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계는 살아 있는 생물이다. 촛불혁명과 미투 등을 거치면서 민주성이 강화됐고, 예술가와 관객이 주고받는 들숨과 날숨이 더 역동적이게 됐다. 주 52시간 근무제, 최저임금제, 표준계약서 등이 화두가 되면서 노동권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 카카오 진출 등 산업적인 측면의 변화도 심화되고 있다. 이런 이슈들이 집약된 2019년 상반기 공연계는 폭풍전야와 같았다. 앞서 언급한 것들이 각자 발을 떼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문제들을 논의하는 것은 올해 하반기뿐만 아니라 앞으로 공연계 향방을 예측해보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올바른 방향성을 위해 이 대항해 시대를 앞두고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댔다.

일시/장소 : 2019. 7. 4.(목) / 예술경영지원센터 회의실
진행 : 안태호(웹진≪예술경영≫ 편집장)
참석 : 김요안(두산아트센터 수석 프로듀서)
김윤규(댄스시어터 틱 대표, 현대무용가)
설동준(DMZ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사무국장, 웹진 편집위원)
이재훈(뉴시스 문화부 공연· 음악전문 기자)
최윤우(한국소극장협회 사무국장)

주 52시간 근무제와 표준계약서 그리고 노동권

상반기 한국 공연예술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슈나 경향은 무엇일까? 작품 창작 경향부터 시장 동향, 정책에 이르기까지 각자 생각하는 이슈 또는 흐름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김요안 연초 주요한 이슈는 전년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최저임금제 적용과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이다. 공연계는 여러 특성상 이 이슈들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기관이나 대형 극장의 경우 가능한 올해 시점부터 주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하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열정과 시간을 집중 투입하는 것이 기본인 문화계에 종사하는 공연 예술가들에게 주 52시간 근무제는 여전히 낯선 개념이다. 예술가와 소통 조절, 적용할 여러 과제 등이 있어 실제 적용은 현재 진행형이다. 영화·방송 분야 등도 복잡한 상황이지만 실마리를 잡아가는 상황인 걸로 알고 있다.

안태호 노동권과 더불어 같이 이야기할 만한 이슈들이다. 한국 영화 최초로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노동 조건을 잘 지킨 사례로 더 이슈가 됐다. 공연계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과 함께 연습 시간, 공연장 운영 시간이 줄어든다든가 하는 변화가 진행 중이다. 주변의 반응이나 향후 전망을 짚어볼 수 있을까?

설동준 봉준호 감독의 경우 해외 프로덕션과 협업하고, 산업화된 영화팀과 작업하면서 그들의 노동 환경을 익히고 연습하는 과정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영화계는 노조와 표준계약 이슈를 일찌감치 도입했다. 오랜 훈련 과정도 있었다. 봉 감독의 수상이 주 52시간 근로시간 준수로 화제가 옮겨가는 현상을 보면서 우리 공연업은 아직 전근대에 머물러 있는데, 조금 더 산업화가 진전된 브로드웨이의 시스템은 어떤지, 또 그곳에는 노동시간 이슈를 체계화하는 과정이 갖춰져 있는지 궁금했다.

김윤규 20년 전쯤 독일 무용단과 작업한 적이 있었는데, 이미 그들은 결과물뿐만 아니라 작업 과정과 활동까지도 지원 대상의 범주로 바라보는 시각을 갖고 있었다. 3개월간의 작업 기간 동안 숙식과 연습 과정까지 모두 임금으로 제공하고 있었다. 결과물에 대한 환산도 중요하지만 여기에 들이는 시간과 과정까지 노동으로 간주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예술가들의 임금과 고용 환경과 관련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예술인 복지나 지원제도 체계와도 연관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좀 더 본격적으로 드러내어 논의해야 한다고 본다.

