서 연극, 음악, 미술을 통해 지역 경제를 풍요롭게 만드는 부가가치 창출의 기회를 제공한다. 연극, 음악, 미술은 지역 사회를 서서히 물들이고 하나의 문화와 정체성을 만들어 내면서 지역을 살리는 하드웨어이자 다양성을 통해 삶을 풍요롭게 하는 소프트웨어로써 활용된다. 연극을 통해 역사 도시의 가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아비뇽페스티벌, 오랜 기간 동면에 빠졌던 도시의 희망을 미술로 쏘아 올린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 음악이란 테마로 문화의 미래 도시를 구현한 애스펀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여기, 앞의 사례처럼 유명하지는 않지만 숨겨진 요새와 같던 산골 마을에서 연극의 중심지로 탈바꿈한 연극촌이 있다. 일본 도쿄 중앙 북부의 도야마 현(富山県) 난토 시(南砺市)에 위치한 ‘도가 연극촌’이 바로 그곳이다. 이곳은 연극의 새로운 형식을 찾고자 한 신진 연출가가 문화 불모지나 다름없는 산촌에 들어가, 오랜 기간 지역 공동체와 협력하며 도가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공연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도가 연극촌 지도

▲ 도가 연극촌 지도

연극만을 위한 예술촌

도가 연극촌을 형성한 연출가 스즈키 다다시

▲ 도가예술촌 형성한 연출가 스즈키 다다시

도가 마을은 해발 600m에 위치할 뿐만 아니라 삼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겨울이 되면 눈이 3~4m가 쌓이는 지형을 가진 탓에 과거 전투에서 패한 사무라이들이 숨어 살던 오지(奧地)였다. 그러나 이제는 일본 안팎에서 4천여 명의 관객이 오직 연극을 보기 위해 찾는 연극의 성지(聖地)가 됐다. 그 이야기는 1972년 겨울, 스즈키 다다시(Suzuki Tadashi)라는 젊은 연출가가 이 산촌을 방문하면서부터 시작되는데, 당시 나름 주목받던 신진 연출가였던 그는 사람들이 찾아오기 쉬운 장소인 도시에서만 연극이 열리고 일본 내의 정치, 경제, 문화 기관들이 모두 도쿄에 과도하게 집중되는 것에 의문을 품으며, 연극만을 위한 예술촌을 만들고자 이곳을 찾게 되었다. 이러한 포부 아래 그는 마을 촌장에게 사람이 살지 않는 초가집 한 채를 빌려, 건축가 아라타 이소자키(Arata Isozaki)의 도움으로 일본 전통 가옥인 ‘갓쇼 즈쿠리(gassho-zukuri)’ 양식으로 개조해 ‘스즈키 컴퍼니 오브 도가(Suzuki Company of Toga, 이하 SCOT)’라는 이름을 붙인 극장을 개관했다. 처음에는 한 젊은 예술인의 아주 작고 소소한 열정에 불과했지만, 40여 년이란 긴 시간 동안 숙소, 리허설 룸, 퍼포밍 스페이스, 스튜디오 극장, 블랙박스 극장, 야외극장 ‘rock’, 고대 그리스 양식에 일본 노(能)스타일을 가미한 호숫가의 원형극장, 마을 체육관을 개조한 극장 도가대산방 등 시설을 추가해가면서, 1982년부터 1999년까지 열린 ‘도가 국제 예술 페스티벌’, 최근의 ‘2015 SCOT 여름 시즌’ 등 콘텐츠를 확장해가며 현재 세계 각국의 연극인들과 함께 많은 이들을 이곳으로 불러 모으고 있다. 물론 도가 연극촌이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일본 국제교류기금과 도야마 현 등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의 묵묵한 지원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도가 연극촌의 공연 모습

▲ 스즈키 다다시가 연출한 도가 연극촌의 공연 모습

지적 활동으로서의 연극

이러한 하드웨어 측면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세계의 연기자들을 이곳으로 모이게 한 첫 번째 이유는 SCOT의 워크숍을 통해 스즈키가 개발한 연기론인 ‘스즈키 메소드’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각국에서 참여한 연기자들이 공연을 준비하면서 함께 협력하고 서로의 문화적 유사성과 차이점을 인식하면서 새로운 개념의 극장과 문화를 접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연극을 지적 활동으로 생각하는 연극인들이 많이 찾는다는 것이다. 또한 관객들은 이곳에서 연기자들을 통해 내뱉어지는 스즈키 메소드를 직접 눈으로 보면서, 불필요한 간섭 없이 훌륭한 환경 속에서 어떤 장벽 없이 예술가들과 교류할 수 있다. 이러한 요소의 결합은 도가 연극촌이 아시아 연극 예술의 중심지로 발돋움하는 데 큰 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최근 도가 연극촌에서는 지난 8월 21일부터 9월 10일까지 ‘SCOT 여름 시즌’이 개최됐다. SCOT 출범 50주년, 도가 기관 설립 4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시즌은 스즈키가 감독한 6개의 작품을 중심으로 ‘도가 아시안 아트 페스티벌’, ‘도가 아시아 디렉터 페스티벌’, 강연이 마련되었다. 화려한 불꽃과 함께 원형극장에서 펼쳐진 개막작 ‘세계의 끝에서 안녕(Greetings from the Edge of the Earth, 1991)’, 한국을 포함해 6개국 배우들이 참여한 ‘리어왕(King Lea, 1984)’, ‘트로이의 여인들(The Trojan Women, 1974)’, ‘엘렉트라(Electra, 1995)’, ‘신데렐라(Cinderella, 2012)’, ‘가라타치 니키의 기원가(The Origin of the Song "Karatachi Nikki", 2014)’ 등 스즈키의 연출작들이 20개국에서 참여한 30여 명의 연극인들을 통해 상연되었다.

사진출처_SC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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