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천구청의 위탁 공간인 과거 육군 도하 부대의 폐허였던 공간의 생태계를 적극 활용하여 이곳을 거점으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예술가들의 새로운 창작과 감수성, 열정의 가능성을 실험하고자 했다.

예술 생태계 도하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한 무리의 예술가들이 자본의 논리만으로 잠식된 도시를 떠나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버려진 군부대, 그 폐허의 땅에 유목하기 시작했다. 신축 공사를 진행하던 중 발견된 유물로 인해 잠시 시간이 멈추어 있는 그 땅에 본래 있던 부대의 이름을 그대로 따 ‘도하’ 프로젝트라 이름 지었다. 교각을 짓고 다리를 건너며 새로운 거점을 향해 끊임없이 움직여온 부대의 특징이 잘 반영된 과거 육군 도하 부대에서 이름을 빌려온 ‘도하 프로젝트(project DOHA)‘는 예술가들에 의해 새로운 예술 생태계로 변모했다. 몇몇은 황량하고 스산한 이 공간에 대해 회의를 갖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이 지내던 곳이라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지저분한 공간에 수북이 쌓여 있던 먼지와 냉기를 손수 털어내며 우리를 밀어낸 도시에 대한 적대감을 불태우는 대신 담담히 폐허에 존재하는 쪽을 택했다.

▲도하프로젝트의 내부공간(전시공간과 서재)
▲도하프로젝트 공간에 들어가는 입구

▲도하프로젝트의 내부공간(전시공간과 서재)

▲▲도하프로젝트 공간에 들어가는 입구

우리에게 지붕과 벽과 땅만 달라

도시의 개발 논리와 자본의 침투로 인해 공간 거점을 잃고 있는 예술가들은 갈수록 자신들의 생태계를 위협받으며 자신만의 창작공간으로부터 원심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지금 이 도시는 근근이 지원금에 의존하며 링거를 맞는 창작자들, 자신들의 공간을 잃어버리고 도시의 유랑자들처럼 떠도는 창작자들, 자신들의 새 작업의 설렘과 목소리를 담을 공간을 찾지 못한 채 가능성으로만 살아가는 창작자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도하는 이러한 위기의식으로부터 대안을 찾고자 만들어진 하나의 문화 운동적 성격을 가진다. 생태계가 수많은 생성과 변화의 과정이 일어나는 날것 그대로의 현장이듯, ‘2012 도하 프로젝트’는 이제 예술의 현장도 하나의 생태계처럼 움직여지고 끊임없이 생성, 변화한다는 것에 주목한다. 도하라는 프로젝트 공간은 다양한 예술가들에게 잃어버린 창작공간을 제공해줌으로써 새롭게 열린 창조성을 제공해주고, 이 공간 안에서 실험되고 꿈틀거리는 창조의 과정을 다양한 방식을 통해 사람들과 공감하는 예술 생태계 공간으로서 의미를 가지고 움직이고자 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 결과를 혹은 성과를 예측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직은 남아있다고 믿고 싶은 예술가들의 작은 ‘선의지’에 기대어 조심스럽게 실험을 시작했다. 노래하는 하림과 시를 쓰는 김경주가 아트디렉터가 되었고, 점점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그 땅에 제 발로 걸어 들어온 예술가들이 어둑어둑한 목욕탕 벽에 그림을 걸고, 숨결과 음악으로 퀴퀴하고 쌀쌀한 공간을 덥혔다. 그렇게 그 땅을 일구는 과정 속에 폐허는 자연스레 예술 생태계로 거듭나고 누군가는 조금씩 스스로를 치유해나갔다.