최윤우 주 52시간 근무제의 경우 정착 과정에서 이를 적용 중인 공공기관과 그렇지 않은 민간 예술 단체가 무대를 준비하면서 마찰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정책 변화에 대한 이해가 덜한 민간 예술 단체가 아르코예술극장을 대관한다고 했을 때, 근무제 시행 이전에는 가능했던 무대 관련 요구들을 현재 시스템에서는 무대감독들이 지원해줄 수가 없는 미미한 갈등 상황들이 생기는 것이다. 또한 민간에서는 52시간 근무제의 실제 도입 사례가 없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무대예술전문인력지원사업의 지원을 받는 경우 정도만 탄력 적용하여 운영하는 정도다.

최윤우 한국소극장협회 사무국장 최윤우 한국소극장협회 사무국장

이재훈 공연계가 산업화가 돼 있지 않아 주 52시간 근무제 실현이 힘든 점도 있다고 본다. 돈이 벌리지 않는 구조에서 인력 운영을 해야 하다 보니, 대가를 지급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하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희생이 긍정적으로 작용되거나 낭만적으로 포장되는 시대가 아니다. 연희단거리패 이윤택 예술감독과 같이 절대적인 권력자가 생길 수 있었던 것도 열악한 노동 환경 구조 때문이었다. 영화 <기생충>의 노동 환경은 스크린 쿼터제나 영화입장권 통합전산망 등 산업적인 구조가 20년에 걸쳐 성사됐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본다. 현재 공연계 주 52시간 근무제는 공공기관의 사무직에 한정된 거라고 본다. 충무아트센터 무대노동자들의 쟁의 행위만 봐도 아직 갈 길이 멀다. 52시간 근무제는 논의할 게 너무 많다. 일부 기관만 잘된다고 해서 희망적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연극뿐 아니라, 클래식, 무용계는 더욱 열악하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기관 위주로만 언급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산업적 틀을 갖춰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단기간에 성과를 내겠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공연 노동 환경에서 헌신이나 열정페이가 별다른 문제없이 받아들여지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 최저임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공연 현장에서 임금 미지급 사태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최윤우 소극장에선 직접 고용 가능한 인력은, 지원사업 기반의 인턴이나 인력지원사업에 의한 사례 정도이다. 무대예술전문인력 지원 사업이나 특성화극장 지원 사업 등 극장 관련 지원을 받으려면 전년도에 4대 보험을 납부한 인력이 1명 이상 있어야 하고, 최소 6개월간의 실적도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그 실적에는 최저임금이 적용돼 있지 않다. 50만 원을 월 급여로 준다고 해도 4대 보험을 납입할 수 있다. 다만, 그만큼의 지원금이 줄어든다. 소극장에는 최저임금이 거의 적용돼 있지 않다. 인력 분포조차 파악할 수 없다. 공공사업과 연관돼 있지 않은 이상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설동준 최저임금이 공공사업과 연계되어야 한다는 건 체감했다. ‘정가악회’의 경우 2009년 예비 사회적기업이 되면서 만 5년을 지원받았다. 창단하고 10년 동안 급여가 없었는데 2009년 10월을 기점으로 최저임금을 맞춘 월급을 지급했다. 이후 서울남산국악당에서 1년간 상설공연을 하면서 생긴 수익으로 2년간 생활임금을 지급할 수 있었다. 근 10년 동안 급여 지급 방안을 실험해왔지만, 이것조차 예외적인 사례였다. 아마 예술 단체 스스로 100% 충당해야 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김요안 무대나 조명 스태프들의 경우 그룹별로 일정 정도의 최저임금을 결정하거나 요구하기도 한다. 이것이 다른 스태프들 급여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한편 자신의 목소리나 이해를 대변하기 힘든 개별 예술가들은 그 안에서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 산업화의 흐름이 예술계에 영향을 미친다면, 이에 따라 예술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에 대한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

