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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문화예술의 일기예보
김경주_시인, 극작가
당신이 가진 차원은 어떤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가?
문화의 다양성을 추구했던 세기의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Lévi-Strauss)는 문화란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차이’의 문제라는 전설적인 명언을 남긴 바 있다. 그로인해 차별이 아닌 차이의 문제로 문화를 이해하려는 우리의 태도와 시각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어졌고 성숙해져갔다. 남보다 조금 더 앞서고 미래적 감각의 전유물을 만들고자 하는 창조자들의 세계에선 이제 문화예술이 ‘차이’가 아닌 ‘차원’의 문제로까지 그 감각의 세계를 넓혀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당신은 어떤 차원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
당신은 어떤 차원을 가지고 이 세계를 꾸려갈 것인가?
당신이 가진 차원은 어떤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가?
왜 지금 여기서 다시 문화예술인가?
전세기적으로 문화는 우리의 일상 깊숙이 하루가 멀다 다양한 감각적 콘텐츠를 생산해 내고 있고, 대중은 소비와 재창조라는 문화적 활동을 통해 그러한 양분을 끊임없이 수혈 받길 원한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그 감각을 따라가기에 아직 역부족이 아닌가 하는 불안에 휩싸여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욕망하면서 두려워하는 것의 실체에 문화예술은 우리 피부 깊숙이 뿌리박혀 우리의 감정들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교통정리해가고 있다.
미디어와 매체, 복합적인 감각의 창조물들이 하나의 이미지로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가 하나의 이미지로 구성되어 간다는 생각의 발원에는 현대 대중이 추구하는 다양한 욕망과 불안이 그토록 우리의 일상과 꿈에 깊이 침투되어 있다는 가정이 전제되어 있고, 그로부터 또다시 새로운 문화는 꿈틀거릴 것이며, 다양한 창조활동과 새로운 감각의 침투는 지속될 것이다. 그것 또한 다양성이라 부를 수 있는 문화의 쌍생아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땅의 곳곳에 문화의 수많은 쌍생아들이 태어나게 할 수 있는 지평이 형성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새로운 창조와 세계를 만들려는 자들의 새로운 비상은 아닐까? 이쯤 되면 의문은 이것이다. 오늘날 문화예술의 복합적이며 공감각적인 감각의 홍수에 우리는 어디쯤 도달해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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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예술방담’ 예술경영 외전(外傳)에 출연한 시인 김경주, 정지연 [스트리트H] 편집장, 힙합평론가 김봉현(왼쪽부터)](https://www.gokams.or.kr:442/webzine/DATA/PHOTO/upload20131226_img01_001.jpg)
▲‘2013 예술방담’ 예술경영 외전(外傳)에 출연한 시인 김경주, 정지연 [스트리트H] 편집장, 힙합평론가 김봉현(왼쪽부터)
▲▲ ‘2013 예술방담’ 행사 오프닝 축하공연에 강백수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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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것으로서의 ‘문화’
수없이 변종되고 진화하고 있는 문화의 다양성을 감각적으로 익히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의 날것이다. 너무나 많은 문화의 세포들을 일일이 따져보고 접근하다가는 시간이 모자라 보인다. 그렇다고 제도화된 시스템이나 체계의 감각만을 따라가려다 보면 본진으로 침투하기 전에 지쳐나가 떨어져 버릴지도 모른다. 전화 거는 법을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번호부가 무용지물인 것처럼, 문화예술의 감각을 받아들이는 법을 모르는데 그 많은 문화예술의 일련번호들이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날것 그대로의 문화를 여과 없이 피부로 접해보고 그 낯섦과 다양성 앞에서 자신의 삶과 태도를 다시 한 번 각색해 보는 것, 날것의 문화예술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는 거기 있다.
날것은 문화예술을 접하는 하나의 입장권이다. 교통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여가듯 날것의 문화는 스스로 지닌 에너지로 움직이면서 다른 날것들과 교집합을 끊임없이 형성해 간다. 때로 날것은 거칠고 비틀림이 존재하면서 삐걱거릴 수 있다. 하지만 날것은 인간이 하나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날것의 이미지, 날것의 학습, 날것의 체화를 통해 우리는 수많은 문화예술을 하나의 새로운 학교로 소화해 갈 수 있다. 그것은 새로운 채널로 가는, 새로운 컬러로 가는 여행이다.
날것은 창조를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예술가들의 혁명이다. 혁명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내부로부터, 하나의 울림으로부터 온다.
