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박물관협회(American Association of Museums)의 박물관 인증프로그램에 머지않아 지속가능성이 평가 기준으로 포함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옹고 있는 만큼, 그린뮤지엄 개념은 앞으로 이상이 아닌 뮤지엄의 생존방식으로 자리잡게 될 것으로 보인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사회 전반이 그러하듯이 뮤지엄 역시 패러다임 변화의 중심에 놓여있다. 웹2.0 디지털 환경에 따른 뮤지엄의 패러다임 변화가 이미 현존하는 것이라면, 기후변화에 대응한 지속가능성에 대한 인식은 앞으로 뮤지엄 패러다임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중요 요소라는 것이 서구사회 뮤지엄 학계와 현장의 전망이다.

“인류와 그 환경의 물질적, 비물질적 증거물을 연구, 교육, 향유하기 위해 수집, 보존, 연구, 소통, 전시하며, 사회에 봉사하고 그 발전에 기여하는, 대중에 개방된 항구적 비영리 기관” 이라는 국제박물관협의회(ICOM)의 뮤지엄에 대한 정의를 상기할 때, 지속가능성은 하나의 경향이라기보다는 뮤지엄의 존재 이유이자 기반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항구적으로 존속하면서 인류와 자연환경의 유산을 보존한다는 뮤지엄의 정의 자체가 뮤지엄과 그 환경의 지속가능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속가능성 개념이 뮤지엄 건축과 운영에서 구체적인 문제로 인식된 것은, 미국의 경우를 볼 때 6∼7년 전부터이다.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와 환경문제 해결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몇몇 선구적인 뮤지엄이 초석을 놓았으나 ‘그린 뮤지엄’(Green Museum)을 실천하는 기준과 동인이 된 것은 ‘LEED’(Leadership in Energy and Environmental Development) 인증프로그램이었다.

LEED는 미국 친환경건물위원회(U.S. Green Building Council)가 친환경 건물을 인증하기 위해 1998년에 재정한 프로그램이다. 최근 대만 101빌딩과 국내 한 기업의 신축건물이 LEED 최고 등급인 플래티넘 인증을 받은 것이 화제가 된 것처럼, 미국 국내를 넘어 친환경 건축에 대한 국제적인 기준으로 인정받고 있다. LEED는 지속가능한 부지 개발, 효율적인 물 이용, 건축자재 선택, 실내환경의 질, 교육과 인식, 혁신적 디자인, 지역성 우선 등 아홉 가지 항목을 심사하여 등급을 부여한다.

일석삼조의 효과, 친환경 뮤지엄

미국 국립어린이박물관

미국 국립어린이박물관

미국의 그린 뮤지엄을 선도해 온 것은 단연 어린이박물관들이다. 미래 세대인 어린이 고객에게 친환경적인 공간을 제공하고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을 교육하는 미션과 부합한다는 점에서 어린이박물관들은 가장 적극적으로 그린 뮤지엄 건축에 참여하고 있다. 2009년 기준으로 전체 어린이박물관의 10%에 달하는 30여 개 박물관이 LEED 인증을 받았거나 인증을 목표로 신축되고 있었다. 이것이 불과 5년 만에 이루어진 성과라는 점에서, 앞으로 친환경 건축은 어린이박물관 건축의 대세임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스톤어린이박물관(Boston Children';s Museum)은 리노베이션 및 확장 공사를 마치면서 2008년 LEED 골드 인증을 받았다. 또한 2013년 워싱턴 DC 인근에 건립될 국립어린이박물관(National Children';s Museum)은 철근과 벽돌을 재활용하고 실내 온도를 낮추는 녹색지붕과 인공조명을 최소화하는 태양열 패널, 리빙 월(living wall부분, 혹은 전체를 초목 울타리로 만든 벽 ) 등 친환경 공법으로 설계하여 LEED 인증을 받는 것을 목표로 신축되고 있다.