김윤규 프로 예술 단체가 연간 몇 회 정도나 공연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공연이 예술가의 실질적인 수입 구조와 관계되겠는가? 대부분의 창작품으로 각 지역 공연예술 축제로의 초청 공연 또는 복권 기금이 문화재정으로 유입되며 시작된 <문예회관과 함께하는 방방곡곡 문화공감 사업>이 그나마 단체의 공연 활동과 수익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매번 그렇듯 안정적이지 않다. 이렇게 평균 공연 횟수와 수익구조가 해마다 불안정한 단체와 그 소속원은 늘 기본적인 생활고에 놓여 있게 된다. 그렇다고 더 많은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공연 횟수를 늘린다 하더라도 제대로 그 대가가 산정되지 않는 공연 계약으로는 결국 악순환을 반복하게 된다. 특히 기초 예술에 있어 국가가 창작 지원뿐만 아니라 소규모 기초 예술 단체와 구성원을 지원의 근간이 되는 인프라로 인식하고 정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이런 상황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재훈 민간에서 좋은 사례가 먼저 나오는 것도 좋겠다. 김문정 뮤지컬 음악감독이 <더 M.C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는데 이 오케스트라를 위한 회사 <더 피트(THE P.I.T)>를 설립했다. 안정된 급여를 고려하다 만든 건데, 단원들이 적극적으로 공연을 하면서 횟수를 채우고 보상을 나누겠다는 거다. 그런 사례가 하나둘씩 나오면 좋은 롤 모델들이 쌓일 것 같다. 국내 예술계 노동의 문제는 유니언(노동조합)이 없다는 거다. 김유정 감독의 “조직화돼 있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 이런 부분에 대한 공연계의 고민도 필요하다고 본다.

이재훈 뉴시스 문화부 기자 이재훈 뉴시스 문화부 기자

김요안 예술가들이 전문가로서 노동의 권익을 스스로 대변해나가는, 너무나 중요한 과정이라고 본다. 대학에서 예술 인력 과잉 공급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길게 본다면 인구 구조의 변화, 4차 산업혁명에서의 문화산업의 영역 확대 등을 고려할 때 예술, 공연 분야의 고용을 유지·강화할 필요가 있다. 긴 안목에서 정부도 함께 예술 노동의 권익과 고용 확대에 역할을 해 줘야 한다.

공공의 견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럼 표준계약서 부분은 어떤가? 공연예술계 표준계약서가 도입되는데, 변화가 가능할까?

김윤규 우리 단체는 격차 없이 모든 출연자에게 공연 준비 기간에 따라 페이를 지급하고 있다. 한정된 예산과 열악한 제작 환경 탓에 어렵긴 하지만, 우리 단체는 격차 없이 모든 출연자에게 공연 준비 기간에 따라 급여를 지급하고 있다. 먼저 임금과 관련한 부분이 표준계약서상의 중요한 부분이라면 출연자를 보호하기 위해 계약서에는 창작 과정의 노동 시간 산정에 대해 명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창작 방식이 많이 변했다. 연출 혹은 안무자에게 집중되었던 것이 이제는 참여하는 전 스테프의 기여도와 저작에 관한 부분도 계약서의 중요한 부분이라 할 것이다. 현장은 표준계약서의 필요성에 대해 인정하고 있는 분위기이나 단순히 임금과 관련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에 머물지 않고 계약서라는 것에 담겨야 할 실질적인 예술인의 기본적인 권리와 공연예술현장 그리고 유관기관의 정책 변화까지 견인해 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최윤우 7월부터 <공연예술 기술지원 분야 표준계약서>가 도입되는데 그간 계약서 작성 시 반감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법적으로 보호받기 위한 장치인데도, 최저임금 등이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연마다 제작비가 상이하니 활용하기 힘든 지점도 있다. 공연 임금을 포함한 사전 제작비가 몇 퍼센트 이상이 돼야 제작이 가능하다든지 번외 논의가 필요하다. 계약서 적용을 구성원이 원하고 있고, 고용보험과도 연관되는 지점들이 있다. 현장과 현실에 맞는 계약서가 필요하다.

