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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모이 주는 사람들-열 개중 하나
▲▲ 소원 성취-대나무 풍경
▲ 소원 성취-참여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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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과 소통의 방식을 탐험하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그리고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그렇게 한참 지나다보니 사람들과 관계맺는 것이 어려워졌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소통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내가 어려워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더 관심이 가고 그것이 미술작업에도 자연스럽게 묻어난 것 같다. 그렇게 다양한 표현과 소통의 방식을 이리저리 탐험하며 만난 연극, 노래, 그림, 설치, 퍼포먼스 등을 통해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소통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했던 가장 처음은 아마도 2000년이었던 것 같다. IMF로 실직자들이 공원에 모여있었고 그 공원에서 1년간 미술 작업을 해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분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많지 않았다. 회사가는 차림으로 오랫동안 공원에 혼자 머물다 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한 것은 화려한 색상으로 그려진 나무 사람들을 만들어 벤치에 앉혀놓는 것이었다. 그 나무 사람들은 한낮에는 혼자 오는 분들의 외로움을 함께 하고 밤에는 바람쐬러 나온 동네 아이들, 가족들과 함께 했다. 에둘러 제목은 <새 모이 주는 사람들> 이라고 지었다.
공원에 나무가 양옆으로 우거진 산책로가 있었다. 나무 사이에 대나무 풍경을 길게 매달고 그 곳에 사람들의 소원을 적도록 했다. 한 달 동안 매달려있던 풍경은, 소원의 주인에게 의미있지만 이제는 필요없는 물건과 바꾸어 가도록 했고, 그에 담긴 이야기는 거울 필름에 그려져 공원 무대에 전시되었다. 이 작업은, 길을 가는 저 사람의 소원은 무엇일까, 우리는 지금 무엇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에서 시작한 작업이며 제목은 <소원 성취>라고 했다. 길을 걷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소원을 주의깊게 읽고 반사판에 비친 자신의 모습도 보면서 오래 머물러 있곤 했다. 소원들은 돈을 많이 버는 것, 빚을 다 갚는 것, 대학에 합격하는 것 등이었다. 서로 다를 것 없는 사람들이 애틋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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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강정 황준의씨
-서근도 뒷편 암벽위에서 본 바닷가
▲ 구럼비에 찾아가서 만나
이나경양의 마음을 전달받은
강민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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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지도
대학 졸업 후 혼자서 작업을 하다가 대학원 과정으로 핀란드에서 교환수업을 받게되었다. 낯선 외국에서 생활을 하는데 길을 하도 잘 잃어버리니까 무력감도 들고, 말도 잘 안통하고 모든 것에 긴장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친구들이 자신이 가 봤던 좋은 장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장소와 나와의 관계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 마음 속에 어떤 지도가 있구나 느끼며 <마음의 지도>라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오면서 내가 어린시절 대부분을 보냈던 대학로와 홍대일대와 나와의 관계, 장소를 변화하게 만드는 우리와 장소와의 관계가 궁금해졌고, 마음의 지도를 홍대와 대학로에서 하게되었다. 내가 이곳에 있고, 나는 장소가 변화하는데 일정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점점 더 느끼게 되었다. 여전히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고마움도 느꼈다. 나 혼자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지금 여기를 함께 만들어 가고 있구나’ 라는 것을 작업을 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작년에는 강정마을에서 마음의 지도를 펼쳤다. 마음의 지도를 그리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마을주민을 만나 마을에서 가장 소중한 장소에 대한 지도를 그리는 시간을 갖고 장소에 담긴 이야기를 들은 후 그 장소에 직접 찾아간다. 그곳에 계신 분을 만나 지도를 그린 분의 이야기를 전하고 또 그 분의 이야기도 덧붙여 듣는다. 이렇게 한 장소에 담긴 두 분의 기억을 연결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장소가 나에게 소중하듯 다른 사람에게도 소중한 기억이 담긴 장소라는 것을 환기시킨다. 각자 따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가 ‘장소’라는 그릇에 담겨 함께 시공간을 나누며 살고 있다는 것을 전한다. 강정마을에서 했던 마음의 지도는 찬반 갈등을 넘어 소통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80여명의 강정마을 분들을 만났고, 참여하신 분들과 함께 나누려고 이야기와 사진, 지도를 모두 모아 「마음의지도-강정마을」로 묶어 열심히 책도 만들고 있다. 무언가를 느끼면 그것이 다음 마음의 지도에 적용되며 이곳저곳에서 마음의 지도를 펼쳐가고 있다. 장소에 담긴 기억을 통해 한 장소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사이의 공감대를 넓혀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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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의 지도 그리기에 참여하는
