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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키친(Social Kitchen)은 교토의 중심부에 자리한 유명한 절인 쇼코쿠지 뒤쪽의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밤이 되면 이곳에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들어 열띤 토론을 펼치며 활기를 띈다.
소셜키친은 웹사이트를 통해 다음과 같이 공간의 컨셉을 표방하고 있다. “소셜키친은 21세기형 주민센터로서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토론하고, 배우고, 실천하는 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소셜키친의 1층은 카페 겸 서점, 2층은 강의, 토론회, 스터디모임, 워크숍, 바자회, 회의, 전시회, 공연, 파티 등으로 사용 가능한 다목적 공간, 3층은 쉐어오피스(share office)로 사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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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체험으로 예술과 사회를 함께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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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키친의 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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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키친은 어떻게 시작되었고 운영되고 있는지, 운영멤버 중 한사람으로 대표 역할을 하고 있는 스가와 사키코를 만났다. 이야기는 그녀의 대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1978년에 교토에서 태어난 스가와는 1999년부터 2004년까지 뉴욕시립대에서 공부를 했고, 그 기간 중 ‘9.11’을 직접 체험했다. 9.11 이후 대학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예술가나 연구자들이 그녀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 그(녀)들의 사회에 대한 접근방법이 지극히 ‘연극적’이었던 것이다. 단순히 큰 소리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위트 넘치는 방법으로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였고, 가령 문화인류학과 패션, 같은 식으로 분야를 횡단하며 활동하는 액티비스트들의 모습에도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사람과 환경의 영향을 받아 스가와 역시 대학 재학 시절부터 브룩클린에서 사진전시나 ‘오픈 대학’ 형식의 렉처 워크숍, 정치선전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귀국 후에도 교토의 세이카대학에서 ‘가든’(Garden)이나 ‘어젬블리 아워 강연회’라는 외부인 대상의 문화교육프로그램을 디렉팅했다.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는’ 뉴욕에서 배운 교훈을 살려 실험적인 워크숍과 강의 외에도 살아가는 것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그녀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자신들이 얼마나 스스로를 ‘규제’ 하고 있는지, 그래서 얼마나 부자유한지를 깨닫게 하고, 스스로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모색하게 하는 것이었다고.
삶에 관한 모든 것을 실험하는 지역 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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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키친에서의 워크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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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활동에 이어 2006년에는 본인이 살던 집인 ‘하나레’(Hanare, 별채라는 의미)에서 매주 월요일에만 영업을 하는 커뮤니티 카페 ‘다방 하나레’를 운영하기 시작한다. 위클리 카페, 워크숍, 강연, 미술 관련 프로젝트 등을 기획·운영하면서 생활에 관련된 모든 것-먹거리, 예술, 현대사상, 신체, 정치/경제, 건축 등-에 대해 실험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협력하며 새로운 사고방식, 표현법을 모색하고 실천해왔다. 시작 당시 운영멤버는 스가와를 비롯해 음식 관련 프로젝트를 펼치는 이시다, 고교시절부터 친구였던 그래픽디자이너 다카하시 등 세 명이었다. 세 명이 함께 하면서 스가와가 혼자 벌여왔던 활동과는 프로그램도 차별화 되었고, 규모는 작아도 발 빠른 기획을 펼치기 시작했다.
월요일에만 영업을 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일상의 사이클을 다시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창의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하고 싶었다. 주말에 쉬기 위해 월요일부터 금요일을 견디며 사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에 의미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다방 하나레’에는 서서히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 안에서 함께 이야기하고 고민해야 할 주제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2~3년이 지나면서부터는 강연이나 워크숍 기획이 정착되어갔다.
다방에서 민간 커뮤니티센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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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키친에서 열린 컨택트 곤조의 공연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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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에 스가와는 2008년에 이탈리아의 미술작가인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가 주최한 레지던시인 ‘아이디어대학’(University of Ideas)에 참가했다. 전 세계에서 모인 15명 내외의 예술가, 큐레이터, 연구자 등이 반 년간 함께 체류하며 ‘사회적 책임과 변화를 위한 예술’(Art for Socially Responsible Transfer)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예술활동의 아이디어를 내는 프로그램이었다. 레지던시 참여기간 중에 시작하여 팔레스타인 문제를 40년간 지속적으로 다루는 전시 프로젝트의 첫 전시인《40년》(In 40 years)을 이스라엘 이스라엘의 야파에서 선보였고(2009) 《경계 너머의 장소》(Place beyond borders)(피스톨레토 재단 주최, 2009)에도 참가했다.
2009년에 ‘다방 하나레’에서 진행된 그래피티 리서치 랩(Graffiti Research Lab뉴욕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그래피티, 미디어퍼포먼스 그룹, 이하 GRL)의 행사 역시 활동의 가능성을 넓혀주는 계기가 되었다. 2009년 11월, GRL 교토 결성을 기념해 GRL을 이끄는 에반 로스(Evan Roth)와 제임스 파우더리(James Powderly)가 교토를 방문했다. 그래피티 문화, 힙합, 테크놀로지를 경쾌하게 횡단하는 GRL은 전 세계를 무대로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즐길 수 있도록, 누구든 사용가능한 흥미로운 툴을 개발하고 있다. 이들이 교토에 체류하면서 본인들이 개발한 레이저 태그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GRL 교토가 만든 도구를 동원해 공공공간에 일시적으로 낙서를 남기는 퍼포먼스인 <교토 프로토콜 해킹>(Kyoto Protocol Hacking)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형식의 워크숍, 표현과 공공 공간, 운동과 예술의 관계성을 생각하는 강연을 진행하며 지역의 도서관, 야채가게를 비롯해 다방 하나레를 기지(base)로 활용했던 것이다.
