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무언가 띵가띵가 대는 소리가 들리더니, 오후 1시쯤 일어나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츄리닝을 입고 슈퍼에 사발면 사러 나온 음악 하는 삼촌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우리 동네 그런 삼촌이 있는데 그 집에 가면 조금 지저분하긴 해도 뭔가 신기한 것도 많고 재미난 일도 있을 것 같지 않을까? ‘아나야양옥집콘서트’는 이런 느낌에서 출발한다.
창작공간 ‘아나야양옥집’의 문패

1 [정책제도읽기] 공연예술 전용공간 임차 지원사업
(2010.03.11 기사)

음악 하는 삼촌들 집에 놀러가자

한적하고 높은 담벼락을 갖춘 집들 사이, ‘아나야양옥집’이라는 문패가 걸린 집이 있다.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123-15. 여기가 창작국악그룹 아나야의 창작공간이다. 이 집은 창작국악그룹 아나야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예술전용공간임차지원사업¹으로 지원받은 공간으로 3년째 상주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나야양옥집은 30년이 넘은 일반 가정 주택이라 창작공간으로 사용하기 위해 많은 보수를 거쳤다. 양옥집의 구조는 아담한 공연이 가능한 마당, 합주실로 쓰이는 지층, 팀원들의 창작공간과 사무실로 쓰이는 1층과 2층, 그리고 양옥집콘서트와 워크숍을 위한 거실로 이루어져 있다.

양옥집의 일상은 대부분 아나야 그룹의 창작공간으로 사용되지만 일 년에 4회 정도는 자체 콘서트를 이 공간에서 갖는다. ‘아나야양옥집콘서트’는 아나야가 기획하는 콘서트로 연극, 무용, 문학을 아우르며 매회 다른 컨셉으로 진행된다. 밤새 무언가 띵가띵가 대는 소리가 들리더니, 오후 1시쯤 일어나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츄리닝을 입고 슈퍼에 사발면 사러 나온 음악 하는 삼촌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우리 동네 그런 삼촌이 있는데 그 집에 가면 조금 지저분하긴 해도 뭔가 신기한 것도 많고 재미난 일도 있을 것 같지 않을까? ‘아나야양옥집콘서트’는 이런 느낌에서 출발한다.

아나야양옥집의 마당을 활용한 야외공연하는 사진

‘아나야양옥집’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아나야양옥집콘서트’는 무료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7,000원 정도의 유료 티켓을 판매하며 콘서트 최대 수용인원은 겨울은 40명, 여름은 60명 정도 된다. 공연 날짜는 주기적이진 않으나 공연확정시 페이스북과 카페를 통해 홍보하고 예약을 받는다. ‘아나야양옥집콘서트’의 초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집’이라는 공간의 이미지이다. 집에 찾아온 손님에게 차 한 잔이라도 대접하듯 매회 공연 컨셉에 어울리는 팥죽, 주먹밥, 어묵탕, 팥빙수 등을 음식 새참으로 내놓는다. 그리고 공연이 끝나고 따끈한 담소를 이어갈 분들을 위해 공간을 열어놓고 얘기를 즐길 수 있게 만든다. 두 번째는 여러 예술장르를 다양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아나야’의 공연은 매회 약 15분정도이고, 나머지 출연진(퓨전국악, 정가, 첼리스트, 기타쿠스, 힙합 세 남자, 예술무대 산, 대금연주자 4인, 플라멩고 사라 김, 정영문의 소설 『바셀린 붓다』 낭독 등)이 회당 4팀 정도로 관객과 함께하며 공연자인 동시에 관객도 되어서 공연을 즐긴다.

#아나야양옥집콘서트 스케치

2011년 8월 <물 만난 연희동>
작은 거실에 50명쯤의 사람들이 모인다. 작은 상자를 이리저리 옮기는 출연진 그리고 음악과 함께 예술무대 산팀의 단막인형극이 진행된다. 바나나군과 오이양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유쾌한 자막과 실제 과일들의 익살스런 움직임으로 모든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극의 막바지에 바나나군은 이쑤시개에 찔려 죽고(오이양은 샐러드로), 그의 희생은 관객들의 간식이 된다. 단막 인형극이 끝난 후, 관객들은 팥빙수 한 그릇으로 잠시 더위를 식히고, 베트남의 악기 &lsquo;단보우&rsquo;랑 아나야의 노래도 들어본다.

2012년 7월 <음악 하는 삼촌들>
연희동. 나름 한적한 여름 한낮 플라멩코 음악이 들리고, 발로 리듬을 치며 나는 둔탁한 나무울림이 동네를 떠들썩하게 한다. 지나가던 동네주민, 리허설부터 담 넘어 지켜보시는 옆집 할아버지, 맥주 한 캔과 수박을 들고 조그만 마당에 앉아있는 관객들, 양옥집 기와지붕에 올라가 환호를 하며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아티스트들 등 80명이 넘는 사람들로 마당이 북적거린다. 그 사이 들리는 갑작스런 싸이렌 소리&hellip;&hellip;. 시끄럽다고 민원이 들어온 것이다. 모두 살짝 긴장했지만 굴하지 않고 즐기며, 이어 거실로 가서 판소리 &lsquo;사철가&rsquo;를 듣는다. 마이크도 없이 바로 앞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lsquo;사철가&rsquo;의 기백과 잘 다려진 하얀 한복은 관객의 넋을 흔들어 놓는다.

