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의 역사성을 바탕으로 그 공간을 소개하고 정체성을 부여하는 방식은 이제 너무 흔한 것이 되어버렸다. 다방만 해도 그렇다. 대안공간의 시초격인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상수동의 제비다방과 그문화다방 등 ‘다방’이라는 단어가 붙은 문화예술공간만 얼핏 생각해도 여럿이다. 여관(여인숙), 당구장, 창고, 공장, 기차역 등 그 소재도 다양하게 쓰였으니 이제는 조금 진부할 지경이다. 하여, 정다방 프로젝트가 어떻게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는지, 작명의 유래는 어떻게 되었는지 등의 이야기는 과감히 생략하기로 한다. 정작 정다방 프로젝트에게 궁금한 것은 따로 있었다. 4년차로 접어든 정다방 프로젝트의 현재의 모습이 궁금했다. 운영비와 사업비를 합한 지출액과 수입액이 시쳇말로 ‘똔똔’은 이루는지, 뒤늦게 ‘대안공간’이라는 깃발을 들고 시작했었는데 성과와 한계는 어떤 것이 있는지, 이제는 피로가 누적되어 힘에 붙이지는 않는지 등의 사소한 것들이 궁금했다. 외피를 거두어낸 속살을 보고 싶었다.

‘문턱 낮은 예술 공간’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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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방 프로젝트 외관(간판)
▲정다방 프로젝트 카페 외관

정다방 프로젝트는 2010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하여 다음해 4월의 전시를 시작으로 여정을 시작했다. 박무림, 한경훈, 이용희, 이승구 4명의 공동 대표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시 기획은 박무림 공동 대표가, 커뮤니티관련 사업은 이용희 공동 대표가 홍보 및 공간 운영은 이승구, 한경훈 공동 대표가 전담하는 체제다. 예술과 관련된 일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서 공간을 조성했기보다는 문화예술활동을 공유하는 장소를 만들어보자는 느슨한 취지 하에 의기투합했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정다방 프로젝트는 사회적 기업을 추구하는 단체로 예술교류 활동을 증진하고 지역 주민 연계 예술 교육 프로그램으로 커뮤니티 활성화를 목적으로 운영되는 대안공간입니다. 신진 작가 창작품 전시, 공연, 세미나 등이 지속적으로 진행되며, 동호회의 모임 공간으로도 활용 가능한 문턱 낮은 문화 예술 공간입니다.” 정다방 프로젝트의 입구 초입에 적힌 소개 글이다. 박무림 공동 대표의 말을 빌자면 프랑스의 살롱(salon)과 같은 교류의 장을 염두에 두고 운영했다고 한다. 장르의 구애 없이 다양한 창작활동이 항시 벌어지고, 이것을 매개로 여러 사람들이 모여 교류할 수 있는 공간. 이러한 공간 운영의 원칙을 토대로 운영자의 성향에 따라서 조금씩 성격을 달리하며 다양한 프로그램이 전개되는 것이 정다방 프로젝트의 특징이다.

초창기 일정 정도의 수익 창출을 위해서 와인과 커피를 판매했었으나, 이후 수익과 관련된 부분을 분리시켜 놓았다. 한경훈 공동 대표는 맞은편에 ‘카페 정다방 프로젝트’를 별도 운영하면서 기존의 정다방 프로젝트는 보다 전문적인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역할을 강화했다. 박무림 공동 대표는 ‘씽크 투두’라는 문화예술 콘텐츠 제작소를 통해서 기획력 있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에 집중했다. 이용희 공동 대표는 마을공동체 차원의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지역 주민과 예술가의 교류에 힘 쏟고 있다. 이렇게 닮은 듯 다른 공동 운영자들의 성격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곳이 정다방 프로젝트다. 전시 프로젝트를 위한 공간이기도 하고, 지역 주민들의 모임 장소이기도 하며,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이루어지기도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모습을 달리하면서, 그리고 대상이 다른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빚어지는 역동적인 모습이 정다방 프로젝트의 정체성일 것이다. 조금씩 다른 운영자의 취향이 절충을 이루면서 예술을 소재로 경계 없는 프로그램이 벌어지는 장소이며, 운영자들이 각자의 특성화된 활동을 전개하기 위한 교두보이기도 하다.

