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치유)’이 그야말로 대유행이다. 이번 특집은 힐링이 사회적 용어로 확대재생산되는 현상을 예술경영인들에게 음미할 기회를 드리고자 기획되었다. 이번 호에서는 예술을 통한 치유의 국내외 사례를 소개한다. 연재순서 ① 힐링에 대한 고찰 ② 모두를 위한 힐링 1: 예술치료의 현황 ③ 모두를 위한 힐링2: 예술을 통한 치유 ④ 당신을 위한 힐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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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티벌 후쿠시마!

올해도 어김없이 8월15일이 돌아왔다. 이 날은 우리에게는 광복절이지만 바다 건너 일본의 후쿠시마 현에서 매우 특별한 행사가 개최되는 날이기도 하다. 올해로 두 번째를 맞는 ‘페스티벌 후쿠시마!’가 바로 그것이다. 2011년 3월 11일 이후 후쿠시마는 일본의 단순한 지명 이상의 이름이 되고 말았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많은 사람들은 후쿠시마에서 축제를 한다는 사실에 의아해 할지도 모르겠고, 심지어는 원전에서 방사능이 대량으로 유출되는 사고가 났던 지역에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축제를 한다고 하면 한마디로 정신 나간 짓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전혀 무리는 아니다. 배경설명이 필요한 것은 후쿠시마 자체라기보다는 오히려 ‘후쿠시마’라는 이름을 굳이 힘주어 말하는 바로 이 축제에 관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이 축제는 일본의 세계적인 실험음악가 오토모 요시히데(大友良英)가 주도한 ‘프로젝트 후쿠시마!’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당연히 그가 이 프로젝트와 페스티벌의 감독 이라는 식으로, 혹은 이 전체 프로젝트가 한 예술가의 작품이라는 식으로 이해하면 매우 곤란하지만, 그럼에도 이 평범하지 않은 음악가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후쿠시마라는 이름으로 접근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후쿠시마는 오토모가 어린 시절, 사춘기를 보낸 곳이다. 작년 3월 11일 대지진 당시에 그의 노부모는 여전히 후쿠시마에 살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오토모의 어린 시절의 후쿠시마는 일본의 대도시 이외의 많은 지역들이 그렇듯이 문화적으로 매우 보수적인 분위기를 대변하였고, 그는 프리재즈 음악가가 되기 위해 후쿠시마를 탈출(?)하여 도쿄로 갔다. 하지만 그는 다시 되돌아갔다.

그는 말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집단적으로 절망에 빠져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충격을 받았죠. 후쿠시마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만나기 전에는 반(反) 원전 시위를 조직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을 만나고 보니 그런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알았죠. 무엇보다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 지와 어떻게 생존할 것인지 하는 것이었죠. 하지만 TV에서 보면, 유럽에서 많은 반(反) 원전 시위가 있었는데 그곳의 구호 중 안티 후쿠시마가 많았어요. 그게 무슨 뜻인지도 알고 저도 후쿠시마를 싫어하지만 후쿠시마에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그 곳을 사랑하고 있어요. 그래서 후쿠시마의 정체성이 원전이 되는 것이 아닌 상황을 만들어보고 후쿠시마라는 이름이 다른 의미를 갖게 하자는 취지로 프로젝트 후쿠시마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1

‘페스티벌 후쿠시마’의 전경 (촬영 : Ryosuke Kikuchi)

▲ ‘페스티벌 후쿠시마’의 전경
(촬영 : Ryosuke Kikuchi)

그는 이 프로젝트의 선언문 격인 2011년 4월의 한 강연에서 이 프로젝트가 ‘후쿠시마’를 긍정적인 이름으로 바꾸기 위한 문화적 노력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언론도 후쿠시마의 자세한 상황에 대해 침묵하는 상황에서 음악가들이 나섰고, 문화는 무엇인가 역할을 해야 했다. 하지만 여기서 문화의 역할은 사람들을 속이고 상황을 아름답게 포장하여 현실을 그저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오토모에 의하면 오히려 문화는 계속 후쿠시마의 상황을 주시해야만 하고, 이는 단지 문화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는 과학과 정치가 문화와 함께 움직여야 하지만 그 것만으로는 후쿠시마를 어떤 긍정적인 것으로 변모시킬 수 없다고 보았다. 결국 변화시키는 것은 문화의 역할이라고 하였다.2

사람들을 후쿠시마 밖으로 이주 시킬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살 수도 없었다. 재건과 복구활동이 항시적인 저강도 방사능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을 주는 것도 결코 아니다. 오토모는 방사능 수치가 낮은 경우에는 인간 신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과학적으로도 잘 밝혀져 있지 않기 때문에, 방사능 수치가 높을 때보다도 대처하기가 더욱 어렵고 지금처럼 과학자들이 잘 모르는 저방사능 상황이 되고 나서는 누구도 이 상황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신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토론 자체가 힘들었다며, ‘프로젝트 후쿠시마!’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일종의 토론과 논의의 장으로서 시작되었다고 하였다.

페스티벌을 위해 바닥을 덮은 '보자기’ (촬영 : Shinya Endo)

▲ 페스티벌을 위해 바닥을 덮은 ';보자기’
(촬영 : Shinya Endo)

“야외에서 이 페스티벌-2011년 제1회 페스티벌-을 연 이유는, 일단 사람들이 야외에서 하는 것이 안전한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게 되고, 지역 전체의 방사능 수치를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언론에서는 이러한 방사능 수치 확인을 전혀 하고 있지 않았기에 그런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사 결과, 세슘은 바닥에는 있었지만 공기 중에는 없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제일 위험한 것은 세슘이 입으로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람이 불어서 바닥에 있는 세슘이 올라오거나 하지 않도록 바닥을 보자기로 덮기로 하였습니다. 일본에서는 ‘후로시키’라는 도시락 같은 것을 싸는 보자기를 누구나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걸 일본 전역에서 받기로 했습니다.”