김요안 해외에는 기본적으로 상세히 사전 협의된 부분별 조합 계약서가 있어서, 해당 조합의 계약을 기본적으로 따르면서 프로덕션별 특이 사항만을 간결한 계약으로 추가해 그 위에 덧붙이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 표준계약서는 정책적으로 작성되어 현장에 배포·제안된 ‘톱다운 정책’에 따른 것으로, 필수적인 최소 이행사항을 담는 데에 초점을 두었기에 부문별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담기에는 미흡하다. 장기적으로 직군별 권익과 전문성을 인정받기 위한 법적 형태가 만들어지고 이를 중심으로 계약서가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

설동준 현재 표준계약서는 분량도, 필수 요소들도 어설프게 절충한 건데 무엇보다 현장의 필요성을 담아내야 한다. 이런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결론적으론 조합 형태가 필요하다고 본다. 공제회를 정부가 주도해 만들고 인증을 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이재훈 제작자들의 마인드도 중요하다. 계약서를 구체적으로 작성한다 한들, 공연이 중간에 엎어지거나 수익이 나지 않았을 경우 회사를 청산해 백지화하거나 ‘나 몰라라’ 하면 끝이다. 예술가들이 구제받기 힘들다.

김요안 조합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따라야 할 의무를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미국은 조합 차원에서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분명히 준다. 프로듀서 조합에서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프로듀서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이다. 전문성과 권위에는 의무가 따라야 한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이 공연계에 미치는 영향

지난 6월 25일 공연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공연예술통합전산망(이하 통전망)이 법제화됐다. 아직 시행 초기 단계라 상세 데이터 산출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공연예술계에 큰 변화를 일굴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통합전산망이 공연예술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진단을 부탁드린다.

설동준 클래식계를 비롯한 티켓 판매 중 초대권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장르들은 판매량이 드러나는데에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불신은 이해되지만, 마치 사람들을 망신 주려는 제도처럼 느끼는 건가 싶었다. 데이터를 쌓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것을 어떻게 어디까지 활용하느냐가 문제이다.

김윤규 올해 4월 처음 통전망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데이터가 있으면 다양한 부분으로 분석하고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지극히 기본적인 필요에 대해서는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동안 그 데이터가 없어서 정책 생산의 걸림돌 혹은 근거 마련이 어려웠는지 물어보고 싶다. 구체적인 목적을 설명하지 않고 데이터만 요구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방식이다. 통전망이 필요한 주체는 누구인가? 그리고 그 주체는 수집된 정보를 어떤 목적으로 사용할 것인가에 따라 그 의도와 달리 우려되는 바 없지 않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를 경험한 현장이다. 공연 매표 현황과 수익에 대한 정보는 또 다른 리스트가 될 수 있다는 염려가 현장 저변에 깔려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현재의 국가문화예술정책에서 바라본다면 기초 예술 현장은 결코 긍정만 할 수 없다. 단순히 들여다보고 싶은 궁금함이 데이터 수집의 목적이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소규모의 예술 단체에 있어 통전망 관련 공연법 개정 내용은 행정적으로 필요한 정보 요구와 따르지 않으면 제재를 가하겠다고 으름장 놓는 행위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리고 몇 차례 토론회를 열었다고는 하지만 현장에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지금도 현장의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는 이나라도움도 토론회는 열었다. 다양한 예술 현장의 요구로부터 그리고 현장과 함께 출발하지 못하는 각종 법안과 개혁이 늘 안타깝고 우려된다.

이재훈 통전망은 블랙리스트가 수면 위로 불거지기 몇 년 전부터 논의를 해온 사안이고, 데이터 수집의 목적 중 하나는 산업의 투명성이다. 이 시장이 투자할 만한 곳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데 기본이 되는 것이 데이터다. 물론 블랙리스트 파장을 겪은 연극계, 협찬에 크게 의지하는 클래식계에서 정보가 노출되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를 느낄 수 있음은 인정한다. 하지만 시장의 투명성을 위해서는 데이터가 필요하다. 돈 이야기가 불편할 수 있지만 시장이 투명해야 산업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공연계가 협조해줄 건 협조해주고 권리를 주장해야 얻어야 할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각 공공 문화 예술 기관장들의 상당수가 예술경영이나 펀딩 전문가로 채워지고 있다. 이제 산업적인 흐름을 마냥 간과할 수는 없다고 본다.