신진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 실험적 예술공간으로 한 걸음 더

▲2013년 <예술의 조건> 워크숍 활동(왼쪽부터), <내옆의 그림자들> 전시 전경



다양한 역할이 겹치면서 때때로 의외의 풍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예술의 언어와 일상의 언어가 뒤섞이고, 예술가와 지역인이 주/객으로 나뉘지 않고 동일한 출발선 상에서 작품을 제작하기도 한다(시민 참여프로젝트 <예술의 조건>, 사진), 전시 작품이 때로는 공연을 위한 오브제로 기능하기도 하며, 반대로 공연자들의 퍼포먼스가 전시 작품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별다른 인위적인 노력 없이 공간과 사람 그리고 예술과 일상이 뒤섞여 버렸다. &lsquo;문턱 낮은 예술 공간&rsquo;이라는 그들의 표현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과 관련하여 현실적으로 힘에 부치지는 않은지, 예술가의 불평은 없는지 궁금했다. 물론 돌아오는 답은 원론적이다. 운영자의 땀(흔히 노가다라고 부르는)이 답이다. 덧붙이자면, 전시 설치 과정 중 공간의 성격 등에 관하여 지속적으로 예술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는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반대로 정다방 프로젝트의 성격에 무언의 동조를 하는 예술가와 단체들(예컨대 좀 더 실천적인 예술 정신을 지향하거나 실험적인 장소를 찾는 예술가)이 이곳을 찾기에 가능한 면도 있다.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전시 기회를 찾기 힘든 신진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간이기에 좀 더 너그럽게 포용되고 동화되는 측면도 있어 보인다. 수익 창출에 대한 뾰족한 수가 없기에 작품제작비를 지원하는 등의 적극적인 활동은 없지만, 별다른 제한 없이 편하게 쓸 수 있는 전시 장소가 제공된다는 것만으로도 예술가들에게는 좋은 모티브가 될 것이다. 이제 막 작품 세계를 펼치는 작가들에게 첫 번째 관문을 열어주는 셈이다.

정다방 프로젝트는 올해 다른 방향의 도약을 준비하는 중이다. 일단 &lsquo;청년허브&rsquo;와 함께 프로젝트 매니저, 갤러리 코디네이터, 커뮤니티 코디네이터 총 3명의 상주 기획 인력을 채용 중이다. 지난 3년간 진행했던 전시 대관을 줄이고, 기획 인력 중심으로 시각예술 프로젝트를 전개하고자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다소 분산되어 있었던 영역을 정리하고, 실험적 예술공간으로서의 정다방 프로젝트의 성격을 강화하려는 의도다. 작가나 작품보다는 &lsquo;문래동&rsquo;이라는 장소성으로 소비되는 경향을 깨기 위해서 오직 작품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심산이다. 우선 지난해 신진 작가 교육 프로그램인 <몬스터 프로젝트>를 통해서 관계를 맺은 작가들과 함께 개인 또는 단체 전시를 계획하고 있다. 강원도 태백(철암)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미술을 통한 이웃과의 연대를 도모하는 &lsquo;할예술과기술(할아텍)&rsquo; 작가들과의 교류전도 준비 중이다. 물론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다. 공간 운영과 관련된 별다른 지원이나 후원을 받지 않고 있기에 공간의 임대료를 지급하는 것 이외의 예산 지출은 힘든 실정이다. 조명, 음향, 냉난방 시스템, 전시 장비 보수 및 구매가 필요한 시점임에도 과감하게 시설 확충을 진행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운 모양새다

다양한 작가와 작품이 배출되고 담론을 발화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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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방 프로젝트의 내부 사진

&lsquo;문래창작촌&rsquo; 혹은 &lsquo;문래예술촌&rsquo; 혹은 &lsquo;문래철공예술단지&rsquo; 등의 이름으로 언론의 마사지를 받았던 시기는 이제 지났다. 정다방 프로젝트 이외에도 사진, 영상을 중심으로 하는 미디어 아티스트들의 공간 &lsquo;대안예술공간 이포&rsquo;, 인디 뮤지션의 공연장인 &lsquo;스페이스 문&rsquo;, 회화 중심의 전시공간인 &lsquo;두들&rsquo;, &lsquo;예술공간 세이&rsquo;, 사진을 매개로 좀 더 친근한 방식으로 관람객과 교류하는 &lsquo;빛타래&rsquo;, 작품과 아트 상품을 판매하는 &lsquo;헬로우문&rsquo;, 목공, 문학 등의 강좌와 소규모 음악 공연이 펼쳐지는 &lsquo;재미공작소&rsquo; 등 다양한 공간들이 새롭게 생겼다. 어느 정도 거품이 빠진 지금이 시작의 언저리일 것이다. 박무림 공동 대표의 말처럼 &lsquo;문래창작촌&rsquo;이라는 무형의 단어로 회자되는 곳에서 벗어나, 다양한 작가와 작품이 배출되고 담론을 발화하는 역할을 해야 할 때이다. 노동과 삶 그리고 예술이 혼재되어 있는 지역의 특수성 훼손시키지 않고 다양한 구성원이 공존할 수 있는 예술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실천해야 할 때이다. &lsquo;정다방 프로젝트&rsquo;가 과연 발화점을 찾을 수 있을지 더욱 기대가 되는 이유다.

사진제공_정다방 프로젝트

필자사진_ 윤시중 필자소개
최성욱은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는 사회학을 전공했다. LG생활건강에서 3년간 영업지원 업무를 담당했으며, 이후 4년 넘게 서울문화재단 문래예술공장에서 근무하고 있다. 대중음악웹진 [웨이브(weiv)]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으며, 2013년부터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회에 합류했다. 패션지, 음악지, 독립잡지 등 다양한 매체에 음악, 드라마, 영화, 미술 등에 대한 간략한 글을 비정기적으로 쓰고 있다.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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