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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현대공연예술네트워크(International Network for Contemporary Performing Arts, IETM) 봄 정기총회는 ‘누구의 이야기인가’라는 테마로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개최되었다본지 125호 리뷰 참조.이 광범위한 화두에서 파생된 주제어 중의 하나가 ‘디아스포라’(diaspora, 고향을 잃은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출생지를 떠나 타국에 정착한 이민자를 의미. 이 글에서는 새로운 문화 사이에서 혼합된 문화 정체성을 가진 이민자를 뜻함), 유럽사회에 급증하고 있는 이민자에 관한 것이었다.
스웨덴 현대연극의 종다양성 - 디아스포라 상주 극작가·연출가 프로그램 |

스웨덴 국립극단 아랍연극 개발 프로그램 |
디아스포라와 관련한 세미나는 회의 개최지인 스웨덴의 사례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스웨덴 국립극단(Riksteatern)의 프로듀서, 안나 리옹비스트(Anna Ljungqvist)가 스웨덴 국민의 1/4이 이민자라는 최근 정부 통계를 얘기하자, 참석자 모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민을 통해 스웨덴 시민권을 취득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국경을 접한 핀란드를 제외하면 유고슬라비아, 이란 등 중동 지역에서 왔기 때문에 스웨덴에는 아랍 문화가 빠르게 이식되는 중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아랍 문화권에서 온 이민자들은 스웨덴의 ‘새로운’ 문화예술 창작자이자, 소비자로 급부상했고,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랍권의 ‘언어’와 ‘이야기’를 담은 예술에 대한 이들의 열망이 스웨덴 국립극단의 디아스포라 상주 극작가·연출가 프로그램의 탄생 배경이 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아랍 등 다른 문화권에서 스웨덴으로 이주한 예술가들이 안정된 지원제도 안에서 다양한 영감과 새로운 미학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 결과, 국립극단은 아랍계 스웨덴 국민을 위한 현대연극 레퍼토리를 개발할 수 있는 창작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다. 이란계 스웨덴 극작가, 나심 아그힐리(Nasim Aghili)의 지적처럼 언어의 충돌 등 스웨덴과 아랍문화 차이에서 오는 내부의 어려움들도 예상되지만, 스웨덴 국립극단이 운영하는 디아스포라 상주 극작가·연출가 제도는 스웨덴 현대연극의 종다양성을 확장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영국의 다양한 문화 전시장 - 디아스포라 아트마켓, 데시벨(deciB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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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펠라> |
유럽 전체의 다문화사회로의 이행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국가는 영국일 것이다. 2011년 4월 21일, 영국예술위원회(Arts Council England)는 2011 데시벨(deciBel Performing Arts Showcase 사이트 가기)에 선정된 50명의 예술인 및 단체를 발표했다. 데시벨은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영국 예술가들을 세계 예술 시장에 소개하기 위한 목적으로, 2003년에 창설되어 격년으로 개최되고 있으며 올해는 9월 12일부터 16일까지 맨체스터에서 열릴 예정이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는 누구나 데시벨 쇼케이스에 지원할 수 있으나, 백인일 경우, 참여를 제한한다. 역차별이라는 논란도 있지만, 백인 중심의 영국 문화적 전통에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예술인들이 성장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이 데시벨의 창설 목적이기 때문에 이 원칙은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다.
영국은 20세기 후반, 이민자가 급증하면서 일찍이 다문화사회로 진입했다. 2001년, 영국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체 영국 국민의 8%는 유색인종이었으며, 런던 시민 중, 백인은 40%에 불과했다. 런던 시민의 절반 이상이 다른 문화권에서 이민을 왔거나, 부모가 본래 영국인이 아닌 것이다.
영국 사회구성원의 변화는 셰익스피어로 대표되는 앵글로색슨 중심의 영국 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예술가들이 런던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영국 현대무용계의 스타, 아크람 칸 컴퍼니는 안무가와 프로듀서가 모두 인도에서 온 이민 2세이며, 그들의 현대무용은 인도전통무용인 카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런던 극장의 관객도 변하고 있다. [가디언]지에 따르면, 영국 국립극장(NT)의 히트 뮤지컬, <펠라>(Fela!)는 백인을 제외한 유색인종의 관람 비율이 40%에 달했다. 평소에 백인 관객의 충성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영국 국립극장의 위상을 감안할 때, 다변화된 영국 공연 예술 현장을 반영하는 상징적인 지표였다.
데시벨은 지난 10년 간, 영국 현대예술의 문화다양성을 한 자리에서 확인하고, 영국에서 활동하는 디아스포라 예술가들이 성장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가디언]지의 공연전문기자 존 프래티(Jon Pratty)는 프린지 공연들이 동시대성과 참신성으로 주류 예술계에 영향을 미치거나, 그 자리를 대체해 온 것처럼, 데시벨의 다양한 작품들이 영국현대예술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문화다양성’(cultural diversity)의 외연적 의미를 확장해 인종, 민족적 배경 외에 신체장애를 가진 예술가도 쇼케이스 대상자로 포함시킨 것을 2009년 데시벨의 가장 큰 성과로 보았다. 존은 주류 공연예술계의 경향이나, 전통적인 문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외면 받았던 디아스포라 예술가와 장애인 예술가도 사회적인 관심과 지원 여하에 따라,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데시벨이 입증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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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ge28 Theatre photo by Monita Kita |
Eggs Collective photo by Roshana Rubin-Mayhew |
2011 데시벨 아티스트 |
미국 링컨센터의 프로그래머, 빌 브래건(Bill Bragin, 본지 99호 현장+인 인터뷰 참조)은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다른 아트마켓이나, 쇼케이스에서 만나기 힘든, 독특한 작품을 볼 수 있는 것을 데시벨의 강점으로 꼽았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낮은 인지도와 관객들이 이민자에 대해 갖고 있는 선입견 때문에 겪는 마케팅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축제나 극장에서 꾸준히 작품을 초청하기 위해서 쇼케이스 외에도 디아스포라 예술가를 지원할 방법들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예술이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라면, 국가 간 이동과 이민이 급증하는 현대사회에서 새로운 사회 구성원의 문화정체성을 반영한 현대예술이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에는 118만 명의 외국인들이 체류하고 있다. 전체 국민의 2%에 해당하는 수치로, 앞으로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스웨덴과 영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다문화사회로 이행 중인 한국 문화예술계도 이들이 가진 새로운 이야기를 담아낼 그릇을 고민할 시점이다.
참고 기사 ‘The Arts Council offers a much-needed boost to diversity on stage’ Jon Pratty. The Guardian. 2009. 9. 25. ‘Black and minority ethnic arts: the unfairest funding cuts of all?’ Nosheen Iqbal. The Guardian. 2011.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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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신민경은 현재 공연예술 기반의 독립기획자로 활동 중이며, 이주 예술가들과 함께 동시대의 ‘도시’와 ‘인간’의 관계를 탐색하는 아시아공동창작 작업, (가제)을 서울, 홍콩, 마카오, 타이베이에서 진행하고 있다. 영국 워릭대학교와 암스테르담대학교에서 에라스무스 문더스 공연예술국제교류 석사과정을 마쳤으며, 이전에는 서울프린지네트워크, 예술경영지원센터, 의정부음악극축제에서 일했다. weeminmin@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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