2012년 11월 <음악으로 들려주는 문학>
정영문의 『바셀린 붓다』라는 소설을 배우가 낭독한다. 형식이 형식으로 존재함을 불편해 하는 소설의 내용처럼 이 소설은 텍스트를 읽기조차 만만치가 않다. 배우의 낭독이 계속해 꼬임으로 그는 난처해하지만 관객들은 오히려 편안해진다. 배우에게 곤혹스런 소설 낭독은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며 한 단락, 한 단락 낭독된다. 이어 거문고 연주자가 거실 바닥에 앉아 즉흥연주를 한다. 이 때 거문고가 들려주는 소리는 음악이 아닌 소설처럼 느껴진다. 난해한 주법들은 흡사 소설의 텍스트 같기 때문이다. 관객은 거실 바닥을 퉁퉁 울리게 하는 거문고의 댓점(거문고 연주의 기교) 때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며 집중한다.

‘예술무대 산’의 공연모습
▲ &lsquo;예술무대 산&rsquo;의 공연모습
‘물만난 연희동’ 콘서트에서 아나야

▲ &lsquo;물만난 연희동&rsquo; 콘서트에서 아나야

상상 할 수 있게 하는 힘

&lsquo;아나야&rsquo;는 7명의 음악 하는 사람들이 모인 창작국악그룹 이다. 우리가 상상했던 것은 &lsquo;어떻게 하면 멋진 음악이 나올까&rsquo;, &lsquo;멋진 음악이 나오면 사람들이 우릴 찾게 될 거야&rsquo;였다. 하지만 이러한 상상은 한국음악시장의 시스템 하에서는 이루어지기 희박하다. 돌이켜 보면 양옥집 공간을 얻기 전에는 이러한 상상 또한 멈춰 버린 듯 했다. 그러나 공간이 생기면서 여러 실험과 공연을 통해 상상 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그 힘은 지원 사업 공간이기에 무엇을 해야만 한다는 책임이나 강요에서 출발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공연에서 관객들을 통해 얻은 에너지와 장르를 초월한 다른 예술가들과의 교류가 자극이 되어 더욱 큰 상상력으로 발전된 것이다. 양옥집 콘서트는 예술가들의 품앗이 공연에도 불구하고 매번 적자이지만, 그럼에도 우린 여전히 &lsquo;이것이 여기에서 가능할까&rsquo;, &lsquo;무엇인가를 새롭게 해보고 싶다&rsquo; 등의 새로운 상상을 한다. 상상 할 수 있는 조건들과 공간적인 여건이 마련되자 우리가 이런 생각을 원래 하고 있었는가 싶을 정도로 7명의 기획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양옥집 콘서트는 2년을 넘어가며 마니아층이 형성되었다. 이들은 큰 공연장보다는 양옥집콘서트에 더 환호한다. 많은 인원을 수용하지 못해 예약제로 시행하자 다음 공연을 미리 예약해달라고 하거나 아나야도 좋지만 다른 곳에서도 이런 형식의 공연을 더 자주 하기를 바란다.

아나야는 2015년 1월까지 아나야양옥집을 사용하게 된다. 자 그럼, 약 20개월 후에는 다시 상상을 닫을 것인가? 앞으로 남은 기간 &lsquo;아나야양옥집&rsquo;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음악그룹인 동시에 양옥집콘서트의 기획자들이 되었다는 것이다. 상상력 충만한 아티스트가 자신들의 기획으로 만들어낸 공연물을 맛봤으니 이제는 멈출 수 없다. 아마도 상상을 멈추는 날, 아나야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에필로그

양옥집콘서트가 있는 날 아침에 대문을 열고 공연홍보 배너를 내놓는데 지나가던 한 50대 아주머니가 내게 말을 건넨다.

&ldquo;여긴 뭐 하는 곳이에요?&rdquo;
&ldquo;아 저희는 음악 팀인데 이래저래&hellip;&hellip;. 좋은 음악 만들라고 지원받은 공간입니다. 오늘 4시에 공연 있는데 와서 보세요. 맛난 음식도 준비 했어요.&rdquo;
&ldquo;아 그래요? 세금을 잘 낸 내게 나라는 아무것도 안 해주는데 젊은 사람들이 좋겠네. 이런 좋은 집에서 공연도 하고. 난 공연은 못 봐요. 이 동네 안 살거든. 그냥 지나가는 길이예요. 좋겠네.&rdquo;

문화에 사용되는 예산이 단기간에 사람들에게 실감되긴 힘들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힘들거나 안일한 생각이 들 때마다 &lsquo;지금 우리가 이 공간에 있는 것이 타당한가&rsquo;를 끊임없이 질문하며 아주머니와의 대화를 떠올린다.

민소윤 필자소개
민소윤은 현재 창작국악그룹 &lsquo;아나야&rsquo;의 대표이자 대금 연주자, 작곡가이다. 서울대 국악과를 졸업하고 연희단거리패의 음악과 영화 워낭소리의 음악을 감독했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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