최윤우 문제는 행정편의적인 것에 있다. 그래서 거부감이 생기는 것도 있다. 민간 소극장 중 ‘혜화동 1번지’를 예로 들자면, 티켓 판매의 10%가 인터파크를 통한 예매이고 수기티켓 비율이 90%다. 이럴 경우 점유율의 왜곡이 발생한다. 심각한 왜곡을 조율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나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는 점유율로 비례해서 계산하자고 한다. 연극계에서 심리적 저항감으로 인해 공연 티켓을 100% 수기로 처리한다면, 데이터 전송 의무가 없게 되는 셈이다. 통전망에서는 영세한 공연 데이터가 잡히지 않게 될 우려도 있다. 민간의 영세 소극장 지원 방향을 별도로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통전망으로 인한 시장 확대 기대가 있는 건 사실이다. 관객들을 만나는 지점을 고민할 때, 데이터를 활용하는 사례들이 생길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기존 트라우마로 인한 시스템에 대한 저항감은 생각보다 큰 상황이다.

김요안 통전망에 산업적 논리가 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산업적 논리의 사각에 있는 작품들에 대한 배려도 더 필요하다. 데이터를 전송해야 하는 예술 단체의 의구심을 불식시키고, 통전망의 정보가 산업적인 면을 넘어 예술 생태계 차원에서 예술가나 예술 단체를 합리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어떻게 활용되고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이를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 공연은 영화와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다. 상업 공연계에서는 양적·질적 성장에 산업적 관점의 자료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잘 팔리는 공연과 그렇지 않은 공연의 양극화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설동준 연구자 입장에서는 공연 시장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 자체가 부족하기에 통전망을 통해 데이터를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사실 지원제도의 큰 전제는 ‘육성하게끔 도와드릴 테니 성장해서 독립하세요’다. 데이터로 논증하는 것이 정책 프레임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된다.

설동준 DMZ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사무국장 설동준 DMZ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사무국장

카카오, 공연시장 공룡될까

카카오의 공연시장 진출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연초에 발간한 『2019 공연계 주목해야 할 키워드 6』 중 하나였다. 인터파크의 독점 구도가 바뀔지, 혹은 카카오의 공연시장 진출로 인한 영향이 어떨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현장의 반응이 어떤지 궁금하다.

최윤우 카카오의 진출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일단 현장에서는 딱히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고, 극장을 운영 중이라고는 알고 있다. 티켓 유통과 관련해 위치 기반의 카카오톡 실시간 정보가 화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는 본다. 하지만 현재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현상은 없다.

김윤규 자본이 서로 경쟁하며 소비자의 기호에 따라 다양한 콘텐츠를 수집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관객 혹은 소비자의 입장은 물론 콘텐츠 제공자인 예술가의 입장에서도 나쁠 것이 없다고 본다. 하지만 자본이 플랫폼을 장악하면서 벌어질 앞으로의 일들에 대한 우려가 있다. 어떤 자본도 예술가의 가난에는 관심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우려다. 변화를 막을 수는 없지만 초기 자본의 선한 투자 그리고 선한 영향력이 시장에 지속될 수 있도록 정책과 제도가 뒷받침이 돼야 한다고 본다.

최윤우 인터파크는 그간 티켓 예매를 독과점하고 정보를 오픈하지 않아 왔다. 카카오의 위치 기반 플랫폼은 정보량이 엄청날 텐데 그런 정보들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관객과 예술가가 만나는 지점들이 보이지 않을까 싶다.