금천구청의 위탁 공간인 과거 육군 도하 부대의 폐허였던 공간의 생태계를 적극 활용하여 이곳을 거점으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예술가들의 새로운 창작과 감수성, 열정의 가능성을 실험하고자 했다. 내부 공간은 과거 부대의 시설이었던 비어 있는 대중목욕탕을 메인 전시장으로 쓰고, 그 옆에 사무 공간과 홈 바를 만들었다. 외부 공간인 마당으로 나오면 야외무대와 설치를 소화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배려했고, 부대 주변의 다양한 생태 공간의 활용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찾아오는 예술가들은 스스로 빈 초소들, 호수, 잡목 숲, 교각, 연병장, 빈 집들, 그래피티가 가능한 벽을 찾아 스스로 자신들의 작업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예술가들의 밭’은 도하 목욕탕캠프 바깥의 마당인데, 이곳에서는 수시로 공연이 이루어졌고, 참여하고자 하는 예술가들과 창작집단이 능동적인 방식으로 공간을 활용, 확장해가는 방식으로 움직여갔다. 도하 캠프에서 출발해 도하 주변의 생태계적 공간을 적극 활용하는 창조성을 기대했던 것이 적중했다. 전시, 설치, 공연, 시각 작업, 포럼 등이 스스로 펼쳐진 것이다.

다시 폐허가 있다면...우리는 그곳으로 팅커벨처럼 날아가리라

▲도하프로젝트에서 진행했던 전시 포스터를 붙여놓은 벽면(왼)과 이수진 작가의 개인전 < The Deep Stay > 전시장(오)
▲< 목욕합니다 >전시가 열렸을 때 도하프로젝트의 입구 모습(왼)과 < ARCHIVE-MENT : 소멸의 흔적 >이 열렸던 전시공간 내부

▲도하프로젝트에서 진행했던 전시 포스터를 붙여놓은 벽면(왼)과
이수진 작가의 개인전〈The Deep Stay〉전시장(오)

▲▲<목욕합니다>전시가 열렸을 때 도하프로젝트의 입구 모습(왼)과
〈ARCHIVE-MENT : 소멸의 흔적〉이 열렸던 전시공간 내부

<하늘을 날다>

아틀리에 오와 시발점, 어울림은 6.25를 맞이하여 오랜 시간 도심의 블랙홀로 자리 잡고 있던 옛 군부대의 터(현 &lsquo;도하 프로젝트&rsquo;)에 적합한 주제인 전쟁과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약 한 달간 선보였다. 2011년 7월 인사동 토포하우스 갤러리에서 개최된 기획전 <시발점>이 <하늘을 날다>展의 초석이 된다. <시발점>展은 조각가 하종우, 캘리그래퍼 이상현, 일러스트레이터 잠산, 회화 작가 호야 등 4인을 중심으로 모인 여러 아티스트들의 전시, 시 낭송, 애니메이션 상영, 음악 공연이 교차하는 이른바 &lsquo;토털 아트&rsquo;를 표방하는 행사였다. <하늘을 날다>展에는 새롭게 캘리그래피 단체 어울림이 함께하여 여러 세대를 지나는 동안 단절될 수밖에 없었던 군부대의 낡은 벽을 소통의 창으로 바꾸는 캘리그래피 퍼포먼스로 &lsquo;도하 프로젝트&rsquo;의 출발을 장식했다(2012. 6. 24 ~ 2012. 7. 14)

〈We〉

아티스트 노보, 옥승철, 조재가 모여 금천아트캠프 &lsquo;도하 프로젝트&rsquo;에서〈We〉展을 가졌다. 이번 전시는 세 번째 프로젝트로서 예술이 더 이상 한 영역에서의 고급문화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소통해야 한다는 점에 방점을 찍었다. 단순히 화이트 큐브의 공간에서 진행되는 전시가 아닌 다양한 공간에서의 시도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자신들의 작업들을 교류함으로써 예술이 대중에게 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고민했다. 이번 &lsquo;도하 프로젝트&rsquo;〈We〉展은 전시 마지막 날 옥션을 진행함으로써 작가와 대중들이 서로에게 쉽게 다가서서 그림을 팔고 구매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함에 의의를 두었다. 단순히 작가들을 위한 벽으로 이루어진 전시가 아닌, 관객과 함께 보고 느끼는 소통의 공간으로서 재탄생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2012. 7. 29 ~ 2012. 8. 12)

