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근대문화와 역사는 발전/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사라지고 새로운 건물들이 도시 곳곳에 솟아오르는 전형적인 개발국가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옥스웨어하우스는 사라져가는  마카오의 역사를 기록하고 그 기록을 기반으로 마카오의 정체성에 질문을 던지는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해 왔다.

마카오하면 아주 작은 나라, 카지노, 건축, 에그 타르트, 아시아의 유럽 등 수많은 수식어가 연상이 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는 어떤 느낌을 받을까? 마카오는 인구가 고작 55만 명 정도이지만 연간 3천만 명이라는 관광객이 방문할 만큼 관광산업으로 영위되는 나라이다. 성바울 성당, 성도미니크 성당, 세나도 광장 등 세계문화유산이 30여 곳이나 되니 나라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인 셈이다. 하지만 필자에게 특별히 구미가 당겼던 점은 국·공립미술관이나 상업갤러리도 쉽게 만날 수 있는 나라이긴 하나, 이 작은 나라에 비영리전시공간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소위 ‘대안공간’의 활동과 내용은 그 도시의 문화제도와 정책, 그리고 현장과의 간극에서 어떤 식으로 대응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에 마카오라는 복합적 도시공간의 문화 속살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 세대를 위한 다양한 예술교육프로그램

마카오 본령에 위치하고 있는 ‘옥스웨어하우스’(OX Warehouse)는 시내 중심가에서 걸어 서남쪽으로 20여 분 거리에 있는 노란색의 오래된 건물에 위치하고 있다. 2002년 3월 비영리운영단체로 시작한 옥스웨어하우스는 마카오 현대미술의 열악함을 극복하기 위한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세월이 묻어 나오는 포르투갈식 건물의 한쪽은 옥스웨어하우스가 사용하고 있지만 나머지 한쪽은 현재 국영전화공사 창고로 사용되고 있다. 단체에서는 공간 전체를 사용할 수 있게끔 국가기관에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은 마카오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공연예술, 설치미술, 현대음악 및 교육프로그램 등 여러 가지 새로운 유형의 플랫폼을 수용하고 제공하고 있다. 또한 지역작가들을 소개하는 것은 물론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뿐 아니라 다른 국가와의 교류를 통해 본토문화와 타 지역문화를 적극 수용하고 융합하는 국제레지던스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50여 평 정도인 메인 전시장과 20평 남짓의 도자교육실, 작은 사무실 그리고 2층 구조의 레지던시 스튜디오와 전시공간이 갖춰져 있다. 야외공간도 충분히 넓은데 필자는 이 텃밭을 생태공간으로서 활용 가능한 방안을 제안해 보기도 했었다(마카오는 대부분의 식자재를 중국에서 수입한다).

옥스웨어하우스는 매년 8월에서 10월까지 약 두 달간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획일화된 교육 때문에 줄어드는 어린이의 상상력과 사고의 다양성을 보완하기 위한 대안적인 방안들을 모색하려는 것이다. 80여 개의 각기 다른 학교에서 모인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미술, 음악, 연극 등 다양한 매체를 접촉시켜 자발적인 흥미를 불러일으키게 한 후 그 결과들을 전시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지역 어린이들의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또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교육프로그램도 운영하는데, 학생들과 유명 작가의 결합/협업을 통해 공동작품을 제작함으로써 사고 체계의 변화를 유도하고, 문화소비자로서 청소년들의 사고확장을 꾀한다. 유명작가와의 협업은 이들에게 미술에 대한 거리감을 줄어들게 하는 동시에 유명인과 같이 작업을 했다는 자부심을 통해 적극적인 활동을 고취시킬 수 있게끔 한다. 미술활동을 통해 청소년들의 상상력을 키우도록 하는 것이다.

