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트선재센터에서 4월 1일, ‘창조자로서의 큐레이터(The Curator as Creator)’라는 제목의 옌스 호프만의 강연이 있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와티스 현대미술연구소에서 최근 3년간 진행된 전시 3부작 ‘문학의 눈을 통해 보는 미국사’인《오즈의 마법사》(2008),《모비-딕》(2009),《허클베리 핀》(2010)을 토대로 ‘창조적 큐레이팅’에 대한 생각을 전했다. 이 전시들은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미국 문학 작품을 전시기획의 출발점으로 삼아 큐레이터의 주관적 시각에서 원작을 재해석하여 예술 작품을 소개한 것이라고 한다.
3부작 전시의 모태가 되는 동명의 원작 소설들은 ‘여정과 여행’을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이는 모험과 개척, 역경의 극복이라는 서부개척 시대의 미국사와 연결되며, 오늘날 전시가 소개된 샌프란시스코라는 도시에 사는 관객들에게 다가간다. 도로시의 노란 벽돌길 여행(오즈의 마법사), 이슈마엘의 태평양 항해(모비-딕), 헉의 미시시피 강을 따라 내려가는 여정(허클베리 핀)은 노예제도와 인종차별, 자유, 해방 등 미국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다. 또한 미지의 땅에서 자아를 발견하는 이야기이다. 아티스트가 예술적 차원에서 기존에 알지 못했던 대상을 탐구하여 관객에게 소개하듯이, 전시란 미지의 영역을 통과하는 여행과 같다고 호프만은 이야기한다. |
|
창의적인 전시 기획은 예술 작품이다? |
.gif) |
강연은 《오즈의 마법사》를 중심으로 전시의 설치, 전시 디자인 및 월 텍스트와 타이포그래피 등에 관한 세세한 설명이 주가 되었다. 호프만은 큐레이터란 일종의 저자와 같은 역할로 전시를 통해 개인적 시선으로 이해한 예술 작품을 관객과 나누며, 이는 미학적이고 지성적으로 사고하는 아티스트의 작업 과정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큐레이터가 소설가 혹은 스토리텔러의 입장을 취함으로써 책의 내러티브를 전시로 치환하고 관람객을 독자로 변환시키는 과정을 통해 전통적인 미술사의 배경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전시 기획’을 수행할 수 있다고 소개한다. |
.jpg) |
“전시 자체가 예술 작품의 대상으로, 또한 예술 작품 자체로써 자리매김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예술이 행해지고 끝나는 전시란 ‘스스로의 가격을 정하는 도구’이다. 이는 이전에는 예술 작품이 미술관에 하나의 현장으로서 고마움을 표현하였어도, 이러한 감사가 현재에는 미술관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기 위한 하나의 장식적 장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장에서 작가는 바로 전시 기획자이다.” (다니엘 뷔렝, 아티스트는 어디에 있는가, 1972)
옌스 호프만은 누벨바그와 같은 작가주의 영화에서의 감독이나 에르빈 피스카토르의 정치연극에서의 연출자 역할이 전시 큐레이터의 그것과 일맥상통하다고 이야기한다. 예술가를 보살피는 사람(care-taker)이라는 전통적 의미에서의 큐레이터의 영역을 뛰어넘어, 현재 큐레이터라는 존재는 개인의 창조적 시각을 통해 예술품을 해석하고 소개함을 의미한다. 헤럴드 제만에서 후한루, 한스-울리히 오브리스트, 텔마 고든, 우타 메타 바우어 등으로 이어지는 ‘작가주의’적 큐레이팅은 예술사를 바라보는 개인적 시각, 문화사적 견해와 정치적 입장들이 드러나는 전시들을 생산한다. 옌스 호프만은 이들이 ‘창조적 큐레이터(creative curator)’라고 말한다.
큐레이터와 아티스트 간의 미묘한 위치 정립 |

≪오즈의 마법사≫ Photo Ian Reeves (Installation view The Wizard of Oz, Sep.2–Dec.13,2008) |
 |
 |
≪모비-딕≫ Photo Johnna Arnold (Installation view Moby Dick, Sep.22–Dec.12,2009) |
≪허클베리 핀≫ Photo Johnna rnold (Installation view Huckleberry Finn, Sep.28-Dec.11,2010) |
CCA Wattis Institute for Contemporary Arts | |
|
하지만 다니엘 뷔렝의 말처럼, 큐레이터가 ‘창조자’라면, 아티스트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전시가 창조자로서의 큐레이터가 생산한 예술 작품이라면, 예술가가 생산한 예술 작품은 어디에 위치하는가?
큐레이터라는 직업이 현대미술 담론의 중심에 들어온 것은 최근 20여년 사이의 일이며, 아직 역사화 이전의 단계다. 이는 분명 글로벌리즘과 도시 마케팅에서 기인된 비엔날레의 산물이다. 스스로를 지식인, 문화 매개자, 심지어 창조자로 명명하는 큐레이터는 동시대의 문화적, 정치·사회적 표현을 위한 도구로서 전시를 기획한다. 그럼으로 현장에서는 아티스트와 큐레이터 간의 미묘한 위치 정립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현대미술 분야의 아티스트는 프랑소와 트뤼포의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나 정치연극의 무대 장치가 아니다. 더욱이 아티스트는 큐레이터의 조정에 따라 ‘연기’하는 존재는 더더욱 아니다. 따라서 큐레이터는 자신의 전시라는 예술 작품을 위해, 타인의 예술작품을 도구화하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화이트 큐브에서의 연출자 |
.gif)
와티스 현대미술연구소 ⓒCCA Wattis Institute for Contemporary Arts |
강연 후 이어진 질문 중에 하나는 거장들의 소설을 현대 예술 전시로 변형하는 행위가 얼마나 창의적일 수 있냐 라는 것이다. 호프만의 전시에서 중요한 점은, 극장이라는 블랙박스에서의 연출자의 역할이 갤러리라는 화이트 큐브에서의 큐레이터의 역할로 어떻게 전이 되는가이다. 그는 정형화된 현대 예술 전시의 형식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만, 동시에 화이트 큐브에서 원본의 책과 유물들, 소설에 영감을 받은 현대 예술 작품들을 소개하는 전통적인(혹은 모더니즘적인) 방식을 고수한다.
예술이 삶을 보는 정형화된 방식들로부터 벗어나 새로움을 찾는 것이라면, 예술 전시는 이를 소개하는 틀이다. 큐레이터는 매체, 지역, 시기 등으로 카테고리화 되는 정형화된 전시 방식에서 벗어나, 전시의 역사를 개인화하며 자신만의 시각을 예술작품을 통해 관객과 나누고자 한다. 따라서 철학자, 영화감독, 음악가 등 과거 미술관으로 초대받지 못했던 이들을 미술 행사에 등장시키거나 현대 사회에 관한 정치적 문제들에 대해 질문을 하고 때론 길거리로 나가 관객을 대면하는 예술 행사를 벌인다. 앞서 말했듯 큐레이터는 역사화 이전의 단계에서 다양한 시행착오와 성공의 순간들은 경험하고 있다.
|
 |
필자소개 양지윤은 현재 독립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대안공간 루프에서 큐레이터로 근무하였고, 2008/2009 데아펠아트센터의 큐레이터 과정에 참여하였다. 바루흐 고틀립과 ‘서울국제사운드아트페스티벌’을 2007년부터 기획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사운드+아트』를 공동 출판하였다. 기획한 전시로는 《제2의 질서》(공간 해밀톤, 2010) 등이 있다. www.jiyoonyang.net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