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필자 남인우는 지난해 서울문화재단의 ‘해외 우수 문화예술교육기관 교류사업’ 방문단의 일원으로 유럽 4개국 주요 문화예술교육 관련 기관을 탐방하였다. 서울문화재단은 해외 최신 예술교육 정보 및 생생한 현장 소식을 전하고자 유럽 4개국 교류 결과를 올 하반기 『서울예술교육총서』 제3권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Weekly@예술경영]에서는 서울문화재단의 협조로 총서 출간에 앞서 일부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필자는 지난 2013년 9월 30일부터 10월 10일까지(10박 11일)의 일정으로 예술가의 마음으로 철학하는 교육가 곽덕주 교수(서울대 교육철학과), 예술가를 꿈꾸는 행정가 임미혜 서울문화재단 팀장, 그리고 예술가들보다 더 예술에 흥분하는 예술교육행정가인 서울문화재단 두 명의 이현지(동명이인)와 함께 유럽 4개국(영국 런던, 스웨덴 스톡홀롬, 핀란드 헬싱키, 벨기에 브뤼셀)의 예술교육 현장을 탐방하게 되었다.1)

예술교육은 오랫동안 머물면서 살펴봐야 하기에 단 몇 시간씩 며칠, 몇 개의 프로그램을 경험하고 그 나라나 그 기관의 활동을 평가할 수는 없지만, 이번 유럽의 예술교육기관을 탐방하고 느낀 점을 단 몇 줄로 표현하라면 나는 서슴없이 이렇게 말하겠다. “그들을 둘러싼 공동체의 환경이 정신을 만든다. 그 정신은 그것을 발현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소프트웨어는 그것을 담아낼 수 있는 공간과 시스템 즉 하드웨어를 만들어낸다.” 첫 번째로 방문한 영국의 런던에서의 예술교육기관 탐방은 모든 종류의 것을 다 먹어본 느낌을 주었다.

민간단체에서 어린이청소년극 전문 공연장을 짓고 운영하는 유니콘씨어터(Unicorn Theatre)의 다양한 방식의 예술교육에서부터 클래식 문화를 확산시키려는 로열오페라하우스(Royal Opera House)의 예술교육 그리고 사회적기업으로 작지만 생각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자신들의 시스템을 정리해나가는 메이크빌리브아트(Make Believe Art)의 방법까지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그만큼 다양한 단체들의 성격들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로열오페라하우스 로열발레단의 활동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예술교육프로그램 예산의 80% 개인 기부금
어떻게? 로열오페라하우스니까!

카를로스 아코스타(Carlos Acosta)와 작업 중인 로열발레단 무용수들

▲카를로스 아코스타(Carlos Acosta)와
리허설 중인 로열발레단 무용수들
© ROH/Ruairi Watson, 2013
(사진출처_로열오페라하우스)

영국 런던 외곽의 낙후된 작은 마을에 로열발레단의 발레교육프로그램 중에 가장 첫 단계가 마침 진행되었다. 기쁜 마음에 전철과 버스를 몇 차례 갈아타고 한 학교 강당에 도착했다. 학생 대부분이 유색 인종이었고, 흔히 백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학생은 오백 명 남짓한 가운데 단 두세 명만 눈에 띄었다. 각 학교에 로열발레단의 최고 무용수들이 찾아가는 발레 수업을 하는 프로그램 중에 첫 시작으로 각 학교 학생들이 모두 모여서 간단하게 발레를 이루는 몇 가지 요소 음악, 춤 동작, 연출, 의상 등을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의 시연과 설명을 통해서 소개하는 날이었다.

