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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0년 개관한 가시리창작지원센터는 농림수산식품부의 ';신문화공간조성사업';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가시리신문화공간사업의 일환으로 농촌에 문화 활동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기획하고 조성된 가시리는 조선시대 최고의 군마장인 갑마장이 있던 곳으로 역사적인 유산, ';마(馬)문화';라는 무형의 유산을 발굴하여 박물관을 조성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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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자연을 만끽하는 관광지를 넘어, 새로운 삶을 가꾸며 살아가는 터전으로 새롭게 각광받는 추세다. 이 섬의 이국적인 풍광을 떠올리면 낭만적인 전원생활을 꾸리는 공간을 그려 보는 사람이 여럿있을 수 있다. 이런 점은 예술인도 마찬가지다. 만약 제주도에서 머물며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는, 나아가 이 지역 고유의 의미를 만끽할 수 있는 지원프로그램이 있다면 제주의 풍광만큼이나 아름다운 장면이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이 상상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이 같은 바람을 현실로 만든 제주도의 가시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 마을은 예술가 지원을 위한 창작 레지던시뿐만 아니라, 마을 방문자와 주민의 문화향유를 위해 지역의 역사와 문화자원을 바탕으로 다양하게 구성한 시설과 프로그램까지 운영 중이다.
가시리뿐만 아니라 국내외에서 창작 레지던시 제도를 운영하는 곳은 무척 많으며, 그 형식 역시 다양하다. 대체로 레지던시들은 작가가 일정 기간 정주하며 창작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고, 그곳에서 이뤄지는 활동은 현대미술의 대안적 장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게 한다. 이런 프로그램은 국가나 문화예술 관련 기관, 민간 재단 등에서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여느 창작 레지던시 프로그램과 마찬가지로 제주도의 가시리도 작가에게 일정 기간 동안 정주할 수 있는 공간을 부여하고, 작가는 이곳에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가시리의 경우 마을이 주체가 된 국내 사례로, 가시리창작지원센터1)를 운영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레지던시들과 다르다. 문화예술 관련 주체가 운영하는 것과 또 다른 가능성을 기대하게 되는 부분이다.
예술인과 주민들의 소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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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시리창작지원센터의 외부(왼), 작가들이 머무는 숙소 전경(오)
(사진제공_(주)이어도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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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들이 머무는 숙소 내부(왼), 창작 레지던시 제도에 참여한 작가들의 모임(오)
(사진제공_(주)이어도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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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시리의 레지던시 활동은 유기적인 운영방식뿐만 아니라, 지역의 특수성과 전문가 그리고 주민의 삶이 보다 유연하고 자연스러운 관계를 이루고 확산시켜갈 공간으로 기대를 품게 한다. 한국 사람이라도 제주도의 기후, 문화, 방언에는 익숙하지 않은 편이다. 게다가 가시리는 중산간에 위치한 마을로, 도시화나 개발의 거친 바람이 깊이 미치지 못한 곳이다. 이곳은 감귤·천혜향·한라봉 등의 과실수가 초록과 주황색으로 생생하게 빛나는, 공동체의 전통이 고스란한 마을이다. 주민들도, 공간도 서로의 기억을 간직할 뿐만 아니라 지금 현재에도 의미가 있는 생생한 무엇이다. 따라서 마을 주민들의 상호작용과 갈등은 도시와 다르며 그 형성의 조건 역시 다르다. 만약 도시의 지역기반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라면 공동체 회복과 같은 문제가 주요 현안이겠지만, 공동체의 전통과 모습을 간직한 가시리로서는 다른 부분을 우선하게 된다. 가시리로 온 작가가 흔히 경험하는 해프닝 중 하나를 예로 들면, 의식하지 않던 자신의 말과 행동이 순식간에 소문이 되어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도회지 이방인으로서의 경험이다. 그리고 이 낯선 경험에 익숙해지기 전에 다시 한 번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신참 주민인 작가의 살림살이와 먹을거리를 걱정해주는 마을 주민의 마음과 정성이다. 이처럼 가시리로 이주해 온 작가는 마을 주민의 일상 속에서 낯선 경험을 통해 지역에 녹아드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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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시리창작지원센터에서 활동한 작가들의 작품
(사진제공_(주)이어도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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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된 가시리의 조랑말체험공원
(사진제공_(주)이어도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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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들의 작품에 참여하는 주민들의 모습
(사진제공_(주)이어도사나)
2) 가시리창작지원센터는 건물과 시설이라는 단순한 하드웨어를 조성하는데 그치지 않고 작가 지원비나 기타 운영과 관련된 기획과 예산 확보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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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경제가 선순환 되는 이상공간
마을에서 이렇게 벌어지는 재미있는 일화는 수도 없이 많았겠지만 이러한 만남도 최소한의 접촉점에 불과하다. 지역 레지던시라는 제도의 가치는 접촉 지점을 만드는 외부 조건 자체라기보다는, 그 조건에 부딪혀 살아가는 동안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각각에게 내면으로 체험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공동체는 외부의 자극이나 내부의 필요에 따라 그 범위에 성격이 변화하게 된다. 작가와 문화예술이라는 외부 자극으로 기존의 경계가 모호해진 가시리의 공동체 역시 변화하고 있다. 마을 주민은 작가라는 임시 구성원들과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고, 여러 제도와 가치를 자신의 행동 속에 내면화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런 과정과 경험은 보다 넓고 다양한 삶을 추구하는 새로운 인격체(지역의 생태까지 포함하는)를 기대하게 한다. 이것이 가시리창작지원센터가 가꾸고 싶은 마을의 상이 아닐까.
