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장 외관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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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비영리 문화조직 ‘바디 페이즈 스튜디오’(Body Phase Studio)는 극장 종사자, 연극학자, 경영관리자, 건축가, 예술행정가 등 10명을 모아 ‘소극장 공동운영 실행위원회’를 구성해 타이베이시 정부문화국의 위탁을 받아 ‘독립경영, 이익 및 손실 자기부담’이라는 계약 조건을 걸고 굴링가실험극장의 경영 관리를 시작했다. 당시 침체된 타이베이 극장 문화를 고려해 실행위원회의 전체 위원과 추천 받은 예술감독, 총감독들은 무급으로 참여해 극장의 행정관리 및 감독, 프로그램 기획과 중장기 계획 등의 장기적인 안목과 실용주의 노선에서 이 극장을 새로운 발전의 장으로 열고자 했다. 한마디로 굴링가실험극장은 극장이라면 갖추어야 할 ‘공공정신’을 실천하는 곳이었다. 2007년 필자는 왕묵림(王墨林) 연출가를 통해 바디 페이즈 스튜디오를 이어 맡았고 이듬해 소극장 공동운영 실행위원회에 의해 굴링가실험극장의 관장으로 추천을 받아 기존 예술감독과 집행감독을 대신해 3명의 직원과 비정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겸직 직원들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
파출소 소극장에서 실험극장으로
굴링가실험극장은 백여 년의 역사가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일본 식민지시대였던 1906년부터 2차 세계대전 종료 때까지 이곳은 줄곧 일본 헌병대가 주둔했었고 전후에는 국민당 정부의 경찰국으로 쓰였다. 현재 3층 높이의 바로크 양식의 건물은 1950년대에 증축한 것이다. 1995년 경찰국이 이전한 후 ‘소극장 연맹’이란 극장인 조직은 시 정부에 이 건물을 극장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이로써 새로운 극장 공간(최초의 이름은 ‘중정2분국파출소 소극장’임) 이 1997년에 탄생하게 되었다. 2001년 이 극장은 굴링가실험극장으로 개명되었고 이는 당시 정부가 추진하던 유휴공간 재생 정책에 따라 개조된 최초의 극장이 되었다. 현재, 극장의 1층은 홀과 80석 규모의 블랙박스 극장이 있고, 2층은 야외 테라스와 연결된 화랑 공간이다(공연 시 50~60석 소극장으로도 이용가능하다). 3층은 벽 전체가 거울로 된 연습실로 이곳에서 가끔 작품이 발표되기도 한다. 3개의 실내 공간은 일 년 내내 개방되고 가끔 극장에서 자체 제작한 프로그램을 위해 이용되는 것을 제외하곤 대부분 개별 단체에 임대된다. 공간 사용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엄격한 심사제도도 없지만, 극장 직원과 임대한 외부 단체는 반드시 극장기술협조회의를 열어 사용 규칙 및 서로의 필요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는 시간을 갖는다. 최근 3년 동안의 연 사용률이 평균 80%에 달하고 이용객 수도 2만5천명에 달한다.
이 역사적 의미가 풍부한 극장은 유명한 헌책방 거리에서도 눈에 띄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반면 건물의 노후나 향후 관리 등의 문제, 운영 규칙이나 기반 등의 미비로 인해 바디 페이즈 스튜디오와 극장은 초기 운영 계획을 수립할 때 이 ‘폐허’를 반드시 부활시켜야 한다는 피할 수 없는 과제를 마주하고 있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초기 3년 동안 건물의 부식, 누수 등의 문제에 힘겹게 대응하고 이와 동시에 위원들은 각고의 노력으로 크고 작은 활동을 계획해 이 극장에 다시 한 번 ‘소극장 정신’을 불어넣고자 했다. 1980년대 당시 타이완에서 소극장 운동이란 아직 요원한 일이었지만, 이후 세계적으로 불었던 자본주의 열풍 및 자연재해, 전쟁 등의 큰 소용돌이 속에서 실험적이고 색다른 극장 운동의 방향을 모색하는 것은 매우 시급한 일이었다. 이와 동시에 아시아 국가로서 예술 창작의 주체성을 생각하는 것은 타이완 극장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 소위 일컫는 ‘소극장 정신’은 사실 극장 및 예술 종사자들이 끊임없이 역사, 사회, 정치에 대해 반성하게끔 하는 데 의미가 있다. 이는 체제의 제약 및 시류의 충격 속에서도 ‘인간’으로써 사고하기를 포기하지 않고, 몸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실천을 통해 자신과 대중의 시야를 더욱 넓히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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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람에게 회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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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부터 굴링가실험극장의 이용률과 공연작품 및 관객이 모두 급속히 늘어났다. 사회의 관심과 극장 종사자들의 지지는 극장 종사자들로 하여금 더욱 책임 있게 극장을 관리하고 전략을 세워 다양한 추상과 무형의 개념을 실천하게끔 했다. 굴링가실험극장은 자체 제작 프로그램의 계획부터 소극장 예술창작의 주체성을 살려 개최한 국제예술제, 최근 추진한 다국적 프로그램 제작 및 극장 제작교류 등 극장이 대중을 응집하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개막작 (행위예술 마라톤)을 시작으로 그 후 6년 동안 굴링가실험극장은 공연예술의 역량이 모이는 집결장으로 아시아 연극 및 무용 신예들이 집결하는 ‘아시아 아트 라이브’, 신체 장애인의 공연 예술 미학 발전을 위한 ‘식스센스 인 퍼포먼스 아트 페스티벌’, 신인들의 실험적 작품 창작을 독려하는 ‘뉴웨이브 굴링’, ‘타이완 국제행위예술페스티벌’, 그리고 3년마다 진행되는 ‘굴링가소극장페스티벌’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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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웨이브 굴링(2008) |
