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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하고 싶은 죽음, 그다음은 세금
아마 사람들에게 가장 피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죽음일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은 세금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인간에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세금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경기 부양책으로 소비세를 인하하고 부양책을 쓰는 등의 정책을 펴지만 사실 그렇게 사람들이 호락호락하게 주머니를 열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해외 통상 무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서로 간의 교역량을 확대하려고 각국은 서로가 관세를 철폐하고 통상 무역에서 우위를 선점하고자 자유무역협정(FTA, Free Trade Agreement)을 맺으면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일본과 미국 등은 소위 메가 FTA협정이라 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을 통해 보다 더 유리한 세금 면제, 즉 관세 철폐의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가히 관세 철폐라는 측면에서 보면 ‘ONE World’이다. 그리고 이런 기류를 가장 편하고 빠르게 주저 없이 즉각 반영하고 정책으로 내놓아 세계시장을 주도하는 곳이 싱가포르와 홍콩이다. 작은 도시 국가라는 장점이 있지만 그들은 재빠르게 변신하고, 치고 빠져나간다. 땅덩어리가 크고 인구가 많은 커다란 나라들도 이들의 치고 빠지기 또는 민첩함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홍콩, 세계 미술시장의 중심이 되다
한창 미술시장이 활황이던, 아니 활황이 시작되었던 2000년대 초반 로렌조 루돌프(Lorenzo Rudolf)에 의해 아트페어 ‘아트 스테이지 싱가포르’가 창립됐다. 2010년부터 아트 스테이지 싱가포르는 새로운 명소가 된 마리나 베이에서 개최되었다. 하지만 홍콩을 이길 수는 없었다. 홍콩의 아트페어가 베이징 아트페어나 상하이 아트페어에 비해 그렇게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말이다.
중국 미술시장은 가장 짧은 시간 내에 구매력이 강하고 왕성한 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이러한 수요에 부응해서 베이징과 상하이에 아트페어가 창설되었다. 아트베이징을 운영하는 베이징 어페어 컬처(Beijing Artfair Culture co., Ltd)는 1993년부터 2002년까지 중국미술엑스포를 운영했던 동 멍양(Dong Mengyang)의 소유이다. 2006년에 이름을 베이징아트페어로 바꾸고 ‘예술북경 당대예술박람회’와 ‘예술북경 고정예술박람회’를 흡수·통합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상하이 아트페어도 1996년에 출범했다. 하지만 이들의 전성시대는 2008년 홍콩아트페어가 창립되는 해까지였다.
홍콩아트페어의 번성과 싱가포르와 베이징, 상하이 아트페어의 몰락의 배경에는 세금이 있다. 중국에는 30%의 수입세가 있는데, 중국 작품 외에 다른 국가의 작품이 판매될 때는 30%의 세금이 부과되어 유통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림을 보고 구매를 결정하는 것은 베이징이나 상하이아트페어에서였지만 실제로 그림이 구매자의 손으로 넘어가는 일은 홍콩에서 이루어졌다.
홍콩이 최근 세계 미술시장에서 ‘핫 플레이스’(hot place)로 떠오른 것은 불과 몇 년 전 일이다. 2008년 창립된 아트 홍콩(ART HK)을 2012년 바젤아트페어의 모기업인 HMC가 아트 홍콩의 지분 60%를 인수하면서, 홍콩은 더욱 적극적인 면모를 갖춘 일약 세계 최대의 미술시장으로 성장했다. 일반적으로 세계 도처에서 열리는 아트페어들은 개최 도시의 미술관, 박물관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해서 보여 주기와 아트페어에서의 판매를 동시에 진행하고, 한편으로는 미술관들, 박물관들의 기획전을 통해 페어에 나온 상품으로서의 미술품의 가치와 예술성을 보증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러나 아트바젤홍콩은 철저하게 상업적이다. 오히려 여타의 아트페어를 벤치마킹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인프라와 시장의 현황을 확실하게 분석하고 평가해서 자신들만의 아트페어를 만들어 냈다. 홍콩은 박물관, 미술관의 인프라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체 시장도 빈약했다. 