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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의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가한 로리 앤더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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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미국의 외계문명탐사연구소(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SETI, 이하 세티)는 과학과 예술의 영역을 탐구하는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 운영 계획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세티는 외계에 지적생명체가 있다는 가정 아래 민간용 전파망원경에 스펙트럼 분석기를 장착해 외계에서 보내는 전파주파수를 찾는 캠페인을 전 세계에 보급시킨 미국의 민간과학연구소이다.
세티의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미국 문화예술계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게 된 배경에는 과거 미국항공우주연구소인 나사가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운영하다 실패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티가 이를 어떻게 운영할지 일반의 호기심이 컸다. 나사는 2003년에 퍼포먼스 아티스트 로리 앤더슨(Laurie Anderson)와 2년간 계약을 맺고,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운영한 적이 있다.
당시 나사의 개인예술 창작지원을 두고 세금으로 운용하는 미국정부의 과학연구기금의 운용취지와는 맞지 않는다며 반대 여론이 많았다. 그러나 프로그램 큐레이터인 버트램(Bertram Ulrich)이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예술은 역사가 남길 수 있는 유산이며, 미래의 인류가 발견하게 될 기록의 한 방편”이라며 나사의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취지를 해명하면서 논란은 일단락이 되는 듯 했다.
한편 로리 앤더슨은 나사에서 <달의 끝>(The End of the Moon)이라는 퍼포먼스를 발표했지만, 미학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큰 성과를 받지 못했다. 무엇보다 로리가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적응하지 못하고 나사와의 2년간의 계약 기간 동안 외부 프로젝트에 더 많이 참여한 것이 알려지게 되면서 기대를 모았던 나사의 ‘과학+예술 프로젝트’는 로리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운영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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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NASA)의 실패, 세티(SETI)의 도전
여러 면에서, 나사의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과 비교를 받고 있는 세티는 첫 번째 수혜자로 멀티미디어 설치미술가 찰스 린지(Charles Lindsay)를 선정했다. 앞으로 2년간 찰스는 세티에서 나사의 과학자, 촬영 및 사운드 효과 전문가들과 함께 지구와 우주 기원에 대한 연구를 예술적 작업으로 구현하는 일을 맡게 된다. 찰스는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원시시대에서 우주시대로 진화하는 몇 세기 동안 인간의 ‘기억’(memory)을 담아낸 도구들을 창의적으로 해석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과거의 실패 사례를 인식한 탓인지 세티의 연구소장인 질 타터(Dr. Jill Tarter)는 기자간담회에서 세티의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과학과 예술의 만남이라는 컨셉은 명확하지만, 프로그램 운영방법은 앞으로 2년 동안 찰스와의 협력을 통해 찾아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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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티의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
첫 번째 참가자인 찰스 린지 |
찰스 린지의 <탄소 Carbon> 시리즈 |
국제 아티스트 레지던시의 성패를 결정짓는 요인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나사와 세티의 사례처럼 다른 분야와의 만남, 또는 다른 문화와의 만남을 자연스럽게 시도할 수 있다는 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명분과 역사에 비해 무엇을 성과로 볼 것인지, 어떻게 성공적으로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해결과제로 남아있다. 최근, 영국의 문화예술비평가인 켈리 카마이클(Kelly Carmichael)이 [비지팅 아츠](Visiting Arts)에 기고한 글인 ‘잃어버린 언어와 다른 이야기들’(Lost Language and the Other Voices)은 우리가 어떻게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할 지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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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그레고리
《잃어버린 언어와 다른 이야기들》 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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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리 카마이클은 아프리카계 영국 사진작가인 조이 그레고리(Joy Gregory)의 사진전에 다녀와 최근에 급증하고 있는 국제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대한 개인 의견을 덧붙여 전시 리뷰를 썼다. 《잃어버린 언어와 다른 이야기들》은 지난 25년 간 남아프리카 공화국, 스리랑카, 케냐, 카리브 연안의 국가 등 세계 여러 나라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조이 그레고리의 경험과 기록에 관한 사진전이다. 조이 그레고리는 켈리 카마이클과의 인터뷰에서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새로운 창작 동기와 의욕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새로운 문화와 공간에 홀로 떨어져서 작업해야 한다는 상반된 경험을 주었다고 고백했다. 켈리는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아무 관계없던 빈 공간(space)이 예술가의 상황적 맥락과 새로운 해석을 더해 의미 있는 장소(place)로 전환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국제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성패가 예술가의 ‘새로운 맥락에 대한 해석’(translating alien context)을 도울 수 있는 큐레이터 또는 기관의 세심한 배려와 구체적인 지원이 요구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나사, 세티와 같은 과학-예술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시각예술에서 시작한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장르를 넘어서 다른 분야로 진화, 발전하고 있다는 고무적인 사례로 비춰진다. 동시에 실험과 증명으로 발전하는 과학과 수량적 가치 환산이 불가능한 예술이라는 성격이 다른 두 장르의 만남이기 때문에 운영 프로그램 또한 전혀 새롭게 접근해야하는 어려움도 예상된다. 하지만 켈리의 주장처럼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어떤 형태로 진화하든, 프로그램의 성패는 예술가의 새로운 공간, 시간, 맥락에 대한 해석을 돕는 환경을 만드는 노력에서부터 시작하는 데 있다.
참고 사이트
외계문명탐사연구소
나사 아티스트 레지던시 큐레이터 인터뷰(워싱턴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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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신민경은 현재 공연예술 기반의 독립기획자로 활동 중이며, 이주 예술가들과 함께 동시대의 ‘도시’와 ‘인간’의 관계를 탐색하는 아시아공동창작 작업, (가제)을 서울, 홍콩, 마카오, 타이베이에서 진행하고 있다. 영국 워릭대학교와 암스테르담대학교에서 에라스무스 문더스 공연예술국제교류 석사과정을 마쳤으며, 이전에는 서울프린지네트워크, 예술경영지원센터, 의정부음악극축제에서 일했다. weeminmin@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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