강정초등학교어린이들
▲ 마음의 지도 강정마을 참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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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지도로 우리를 치유하다
마음의 지도 작업을 하면서 나 자신이 치유되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작용하는 감정적 거리감과 갈등구조를 대하는 방식을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강정마을에서 마음의 지도를 펼치기 전에 글과 사진으로 전해들었던 이야기와 직접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내 몸으로 경험한 강정마을은 참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서울에 있을때 분명해 보였던 빛과 그림자들이 가까이서 직접 만났을 때에는 쉽게 판단하거나 비판하지 않게 되고 일상의 흐름 속에 많은 것들이 연결되어 있는 삶 그 자체로 다가왔다. 나와 직접 관련된 문제가 아닌 것, 그래서 나와 거리가 있는 것에 대해서는 쉽게 판단하고 비판하는데, 나와의 연관성을 가지지 못할 때 이처럼 형식적이거나 이상적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것이 반복될 때 스스로가 공허해지는 느낌을 많이 받았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야할 지 모르고 있었다. 그럴때에는 가까이 다가가서 듣고 보고 만지고 경험하는 것이 훨씬 좋다는 것을 마음의 지도를 하면서 느끼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강정마을에 도착해서는 찬성과 반대를 모두 만나 이야기를 듣는 매개자가 되어 서로의 이야기를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찬성과 반대의 사이, 그 중간지대가 아주 좁지만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 공간을 애써 지켜보고자 했다.
함께 마음의 지도를 했던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어떤 면이 치유가 되었을까? 마을 주민분들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아서 쉽게 얘기할 수는 없겠지만 스스로가 느낀 것은 전할 수 있다. 마을 주민 분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하지 못했던 말들을 꺼내 놓으셨다. 처음에는 갈등으로 가득찬 이 마을에 소중한 장소가 어디 있는가 하시다가도 조금 더 시간을 드리면 금세 어릴 적 행복했던 그 순간의 그 곳을 다시 경험하는 것처럼 행복해하면서 지도를 그리고 이야기를 해주셨다. 어쩌면 내가 이방인이기에 그런 이야기를 하실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가득 담겨있다가 쏟아져 나온 말들에는 소중한 장소에 담긴 추억으로 시작해서, 지금 갈등하고 있는 상황안에서의 괴로움, 그리고 서로 다른 가치관, 부딪치는 신념과 그래도 그 밑에 흐르고 있는 은근한 희망의 온기 같은 것이 담겨있었다. 주민분들이 마음의 지도를 통해 서로의 이야기를 만나게 되는 것은, 공동체 안에서 함께 나누는 ‘기억’이라는 씨앗을 그분들의 마음에 심는 일이 될 것 같다. 그 다음은 마을주민분들이 직접 관계를 맺어나가야 갈등으로 인한 상처가 안으로부터 아물지 않을까 생각한다.
강정마을에서 마음의 지도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찬성과 반대 사이에서 자신을 깊이 들여다 보게 되었고, 그 가운데 내 안에도 분명히 존재하는 이분법을 만나게 되었다. 이곳저곳에서 반복적으로 찬반 갈등이 일어나지만 우리는 그러한 갈등을 통해 아직 배우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강정 구럼비를 향해 걸어가는 그 길에서 어렴풋이 제주 자연이 말을 건넸다. 인간의 무지함으로 고통받는 자연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최고를 주고 있다는 것을. 그 순간 나는 그 엄청난 너그러움에, 경이로움에 압도되며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배울 수는 없을까 생각했다. 각자가 각자의 무게만큼만 무언가를 바꾼다면, 폭력에 폭력을 더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변화의 시작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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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홍보람은 소통에 대한 관심이 있어 2000년 <언어를 넘어서>라는 프로젝트를 하며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기 시작했다. 핀란드에서 <마음의지도>를 시작해서, 후쿠오카 아시안 아트 뮤지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예정지, 홍대 프린지 페스티발,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전주 국제 영화제, 인천의 곳곳에서 마음의 지도를 펼쳤다. 2006년 판화가 협회에서 주최하는 젊은 작가 지원 BELT를 통해 국내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같은 해 젊은 모색전에 참가했다. 핀란드, 미국, 제주, 서울에서 7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쌈지 창작 스튜디오, 이중섭 창작 스튜디오와 미국 버몬트, 포르투갈 오브라스 거주프로그램에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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