그러나 자국을 찾는 많은 관광객을 유치했던 경험과 인프라로 아트페어를 자국의 주요 문화 상품 및 외화벌이 수단으로 삼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이제는 미술시장의 중심은 런던이나 뉴욕이 아니라 홍콩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처럼 홍콩이 미술시장의 핵으로 부상한 것은 세금이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홍콩은 철저하게 아트페어를 컨벤션 산업의 하나로 접근했다. 세금을 부과하기보다는 그림을 사고팔러오는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자 한 점이 주효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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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 아트바젤홍콩 전경 ⓒArt Basel
미술시장의 중심을 향한 노력
아시아 국가 화랑들에게 아트바젤홍콩 참여의 문턱은 매우 높다. 그런데 차선책으로 눈을 돌리는 아트페어는 아시아에서 가장 역사가 깊다는 한국국제아트페어(KIAF)가 아니라 ‘아시아 미술의 허브’를 표방하고 나선 싱가포르의 ‘아트스테이지 싱가포르’라고 한다. 싱가포르는 홍콩에 빼앗긴 아트페어의 중심을 되찾기 위해 부쩍 노력하고 있다. 식민지시절 영국군 주둔지였던 ‘길만 배럭(Gillman Barracks)’을 ‘아시아 현대미술의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 이곳에 세계 주요 갤러리와 작가 레지던시, 현대미술센터를 설립하고 무관세 지역인 홍콩 미술시장과 경쟁하기 위해 창이공항에 창고인 동시에 무관세 거래소인 싱가포르 프리포트를 만들어 미술품을 비롯해 보석, 빈티지 등 고가품 거래의 중심지로 육성하려 한다. 중국도 예외는 아니다. 중국은 국영기업인 거화문화개발그룹을 통해 50억 위안(약 8,920억 원)을 투자해 베이징국제공항 근처에 베이징 문화 프리포트라는 예술 면세 구역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이곳을 영화, 정보 기술, 미술을 합친 복합무역센터로 성장시키고, 2016년까지 사업 규모를 500억 위안으로 확대한다고 한다. 이에 질세라 상하이도 상하이자유무역지구 내에 미술품 보세 창고와 보세 전시 구역 등을 마련해 보세 창고를 이용하는 미술품 거래에 대해 부과되는 총 35%의 세금을 면세해 주거나, 미술품 수출입 보증금에 대한 납부 면제, 자유무역지구 내 외국 기업의 독자적인 예술품 경매 허용 등과 같은 파격적인 정책으로 승부수를 던진 상태이다.
이렇게 모두 예술 면세특구를 조성하면서 예술과 예술품 거래시장을 활성화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예술품과 예술시장이 어느 분야보다 부가가치가 높고 상품보다는 문화적 가치로 도시의 이미지를 향상시키는 한편 컨벤션 산업으로서의 가치 또한 높기 때문이다.
제주문화예술면세특구
이렇게 홍콩을 비롯해서 싱가포르, 상하이, 베이징 등 아시아 국가들이 문화예술시장의 허브가 되고자 노력을 다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의 노력은 매우 미미하다. 아니 구경꾼의 신세인지도 모르겠다. 정부는 총 30억도 안 되는 세수를 위해 미술시장에 2013년부터 양도차익의 20%를 기타소득세로 부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는 작고 작가의 작품에 국한된 것을 생존 작가에게까지 확대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아무튼 문화예술시장의 중심, 허브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죽음만큼 피해갈 수 없다는 세금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사실 문화예술시장에서 거래되는 문화적 자산은 상품인 동시에 문화재이다. 이런 특성을 갖춘 상품은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일반적인 공산품이나 농산물과는 다르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면세라는 유인책이 문화예술의 발전과 부가가치 창출, 특히 컨벤션 산업으로서의 예상되는 성과 측정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면세나 세제 지원을 통한 문화콘텐츠 산업의 육성책은 시행되고 있지만 이를 문화콘텐츠 측면에서 정책으로 다룰 것인지 아니면 문화예술 거래를 위한 시장 기능, 즉 거래에 중점을 둘 것인지를 우선 결정해야 할 것이다. 또한 컨벤션 산업으로서의 아트페어와 공연마켓 등에 참여하는 업체들을 위한 중소기업에 대한 조세특례, 인구 및 인력 개발을 위한 조세특례, 투자 촉진을 위한 조세특례에 대한 세제 지원 또는 감면책은 당장이라도 가능할 것이다. 향후 제주에 중국 하이난의 하이난 국제 관광섬 육성책처럼 동일한 면세 혜택을 준다고 하는데, 이를 문화예술 분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싱가포르가 파격적인 조건으로 마리나 베이 샌즈 카지노를 유치하고 운영하는 것과 같은 과단성 있는 정책 도입이 필요하다.