이재훈 기자들 입장에서는 카카오 진입이 흥미롭고 기대된다. 우선은 상업적인 측면에서 두드러지기는 한다. 인터파크와 손잡았던 EMK뮤지컬컴퍼니 엄홍현 대표가 카카오와 손을 잡고 있다. 현재 공연 중인 뮤지컬 <엑스칼리버>가 그것이다. 발레리나 김주원과 소리꾼 이자람이 출연하고 이지나 연출이 연출하는 <도리안 그레이>도 카카오에서 투자했다. 카카오의 자회사 중에는 엔터테인먼트사도 있다 보니, 좀 더 수월한 시장 진입이 예상된다. 예를 들어 카카오M 소속인 아이유가 뮤지컬에 데뷔하는데 카카오가 제작하고 그 티켓을 카카오가 운영하는 멜론티켓에서만 판매하고, 카카오가 운영하는 공연장에서 공연하는 방식의 수직 구조가 가능해진다.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티켓을 선물하는 식의 기술적인 면이 도입된다면 이 영향력은 엄청날 거다.

김요안 새 플랫폼이 출현한다는 것은 중요한 지점이다. 새로운 플랫폼이 기존의 플랫폼을 대체하거나 추가적인 혜택을 제공하면서 새로운 흐름을 갖고 갈 수 있는 거다.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어떤 이익을 공연예술 생태계에 제공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

공연계 젠더(gender) 문제에 관하여

공연계에서 젠더와 관련한 논의와 주제는 이제 더 이상 사소한 것이 아니다. 티켓 파워를 넘어 공연의 주인공이 되거나 여성의 시선으로 세계를 해석하는 작품들이 늘어나고 있다. 미투 운동으로 인해 성폭력 고발이 이어지고, 성추행 가해자가 관여한 공연에 보이콧 움직임이 일어나기도 했다. 향후 이런 움직임이 더 확산될 것으로 보이는데, 현장에서 체감하는 분위기는 어떤가? 무용인희망연대 ‘오롯’에서는 성명을 내고 사람들을 모으기도 했는데.

김윤규 초기 예술계 미투는 화산처럼 터지는 형국이었고 그것을 감당할 만한 준비가 없었다고 한다면, 이제는 그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일종의 운동으로 이어져 갈 수 있는 기본적 분위기와 틀이 형성되었다고 생각한다. 무용인희망연대 오롯은 2016년 문화예술계 검열 사태에 저항하고자 모였던 무용인들의 네트워크다. 지난 5월 무용계에서 잘 알려져 있던 무용단의 대표가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되었는데, 피해자가 그의 제자였다. 오롯의 운영진은 성명서를 함께 작성하고 문화예술계의 연대를 촉구했다. 개인 800여 명과 80여 단체가 서명에 동참했고, 그중 무용인이 30%에 달한다는 건 매우 고무적이고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과거 20년 전 성범죄로 실형을 살고 나온 무용계의 인사가 있었다. 당시 무용계에서는 그의 화려한 복귀를 두고 상반된 논리가 존재했으나 실제 드러내고 논의를 한 내용과 결론은 없었다. 최근까지 무용계에서 그 사건을 들추는 것은 그 당시 제대로 풀지 못한 것이 오늘의 문제를 해결함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본다. 대부분의 문화예술계의 성폭력은 위계 내에서 벌어진다. 그러다 보니 가해자에 대해서는 평범성을 넘어 그 공로가 부각되는 반면 피해자에 대해서는 흉흉한 소문과 의혹으로 편집된 관심이 집중된다. 피해자다움에 대한 요구, 2차 가해까지 무용계는 성폭력 사건들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런 요인들로 인해 피해자가 위축돼 제대로 변론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가 하면 재판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벌어지는 갖가지 변수들 또한 많다. 현재의 법감정으로 볼 때 실제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그 형량이 충분치 않고, 이후 가해자의 현장 복귀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도 있다. 연극계에서는 오디션, 연습, 공연 종료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과 대처법 그리고 자치규약에 관한 KTS(Korean Theater Standards, 한국 공연예술 자치규약)를 논의 중인 걸로 알고 있다. 오롯에서는 무용계 내의 성폭력 사건 하나하나 지지하고 연대하는 것을 시작으로 무용계내의 위계에 의한 갑질과 성폭력 예방에 관한 논의를 열어가고 있다.

