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 반도로까지 확장하고 있는 현대 유럽의 문화적 국경에 대해 생각해보며 유럽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봉착한 여러 현안들에 대해 예술이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의논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 1952년 창설된 유럽축제연합, EFA(European Festivals Association)이 올해로 창설 60주년을 맞았다. 60주년을 맞아 그간의 성과와 현황을 정리한 기념책자를 발간하고 회원 축제들에서 다양한 축하 행사가 개최되었다.

유럽 공동체로의 회귀

밀레니엄을 맞이한 기쁨도 잠시, 세계 경제 위기의 여파로 대부분 국가에서 문화 예산을 긴축 편성하면서 유럽 문화예술인들은 생존의 위기에 봉착했다. 런던, 파리, 암스테르담 등 유럽 주요 도시에서 예술인들의 대규모 시위가 연일 벌어졌다. 결국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유럽 예술인들이 선택한 것은 유럽 공동체로의 회귀였다. IETM(유럽공연예술회의) 등 문화예술 협의체들을 중심으로 유럽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기능하고 있는 예술의 역할과 중요성을 시민들에게 효과적으로 알리고, 정치권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논의들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EU라는 초국가적 경제 공동체의 존재도 문화예술인들이 ‘유럽’이라는 이름으로 공동 대응하는데 장점으로 작용했다.

유럽이 권역을 중심으로 한 문화예술 공동체에 대한 상상력을 키워나가기 시작한 것은 세계 2차 대전 종전과 때를 같이 한다. 에딘버러 페스티벌, 아비뇽 페스티벌 등 유럽 전역에서 축제가 기하급수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예술로 전쟁의 상흔을 달래고,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여 다시는 전쟁과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국의 문화, 타자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외국 아티스트를 초청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축제는 자연스럽게 국제성을 띄게 되었다. 축제를 중심으로 국가 간, 도시 간 문화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세계 공연 예술 시장이 만들어지고, 유통과 제작 방식도 다변화를 겪었다. 축제 관객층도 두터워지면서 다양한 장르의 스펙트럼을 소화하고, 다양한 미학적 취향을 다루게 되었다. 유럽예술축제들은 서로간의 네트워크를 통한 상생의 필요를 느꼈고, 유럽축제연합을 창설하기에 이른다.

유럽축제협회 60년사 책표지

유럽축제연합은 1952년, 제네바에서 15개 축제가 모여 창설된 이래, 현재 유럽과 인근 권역까지 포함해 전체 40개국 110개 축제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 60주년 기념 책자 「유럽축제연합 60년사(European Festivals Association: 60 Years On!)」에는 전 의장이었던 휴고 드 그리프(Hugo De Greef), 싱가포르아트페스티벌을 오랫동안 이끌어온 고칭 리(Goh Ching-Lee), 에든버러 페스티벌 총감독을 맡고 있는 조다단 밀스(Jonathan Mills), 런던정경대 교수이자, 유럽문화정책 연구의 권위자인 프랑코 비앙킨(Franco Bianchin) 등 세계의 축제 전문가 30인이 필자로 참여했다. 다큐멘터리 필름은 엔리오 모리코네가 협회 창설 60주년을 기념하여 헌정한 음악, ‘녹턴 - 파사갈리아(Notturn - Passacaglia)'의 연주 실황을 담고 있다. 이 곡은 2012년 9월 13일, 에밀리아 로마나 페스티벌에서 세계 초연으로 공개되었다.

창설 60주년을 맞아 유럽축제연합(EFA)은 유럽 전역의 회원 축제들에서 다양한 축하 행사들을 기획했다. 5월 23일부터 25일까지 노르웨이 베르겐 페스티벌에서 기념행사를 가졌고, 폴란드, 벨기에, 이탈리아, 체코, 스위스, 터키 등 여러 축제에서 축하 공연, 심포지엄, 경연대회 등의 행사들이 기획되었다. 특히 이번 60주년 행사는 동유럽 및 발칸 반도의 음악축제들이 많은 역할을 분담하고 있는 면이 눈에 띈다. 폴란드 브로클라프에서 열리는 브라티슬라비아 칸타스 페스티벌, 세르비아의 벨그레이드 페스티벌, 체코의 13개 도시 음악 축제, 터키의 이즈미르 페스티벌이 60주년 행사의 주요 프로그램을 나누어 진행하고 있다. 이는 유럽축제연합이 스위스에서 창설되었지만, 반세기를 넘는 세월이 지나, 유럽에 대한 문화적 경계가 발칸 반도로 확장되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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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유럽축제연합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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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6일과 17일에 ‘브뤼셀 컨버세이션(Brussels Conversation)' 행사의 일환으로 전체 회원들이 모여 유럽 시민으로서의 예술축제의 역할과 비전에 대해 토론하는 것으로 유럽축제연합은 60주년 행사를 마감하였다. 발칸 반도로까지 확장하고 있는 현대 유럽의 문화적 국경에 대해 생각해보며 유럽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봉착한 여러 현안들에 대해 예술이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의논하는 자리였다. 예를 들면, 이민자 인구 유입에 따른 노동시장 축소, 그로 인한 인종차별과 보이지 않는 계급 갈등, 시민사회의 다양성과 통합의 문제 등이 공동체로서의 유럽 문화예술계가 관심을 두고 있는 이슈들이다.

한국도 2004년, 싱가포르에 창설된 아시아공연예술축제연맹(AAPAF, Asian Performing Arts Festivals)에 가입해서 활동하고 있다. 유럽축제연합보다 역사는 짧지만, 단계적으로 프로그램과 인적 교류의 범위를 넓혀나가는 중이다. 창설 초기에는 초청 프로그램 공유와 몇 편의 공동제작으로 사업 영역이 제한되었던 것이 현재는 인턴십 프로그램 등 축제 전문가 양성에도 힘을 쏟는 중이다. 아시아공연예술축제연맹도 곧 창설 10주년을 맞는다. 다문화사회로의 이행, 노동시장 축소로 인한 청년세대의 좌절, 소득격차로 인한 사회적 갈등, 아시아 지역의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와 피해 등 동시대 아시아가 당면한 과제를 되짚어보고, 아시아 지역 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함께 얘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유럽축제연합의 60주년 사례처럼 아시아 권역 내에서 공통적으로 의논해야 하는 사회적 현안과 예술의 역할을 성찰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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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축제연합 웹사이트
유럽축제연합 60주년 관련 동영상 직접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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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경 필자소개
신민경은 현재 독립기획자로 활동 중으로 에라스무스 문더스 석사 프로그램으로 영국과 네덜란드에서 International Performance Research를 공부했다. 이전에 서울프린지네트워크, 예술경영지원센터 등에서 현장 경험을 쌓았다. 서울, 홍콩, 마카오, 타이페이가 공동제작하는 오브제 씨어터, ‘트래블링 홈타운’의 마카오/홍콩 12월 초연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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