만약 지역의 문화시설을 획일화된 브랜딩이나, 보조적이고 관행적인 구색의 수준 정도로 갖추려고 한 것이라면 우리가 기대하는 이러한 교감과 내면화는 당연히 어려울 것이다. 특정 유형에 따른 성과를 설정해서 끼워 맞추듯 급급하게 운영될 수밖에 없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특히 일반 주민의 참여를 이끌어낼 만큼 설득력 있는 마을 사업으로 자리하기 위해서는 운영자의 전문성과 균형 감각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것을 바탕으로 여러 수준의 이해와 요구를 포괄하는 현실적인 프로그램 운영의 기술이 필요하다. 그래서 가시리창작지원센터의 운영진은 레지던시와 마을의 문화예술 프로그램과 시설에 문화의 가치뿐 아니라 경제적 측면에서도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문화와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는 다양한 모색을 하고 있다. 레시던시 부분에서는 이것을 위한 시설로 예술가들의 ';창작';과 ';정주 공간'; 외에도 마을주민들과 함께 사용하는 ';목공방';과 ';공동 창작공간';을 갖추고 있으며, 이곳과 마을 곳곳에서 입주 작가들은 작품 활동과 교육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획, 공공미술 프로젝트 등을 통해 마을과 소통하며 유무형의 결과들을 쌓아가고 있다.
당연한 전제와 조건이지만 레지던시를 비롯한 소통을 전제로 하는 프로그램이 자연스럽게 마을에 정착하려면 기다림이 필요하다. 이는 필요나 욕망에 의한 결과를 기대하거나 강요하지 않는 태도이며, (모순이지만) 최선의 결과를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생각된다. 단지 몇몇 작가가 머물다 가거나 몇 차례의 프로젝트나 전시로는 지역 레지던시들이 추구하는 경험의 내면화나 취미의 공론화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다. 이상적인 창작 레지던시라면 시간이 걸릴지라도 과정을 존중하고, 이론이나 가설보다는 하나씩 쌓여가는 경험을 소중히 여기며 마을과 작가들이 함께 오랜 역사와 함께 마을 레지던시를 만들어갈 것이라고 생각된다. 가시리창작지원센터는 한정된 여건에서도 처음에 설정한 기본적인 운영철학을 지키며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2) 분명 가시리창작지원센터의 끈기 있고 다양한 모색을 통해 자신의 경험과 시간을 더해 가는 과정이 가시리 마을과 사람들의 삶 속에서 더욱 구체적인 실천과 생생함이 되어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될 것이며, 벌써 기대를 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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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종은은 홍익대학교 미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대안공간 루프의 큐레이터와 대전시립미술관의 객원큐레이터를 역임했으며, 그 외의 기관과 협업을 하거나 독립기획자로 활동했다. 공공미술에서는 《인사이드, 아웃사이드(Inside Outside)》(삼청동길), 《가시리 프로젝트》(제주)를 비롯한 다수의 프로젝트를 기획했고, 쌈지스페이스의 ';국제 큐레이터 레지던시 프로그램';(서울, 2007)과 도쿄 원더 사이트(일본, 2010)에서의 레지던시와 ';노마딕 레지던시';(중국, 2011)를 통해 아시아 현대미술에 대한 네트워크와 작가연구 등의 경험을 가지고 학술적인 연구와 전시 관련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갤러리 화이트블럭의 큐레이터로 근무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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