김윤규 댄스시어터 틱 대표 김윤규 댄스시어터 틱 대표

김요안 ‘포스트 미투’를 폭로하는 것, 알리는 걸 넘어서 구체적인 행동과 제도화를 논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KTS는 현장에서부터 이런 흐름을 만들려는 움직임이다. 미투는 현장 뿐 아니라 학교 쪽도 연관돼 있다. 예술 현장의 위계 문제는 입시 제도, 예술교육 시스템과 연결돼 있다. 그러기에 현장 뿐만 아니라 예술교육 전반의 문제이기도 하다. 예중-예고-예대로 이어지는 교육계의 위계적 구조가 견고할수록 피해가 크며 변화에 대한 저항이 크다. 포스트 미투는 한국 사회 전반에 걸친 권위적 구조를 해체하고 민주화시키는 흐름이라고 본다.

김윤규 과거와 달리 대학 주도의 현장에서 독립예술가와 단체들이 주도하는 현장으로 많은 부분 이동했다. 학교 위계의 힘이 일정 정도 둔화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생각보다 현장의 변화는 더딘 편이다.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는 말을 요즘 자주 쓴다. 나쁜 의미에서가 아니라 우리의 출발점에 대한 질문에서 하게 된 말이다. 예술 현장의 변화는 결국 교육 현장을 벗어나 존재할 수 없기에 나와 내 근간을 부정하고 바꿔야 하는 쉽지 않은 여정이 될 거라 생각한다.

상반기 공연 작품 경향

상반기 공연예술의 미학적 측면, 작품 경향 등의 이슈는 무엇이었나?

이재훈 젠더프리(gender-free) 현상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묵적지수>, <비평가들> 등이 젠더 프리로 주목받았다. 미투 등의 이슈가 공연계에서 작품적 미학으로 승화된 사례로 본다. 하반기에도 젠더 프리 현상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남녀의 역할 바꾸기도 자연스러워질 것이고.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 예정인 <이갈리아의 딸들>은 남녀의 성역할이 바뀐 가상의 나라 ‘이갈리아’를 무대로 한 작품이다. 단순한 형식적 변화보다는 내용적으로도 완성도가 높아지는 흐름이 보인다.

김요안 젠더 프리 경향과 함께 장애 접근성을 높이는 배리어프리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고 있다. 영국의 경우 공연 기술이 배리어프리(barrier-free)에 많이 기여하고 있다. 이를 포용하며 극장 시스템도 변화하고 있고. 한국 극장에서도 특정 공연에 배리어프리 도입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기도 하다. 이런 부분은 공연예술의 민주성을 넓히는 또 다른 측면이 된다. 블랙리스트 이후 스스로를 규제하는 것들에 대해 문제의식과 민주의식이 확대되고 있는데 중요한 예술적 흐름이라 생각한다.

설동준 지금까지 배리어프리는 대체로 물리적 접근성에 대한 개념이었다. 예술 미학적 측면에서 접근한 사례도 있나? 음악가들 중에는 고민했던 케이스가 있긴 하다. 원천적으로 사운드에 경험이 없는 청각장애인에게 감각으로 전환하는 작업 아이디어들이 있었다.

이재훈 마땅한 사례인지는 모르겠는데 시각장애 연주자가 지휘자의 움직임을 무선신호 등으로 받아 연주를 하는 시스템을 연구 중인 것으로 안다. 한국 기획자가 영국에서 기술 지원을 받아 시험하고 있다. 미국에서 시각장애인 연주자를 자녀로 둔 부모로부터 그런 기술이 구현되면 시각장애 오케스트라가 지휘자와 긴밀하게 소통해서 음악적 완성도가 높아지지 않겠냐고 기대하는 이야기도 들었다.