인터넷에 ‘후로시키’를 보내달라는 요청을 올린 이후 일본 각지에서 보낸 보자기가 도착했고, 3주에 걸쳐서 모두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강행군을 한 결과, 전부 합쳐서 6천 평방미터 정도의 크기가 되었고, 8월 15일 이전에 그 공간을 다 덮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하나로 엮어진 거대한 보자기 위에서 첫 번째 페스티벌이 시작되었다. 이 페스티벌은 음악가와 아마추어, 주민이 모두 각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공연뿐만 아니라 토크와 포럼도 당연히 포함되었으며, 2011년 8월 15일에는 한국의 서울과 순천을 포함한 전 세계 각지에서 연대의 목소리를 내는 동시다발의 페스티벌이 함께 개최되었다.

예술, 공동체 그리고 치유

올해에도 ‘페스티벌 후쿠시마!’는 계속된다. 작년 페스티벌의 토대이자 보호막이 되었던 보자기는 철저한 제독과정을 거쳐서 다시 수많은 깃발들로 나눠져 후쿠시마 현 곳곳에서 펄럭일 예정이다. 그래서 이번 페스티벌의 슬로건은 ‘국경을 넘어 깃발을 들자: 미래는 우리 손에 달려 있다!’로 정해졌으며 8월 15일부터 26일까지 개최될 예정이다.3 또한 이번에도 페스티벌 기간 또는 이 기간을 전후로 해서 전세계 동시다발로 각자의 후쿠시마 페스티벌을 신청할 수 있다.4 누구나 어떤 형식으로든 자신의 ‘페스티벌 후쿠시마!’를 진행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21세기는 기술의 엄청난 혁신과 무지막지한 실패의 공존이라는 기묘하고 기괴한 시대가 될 것이며(아니 사실은 이미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후쿠시마는 결코 이웃나라의 단순한 기술적 실수로 인해 우리가 쓸데없이 입게 된 피해의 근원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리와 무관하게 일어난 바다 건너 사건이 아니다. 현재의 위기는 프랑스 철학자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의 말을 빌면 정말로 ‘우리가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이다.5

이는 더 이상 근대화의 약속, 즉 ‘더욱 안전한 원전 기술’의 약속을 굳게 믿고 계속 묵묵히 전진할 수도 없지만 이 상황이 괴롭다고 하여 SF영화에서처럼 핵전쟁과 같은 최악의 기술적 파국에 의해 문명 이전 상태에서 완전히 다시 시작할 수도 없는, 그래서 근대성을 비난하면서 그 이전 상태로 되돌려 놓을 수도 없고, 방사능에 대한 공포 때문에 간단하게 원전을 건설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한탄하기만 할 수도 없는 어중간한 상황이다.

어중간하므로 더더욱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후쿠시마는 과학자도 정치가도 단독으로 무엇이 해결책이라고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없는 그런 위기 상황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바로 그 이름이다.

“만약 당신 몸 안에 암이 있다면 의사를 찾아갈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의사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다른 의사는 약만 먹으면 된다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후쿠시마에서 있었습니다. 각자가 자신의 가족과 함께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각자가 미디어가 되어서 후쿠시마 안의 사람과 밖에 있는 사람 사이에서, 그리고 과학자와 일반인 사이에서 끊임없이 매개 역할을 해야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오토모)

예술가에게 이러한 상황에서 치유의 역할이 맡겨진다. 그러나 그, 혹은 그녀는 아무 근거 없이 희망을 말하는 사람이 아닌 조각난 공동체의 틈 속에서 매개의 역할을 함으로써 이러한 위기 속에서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희망과 긍정성의 실체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될 것이다.6



1) 이 글에서 인용된 오토모 요시히데의 발언은 별도의 표시가 없을 때에는 모두 2012년 3월11일에 서울에서 비공개로 필자 등이 공동으로 진행하고 통역한 토크의 녹취록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 토크의 녹취록 전체는 곧 발간될 『공공도큐멘트 2: 누가 우리의 이웃을 만드는가?』(미디어버스)에 실릴 예정이다.

2) 오토모 요시히데, “문화의 역할: 지진과 후쿠시마 인재(人災) 이후(The Role of Culture: After the Earthquake and Man-made Disasters in Fukushima)”
(영문 url: http://www.japanimprov.com/yotomo/fukushima/lecture.html)

3) 페스티벌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프로젝트 후쿠시마!”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url: http://www.pj-fukushima.jp/)

4) 오토모 요시히데, “국경을 넘어 깃발을 들자: 세계 동시 다발 페스티벌 후쿠시마!(Flags Across Borders: Call for the Festival FUKUSHIMA! Synchronized Worldwide Events)”
(영문 url: http://www.japanimprov.com/yotomo/fukushima/flagsacrossborders.html)

5) 브뤼노 라투르,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홍철기 옮김 (서울: 갈무리, 2009).

6) “프로젝트 후쿠시마!” 전체에 대한 한글로 된 보다 자세한 소개로는 다음의 글이 있다. 박혜강 & 이명훈, “후쿠시마에서 온 편지: 위기의 공동체와 예술”, 『판』 2011년 1월-11월 (통권 4호), 17-21면.



홍철기 필자소개
홍철기는 실험음악가이며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정치철학을 전공하고 있다. 유럽과 일본 등지에서 개최된 여러 실험음악 및 미디어아트 페스티벌 등에서 연주한 바 있으며, 국내외 다수의 실험•즉흥음악가들과 협연을 계속해오고 있다. 이외에도 실험음악 및 정치철학 등의 주제에 관한 글쓰기와 번역을 해오고 있다. hongchil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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