예술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개인적인, 혹은 공간 자체의 경험은 다방 하나레의 활동에도 영향을 미쳤고, 이들은 보다 큰 장소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새로운 공간을 찾기 시작해, 원래 허리띠 공장으로 쓰였던, 흰개미가 갉아먹은 10년된 3층짜리 건물을 운영진이 직접 리노베이션 하여 2010년 8월, 현재의 소셜키친과 같은 형태로 오픈했다.
독립과 저항과 대안의 힘을 기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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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모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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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키친은 교토에 사는 그(녀)들의 생활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면서도 세계의 지역도시들과 직접 연결고리를 찾으며 독립적인(independent) 장소, 저항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장소 만들기를 지속해 나가고자 한다. 대안적인 경향의 전시, 공연 같은 행사는 물론, 그러한 활동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사람들 간의 연결고리나 힘을 기르기 위한 프로젝트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예술과 사회운동의 공공성’이라는 스터디모임이다. 주로 관계적 예술(relational art), 프로젝트형 예술, 예술행동주의(Art-Activism)에 대한 텍스트를 읽고, 의견을 나누는 형태로 진행되는데, 이미 서구에서는 논의가 심화되고 정리된 이러한 주제들에 대해, 일본의 현실을 비추어보며 고민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재는 그랜트 케스터(Grant H. Kester)의 『대화 : 모던 아트에서의 커뮤니티와 커뮤니케이션』 (Conversation Pieces: Community and Communication in Modern Art)을 텍스트로 진행중이다.
또 한 가지는 농업에 관한 프로젝트이다. ‘밭을 알고, 밭을 만들고, 밭에서 산다’는 주제로 강연과 워크숍, 밭농사를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진행하고, 그 밭에서 생산된 야채를 제대로 맛보며 잃어버리고 있던 생활의 힘을 높인다. 생활의 힘이란 스스로 먹을 것을 조달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대부분의 사람이 ‘사는’ 행위를 통해 먹거리를 조달하지만, 판매자나 생산자를 스스로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고자 한다.‘소비자와 생산자’라는 관계성을 넘어 새로운 자급의 형태를 모색하며, 이러한 생각은 소셜키친이 운영하는 1층 카페에서 제공되는 다양하고 새로운 요리로도 연결된다.
공간과 노동과 아이디어를 나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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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키친의 카페주방과 대표 스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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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키친은 (쉐어오피스의)월세 수입과 행사 수입, 그리고 카페의 수입과 개인프로젝트 수입으로 운영된다. 보드멤버는 열네 명이지만, 스가와를 비롯 세 명의 유급 스태프가 실제 운영을 담당한다. 세 스태프 역시 카페운영, 디자인, 번역 등 각기 특기 분야가 있어 개인의 활동을 하기도 하는데, 개인의 모든 수입 역시 소셜키친을 통해 균등하게 배분된다고. 또한, 개인프로젝트로 바쁠 때는 서로 일을 돕는 ‘노동 쉐어’도 실천하고 있다. 이렇게 한 분야의 프로페셔널이 되기보다는, 일부러 분야를 설정하지 않는 태도로 다양한 가치관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쉐어오피스에는 두 명의 프로그래머, 디자이너 한 명, 예술행사 제작그룹 한 팀이 작업공간을 공유하고 있다.
이렇게 소셜키친은 다양한 사람들의 삶과 작업, 논의의 거점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정기, 비정기로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활동이든 공통적인 점은 ‘교토’라는 땅위에 뿌리를 내리고, 교토의 예술활동이나 연구활동을 발굴하고 새롭게 조명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상이한 장르의 사람들이 횡단하며 교류하고, 새로운 논의가 생겨나고 있다. 일본에서는 ‘논의’를 ‘충돌’의 이미지로 받아들여 별로 선호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소셜키친은 주눅들지 않고, 지속적인 논의의 장을 만들며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다. 그들의 매니페스토인 ‘21세기형 주민센터’의 실현을 기대한다.
번역 _ 고주영(예술경영지원센터 국제사업부 지식ㆍ정보 파트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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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하시모토 유스케는 공연프로듀서로 하시모토제작사무소 대표이기도 하다. 교토대학 재학 중이던 1997년부터 연극활동을 시작, 2003년 하시모토제작사무소를 설립해 현대연극, 현대무용단체의 매니지먼트나 교토아트센터의‘연극계획’프로젝트 등을 기획·제작했다. 2010년부터 교토실험예술제(Kyoto Experiment)를 창설, 프로그램 디렉터를 맡고 있다. hashimoto@kyoto-ex.j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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