슈팅 레프트 아시아 필름 페스티벌 포스터 |
굴링가실험극장의 국제 교류는 화교/중국어 사회인 홍콩, 마카오, 중국 대륙과 영국, 프랑스, 독일, 스위스, 네덜란드 및 멕시코와 페루로 이어지고 더욱이 일본과 한국에서 시작되어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로 이어지는 활모양의 교류지역 형태는 단순히 각지의 공연예술 종사자 및 극단, 무용단의 네트워크 뿐만이 아니라 여러 문화기획자, 사회운동가 등을 포괄한다. 이들은 굴링가실험극장에서 다양한 공연, 강연, 워크숍을 개최했고, 굴링가실험극장은 점차 현대성, 실험성, 진보성을 띈 공간으로 탈바꿈하여 지금은 타이완 및 외국의 뜻있는 예술가들이 와서 자신의 예술 및 미학적 사고를 표현하는 장소가 되었다. 이로 인해 2010년부터 타 지역 극장과의 구체적인 협력 계획, 특히 현대적 색채의 극장 공연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에 새롭게 도전하고 있다. 2011년 9월, 여러 국가(타이완 타이베이-프랑스 마르세유ㅡ중국 상하이)들이 제작한 (보이첵)(Woyzeck, 프랑크 디메흐 연출)은 많은 호평을 이끌어냈고 11월 초의 타이완-마카오가 공동 제작하는 (블랙홀3)(왕묵림 연출)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그 밖에도 굴링가실험극장을 임대, 사용하는 극단 혹은 예술가들은 ‘올해의 프로그램’에 선발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2008년부터 시작되었는데 굴링가실험극장에서 우수한 작품을 공연하도록 장려하는데 그 취지가 있다. 공연예술 종사자, 학자, 평론가 등 10명으로 구성된 평가단은 1차 선발 명단을 제출하고 2차 선발을 통해 최종적으로 4~5편의 작품을 선발한 후 관객의 인터넷 투표를 통해 ‘올해의 프로그램’이 선발된다. ‘올해의 프로그램’을 제작한 극단 혹은 예술가는 이듬해 굴링가실험극장에서 1주일 공연이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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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객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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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극장수첩』시리즈(현재까지 9권 발행)와 정기통신간행물 『문화보』(현재까지 22기 발행)를 통해 대중과 프리랜서 극장 종사자들이 신체와 대중의 주체성을 인식해 새로운 관점을 만드는 동력을 찾도록 했다. 그 밖에 『자체제작 및 외부 임대공연활동 자료보관집』 역시 극장 종사자들에게 요청을 하고 자문을 구해 굴링가실험극장과 소극장의 관련 자료, 영상, 음성 자료를 만들어 디지털 시대의 자료 공유라는 시류에 부응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활동은 미래의 동반자를 양성하고 타이완의 젊은 세대들의 일상에 창의력과 미적 감각을 심어주는데 도움이 된다고 본다. 그 밖에 ‘슈팅 레프트 아시아 필름 페스티벌’이란 활동은 아시아의 다큐멘터리, 연극 혹은 실험영화 상영을 통해 공연예술 영역 밖의 국내외 학자, 사회운동가, 영화종사자 등을 초청하고 있다. 이를 통해 예상 밖의 관객도 끌 수 있으며 역사관과 새로운 시각을 가진 ‘아시아 영화전’ 포럼도 개최하고 있다.
굴링가실험극장은 국내외 극장 종사자들의 창의력을 응집시키고자 하는 그 ‘마음’ 자체이다. 또한 도심을 오가는 행인, 이웃 주민, 심지어 극장 앞에서 버스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에게도 창의력을 전파하고 나아가 새로운 감성과 생각을 나누기 위한 장소이다. 독일 아티스트인 요셉 보이스가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 모두는 다원화된 현대 사회의 대화에 참여하고 있다. 한때 경영자로서 나는 건축물이 뿜어내는 역사적 의의와 특별한 건축 구조를 더 많이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사람은 사람에게 회귀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로젝트 역시 사람에게 회귀되어야 하지 대학의 개입과 외부세력의 힘을 받아 극장을 전쟁터나 상업공간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생각들이 주목을 받아 굴링가실험극장은 사람들의 창의력이 표현되고 ‘재생’되는 곳으로 변모하고 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 많은 젊은이들은 급변하는 전환기 속에서 굴링가실험극장을 피난처 흑은 임시거처로 삼았다. 오늘날 이곳은 참신한 인문학과 예술이 공생하고 융합하는 공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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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야오리춘(姚立群)은 타이완 굴링가실험극장의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으며 아시아 독립예술네트워크, 뉴웨이브 굴링, 굴링가소극장페스티벌 등을 개최하고 있다. 페이스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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