우리의 내면에서 시작되는 하나의 ‘문화지진’ 그것이 날것이다. 날것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에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새로운 문화예술을 창조하고자 하는 뜨거운 혁명이 담겨 있는 것이다. 문화예술의 새로운 진실로 가고자 할 때 날것을 거치지 않고서는 우리는 미지근한 문화의 감각만을 우리는 소비하게 될 것이다.
날것에는 끊임없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날것에는 아직 시작되지 않는 이야기의 가능성이 무수히 담겨있다. 날것에는 입체적인 감각들이 숨 쉬고 있고 날것에는 수많은 문화세포들이 숨 쉬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 새로운 날것의 열린 감각이다. 열린 감각을 통해 새로운 창조를 하고 열린 감각을 통해 새로운 복합문화체계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선 날것의 감각을 다시 개발할 필요가 있다. 날것은 수만 볼트 고압전류보다 뜨겁고, 멀리갈 수 있는 예술의 흐름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 날것은 눈치를 보지 않는다.
날것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겨우 시작하려는 자들의 지형도이기 때문이다. 날것의 감각을 키우고 날것의 문화마인드로 다시 공감에 대해 새롭게 이야기 할 때가 왔다. 감수성의 혁명가가 되기 위해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날것을 통할 때 가장 깊은 공감을 드러낸다. 저 자신도 이해할 수 없던, 자신의 내부에서 새로운 날것이 꿈틀거리고 있다고 생각할 때 생기는 감정의 화학작용, 그것이 날것을 받아들이는 우리들의 공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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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경주는 서강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극 창작과(대본 및 작사전공) 전문사(MFA·석사) 과정을 공부했다.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로 등단했고 극작가로도 활동하기 시작했다. 등단 후 카피라이터, 방송작가, 야설작가, 유령작가로 글쓰기를 해오며 여러 지면에 다양한 글을 써왔다. 첫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를 펴냈고, 이후 『기담』, 『시차의 눈을 달랜다』의 시집과 산문집 『밀어』, 『패스포트』, 『자고 있어 곁이니까』를, 옮긴 책으로 『라디오 헤드로 철학하기』등이 있다. 현재 다양한 독립문화를 기획, 연출하며 시극운동을 하고 있다. 제28회 김수영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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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앞, 힙합이 한국에서 숨 쉴 수 있는 공간
김봉현_힙합평론가
한국에서 ‘힙합’이나 ‘랩’이란 단어는 이제 누구에게나 친숙한 말이 되었다. 아니, 그렇게 된 지 오래다. 누구도 힙합이 무슨 뜻인지, 랩이 무엇인지 되묻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에서 그 고유의 내용과 맥락이 잘, 그리고 제대로 널리 알려져 있다고 말하기는 아직도 어렵다. 십 수 년 전 기대했던 미래와는 다소 다른, 당황스런 현실이다.
예를 들어 ‘짧으면 시’라는 말이 불완전한 진실이듯 ‘빠르게 말한다’라고 해서 다 랩이 되는 것은 아니다. 랩은 시처럼 운율을 지니고 있고, ‘라임’의 형식미를 지켜야한다는 면에서 오히려 자유시 경향이 두드러진 현대시보다 더 엄격한 운율을 필요로 한다. 비슷한 발음의 어휘로 라임을 맞춰야하는 규칙을 준수하면서 내용 또한 흐트러지지 않아야 하기에 랩은 일종의 ‘핸디캡의 예술’이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래퍼가 그러한 핸디캡을 극복할 때 카타르시스가 발생하며, 우리는 그것을 가리켜 훌륭한 랩이라 부른다. 랩이 단순히 시시껄렁한 지껄임이 아닌 이유다.