특히 제주 제2공항이 완공되는 것을 계기로 이를 100% 이상 활용하여 객단가 높은 해외 관광객을 유치할 계획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하고 해외 사례를 연구해서 우리 실정에 맞는 시스템으로 정교하게 다듬어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제주의 천혜의 자연환경을 이용한 야외극장이나 전천후 야외극장 등의 인프라를 건립하여 에든버러 페스티벌이나 애들레이드 축제 같은 프로그램 개발이 중요하다. 물론 기존의 페스티벌과는 중복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공연예술의 예를 들어 논버벌 퍼포먼스 공연으로 특화하거나 한류의 중심 아이템인 비보이 공연 등으로 특화시키는 것도 대안이 될 것이다. 또한 이런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부대시설도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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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든버러 페스티벌 전경 ⓒLaura Suarez
수준 높은 소장품을 지닌 미술관이나 아니면 세계적인 컬렉터들의 소장품을 대여·관리해 주는 창고형 미술관(Schaulager) 등도 고려해 볼 만하다. 또 외국과 국내 주요 소장가들의 작품을 전시해 주는 세계 유일의 미술관인 독일의 브레멘에 위치한 ‘Neues Museum Weserburg’ 같은 곳과 업무 제휴를 통해 세계적인 컬렉터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등의 방법도 있을 것이다. 싱가포르나 아부다비처럼 세계적인 미술관의 분관을 제주에 건립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일 것이다. 이외에도 전 세계의 미술품들을 수복·보존하는 컨서베이션(Conservation)센터 등을 설립하는 것을 비롯해서 세계에서 걸작품이 가장 많이 거래된다는 마스트리트(Maastricht)에서 열리는 이른바 테파프(TEFAF-The European Fine Art Fair)를 유치하거나 디자인 마이애미 같은 분야를 유치하는 등의 방법을 다각도로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제주도의 문화예술 면세특구의 지정과 운영·발전을 위한 연구에 착수해야 한다.
▲ 디자인 마이애미 ⓒDesign Miami
제주 문화예술 면세특구의 활성화는 실질적으로는 문화예술에 특화된 컨벤션 산업 육성으로 이어져 제주는 산업의 열매를 취하고 문화예술계는 시장의 활성화를 통한 한류의 보급과 문화예술의 발전, 연관 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특히 컨벤션 산업은 전시와 국제회의, 관광과 이벤트를 포함하는 복합적인 산업이다. 1차적으로는 컨벤션센터의 운영과 관련 설비, 서비스 산업이 주를 이루나 유관 산업과 연계성이 높아 사실은 간접적인 경제적 파급효과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현저하게 저조한 제주컨벤션센터(JCC)의 가동률만 개선시켜 만성적인 적자 구조만 탈피한다 해도 그 경제적 효과와 파급효과는 대단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한 소비 유발 효과로 제주 경제도 활황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제주가 국제문화예술시장의 허브로 작동하게 되면 제주의 이미지는 물론 국가 이미지 제고, 정치적 위상 증대, 사회 및 문화의 교류 등에서 파생되는 효과는 대단할 것이다. 문화예술뿐만 아니라 새로운 지식이나 특허, 기술을 사고파는 컨벤션으로 발전시켜 나간다면 세계 유일의 문화예술 지식산업 유통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제주의 섬이라는 지리적 단점을 역으로 장점으로 가꾸어 문화예술면세특구로의 지정과 정교한 계획과 과감한 실천을 통해 한국을 문화예술 지식산업의 중간 기지로 키워 나갈 방도를 곰곰이 생각해 볼 때다.
※ 참고링크 [핫&이슈] 제주 문화예술의 현황과 제언 - ‘제주, 예술과 영감의 섬’, 총체적 디자인이 필요하다. [이.상.공간] 제주 가시리창작지원센터 - 삶의 현장과 현대 예술의 만남 [현장+人] 이상철 제주국제관악제 집행위원장 - 제주의 바람, 음악으로 화(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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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지난 30여 년간 큐레이터와 미술비평, 문화정책분야의 현장에서 뛰어 왔다. 생각과 동시에 움직이는 그는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1996~2006), 고양문화재단 전시감독, 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창조원 전시감독, 2015 서울공예박람회 전시감독, 광주비엔날레 이사, 대구사진비엔날레 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한국미술, 전쟁을 그리다』(2014, 마로니에북스), 『한국근대미술을 빛낸 그림들』(2014, 컬처북스), 『영화 속 미술관』(2011, 마로니에북스)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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