강당에는 댄스플로어와 간단한 소품과 의상이 걸려져 있었고, 한쪽에는 백발의 피아니스트 한 분과 바이올리스트가 악기를 들고 앉아있었다. 댄스플로어 위에는 발레리나와 발레니노가 각각 몸을 풀고 있었다. 은퇴한 듯 보이는 아주 근사한 발레리노가 몇 가지 퀴즈와 함께 발레리나의 몸동작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를 시연과 퀴즈를 통해 풀어가고 있었다. 어른인 내가 보아도 참 흥미로웠다. 처음에는 웅성거리던 학생들은 모두 우아한 발레리나의 모습과 몇 백 년 되었다는 바이올린의 나이를 듣고는 모두 그 작은 소리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그들의 시연은 정말 아름다웠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어떤 예술적인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나는 곧 ‘이런 곳에 발레라니. 그렇다. 이런 곳에 발레라니···’라고 생각했다. 이런 낙후된 마을의 어린이들에게 발레가 무슨 의미일까? 왜 하필 발레일까? 나의 이런 질문에 로열발레단은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 이런 곳에 발레다!” 그들은 발레는 돈 많은 상류사회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누구에게나 발레를 접하고 세계 최고의 발레를 바로 눈앞에서 그들이 살고 있는 삶의 현장에서 경험하는 경험을 해야 하고, 더 나아가 발레를, 클래식 예술을 하고 싶은 꿈을 꿀 수 있고 그 꿈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고. 이게 그들의 정신이고 이것이 그들의 예술교육이다.

로열오페라하우스의 에술교육의 예산은 80%가 개인 기부금에 의해서 이루어지는데, 이것은 세계 어디에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상황이다. 담당자는 돈 많은 사람들이 기부하기 위해서 기다린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 묻자 서슴없이 이렇게 이야기한다. “로열오페라하우스니까요!” 아! 부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시민공동체가 그 극장의 다양한 활동을 사랑해주고 지지해주는 관계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유럽의 대부분의 극장들은 모두 연간회원이나 후원층이 두텁다. 그들이 부자여서가 아니라 그들의 극장은 관 중심의 극장이 아닌 예술단체 중심의 극장이다. 예술단체들의 공간이 극장이지 극장 안에 예술단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 단체의 정신이 살아있는 극장은 살아 숨쉬는 공간으로 다양한 활동들을 시민공동체에 기여하고 시민공동체는 그들의 활동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오직 예술만이 점수 없이 성취감을 느끼게 한다

아난딸로아트센터 /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ABC하우스 전경

▲▲ (사진출처_아난탈로아트센터)
▲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ABC하우스 전경 (사진출처_ABC하우스)

극장은 아니지만, 예술교육가들의 모임이 공간, 즉 예술교육센터를 만든 곳도 있다. 특히 디자인의 나라 핀란드 헬싱키의 아난탈로아트센터(Annantalo Arts Centre)나 벨기에 브뤼셀의 ABC하우스가 바로 그러했다. “생존하기 위해서 수영을 배운다. 생존하기 위해서 예술을 경험한다.” 이것이 바로 복지, 디자인 그리고 창의적 교육의 나라 핀란드의 정신의 예술교육의 정신이다. 우리는 핀란드 아난탈로의 창립 멤버인 마리아나 카얀티엔드(Marianna Kajantieand)와 에르자 메소(Erja Mehto)를 만났다. 아난탈로는 1987년에 설립하였는데, 그 첫 생각은 당시 헬싱키의 초등학생들은 2시간씩 5번 수영 수업을 필수적으로 하게 되어 있는데, 왜 예술은 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 질문과 실천이 지금까지도 헬싱키의 모든 초등학생들이 필수적으로 아난탈로에 와서 예술을 경험하는 2X5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졌다. 헬싱키는 교육복지가 잘 되어 있는 도시 중에 하나이다.

대전예술의전당 ‘2013 빛깔있는 여름축제’ 포스터 대전예술의전당 ‘2013 빛깔있는 여름축제’ 포스터

▲ABC하우스 예술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어린이들 (사진출처_ABC하우스)

특히 핀란드는 교사가 되기 가장 힘든 나라로 알려져 있다. 초등학교 교사에 대한 사회적 대우뿐 아니라 교육과정, 시험도 매우 어렵고 그들의 스스로의 소명의식도 대단히 높다. 벨기에의 ABC하우스의 예술감독도 핀란드의 교사에 대해 영감을 받았다고 서슴없이 이야기한다. 요즘 우리나라도 임용고시라고 말할 만큼 교사가 되기 위한 과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핀란드와 좀 다른 게 있다면 핀란드의 교사들은 스스로 창의적인 교과를 계획할 수 있는 자율성이 상당히 많이 주어지는 편이다. 교육현장은 상당히 개방적이어서 아난탈로는 학교와 네트워크를 맺는데 어려움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 협업이 아난탈로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인 2X5는 헬싱키의 초등학교 120개 학생들이 졸업하기 전에 딱 한 번은 필수적으로 센터에 와서 경험해야 하는 수업으로 만들었다.