또 힙합은 한국에서 아직도 여러 오해와 싸우고 있다. 얼마 전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가 2014년의 트렌드 키워드 중 하나로 ‘스웨거(Swagger)’를 꼽은 적이 있다. 스웨거는 힙합계를 통해 널리 알려진 단어로, 굳이 정의하자면 자신의 외적·내적 면모를 스스로 자신감있게 드러낼 때 발생하는 일종의 복합적인 ‘멋’ 혹은 ‘아우라’라는 의미로 통용된다. 또한 스웨거는 힙합 특유의 자수성가 화법, 겸손이라는 윤리적 태도, 은유와 상징이라는 가사의 기술, 자기증명의 근거와 진실성 같은 명제들과 함께 다루어야 비로소 온전히 그 가치를 가늠할 수 있는 개념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스웨거는 힙합이 직면한 오해와 편견을 야기하는 주범이라면 주범이다. 앞서 언급한 여러 맥락이 거세된 채 그저 ‘잘난 척’ 정도의 비윤리적인 태도로만 대체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잘못이라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나 역시 힙합은 그 본질과 속성 상 어느 음악보다 자기 고유의 색깔과 개성이 강하고, 그런 만큼 힙합을 잘 모르거나 힙합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 오해와 편견을 가지기 쉬운 음악이자 문화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마치 일반인이 헤비메탈 뮤지션의 패션이나 무대를 볼 때처럼, 힙합 ‘안’에서는 힙합 마니아끼리 자연스레 합의된 내용이 힙합 ‘밖’으로 나가면 이상해보이고 잘 이해가 안 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간극을 채우기 위해 노력해온 사람이 많지 않았다고 생각하기에, 요즘 나는 힙합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해소하고 힙합 고유의 멋과 매력을 알리는 작업에 보다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홍대 앞은 핵심적인 공간이다. 사실 한국힙합 자체가 홍대라는 문화 생태계에 상당부분 기반하고 있다. 한국힙합 공연의 대부분은 홍대의 클럽과 공연장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래퍼들은 홍대 앞 놀이터에서 주기적으로 프리스타일 랩 모임을 열고 있으며, 상수동 근방 다세대 주택에는 약 50% 가량의 래퍼들이 세 들어 살고 있다. 이렇게 볼 때 한국힙합의 일원으로서 나의 활동 반경이 홍대 부근에 모아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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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카페에서 열린 ‘이브닝 라임: 시와 랩의 전격소통작전’ 포스터
▲▲이날 행사는 시인 김경주(왼쪽)가 시를 낭독한 후 랩으로 재해석하는 시간을 갖었고, 힙합평론가 김봉현(오른쪽)이 ‘시를 랩으로 읽기’란 주제로 설명을 덧붙였다.
(사진출처_A MATTER OF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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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힙합 고유의 실체를 느끼는 순간
김경주 시인과 나는 ‘시와 랩’의 소통을 모토로 다방면의 작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올해 초 상수동 이리카페에서 개최했던 ‘이브닝 라임: 시와 랩의 전격 소통작전’이라는 공연이었다. 이 공연에서 김경주 시인의 시는 래퍼와 프로듀서의 재해석을 통해 새로운 랩과 힙합음악으로 태어났고, 반대로 래퍼의 기존 랩 가사는 반주와 플로가 사라진 대신 김경주 시인의 목소리만으로 울려 퍼지는 오롯한 낭독의 힘을 새롭게 얻었다. 문학, 하위문화 등 여러 관점을 통해 조명한 시와 랩의 공통점과 교차점에 대해 내가 직접 해설을 했음은 물론이다.
홍대에 위치한 문화예술공간 상상마당에서는 또 다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힙합을 매개로 한 강좌로서 이를테면 힙합과 글쓰기의 결합이다. 먼저 내가 수강생들에게 힙합 고유의 태도와 어법 등을 인문학적으로 설명한다. 그러면 수강생들은 그 날 배운 것을 토대로 글을 써오거나 랩 가사를 써서 다음 시간에 발표하고 합평하는 식이다. 나는 이 작업을 통해 힙합의 가능성을 새삼 다시 확인했다. 예를 들어 힙합의 스웨거라는 태도이자 어법이 단순히 볼썽사나운 잘난 척이 아니라, 힙합에 특별한 관심이나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 학생이나 직장인에게 실제로 삶의 동기와 에너지를 부여함은 물론 문학적 표현의 예술성에도 이바지할 수 있음을 수강생들의 과제와 반응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힙합 고유의 멋과 매력을 알리는 동시에 힙합의 외연 확장도 모색하는 작업인 셈이다.
이외에도 해야 할 이야기가 많지만 이쯤에서 줄이기로 한다. 다만 힙합은 조금만 더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면 무궁무진한 매력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지닌 음악이자 문화이며,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점, 그리고 그러한 힙합이 한국에서 숨 쉬며 살아가는 공간이 바로 홍대 앞 문화생태계라는 점을 마지막으로 말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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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봉현은 흑인음악(BLACK MUSIC)을 중심으로 대중음악 및 문화에 대해 글을 쓰거나 말을 하고 있다. 단순한 설명이나 소개보다는 비평을 지향하고, 의미와 재미를 동시에 잡으려 애쓰고 있다.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네이버뮤직 이주의앨범 선정위원을 역임했다. Mnet "김봉현의 behind the HIPHOP" 연재했으며, 팟캐스트 "김봉현의 힙합초대석"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더 스트리트 북: 거리의 문화를 담은 패션 브랜드 40』 (2012/ 1984),『더 에미넴 북: 앵그리 블론드』 (2012/ 1984),『김봉현의 1st Class Hiphop 2012』 (2013/ 1984) 등이 있다. 이메일 트위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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