도시개발로 사라지는 근대문화 지키기

전시장

전시장

한편 경제시스템의 변화로 마카오는 지금 급격한 환경의 변화를 겪고 있다. 모든 근대문화와 역사는 발전/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사라지고 새로운 건물들이 도시 곳곳에 솟아오르는 전형적인 개발국가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옥스웨어하우스는 사라져가는 마카오의 역사를 기록하고 그 기록을 기반으로 마카오의 정체성에 질문을 던지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해 왔다. 특히 마카오 북부의 오래된 마을은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었는데 작가만의 주도가 아닌, 이곳의 현지 지역작가와 거주자 간의 협업을 통해 역사를 수집하고 그 가치를 공공에 알리는 ‘북부지역 예술프로젝트’(The Northern District Art Project)를 2004년부터 지금까지 운영해오고 있다. 또한 마카오의 유망 지역작가를 발굴하는 프로그램은 가능성이 큰 젊은 작가를 발굴, 선발하여 지원하고 있다. 단지 전시만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워크숍, 스크리닝, 작가와의 대화 등의 세부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초점이다. 마카오에서 거의 유일하게 실험적 전시를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마카오는 인구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대중에게 소개할 수 있는 다양한 작업이 부족하다는 환경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옥스웨어하우스는 국제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운영해 다양한 작업을 선보이고, 또 타국의 작가들에게 자신들의 문화와 제반 문제들을 알림으로써 전 세계가 향후 고민해야 할 사항들을 같이 나누는 계기로 마련하고 있다. 매년 4명 이상의 해외작가들이 옥스웨어하우스의 스튜디오에 초청되어 작가 프레젠테이션, 지역작가와의 워크숍, 개인전 혹은 협업을 통한 공동전시 그리고 오픈 스튜디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상호소통의 기회를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홍콩, 대만, 중국 등 주변국과의 교류로 시작하여 지금은 한국, 프랑스, 스위스, 독일 등의 국가로 확대운영 중이다.

레지던시 전시장
스튜디오

▲▲ 레지던시 전시장
▲ 스튜디오

지역민과 공유하는 도시재생적 사고방식

그간 옥스웨어하우스가 진행해온 프로그램과 그 배경들을 보면 지금 우리나라와 아주 유사한 상황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더 가까이 들어다보면 놀라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소수의 예술인들이 거대한 상업자본 앞에서 예술의 순수성을 지키며 끊임없는 실천들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은 인상 깊다. 그것도 불과 몇 명이! 또한 이것은 옥스웨어하우스의 디렉터인 프랭크 레이(Frank Lei)의 철학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도시의 신개발정책을 도시재생의 사고로 연계된 예술을 통해 시민사회와 공유하자는 것, 카지노의 힘 앞에서 문화의 힘으로 저항하는 것, 지역의 젊은 예술가들에게 다양한 프로모션을 통해 세계적 현대미술의 흐름에 대한 눈높이를 맞추는 일, 세계 각지의 우수한 작가들을 초청해 지역작가와 함께 소통하는 기회의 판을 제공하는 것, 그리하여 지역 작가들에게 예술의 무수한 가능성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등등이다.

소위 ‘대안공간’은 같은 지점을 바라보며 함께 꾸려 나아가는 곳이다. 그러나 공공기관에서나 감당해야 할 일들을 작가 한 사람이 오롯이 꾸려나간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마카오국립대학교 예술대학이라는 존재가 그나마 유일한데 졸업 후 젊은 인력들은 유학이나 작품 활동을 위해 가까운 중국으로 떠난다. 따라서 현지 활동인원은 손에 꼽힐 정도로 적을 수밖에 없는데 필자가 사흘 동안 머물면서 현지 작가들의 작업실을 거의 다 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 프랭크 디렉터는 늘 바쁘다. 지역작가 챙기기, 공간운영을 위해 정부와 접촉하기, 칼럼니스트로 글쓰기, 사진작가로서 활동하기, 그리고 잦은 출장까지. 어디가도 그렇겠지만 비영리공간 대표들의 삶이란 이렇듯 빠듯하다. 여유로운 일상을 영위하는 낙천적인 마카오 사람들과는 유난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물론 이들의 활동들이 마카오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이들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런 공간이야말로 젊은 예술가들이 모이는 유일한 소통의 터전이며 정보와 방안들을 서로 전하고 나누는 창구이기 때문이다. 옥스웨어하우스의 행보가 작은(?) 마카오 속 문화 플랫폼의 전방위기지로 오래도록 지속되었으면 한다. 더불어 동시대의 활동가로서, 이들과의 협력 체계를 구축해 아시아의 여러 공간들과 서로 소통하며 상생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서상호 필자소개
서상호는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공부하고 활동하는 작가지만, 작업 안하고 작가라고 우기며, 아니 시간 없어 못한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오픈스페이스 배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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