자연사박물관(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과학관 등도 지구온난화와 종다양성 보존이라는 과학계의 핵심 이슈와 연계하여 그린 뮤지엄에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에 비하면 미술관은 전반적으로 이 문제에 두드러진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는데, 이러한 상황도 차츰 변하고 있다. 비용절감이라는 경제적 도전과 지구환경 보호라는 공동의 과제 앞에서 모든 유형과 규모의 뮤지엄이 지속가능한 운영을 고려하게 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J. 폴 게티 미술관과 보존연구소 등으로 구성된 대규모 단지인 게티센터(Getty Center)의 경우, 2000년대 초반 경제사정 악화로 비용절감 방안을 찾게 된 것이 LEED 인증을 준비하게 된 배경이다. 2005년 기존 건물로서는 미국 최초로 LEED 인증을 받은 뒤, 다시 2008년 실버 인증을 획득하였다. 배수시스템과 조명시스템 교체, 녹색지붕 설치, 사무용품과 폐기물 리사이클 등 인증 획득을 위해 다각도로 이루어진 노력의 결과 게티센터는 연간 50만 불의 비용을 절약하고 있다.

그러나 비용절감만이 게티센터가 얻은 혜택은 아니었다. 게티센터는 지구의 날을 기해 LEED 실버 인증 획득 소식을 언론에 발표하고 구내식당에서는 직원과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저탄소 식단을 선보였다. 더불어 올바른 섭생을 통해 지구 온도를 낮추는 방법에 대한 교육을 제공하였다. 이를 통해 게티센터가 사회 문제에 동참하는 좋은 기관이라는 이미지를 극대화하였음은 물론, 직원들이 ‘그린 게티’라는 모임을 조직하여 환경문제에 대해 학습하고 북클럽을 운영하는 등, ‘지속가능성’이 그야말로 지속가능한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선택이 아닌 의무로

그랜드 래피즈 미술관의 LEED 인증 신축 건물

그랜드 래피즈 미술관의 LEED 인증 신축 건물

세계 최초로 전면 신축된 그린 미술관으로 일컬어지는 그랜드 래피즈 미술관(Grand Rapids Art Museum) 역시 그린 뮤지엄의 정신을 대중과의 소통 창구로 삼은 예이다. 2007년 완공과 함께 LEED 골드 인증을 받은 이 미술관은 개관 기념으로 혁신적 디자인을 통한 환경 개선의 중요성과 인증 과정을 알리는 전시를 기획하여 이를 적극적으로 알렸다.

이렇듯 친환경 건축과 생활양식을 적극적인 교육의 요소로 삼아 대중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것은 그린 뮤지엄의 정신과 실천을 완성하는 지점이다. 미국박물관협회(American Association of Museums)의 박물관 인증프로그램에 머지않아 지속가능성이 평가 기준으로 포함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만큼, 그린 뮤지엄 개념은 앞으로 이상이 아닌 뮤지엄의 생존방식으로 자리 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 친환경 건축이 보편화되지 않은 시점에서 우리나라 뮤지엄들이 그린 뮤지엄 개념을 실천하기까지는 인식적 갭이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그린 뮤지엄이 친환경 건물을 짓거나 환경운동가만이 실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인식이 먼저 공유되어야 할 것 같다. 뮤지엄 전시장에서 눈이 따갑거나 공기가 답답해 힘들었던 경험은 없는가? 운영 경비를 줄여 장기적인 재정건전성을 높이고 싶은가? 인류 유산의 수호자이자 매개자로서 뮤지엄이 지닌 미션이 지속가능성 개념과 관련된다고 생각하는가? 이 모든 질문에 다소라도 긍정할 수 있다면 그린 뮤지엄을 지향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술사를 전공한 큐레이터 출신으로 『그린 뮤지엄』을 저술한 사라 브로피(S. Brophy)가 제안한 재치 있는 팁을 소개한다.


누구도 한 번에 녹색으로 가지는 않는다. 녹색으로 가는 유일한 '옳은'방법은 없다. 일단 시작하면, 점점 더 쉬워진다.


참고문헌
Baker, B.(2009). Green exhibitions in children';s museum: setting the bar higher, Exhibitionist, PP.58-64.
Brophy, S. and Wylie, E.(2008). The green museum: A primer on environmental practice. NY: Altamira Press.



양지연 필자소개
양지연은 서울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예술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삼성미술관 연구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소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현재 동덕여대 큐레이터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jyy3863@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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