“오직 예술만이 점수 없이 성취감을 느끼게 한다. 자기 스스로 자신에 대해서 자존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예술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만족감을 줍니다. 이것은 더 잘 살게 하기 위한 웰빙(Wellbeing)에 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아난탈로 창립자인 마리아나 카얀티엔드는 예술교육의 가치를 이렇게 설명하고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어린이들이 진짜 예술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진짜 예술을 진지하게 경험해야 한다! 이것이 본인이 아난탈로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란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이 예술교육프로그램에 함께하는 예술가 혹은 예술교육가들도 어린이들 못지않게 자신들이 성취감과 자존감이 성장하는 경험을 얻는다고 강조한다. 교육 참여자와 교육자들 모두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기본적으로 학생들을 훈육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그들을 예술의 세계로 인도하고 그 안에서 활동하는 동안에는 동등한 예술가로서 서로 영향을 주는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있었다.

예술가가 주도하는 예술교육기관을 희망한다

몇 가지 수업을 참관할 때 주로 학생들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나올 수 있도록 교사가 환경을 제공하고(거의 모든 기자재가 우리나라 대학보다 좋았다.) 교사는 그들의 기술적 자원을 지원한다. 어린이들의 날것의 창의력이 예술가와 함께 협력하면서 아트폼을 갖추는 것이다. ‘어린이들과 만나면 그들의 상상력에 항상 놀란다. 아난탈로에서의 경험은 나에게 경제적인 만족감뿐 아니라 좀 더 창의적인 영감을 준다.’고 한 예술교사가 말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부러웠다. 일단 이렇게 멋진 공간에서부터, 정부의 지원은 받지만 예술가가 주도하는 운영 시스템, 무엇보다 학교와의 네트워크, 그리고 그들의 자부심까지 부러워서 ‘당신들의 25년 전의 행운을 이제 우리가 가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하자 마리아나 카얀티엔드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25년 걸렸어요! 그런데 당신들은 좀 더 빨리 만들 수 있지 않겠어요?” 스웨덴과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던 나라 핀란드 그들이 오로지 스스로를 지켜내는 것은 오로지 문화였다는 그들의 이야기가 귀에 쟁쟁 울린다.

이제 우리에게도 예술교육센터가 있어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다. 나는 한편 반갑기도 한편 두렵기도 하다. 실제로 문예회관 건설처럼 ‘일단 짓고 보는 관 중심의 문화행정’이 되풀이 될 것 같은 불안한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필자가 가장 인상 깊었던 예술교육센터 핀란드 헬싱키의 아날딸로와 벨기에 브루셀의 ABC하우스의 공통점은 모두 활동가들에 의해서 공간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야 그 센터에 그들이 정신이 깃들고 그들의 프로그램에 맞는 공간이 고안되고 프로그램이 운영될 수 있는 것이다.

외국의 사례들을 볼 때 행정가들에게 정책가들에게 활동가들은 실제적인 활동의 예만 취하는 방법론에 매달리기보다는 그들의 환경이 어떤 정신을 그 정신이 어떤 활동과 공간을 만들어냈는지를 볼 수 있기를 살펴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각자의 특수한 환경에 따른 우리들만의 예술교육 정신이 예술교육프로그램이 예술교육센터가 만들어질 수 있게 되기를 예술가가 주도하는 예술교육기관이 만들어지기를 희망한다.

필자사진_남인우 필자소개
남인우는 한양대에서 연극을 공부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 어린이청소년극을 전공했다. <사천가>, <억척가> 등으로 한국의 음악적 미학과 연극적 형식을 어린이청소년 관객부터 성인 관객에 이르기까지 확장하면서 작업하고 있다. 지금도 연극을 만드는 일, 연극으로 함께하는 일을 고민하고 있다. 더불어 문학, 관현악, 현대무용, 시각미술 등에 간섭하면서 이것저것 섞이려고 애쓰고 있다.

  • 페이스북 바로가기
  • 트위터 바로가기
  • URL 복사하기
정보공유라이센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