김요안 올해 대학로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음센터)에서 영국 장애 예술가들을 초청한 공연 <이음 해외공연 쇼케이스:영국>도 있었다. 장애인만이 발견할 수 있는 예술적인 감각을 선보였던 자리다. 비장애인이 놓치는 감각을 포착해서 열어주는 측면도 있다. 장애인에게 공연장 문턱을 낮출 뿐만 아니라, 공연에서 비장애인의 감각 범주를 찾고 넓히는 것이다. 융복합 기술이 기여하기에 가장 좋은 형태가 배리어프리 공연이다. 기술 사용에 대한 관객들의 저항감이 적다. 기술 동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요안 두산아트센터 수석 프로듀서 김요안 두산아트센터 수석 프로듀서

최윤우 소극장에 장애인을 위한 장치가 있느냐는 질문도 나오기 시작했다.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소리 내어 질문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 연극 분야에 한정됐지만 젠더프리와 배리어프리에 대한 예술적 관심이 사회적 이슈와 맞물려 이동한 건 사실이다. 그런 것들은 궁극적으로 인권에 대한 문제로 돌아온다. 여성과 장애인을 배려하는 차원이 아니라 존중하는 차원에서 긍정적 변화다. 최근 페미시어터도 여성 인권보다는 궁극적으로 사람과 사람에 대한 존중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지속적인 경향으로 본다.

그 밖의 논의

서울문화재단은 올 상반기에 여러 가지 이슈로 언론지상을 달궜다. 조직 개편으로 남산예술센터가 지역문화본부에 편입되어 자율성 논란이 일었고, 지원 심의가 늦어지며 극장 대관 등의 문제로 특히 공연예술계가 발을 동동 굴렀던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동숭아트센터를 서울문화재단이 매입하면서 대학로에 새로운 활력이 공급될 것인가도 주목되는 지점이다. 서울문화재단의 이런 일련의 상황과 움직임에 대해 어떻게들 보고 계신지 말씀해 달라.

최윤우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신뢰를 잃어갈 때, 반대급부로 지원기관으로서 서울문화재단의 인지도가 상승했다고 본다. 그것은 현장과의 밀접함으로 생긴 특성이었다. 올 초 진행된 일련의 상황들은 이전에 획득했던 예술 현장과의 관계적 측면을 감각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분명한 변화를 위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안태호 비평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기정사실화된 지 오래다. 공연계의 의사소통이나 공론장 역할을 하는 매체가 뚜렷하게 보이지도 않는다. 대신 최근 페이스북의 ‘대학로 X포럼’ 등이 순발력 있게 공연예술을 포함한 예술계의 소식을 유통하고 각종 논의가 불붙는 공간으로 활용되는 것처럼 보였다. 페이스북이나 SNS에 언론이 해내지 못하고 있는 공연예술계 공론장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재훈 언론은 비평의 역할을 잃은 게 맞다. 연극 잡지는 존재감이 없고, 예술 관련 잡지들도 비평의 역할보다는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우선이 됐다. 편집 방향에 대해 고민하기보다는 광고에 집중하고 있다. 인터넷 언론들은 비평을 게재할 수 없는 상황이고.

김윤규 ‘아르코 현장 소통 소위윈회’ 2기 위원으로 활동 중인데 고민이 많다. 소통을 말하기에 앞서 현장과 기관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블랙리스트 사태 이후 현장의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기관의 지원 사업에 집중되었던 관심이 과거와 달리 페이스북 공간을 통해 다양한 주제로 논의들이 오가고 있고 공론의 장으로서 매체와 비평의 부재를 채워가고 있다고 본다.

김요안 열린 대화의 장 자체가 없다가, 민간과 현장 중심으로 여론이 만들어지고 있는 거다. 여러 가지 긍정적인 역할이 있다고 본다. 반면 대학로 X포럼에 대해 일정 정도 거리감을 갖고 바라보는 이들도 생겨났다. 고발과 폭로의 장에서 나아가 실천과 제도 개선의 장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 이재훈
  • 필자소개

    이재훈은 2008년 11월 뉴시스에 입사 후 사회부 사건팀을 거쳐 현재 문화부 기자로 일하고 있다. 무대에 오르는 건 뭐든지 듣고 보고 쓴다. 김우창 문학평론가의 말을 빌려, '심미적 이성의 강철 같은 사유의 노동'을 거친 글쓰기가 목표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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