〈The Deep Stay〉

〈The Deep Stay〉展는 &lsquo;도하 프로젝트&rsquo;에서 열리는 이수진의 개인전이었다. 본 전시는 일반적인 미술관, 갤러리의 물리적 제약과 제도에서 벗어난 또 다른 환경의 특정 공간을 선택하여, 독립적이며 자율적인 형태로서의 전시를 다루고자 하는 작가의 관심과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이것은 삶의 장소 틈새에 ';임시 스튜디오';, 혹은 ';이동식 갤러리';를 설치하여 관객과 소통하는 것과 관련 있으며, 작가적 방식으로의 유목주의적 접근으로 주변의 특정 장소와 교감, 상호작용할 수 있는 공감각적 프로젝트의 실현을 목적으로 했다. 전시는 폐쇄된 군부대 장소를 찾은 방문자들에게 짧지만 깊은 여행으로 다가가길 원했고, 관람자의 의식적이고 자발적인 참여와 움직임을 통해 이 장소와 정서적으로 유대하기를 권유했다. 〈The Deep Stay〉로의 초대는 여행과도 같은 친밀하고 소소한 만남으로 관객을 이끄는 동시에, 개발이 유보된 채 폐쇄되어 있던 오랜 시간을 경험하게 하며, 점진적 철거로 인해 심리적으로 긴장된 극적 장소를 탐험하게 했다. 또한 본래의 장소를 보여주는 동시에 작가가 개입한 공간의 구조를 경험하게 하며, 이를 통하여 우리 일상 속의 시간과 공간이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지를 일깨워줬다(2012. 9. 6 ~ 2012. 10. 2)

<목욕합니다>

<목욕합니다>展은 &lsquo;도하 프로젝트&rsquo; 안에 위치한 작은 폐목욕탕을 전제로 기획되었다. 예술가들의 점거 퍼포먼스인 이 전시는 &lsquo;도하 프로젝트&rsquo;와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생각하게 하는 첫 기획전이었다. 작품과 교감하고 소통하는 새로운 방식에 대한 체험의 장으로서, 관람객들은 작가들이 서로 소통하며 이루어진 작품을 관람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하나의 고리를 형성하며 예술 생태계가 탄생해가는 현장에 참여한다. &lsquo;도하의 폐목욕탕&rsquo;이라는 공간에서 보이는 다각적인 방향의 키워드를 가지고 작가들은 자신들의 작업과 연결하여 관람자들에게 이야기를 건넸다. 전시를 준비하며 서로의 작업에 관여하여 이루어진 결과물들은 거대한 도시에서 생계형 예술가로 살아가는 작가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세상 이야기이기도 하며, 관람객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했다(2012. 10. 28 ~ 2012. 11. 18)

〈ARCHIVE-MENT : 소멸의 흔적〉

〈ARCHIVE-MENT : 소멸의 흔적〉展은 곧 철거가 되어 잊힐 &lsquo;2012 도하 프로젝트&rsquo;의 지난 시간을 돌아볼 수 있는 자리이다. 이번 아카이브전을 통해 도하를 스쳐간 수많은 예술 유목민들이 마지막으로 도하에 모여 아름다운 소멸을 맞이하고자 한다. 소멸의 흔적을 간직한 채 &lsquo;도하 프로젝트&rsquo;는 새로운 항해를 시작할 것이다(2013. 8. 18 ~ 2013. 8. 31)

사진제공_도하프로젝트

김경주 필자소개
김경주는 서강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극 창작과(대본 및 작사전공) 전문사(MFA&middot;석사) 과정을 공부했다.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로 등단했고 극작가로도 활동하기 시작했다. 등단 후 카피라이터, 방송작가, 야설작가, 유령작가로 글쓰기를 해오며 여러 지면에 다양한 글을 써왔다. 첫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를 펴냈고, 이후 <기담> <시차의 눈을 달랜다>의 시집과 산문집 <밀어> <패스포트> <자고 있어 곁이니까>를, 옮긴 책으로 <라디오 헤드로 철학하기> 등이 있다. 현재 다양한 독립문화를 기획, 연출하며 시극운동을 하고 있다. 제28회 김수영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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